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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礼的传统与生态意识的新展望” 多维新闻

“礼的传统与生态意识的新展望”

2019 1 18

一明

可持续农业发展的关键:中国传统理念——礼

作为旨在构建人与人、机构与机构之间和谐关系的行为准则体系,中国传统文化中的“礼”具有十分深远的意义。所谓礼,从广义上讲指诸多礼节规矩,从狭义上讲则指生活中的各种礼仪(如婚丧嫁娶、祭祖祭天等)。不论从哪个角度来看,礼都曾是社会的基石,曾是确定家庭关系,促使一个家庭、一个社群、一个民族乃至一个国家的成员尽职尽责的原则。“礼”曾被视为“修身”(践行礼)、齐家(用礼仪来维系和谐的家庭关系)、治国(以“礼”的原则治理国家)和“平天下”(通过“礼”妥善地处理外交关系,实现世界和平)的中心要素。

在狭义框架内,古时的礼有向族长、君主、上天或神灵敬献食物、珍宝等供品或贡品的意思。当时它还是个人、家庭以及全体人类定期向供给自己食物的生态圈表达感恩之情的方式,因而一饮一食被赋予了深刻涵义,用餐之礼也被用于提醒人们农业的中心地位和生态系统的重要性。

“礼节”之“礼”确定了一系列综合性规则,通过强调日常生活中的道德责任规范人际交往行为、建立健康的社会秩序。一个家庭中长幼之间通过相互问候(从而令社会关系明确化直至为世人所承认)表现出的“礼貌”之“礼”拥有深刻的象征性价值与切实的道德力量。直接从祭典仪式衍生而出的“礼仪之礼”强调人与人之间的关系,保证每个人都被严严实实地笼罩在人造与自然事物的巨大层级网络中,没有人认为自己可以置身事外,就连皇帝也不例外。

这样,礼仪之礼增强了人们之间的平衡感,而这种平衡又同人类世界和自然领域之间的平衡息息相关。在现代化进程中,中国人深感获得了解放和自由,不必再遵循曾牢牢束缚自己手脚的繁文缛节,然而这同时也意味着他们剪断了自己与周围人、与自然世界之间的羁绊。其结果,是身处异化社会中的人们对同胞的剥削愈发残酷,自然环境遭到的破坏愈发严重。

尽管中国有过力图推翻对劳动阶层凶狠剥削的社会主义革命,然而支撑这场革命的马克思主义框架并未将人与自然环境的关系纳入其中。马克思主义思想对于阶级的理解对分析社会矛盾、从而推进改革大有帮助,但是因为改革往往是排山倒海式的,招致的反作用也极大,结果往往不可预测。德国的国家社会主义(希特勒是其中的关键人物)就是如此。由此看来,儒教的渐进改革自有其优越性。而且马克思主义没有意识到环境保护、生态农业等长期问题。

最近中国乃至全世界的贫富差距问题愈演愈烈,倘若孔子的门生看到了,恐怕也会忍不住扼腕叹息。还有,土壤、水资源与山区惨遭破坏,之所以会有这场悲剧,是因为礼文化反复强调的“天人合一”的和谐关系被腐蚀得千疮百孔。

“礼”这一观念并非儒家所独有。它在佛家、道家以及中东地区的萨满教都有深厚的根基,基督教和伊斯兰教义中也有它的影子。也许现代思想文化最大的瑕疵之一,便是缺少用来准确描述“礼”的语言。也就是说,尽管我们假装摆脱了旧时之礼的束缚,迈入了时兴自我表现、直来直往的现代社会,但其实仍无法僭越深深根植于人类文化中的“礼”。再者说,现代社会中也有许多潜移默化的“礼”(买流行的裤子给学校的朋友看的“礼”;买贵的车子表示社会成功的“礼”,还有购物、消费时要遵守的“礼”),只是人们没有视之为“礼”。同时,民众尚未发觉“礼”在团结人心、唤起环保意识、建立政治与精神共享体系等方面的重要作用。

儒家关于“礼”的传统思想——尤其在南宋朱熹(1130——1200)对礼学观点加以整理、规范,并将其与形而上学全面联系之后——为家庭、社群礼仪与国家礼制赋予了新的内涵。应当重视暗含于万物之中的形上秩序、生态系统和人类世界三者的关联,这种观点早就存在,但人们从未将其如此系统化地梳理整合。人类的一举一动与自然之间的关系顿然明朗,人类行为也有了理性参与的意味。

朱熹清晰地阐明了“礼”的重要意义,并将其与铺陈于每一种家庭礼仪背后的形上秩序直接结合在一起。

儒家礼学的巨大潜力在于,它强调个人与自然,食物消耗与对食物来源的认识,以及公民日常生活与整个生态系统之间的关系。倘若它能够得到重新诠释、为我们的时代所用,那么社会所面临的最为严峻的威胁之一——人们将盲目消费作为日常生活的重要一环——或许可以迎刃而解。

现代化、消费与和家庭礼仪:以韩国为例

二十二年前我与韩国妻子结婚时,发现她的家人在一丝不苟、井井有条地遵循儒家礼制,于秋收时分、春节以及先人忌日祭拜祖先。到时全家人都会从韩国各地甚至国外赶回老家,次次不落,不惜推掉其他事务,在汹涌车流中连坐几个小时。做哥哥的会精心摆放牲肉、栗子仁、柿子、苹果、酒和其他食品,布局及所用碗碟均十分讲究,以求与他们珍藏的典籍中的详细图谱相一致——图谱是直接根据《朱子家礼》中的说明而绘制的。当时我被她们家和睦的气氛与对传统的尊重而深深吸引,并为能够以新成员的身份参加祭祖而深感荣幸。

然而,几年之后,我妻子的家人似乎对祭祖仪式有所懈怠。她的哥哥们经常说自己工作太忙,来都不来;孩子们要么只顾跟朋友们出去玩,要么点卯应付一下,随后便冲出门去。自从我岳父去世后,就连桌上的供品也变得敷衍草率。布置供桌的,常常只有几个人,有时甚至只剩下了我自己。

恐怕我们的下一代再也不会履行儒家之礼——也许它会随我岳母这一代人的离世而失传。很难想象我们在诱惑性消费文化中长大的孩子会继承这一传统。这种损失不可小觑,但在越南、日本和中国,情况并没有什么不同。

这样的事情越来越多:年迈的父母被子女抛弃;年幼的孩子要么被父母丢弃,要么被置之不理。总体看来,儒家之礼的凋零不仅导致了中韩两国的社会转型——这种转变完全是恶性的,而且助长了自恋主义文化。这种文化只注重眼前、自我和表象,忽视未来的后果与内在价值。儒家之礼曾经是对连结人们的共同根基的恒久认可,是我们共有的道德义务的具体展现。它的意义绝不仅限于取悦祖先、为家人祈福。

对礼制最猛烈的冲击来自于商业广告。现代广告空洞无物、缺乏底线,从道德内容上讲简直与色情片别无二致,根本没有奉劝人们相互合作、关心弱势群体的作用。满足私欲被奉为理想,被用作哗众取宠、吊胃口、挑起脑干非理性本能的噱头。此类广告是对衣食乃至我们生活中万事万物之神圣性的亵渎,而儒家之礼强调社会成员之间的关系,反映了日常生活的精神层面,与之截然相反。

我们应当规劝人们珍惜每一粒米、每一滴水;劝诱民众像广告中说的那样暴饮暴食是蔑伦悖理的做法。气候正在恶化,我们的社会已经被肤浅的电视节目变成一片沙漠——俭以养德、尊农惜粮是儒家传统思想的精华,而这些节目却反其道而行之。

民众对核战争威胁、气候变化、财富向少数人手中迅速集中等危险问题视而不见,是新型反智文化蔓延的直接结果。我们不再运用严谨科学的方法去分析现代社会乃至我们的私人生活,而正是由于将我们连结在一起、将我们的行为连接至广大社会的礼之羁绊被切断,反智潮流才汹涌而至。

在中韩两国的传统思想中,教育民众、令其清心寡欲十分重要。如今接受过良好教育却沉迷于声色犬马的人太多太多,也许我们应当重新审视传统礼文化,不再将其看作意识形态的枷锁,而是把它当成督促我们对彼此践行承诺的道德法则。

食物、社会和环境

在古代,尤其在朱熹建立自己的礼学体系之后,从社会与环境两个角度来强调食物的价值便成为了礼文化的重要组成部分。肯定食物在生活中的重要性以及我们同祖先和自然的联系,可以提高我们的尊农意识,为日常饮食添加精神层面上的内涵——面对气候变化等环境问题,这一做法具有绝对意义。要解决这些问题,我们或许不必向西方发达国家求助,只需要细细研究儒家传统思想。

从这个角度来看,礼文化拥有无穷的潜力。儒家传统思想中的礼学观点认为日常物品——尤其是食物——具有神性内在。这一观点可以追溯至古时的一种信仰:食物等物品都有物质实体(因此食品可以滋养身处物质世界的我们)与超越物质的内在(因此用作祭品的食物可以供养祖先与神明)。后来该信仰被赋予了这样的内涵:用在祭祀仪式中的食物代表着对农业的重视、对产出食物的环境的珍视,以及对食物中超越物质之内在的认可。千百年来,人们也用祭祀活动来表示对令人类与农耕合而为一的生产过程的尊重。

在传统世界观中,人作为翻耕土地的农民和食物的受惠者而存在,死后又会被安葬于土地之下,最终任身体化作大地的一部分,参与生态循环过程——滋养了我们的食物会以这样的方式滋养我们子孙后代,因此说它是祖先的产物并不为过。

儒家礼学思想并没有明确提及上述过程,但这种对于人类同自然世界关系的理解只是浅浅地埋藏于表象之下。毕竟我们的祖先不仅将生命赐予我们、把农耕技艺传授给我们,还凭借自己的智慧,凭借自己身体化成的沃土创造了我们现有的环境。

世界的现状由以往的历史事件决定,人类后代的未来由我们今天的行动决定,在过去的几百年中,这一过程早就完全偏离了正确的方向,其结果是各种自毁式行为在人类社会层出不穷:人们大量使用塑料制品,食物被当作取乐和消遣的道具而非从中获得营养的资料。人类世界和自然世界被装有空调的钢筋水泥大厦分隔开来,导致人类完全脱离了自然界,且持有一种错误的观念:人应当凌驾于其他动物。上述过程已经被现代人遗忘,文化的连续性因此而遭到严重破坏,同时人们也对以下问题一无所知:食物来自何方、如何产出?上述因果相承的过程对我们的生活有何影响?生态系统的破坏及其对食物供给的影响如今已成为讨论的禁区,人们一直对其避而不谈。

人们在祭祖或祭天仪式结束后分享被撤下供桌的祭品——特别是粮食与农产品,这让祭祀仪式同时成为一场纪念活动,使人类体验得以同提供养分的食品直接发生关联,从而令土壤与食物、水与食物之间的密切互动得到确认。

用以明确人们的日常生活与他人、与大地之间存在何种关系的“礼”,其重要地位在十九世纪晚期——外来的现代化和工业化思想在中国扎根后——受到了猛烈冲击。儒家礼学被贬为阻碍中国快步迈入现代世界的落后文化与迷信糟粕。两代知识分子将清除封建社会的残余思想视为第一要务。在他们看来,祭祖祭天已不再是维系人与人、人与自然、人与农耕之间纽带的途径,而是工厂、火车、汽车、金融机构以及现代全球文化发展之路上的障碍。当时的人们有实现现代化的需要,而这一需要只有通过摆脱对他人和自然世界的依附才能满足。

我至今记得1983年在耶鲁大学上第一堂中国历史课的情形,那节课我听得很认真,学到了以下内容:很遗憾,故步自封的官僚将儒家治国理念与技术观奉为金科玉律,束缚了自己的手脚,阻碍了中国的现代化进程,令中国无法向以批量生产、蒸汽火车、大量工厂与城市扩张为标志的现代世界大步前进。老师还讲,当时正是因为思想落后,中国才被西方远远抛在了身后;也就是说,中国传统文化尽管辉煌灿烂,但也存在严重的缺陷,因此需要向西方借鉴某些重要原则——这是实现文化演进的必要前提。

然而,如今工厂、火车和汽车所使用的煤和汽油与日俱增,因而气候变化、经济与社会扭曲等问题正在我们面前肆虐,更不用提层出不穷的致命武器了。目睹这一切,我们是否还能接受上述论断?左翼和右翼的意识形态中,都能找到上述观点的影子——它深深地扎根于现代人的思想。但我们必须质问自己,时时处处关注环境,重视农业与粮食,要求建立以人为本、将道德原则摆在利益和生产规模之前的经济体系——这样的社会系统与令人和自然遭受持续性剥削的外来现代系统相比,孰优孰劣?

中国古代皇帝和朝鲜王朝的君王都会举行社稷礼。这种祭祀活动既强调了皇帝在开创太平盛世时至高无上的政治地位,又确认了生态系统对人类社会的极端重要性。社稷礼与百姓家中规格最高的祭祖祭天仪式相似。社礼旨在祈求土地神保佑土壤丰饶,让人民衣食无缺,以从根本上保证政治稳定、经济繁荣;稷礼旨在向谷神祈求五谷丰登,令庄稼不受病害、虫灾和旱情的侵扰。

这样的祭祀并不是迷信,而是土地、生长在土地上的庄稼与人类政治经济活动之间本质联系的表达,兼具政治内涵和精神力量——这并不是秘密。这种认知在人类居住地和自然世界之间建立了生态政治上的平衡,但自人类进入现代社会后,该平衡即被打破。现在中国的政党会议中仍有许多仪式,外国也有高官举办的集会,然而这些活动并不具备强调生物圈的重要性以及农业中心地位的意味。

我们的现代化项目并未考虑自然对人类社会的重要性,从而给现代社会招致了极为严重的后果。我们不再用象征性仪式来提醒人们自然和农业对他们的身心福祉有多么重要,提醒他们大地山河、一草一木与人类文明之间有千丝万缕的联系。人们所关心的“环境”不过是一个抽象概念,他们完全不考虑自己丢弃的塑料包装会对真正的环境造成何种影响。我们遭受着富有现代意义的画面和影像的轰炸:高速公路、摩天大厦、汽车、计算机和没有花草树木的风景。商界臆断植物——尤其是庄稼——可以在世界范围内交换、买卖,而不会给我们的文明带来任何影响,农业也被视作过时的落后产业。

然而任何文明都不应割舍土地种植这种生产方式,不该忘记为人们提供食物需要付出多少努力,否则便有沦为消费邪教、完全漠视未来生态环境的危险。那样的文明是极具威胁性和破坏性的。

宋代的儒家思想——尤其在经过朱熹的阐释之后——为社稷之礼和其他强调农业与环境对全民生活重要性的手段奠定了基础。朱熹关注自然世界中人类地位的形上意义,为把生态观念纳入儒家思想的知识与精神层面打下根基。从这个角度来讲,朱子礼学的意义要比佛学更为深远。

朱熹描绘出一套复杂的道德心理体系,该体系与礼仪之践行密不可分,且认为人类寻求启示的实践应当围绕着个人、社会与自然环境的关系而展开,正确认识自己处于其中的环境是自我修养与积极实践的重要目标。

宋朝儒家思想认为,我们如果能够直面本心,就会发现自己与自然亲密无间,因此我们必须对大自然抱有敬意。朱熹将这种心境称为“持敬”,并将其作为修心的重要条件。这种心境因遵守践行礼仪、关心他人、热爱自然等准则而生;这些准则在人们年幼时被学习牢记,在他们成年后被提升至更高的境界。获得持敬之心需要自律、沉思、正念,需要敞开心灵;修得仁心的最后一关便是让自己的本心与自然、与整个自然世界相连。

朱熹在《仁说》一文中表示,人类世界与其他事物的世界之间没有隔阂,二者存在体验和生存形式上的共性。朱熹对此做了如下解释:“彼谓「物我为一」者,可以见仁之无不爱矣,而非仁之所以为体之真也”。大彻大悟的人会觉得一草一木都可亲可敬。在朱熹看来,阻碍人们达到这种境界的,是人类的自私与傲慢,因此人们需要孜孜不倦,克己复礼。所谓“敬”,并不仅仅指敬天地,敬祖先,更指对自然怀有敬畏之心,对自己给自然造成的影响有深刻认识。

结语

近日联合国政府间气候变化专门委员会发布了一篇具有标志性的报告:“全球变暖1.5℃”(“Global Warming of 1.5 C”。比起众媒体轻描淡写的叙述,该报告就不久之后气候变化趋势的预测要骇人听闻得多。报告指出人类正在面临高碳经济的灾难性后果,同时对人们之前的“碳交易计划足以解决气候变化问题”这一想法予以明确否定。

报告并没有提及诸多专家做出的更为悲观的估计,但比其他主流报告都要中肯深刻。然而现代社会极力否认它的重要意义,并对关键问题避而不谈。我们面前的问题,既不是工厂与汽车的碳排放,也不是新兴技术的使用,而是对一种观念和心态的全盘接受:以商品消费的多寡来衡量人生体验意义的轻重。

现代社会中,这种观念浸染了多数人的想法,也在很大程度上决定了民众心中的头等大事。但以往的传统思想,尤其是儒家礼文化中将食物作为人与自然间羁绊的代表这一观念让我们有了其他的选择。虽说我们尚不清楚应当如何重新诠释儒家传统文化,使其为现代社会所用,为整个世界所用,但它拥有巨大的潜力,这一点毋庸置疑。毕竟朱熹的礼学著作在韩国备受青睐,因为它们强调的是普遍性而非特异性。这些著作使得明晓礼仪成为启蒙过程的重要一环,这个环节人人都可参与。

或者我们可以说,朱熹以极有说服力的方式把个体行为与普遍法则整合在一起,而这是今天的我们最迫切需要的。每个人的行动和选择都对保护环境有着至关重要的意义。我们可以从儒家传统文化中找到启示,采取全新的生活模式,以此来化解气候变化危机和食物危机。

“통일대박론, 일제 만주국 개발 방식…약탈적 경협을 넘어야” 경향신문 인터뷰

경향신문

인터뷰

“통일대박론, 일제 만주국 개발 방식…약탈적 경협을 넘어야”

2019년 1월 16일

이만열 이사장의 ‘제대로 된 북한 발전계획’

“북한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담론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봅니다. 또다른 통일대박론에 불과합니다. 경협의 이익은 남북 시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 언어문화학 박사 출신으로 한국의 ‘선비정신’에 주목한 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55·미국명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 2017년 한국 국적까지 취득한 그가 최근 ‘제대로 된 북한 발전계획’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경향신문과 만나 “북한의 풍부한 광물 자원,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빠른 부를 창출하려는 ‘약탈적인 경협’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정작 주민들이 아닌 외부 투자자들의 배만 불리는 방식으로 북한 개혁·개방이 이뤄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통일대박론의 뿌리를 일제의 만주국 개발에서 찾았다. 그는 “통일대박론은 당시 한국 부자들이 만주에 투자해 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석탄 등 자원을 개발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만주개발론과 같은 맥락에 있다”며 “이에 ‘한반도 신경제’나 ‘동북아 경제공동체’ 주장은 이런 대박론부터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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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 북한 발전 계획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

“2007년 한국에 온 뒤 북한 이야기는 안 했다. 북한 전문가가 많은 데다 저는 지식도 없어 남한 문제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자원개발, 값싼 노동력 활용 등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담론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다른 목소리가 별로 없다고 느껴 내가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북이 같이 발전소를 짓는다는 아이디어도 나오는데 신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를 염두에 두는 것 같아 실망했다.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안 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 한반도신경제구상, 통일경제특구, 동북아 철도공동체 등 논의는 어떻게 보나.

“1970~1980년대 독재 시절이었지만 작은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 돈으로 운영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대형마트와 경쟁해야 하는 등 20년 전에 비해 독립적 경제력이 많이 떨어졌다. 북한까지 남한식으로 개발하면 안 된다. 남한의 상황도 심각한데 남한 제도를 북한에 도입한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남북경협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남북 시민사회 간 협력 방식으로 가야 한다.” 

– 북한도 개혁·개방을 할 때 중국·베트남 모델처럼 외자 유치가 필요하지 않나.

“부분적으로 해외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해외자본에 의지하는 것은 반대다. 1960년대 한국은 해외자본에 의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해외투자를 엄격하게 관리한 게 도움이 됐다. 단기적 이익만 고려하는 기업의 투자는 한계가 있다.” 

–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권구훈 골드만삭스 전무를 위촉했다.

“객관적으로 한반도 발전을 분석해야 하는데 골드만삭스에 있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언론에서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많지 않아서 놀랐다. 남북경협의 청사진은 기업이 아니라 남한 시민, 전문가, 탈북자가 북한 시민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야 한다.” 

– 문재인 정부도 북한 개혁·개방 시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강조한다.

“박근혜식 통일대박론은 1935년 일제의 만주국하고 조선의 통일 정책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만주국하고 조선은 하나라는 ‘조만일여(朝滿一如)’를 강조하며 일본이 통일을 시키려고 했다. 당시 한국인 부자들이 만주에서 투자해 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석탄 등 자원을 개발하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조선총독부에서 이를 발표하고 신문 기사에도 나오고 했다. 실제로 남한 부자들은 그 당시 만주에서 돈을 벌었다. 거기에서 공장도 운영하고 개발했다. 하지만 평범한 만주 사람들 삶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만주 사람들과 교류하고 더 나은 사회 만들자는 차원이 아니었다. 남북경협의 경우 조만일여식 논리에서 벗어나 북한사회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 통일대박론의 연원이 그렇다면 놀랍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이전에 박정희가 비밀리에 일본에서 기시 노부스케 등을 만나 ‘우리가 만주에선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남한에서 다시 한번 해보자. 많이 도와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노부스케도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반가워했다. 실제로 박정희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만주국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민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는 만주개발론은 통일대박론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인 노부스케는 만주국에서 산업개발을 추진하고 A급 전범이지만 전후에 무죄로 풀려난 뒤 총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 문재인 정부가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얻어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조만일여, 통일대박론 같은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빈곤한 북한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대신 국제 투자자들이 혜택을 보는 ‘약탈 경제’ 계획이 지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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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 최근 탈북자들과 세미나도 했다고 들었다.

“독일이 통일될 때 문제가 적지 않았다. 동독에서 공동체, 공동농업, 예술활동이 많았지만 통일 이후 다 사라졌다고 한다. 동독에서 서독과 다른 패러다임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사라진 것이다. 탈북자들도 공동체적 활동이 없어지고 모든 게 수익 위주로만 되는 사회라면 문제라고 했다.”

– 북한이 가야 할 제3의 길, 대안적 발전 모델은 무엇인가.

“지금 남한이 생각하는 경제는 일본식의 경제다. 성장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게 많다. 원래 경제란 표현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유교사상에서 나온 게 아닌가. 돈을 좇기보다 윤리적 원칙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고 시민을 살리자는 의미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경제 분야에서 잘 해 성과를 내고 기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제3의 길은 협력적인 경제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고유의 경제 공동체 의식과 마을 중심의 나눔 전통을 살리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커먼스(Commons·공동체의 규칙에 따라 자원을 공동으로 이용·관리하는 것) 사상을 수용하면 된다.”

– 남북 협력도 이런 방식으로 가능한가.

“충분히 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토론하면 충분히 제3의 협력 방식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대북 제재는 어떻게 보면 북한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고민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것이다. 남한 정치인, 경제인은 남북정상회담 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에 가기도 하는데 다른 협력을 구상하는 사람들은 가지 못한다. 또 일본, 미국, 중국, 남한의 자본은 철도·도로 등 인프라, 자원 개발 등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 내용이 뭔지, 맞는 방향인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 올해 상반기 ‘제대로 된 북한 발전계획’에 대한 책을 낸다고 들었다.

“올해 3월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35년 만주 상황과 현재 상황을 비교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지점이 빈부격차 문제다. 남북 모두 일반 시민들과 부자들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1980년대 남부의 보수적인 주에선 노조를 말살하는 법률이 있었다. 이 법률의 최종 목표는 남부가 아니라 북부였다. 이것과 비슷하게 북한에 적용한 나쁜 정책을 남한에서 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증거는 없지만 남한 기업들은 북한에 투자할 때 남한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 낮으니 남한의 최저임금도 내리자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의 잘못된 개발이 남한 시민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Inconvenient parallels between responses to the Holocaust and to climate change” Korea Times

Korea Times

“Inconvenient parallels between responses to the Holocaust and to climate change”

January 13, 2019

Emanuel Pastreich

(with Alexander Krabbe

A comparison between the culture of denial and self-deception that swept Europe during the Holocaust and the disgraceful failure of so-called “advanced nations” to take even the most basic steps to address the catastrophe of climate change may strike readers as a painfully stretched analogy that undermines the authors’ credibility.

Sadly, the resistance to this analogy that we have encounterd suggests the depth of the denial of climate change that lurks among intellectuals, and extends to the entirety of the educated classes around the world. For, if truth be told, the consequences of global warming and the resulting accelerated climate change will be far deadlier for humanity than the Holocaust, leading to the deaths of hundreds of millions, or billions, as agriculture collapses in the face of spreading deserts and the oceans die as a result of warming waters and increasing acidity.

That we can read about this catastrophe in newspapers and refuse to end our thoughtless consumption of fossil fuels and our mindless plunge into a fantasy of immediate gratification without concern for future generations suggests nothing less than mass psychopathology.

The analogy to the Holocaust is imperfect and tentative, but it explains how a shadow has fallen between the knowledge of catastrophe and actual action. It offers precedents for the psychology of educated people who fall over backwards to deny an obvious disaster, who refuse to admit that their daily actions had anything to do with the radical crimes carried out in secret.

We can imagine a future date, if humanity manages to survive in some form, at which this brutal truth of how those with the learning to grasp the problem who pretended that they had nothing to do with this suicidal process will be forced out into the open and the public will be forced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 immensity of the crime that we have committed, and face the bitter fact that we betrayed future generations every time we drove to the market in a car or typed on a computer using energy generated by coal.

The denial of the Holocaust was not limited to the refusal of Germans to acknowledge the systematic rounding up of Jews (and other undesirables) for transport to concentration camps and on to death camps. The denial of this crime spread around the world, including all the nations of Europe. Educated people in France, Spain, Italy, Belgium and elsewhere knew full well that Jews in their country, and elsewhere, were being rounded up and sent to their deaths. It was an open secret. There were a handful of people who pursued the issue, who looked at the facts (disappearing Jews, threats of violence and a rhetoric of annihilation) and were led inevitably to the unpleasant explanation for what was occurring.

Even intellectuals in the relatively free nations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U.K. were swept up in the systematic denial of the reports of the Holocaust and those brave eye witnesses who testified as to what was happening were dismissed. Officially, the Allied governments claimed that did not learn about the Holocaust until the first liberations of concentration camps in 1944, but in fact they were fully aware of the number (in the millions) who were being killed by 1942 and deliberately avoided offering any assistance.

Moreover, in 1980 the American historian and journalist Walter Laqueur found out that the British had already cracked the encrypted code of the SS in 1941 and constantly listened to the radio traffic of the Nazis. In 1996 Richard Breitman published British listening records that included success reports from the German “SD-Einsatzgruppen” and police battalions, about the “extermination of the Jews” during the summer of 1941. There was no doubt as to what was happening.

Szmul Zygielbojm of the Polish government took tremendous personal risks in June 1942 to smuggle detailed reports about industrialized mass murder to London. Although the Daily Telegraph did mention his materials eventually, it was on page five of a six page newspaper (similar to the treatment that catastrophic climate change receives these days). Zygielbojm met with “indifference, disbelief or even suspicion,” eventually took his life after his wife and son were killed during the liquidation of the Warsaw Ghetto in 1943.

Refugees trying to escape persecution, such as the passengers of the ship the German liner MS St. Louis that came to the U.S. in 1939 were turned back without any serious discussion of the reasons the passengers were fleeing. The U.S. even turned away 20,000 Jewish children fleeing Nazi Germany in much the way that refugees from climate change (whether in Central America or Syria, or Northern Africa) are turned back without a second thought from the U.S., Canada or Japan today.

The use of Jews as slave labor to aid the German economy (and the economies of other countries), the misuse of the property confiscated from Jews in Germany, and across Europe, profits generated through budgets related to the “Final Solution” project were deep secrets that had real financial benefits.

The point is not to berate the Europeans for what they did then, but rather to suggest that the mentality was strikingly similar to what we see today. Fossil fuels (petroleum and coal above all) are dirty and immoral sources of energy and wealth whose catastrophic implications for the environment have been carefully hidden from sight while the immediate consequences are disguised through misleading reports in the corporate media that understate their deadly implications.

The best and the brightest of so-called “advanced nations” have their fingers all over this crime, whether in the promotion of economic theories that ignore climate change and assume that growth and consumption are necessary, or policy reports that vastly understate the gravity of the situation, or media reports that fail to mention “climate change” when reporting massive hurricanes, forest fires or droughts.

The number of people who are dying now, and who will die in the future, are carefully guarded by these gatekeepers, much as the mass killings of Jews were hidden from the writings of professors, journalists and government officials in Paris and Budapest, in Berlin and Rome, during the 1940s. Similarly, today we see educated people distracted by trivialities like Trump’s temper tantrums, and unable to focus on the disaster that stares them in the face.

We created this cognitive dissidence and we are all guilty. The industry of death around us has been hidden with our permission and with our consent. Factories in China or Vietnam use coal that destroys the ecosystem and pollutes the local region so that rich nations can enjoy inexpensive products without having to consider the price paid by our precious Earth. We pat ourselves on the back for being environmentally friendly because we do not have the domestic pollution we had in the 1960s and 1970s. But the unspeakable damage to our shared ecosystem is the same, whether the factory is in downtown Paris, or in rural Myanmar.

How is such an approach different from the scheme whereby placing the death camps in Poland allowed all of Europe to enjoy a false sense of innocence? As the recent Hungarian movie “1945” (directed by Ferec Torok) shows, the confiscation of the possessions of Jews was a massive industry that was assiduously covered up by those involved. It was too easy to blame the entire project on a small group of SS officers.

The current project of death encompasses the production of petroleum, the entanglement of the U.S. dollar with the use of petroleum, and the creation of fraudulent mechanisms like “carbon trading” that distract us from the necessary steps such as banning the use of fossil fuels. The myth that market mechanisms can solve the problem is embraced by environmental groups that limit their discussions to the most superficial solutions.

Even more grotesque is the transformation of the military in the U.S. (and elsewhere) into a massive consumer of petroleum and massive producer of carbon emissions that devotes its work to promoting wars to secure only more petroleum and natural gas, and thereby to create petroleum wealth for a select few. The generals embrace the mission of “security” while ignoring the real security threat of climate change. The scale of the horror is so great that many prefer to simply play stupid and let the insane project proceed unimpaired.

Today we deny the deaths of millions in wars over oil and the death of tens of millions as the consequence of climate change globally.

We can understand the mass pathology behind the killing of the Jews, or the embrace of fossil fuels, through a comparison with incest. Incest, sexual relations between close family members, is ethically offensive and disruptive behavior in our society. It results in tremendous psychological damage for victims (and at some level all family members involved are victims) that last for a lifetime.

There is a disturbing pattern in incest. Although disputes between family members about money or power often spill out into the open where they can be addressed by the family as a whole, and can be resolved, incest is often swept under the rug. Families try to maintain a semblance of normality for years, or even for decades, pretending that the unspeakable relationship does not exist. The same behavior is true for other forms of child abuse.

Similarly, when addressing the denial of climate change, we must confront the capacity of humans to embrace false narratives at the family level, the national level and the global level that spare them the pain of facing the truth and taking responsibility. We must recognize the ability of humans to deny the truth despite the tremendous damage that such action causes them over the long-term.

Such was most the mentality of thoughtful people in Prague, in Budapest or in Warsaw who felt comfortable sitting at cafes sipping their favorite drinks, reading intellectually complex novels and discussing the weather, or enjoyed the latest movies with friends while avoiding any mention of the mysterious disappearance of Jews from their neighborhood. They even struggled to block out the memories of evictions and roundups they had witnessed.

Of course the Gestapo and other fascist groups were so dangerous that silence was demanded. Yet the totalitarian system could never have been established if citizens had not practiced psychological denial for long enough to allow totalitarian rule to take root. The willingness of educated Germans to ignore the Nazi Party’s actions from 1933 on allowed that organization to establish a system that would eventually make criticism impossible.

Eventually those who tried to help Jews, homosexuals, dissidents, disabled people, Jehovah’s Witnesses, communists, POWs, critical authors, Sinti and Romanies were charged with crimes that demanded immediate and brutal punishment.

Although the Trump administration has made climate change a topic that government officials are not allowed to discuss, let alone respond to, discussing the topic is not illegal yet. Nevertheless, the brutal suppression of the protests against the Keystone SL tar sands pipeline last year, including ridiculously long prison sentences, suggests that it is entirely possible that the debate on climate itself will be criminalized in the years ahead, forcing us to make even more difficult decisions at even greater sacrifice.

We who fight for climate justice must recognize that we may not have much time before not only is radical climate change unavoidable, but also before the discussion of the topic is made impossible. Creating a sustainable future may require profound sacrifice and moral courage that goes beyond any “carbon trading” schemes that have been floated by multinational investment banks.

Climate change is already killing millions around the world, and will kill hundreds of millions in the years ahead. Yet the vast majority of the well-off (and well-off means those who make more than $US40,000 a year) are indifferent to the relationship between their overheated homes, their minivans, their imported cheap products, or their offices with ridiculously high ceilings in the lobbies and glass and steel exteriors that require vast amounts of energy to keep at a comfortable temperature, and climate change. They do not see, or they do not want to see, a link between the hurricanes devastating the coasts, the spreading deserts, the increases in forest fires, and their own daily actions.

In a grotesque burlesque that has become commonplace, we remark to each other as a greeting that the weather is so cold. Yet we are fully aware that today’s winters are so warm that flowers continue to bloom into December, and beyond. We intentionally wear heavy jackets when we go out, willing to put up with the inconvenience because the ritual somehow reassures us that the climate has not changed at all.

The painful pursuit of truth

There were brave men and women who risked their lives, and often more importantly, their relations with their own families and friends, to get the truth out about the Holocaust. More often than not their stories were dismissed as exaggerations. It was assumed that the unfortunate deaths of a few Jews were being exaggerated into a fantastic mass murder. The arguments for dismissing their stories (and such arguments are made even today) were based on the assumption that the fascists could not possibly have engaged in something so terrible and that the populations of Europe could not possibly have allowed something on that scale to happen. In effect, the scale of the crime made the task easier, not harder.

The psychology we see today regarding climate change is identical. The reports produced by scientists based on the scientific method that speak of massive destruction are dismissed or ignored because they are Pollyannish. The rosy predictions made by politicians, television personalities, columnists and businessmen, constructed from self-interest, ego and primitive denial are embraced by many as a precious salve for their deeply troubled collective conscience.

The scale of the catastrophe, which threatens humanity with extinction, is so large that those who embrace the culture of denial find it easy to dismiss. But there is no scientific basis for such dismissal. If anything, multiple mass extinctions from prehistoric times suggest that such scenarios are all too possible. That bitter reality is detailed in Elizabeth Kolbert’s book “The Sixth Extinction: An Unnatural History” (2014). Certainly the current massive die-out of insects, amphibians, and reptiles indicate that the process of extinction is inexorably working its way up the food chain towards us.

It is no longer a secret that a small group of billionaires are making a fortune off of encouraging waste among the population and forcing us to be dependent on fossil fuels, often using taxpayers’ money to subsidize this addiction to a dangerous energy source. They are fully aware of the crime that they are engaged in and they are informed about the coming catastrophe. Yet they march forward towards mass destruction, much as the leaders of the Third Reich did when they started their invasions of Eastern Europe and Russia, knowingly launching a catastrophe that destroyed them as well.

Just as a small group of intellectuals, such as Austrian-German Orientalist Adolf Wahrmund (1827-1913), pushed fake science about Jewish inferiority in Europe from the late 19th century, and tried to convince French and Germans that the contradictions of capitalism could be traced back to racial characteristics of Jews, a circle of fraudulent “experts” have made a fortune from paybacks from fossil fuel industry to push their denial of, or understatement of, climate change.

These professional deniers and scientists for hire such as Fred Seitz, Robert Jastrow (founder of the notorious George C. Marshall Institute) and William Nierenberg pawn off fake science using glossy brochures and fancy PPT presentations with the criminal intention of misleading the public about a national security crisis. The process is immoral and illegal, but even today is described in the media as merely matter of differing opinion ― much as rabid anti-Semitism was treated in Europe from the late 19th century.

Today’s professors, lawyers, doctors or businessmen and reporters contribute to the promotion of a fossil fuel-based economic system that defines the economy in terms of consumption and waste. They are amply rewarded for their work, through consulting contracts, through their connections to corporations pushing automobiles or fossil fuels, or through other financial links. They shamelessly discuss economics while ignoring the impact of wasteful energy consumption on the environment and they promote “free trade” while ignoring the tremendous emissions that result from the transportation of products across the world by container ships. This shameless work forms a perfect parallel to the pseudo-science of racial inferiority promoted by anthropologists and physiologists in pre-war Europe like Houston Stewart Chamberlain (1855-1927) who provided Hitler with his roadmap for systematic “scientific” attacks on Jews.

The Washington Post reported in November 2017, that the U.S. became the biggest polluter per capita in the world and that it has the most climate change deniers of any country. Such an extreme situation could not have been reached without the massive collaboration of countless American intellectuals in this institutionalized death march.

Some intellectuals have written books about the magnitude of climate change that receive attention in the mainstream media. For example, Naomi Klein has written, and spoken, in a persuasive and blunt manner about the scale of the threat to humanity, saying that the Earth is “fucked” by the false promise of perennial growth on a planet with limited resources. Her “This Changes Everything: Capitalism vs. the Climate,” published in 2014, is a rare example of a widely read book that suggests that the economic and ideological assumptions of our society will be fatal.

So also Clive Hamilton, an Australian professor who is a member of the Board of the Climate Change Authority of his country, published a powerful critique of flawed economic policies “Growth Fetish” in 2003, and the trenchant “Requiem for a Species” in 2010. Hamilton suggests that even the experts behind the 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have vastly underestimated the dangers ahead because of economic and political pressures.

But most climate change discourse has been laughable and pathetic. The most representative artifacts of this culture of understatement are former Vice President Al Gore’s two inconvenient movies: “An Inconvenient Truth” (2006) and “An Inconvenient Sequel: Truth to Power” (2017). Both films are more a promotion of Al Gore than a serious effort to address the threat of climate change. The saccharine narratives assume unwarranted optimism that multinational corporations that pursue profit can solve this catastrophe if only upper middle-class citizens raise their awareness of climate change. The movie avoids any consideration of serious actions such as the categorical prohibition of the use of fossil fuels, or even heavy taxing of pollution.

The road forward

2018 was a turning point in the modern Holocaust of climate change. The vastly increased warming of the North Pole led to a smaller difference in temperature relative to the equator, which disrupted the Northern Hemisphere’s jet stream. The result has been reduced air circulation at the altitude of nine to 12 kilometers with the consequence of minimal seasonal variations around the world. The resulting extreme rainfall in Italy, the unprecedented drought in Germany, the massive fires in California and Greece show that extreme climate is a reality, but governments, and their citizens are incapable of articulating responses on the appropriate scale.

Most of us lack the bravery, and the intellectual clarity, necessary to face the ugly truth of climate change and its roots in our culture and habits. We have externalized the problem and therefore are unable to move to the next step of changing our behavior so as to make progress.

There is still hope. We see a rising awareness of climate change around the world that makes an honest discussion about the scale of the threat possible. But we cannot allow half-truths and rosy projections to delude us. The struggle ahead will be profound and disorienting. We will have to challenge the consumption-based economics that underpins every aspect of our current ideology. The circumstances may be entirely different, but a moral bravery on a par with that which was required to confront the Holocaust will be demanded of us if we wish to find a solution.

“The Chinese concept of propriety (“li”) as the key to new ecological awareness”

Circles and Squares

 

“The Chinese concept of propriety (“li”)

as the key to new ecological awareness”

Emanuel Pastreich

January 13, 2019

The Chinese tradition of “li” 礼 has a broad significance as a set of rules that set standards in behavior that create harmony between individuals, and between the institutions of human society. Li, both in general sense of manners and propriety, and in the narrow sense of rituals of life (birth, marriage, funerals, ancestor worship and offerings to Heaven), was the foundation for society and defined family relationships and encouraged responsibility and accountability within the family, the community, the nation and the realm. Li was seen as foundations for governance, for international relations and for all family relations.

In the narrow sense, “li” refers to the offering up of food and other valued objects as sacrifices to the ancestors of a clan, the former emperor or king, or to heaven, or other deities. It served as periodic affirmation of the indebtedness of the individual, of the family and of humanity as a whole to the ecological cycles that produced the food that we consume and gave deeper significance to foodstuff, and the act of eating in a manner that encouraged an awareness of the centrality of agriculture and the importance of the ecosystem.   

“Li” in the sense of “propriety” defines a set of complex rules that governed conduct between people and created a healthy order in society through the reinforcement of moral imperatives in daily life. “Li” in the sense of greeting family member in accord with their position within the family (and thus making social relations explicit, and therefore acknowledged) had profound symbolic value and real ethical power as well. “Li” in the sense of propriety grew directly out of “li” as ritual in that periodic rituals defined relationships and assured that everyone, even the emperor, is neatly woven into a larger hierarchy of things human and natural so that no one can imagine himself or herself to be standing alone.

In this sense, “li” as propriety and ritual reinforced a sense of balance between humans that was intimately connected to the larger balance between the human realm and the natural realm. Chinese felt deeply liberated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in that they gained freedom from these ritual acts which seemed to restrict their actions so severely, but that meant that they no longer felt tied to each other or to the natural world. The result was the growing exploitation of fellow humans in an alienated society and the destruction of the natural environment. Although the socialist revolution in China tried to set right the radical exploitation of labor, it did so within a Marxist framework which did not affirm human relations with the natural environment. More recently,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in China, and the world, has gone far beyond what Confucians would have tolerated and the destruction of soil, water and mountains has become a tremendous tragedy precisely because the intimate connection constantly repeated in “li” has been destroyed.

Ritual is not limited to Confucianism. It has strong foundations in Buddhism, in Daoism and in shamanism in East Asia, and for that matter parallels in Christianity and Islam. Perhaps one of the greatest weaknesses in contemporary ideology is our loss of a language to describe ritual. That is to say that although we pretend that we have moved beyond the rituals of the past into a modern age of self-expression and directness, in fact ritual is deeply imbedded in human culture and cannot be overcome. Rather, modern society consists of many rituals that citizens are not aware of as rituals (like the rituals of shopping and of consuming). At the same time, citizens lack awareness of the power of ritual to connect citizens together and to increase their awareness of the environment and to create a political and spiritual commons.

The Confucian ritual tradition, especially after Zhu Xi’s (1130-1200) codification and standardization of ritual practice during the Southern Song Dynasty, and his linkage of ritual with a metaphysical totality, gave family, community and state rituals a new intellectual import. The importanc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underlying metaphysical order of things, the ecosystem and the human realm the dates back to ancient times,[1] but it had never been put together in such a systematic manner. Suddenly man’s ties to nature in his every action were made explicit, and intellectually involved.

Zhu Xi unambiguously mapped out the significance of rituals and wedded them directly to an imbricated metaphysical order that lay behind every act in the family rituals.   

The tremendous potential of the Confucian rituals is the manner in which they affirm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ndividual and nature, between the consumption of food and the awareness of its origins, between daily life for the citizen and the ecosystem as a whole. Those rituals, if they can be reinterpreted for our age, offer the potential of a solution to the most serious threat to our society, the growth of mindless consumption as the primary ritual of daily life.

Modernity, consumption and family rituals: The Korean case

When I married my Korean wife twenty two years ago, I discovered that her family practiced the most strict and carefully orchestrated Confucian rituals at the time of the Autumn Harvest and the traditional new year’s for the ancestors, and also on the days of the deaths of ancestors. The entire family would come from across Korea, or even from abroad to be at the parents’ house for the events without fail. They would cancel other engagements and sit through hours of heavy traffic to be present.  The elder boys spent considerable time laying out the meat, peeled chestnuts, persimmons, apples, wine and other foods in the appropriate places, and in the appropriate dish or bowl. All was done in accord with the careful diagrams in books the family treasured. Those diagrams were based directly on Zhu Xi’s instructions for the family rites (jiali 家礼) in Zhuzi Jiali (朱子家礼). At that time, I was attracted to the solidarity of the family and the commitment to tradition in her family, and I was honored to be included in the rituals as a new member of the family.

Over the years, however, the members of my wife’s family have taken far less interest in the rituals; often her brothers do not come at all, saying they are too busy with work. The children also go out to play with their friends, or show up just for a few minutes to show their respects and then rush out the door. So also the placement of the food and other objects on the table for the ceremonies has become far more sloppy since my wife’s father passed away. Often there are only a few people helping to set up the offerings—sometimes only me.

I fear that the Confucian rituals will not be carried out at all by the next generation, perhaps not after my wife’s mother’s generation passes away. It is hard to imagine my children, granted the seductive consumption culture that they have grown up in, carrying on such a tradition. The loss is considerable, but not much different from what we have seen in Vietnam, Japan and China.

Increasingly we hear tales of aged parents who are abandoned by their children, and also of children who are discarded, or neglected, by their parents. The decline of Confucian ritual is not the only cause of this transformation of Chinese and Korean society, nor are the changes entirely negative, but overall, the result has been the growth of a narcissistic culture focused on the immediate, on the self, on image (as opposed to values) and unconcerned with future consequences. Confucian rituals served as a constant affirmation of the common roots that tie people together, and a demonstration of our mutual ethical obligations. The rituals had significance far beyond any effect that pleasing the ancestors might have for the fortune of the family.

The greatest assault on ritual comes from commercial advertising. Rather than adversisements that encourage cooperation and concern for those who have had fewer advantages, current adversiings is vacuous and indulgent, the equivalent of pornography in terms of its ethical content. Selfishness is held up as an ideal and it makes a grotesque appeal to the appetite, to the unreasoning instincts of the brain stem. Such advertising is violation of the sacredness of food and of clothing, of everything in our daily lives. By contrast, Confucian rituals affirmed the relations between members of society and a spiritual aspect in daily life.

We should be encouraging people to value every grain of rice, every drop of water, and it is unethical to suggest to our citizens that they should treat binge eating as something to be emulated. Our climate has been turned into a desert, and our society has been turned into a desert by TV programs that deny what is the best in the Confucian tradition: the ethical imperative for personal frugality and a deep respect for agricultural production. 

The failure of citizens to wrap their minds around the threat of nuclear war, of climate change, of the rapid concentration of wealth and of other dangers is a direct result of a new anti-intellectual culture. We no longer employ rigorous scientific approaches to the analysis of contemporary society, or even to our private lives. But that anti-intellectual trend is a result of our failure to relate our actions to the larger society because we no longer have rituals that bind us together.

Training our citizens to control and moderate their desires was considered to be essential in traditional Korea and China. As I witness so many highly educated people lost in frivolous amusements today, I wonder whether we should see those past f rituals as representing not so much an oppressive ideology as an ethical imperative to affirm commitment to each other through practice.

Food, society and the environment

The affirmation of the value of food in a social and environmental sense was a critical part of ritual , from ancient times, and especially after Zhu Xi. Affirming the importance of food in our lives, and our ties to our ancestors and our ties to nature serves to increase our awareness of the importance of food, even adding a spiritual dimension to the daily eating and drinking of food and beverages. In the face of climate change, such a shift is absolutely necessary. We do not have to go the some advance Western country to find such awareness. We can find it in the Confucian past.

It is in this respect that ritual has so much potential power. Ritual in the Confucian tradition affirms a spiritual essence within the everyday objects, especially in food. In ancient times, this concept can be traced back to a belief that all objects, like food, have an essence which is spiritual (and which feeds the ancestors or nourishes heaven) and an essence with is material (and nourishes us in this material world). The implication for later generations of that view was that food offered up in ritual was a confirmation of the value of agriculture and the maintenance of the environment as a means of producing food, and an affirmation of a spiritual essence within food. The ritual act was also a sign of respect for the process, stretching over hundreds and thousands of years, by which humans and agriculture formed a whole.

In a traditional view of the world, man exists primarily as the farmer who tills the fields and then he consumes the food, and finally he lies, buried, beneath those fields. In the end, his body becoming part of that Earth again and contributed to the process. The food that nourishes us, and will nourish future generations, is literally the product of the ancestors.

Confucian ritual does not refer explicitly to such a process, but such an understanding of the link between the human and the natural realms is buried not far below the surface. After all, as the ancestors passed down to us the skills of farming, they also gave life to us and created our environment not only through their wisdom, but also by becoming a part of the soil.

In the last hundred years, the process by which our world is formed by the events of the past, and our actions impact future generations has been completely lost, leading to profoundly self-destructive acts such as the consumption of plastic products and the use of food as a source of pleasure and distraction, rather than a means of nourishment. The separation of the human realm from the natural one, through sealed buildings with air conditioning, has created an absolute break with the natural world, and a mistaken belief that humans are somehow separate from other animals. That process has been forgotten by the present generation, leading to a radical cultural discontinuity with the past, and also to a glaring ignorance about where food comes from, how it is produced and what impact that process has on our lives. The destruction of the ecosystem and its long-term impact on food is a taboo topic which is never mentioned.  

From early times, and especially since the Song Dynasty, ritual became a metaphysical experience for the individual, for the family, and especially for the intellectual that reaffirmed the organic connection of humans with food, with the environment and with a larger historical and ecological order of being. Of course there were narrower interpretations within the popular culture wherein ritual events served as opportunities to bring good fortune, or to solve immediate worries of women of the household. Such understanding was no in conflict with the metaphysical significance.

The consumption of food after the offering to the ancestors, or to heaven, especially grains and other agricultural produce made ritual a celebration of the process by which human experience is linked to the food that provides nourishment, and thus confirmed the intimate interplay of earth and food, water and food

That critical space of ritual in the lives of Chinese that made clear how one’s daily life was tied to others, and to the earth was subject to a powerful intellectual assault from the late 19th century as the new ideology of modernization and industrialization took root in China. Confucian rituals were dismissed as a backwards superstition that impeded the radical transformation of China into a modern nation[2]. Two generations of Chinese intellectuals made it a top priority to stamp out the lingering traces of an oppressive feudal society. Those events ceased to be a means of affirming man’s connection to nature and to each other, or to agriculture, for them. Ritual was perceived as a barrier to the development of factories, trains and automobiles, financial institutions and a modern global culture. Modernity was something that was required and it could only be achieved by severing attachments to others, and to the natural world.

I remember when I first studied Chinese history at Yale University in 1983. In the course I heard at length about the tragic story of how backwards-looking bureaucrats failed to modernize China because they adhered to rigid Confucian concepts of government, and of technology, which hobbled them and rendered them incapable of embracing the obvious step forward into modernity of mass production, coal-fired trains and factories and the growth of massive cities. I was taught the tragic story of how China fell pathetically behind the West because of such backwards thinking. The implication was that was something essentially flawed about the Chinese cultural tradition, for all its glory, which demanded that essential principles from the West be imported in order to move on to the next, inevitable step of cultural evolution.

But now that we are witnessing  the catastrophe of climate change and see directly the horrible distortions in our economy and in our society that have resulted from the use of coal and petroleum to drive factories, trains and automobiles—not the mention a lethal new generation of weapons—can we continue to cling to that narrative?  It is a hard myth to abandon as it is linked to every aspect of our modern ideology, both ideologies of the right and the left. Yet we must ask whether or not a system in which the engagement with the environment, the focus on agriculture (and specifically food) and the demand for a human-centered economic system in which ethics outweighed profits or scale of production was not superior to the modern system we have imported in which the natural world, and humans as well, are subjects for constant exploitation.

The She and Ji rituals (社稷) performed by the Chinese emperor in Beijing (and the Korean kings of the Joseon Dynasty) served as a unique combination of the assertion of political authority at the highest level in the promotion of the well-being of ordinary citizens with the recognition of the critical importance of the ecosystem for human society. These rituals paralleled the rituals of the family at the highest level. The “She” ritual was intended for the god of the Earth, a spiritual presence who guards the soil so critical to nourishing the crops which nourish the people and undergirds the entire political economy. The “Ji” ritual was intended for the god of the crops, the spiritual presence who protects plants and assures that they mature so as to provide food without suffering from pestilences, insects or droughts.  

The emperor’s offerings were not mere superstition, but rather an explicitly political and spiritual representation of the essential ties between the earth, and the plants that grow in it, and the political and economic activities of humans. Such awareness in the political realm of ecology created a balance between human settlements and the natural world. But that balance has vanished from modern society. There are numerous rituals carried out in party meetings in China today, and the hosting of foreign dignitaries, but none of them affirm the importance of the biosphere or the centrality of agriculture.

The loss of an awareness of the importance of nature for human society in the modernization project has had extremely serious consequences for modern Chinese society. We no longer have any symbolic representations to remind the people of the importance of nature and domestic agriculture to their physical and spiritual wellbeing. We have no symbolic representations, or ritual expressions, of the ties between the earth, water plants and our civilization. People are concerned about the environment in an abstract sense, but give no thought to how every plastic object they throw away impacts the environment. We are bombarded by images of modernity defined in terms of highways, high-rise buildings, automobiles, computers and landscapes completely devoid of plants of any type. It is assumed in the commercial imagination that plants, and specifically crops, are interchangeable and that they can be bought and sold from around the world without any impact on our civilization. Farming is considered a backwards industry of the past.

But a civilization cut free from all awareness of the production of food from the soil, all understanding of the effort required to feed people, is a civilization that is in danger of falling head first into a dangerous cult of consumption and complete disregard for our ecological future. It is a dangerous and destructive civilization indeed.

Song Confucianism, especially as embodied by the teachings of Zhu Xi, provided the basis for the She and Ji rituals and other affirmations of the importance of agriculture and the environment in the lives of all people. The focus of Zhu Xi on the metaphysical significance of man’s position in the natural world set the groundwork for an embrace of ecology in an intellectual and spiritual sense within the Confucian tradition, going further than Buddhism in the criticality assigned.[3]

Zhu Xi described a complex moral psychology, limned through ritual practice, wherein the relationship of the individual, and society, to the natural environment was identified as central to the search for enlightenment. The process of becoming aware of one’s environment was established as a significant goal in self-cultivation and in active practice.

Song Confucianism argued that if we connect to our inborn nature we will see no separation between ourselves and nature and therefore we must treat nature with appropriate reverence. Zhu Xi refers to a mental state of “maintaining reverence” (chi jing持敬) that was the central condition for self-cultivation. This mental state grew from the adherence to rules of propriety and a care for the human and natural world that was taught to young people, but also was meant to be developed to a higher degree in adulthood. Reverence required discipline, focused thinking and mindfulness that opened the mind to the way. The final stage of humaneness, or the final sagehood, required a full embrace of one’s inborn connection to nature and to the entire natural world.

Zhu Xi’s essay “A treatise on Humaneness” (Renshuo 仁说) assumed that there was no separation between the human and the animal world. He saw a commonality not only of experience, but of existence itself between the two realms.[4] Zhu Xi explained “the person of humaneness regards Heaven and Earth and all things as one body. To that person there is nothing that is not oneself.” The enlightened one feels a deep affinity for plants, grasses and trees as living things. For Zhu Xi it was human selfishness and hubris that blocks the awareness of this deep connection and therefore endless effort is required. Reverence was not only reverence for ancestors and Heaven, but also for nature itself and a deep awareness of one’s impact on the environment.

Conclusion

A landmark report from the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convened by the United Nations entitled “Global Warming of 1.5 C” [5]was released recently that presents a far more shocking vision for the immediate future than the corporate media was willing to acknowledge before. The report suggests that humanity faces catastrophic consequences of its carbon-centered economy and makes a clear break with the previous assumption that carbon trading schemes are sufficient to address the problem.

The report avoids much of the far more pessimistic predictions of many experts, but goes further than any mainstream report so far. And yet the ultimate implications of the report have been swept under the rug by a modern society still in deep denial. The problem is not carbon emissions from factories and automobiles, nor it the problem the use of technologies. It is rather the full embrace of an ideology, a mentality, which holds that the consumption of goods defines the significance of one’s human experience.

That destructive ideology underlies most of the assumptions of our modern society and determines the priorities of our citizens to a remarkable degree. Yet the traditions of the past, and especially the close connection between humans and the environment represented by food as described in the rituals of the Confucian tradition, offer an alternative to us. We do not know yet how that Confucian tradition can be reinterpreted for the modern age, and for the entire world, but the potential is most certainly there. After all, Zhu Xi’s writings on ritual were successful in Korea precisely because they emphasized universality, not specificity. They made the ritual part of the process of enlightenment, something that anyone could participate in.

Or we could say that Zhu Xi brought the individual act together with universal principles in a powerful manner. Such a skill is most precisely what we need most desperately today. Every action by the individual, every choice by the individual, is critical to protecting our environment. We can find the inspiration for a new practice in our daily life to address the climate change crisis, and the food crisis, in the Confucian tradition.


[1] The critical terms are “tian” (heaven 天), “di” (earth 地), “ren” (man 人), better known as “sancai” (三才). But “tian” refers not simply to the heaven above, but to the underlying principles of the universe. “Di” is not simply the ground, but the entire ecosystem that humanity must live in harmony with. “Ren” refers to humans and the totality of human civilization.

[2] This intellectual revolution brought on by the work of various Westerners in China is detailed in Jonathan Spence’s study To Change China: Western Advisors in China (Penguin Books, 2002).   

[3] B.C. Keenan. “Reverence and Cheng-Zhu Ecology.” Dao, 2018, pp. 187-201.

[4] IBID, p. 199.

[5] The full report is available at http://www.ipcc.ch/report/sr15/.

「化石化した韓国政治」 ハフィントンポスト

ハフィントンポスト

「化石化した韓国政治」

2019年 1月 9日

エマニュエル パストリッチ

文在寅大統領が9月に平壌を訪れた際、最も印象的だったのは15万人もの平壌市民を動員した巨大な綾羅島メーデー・スタジアムで演説したことである。男女を問わず熱気に包まれた観衆の歓声は多少驚かされるものであったが、文大統領自身もこの熱烈な反応に高揚している様子がはっきりと窺えた。文大統領の述べる言葉のひとつひとつが観衆の歓声でより一層力強さを増したようだった。金正恩委員長について言及する場面では、文大統領と平壌市民はまるで「一体化」しているかのようにも見えた。確かに言えることは、本国の韓国では防弾少年団(BTS)やiKONのコンサートでなければ、このような熱狂的な観衆の姿は見られ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

文大統領にとってはとても感極まる瞬間だったことであろう。北朝鮮の演出ではあったが、むしろ、韓国でも支持層集めのために各界の重鎮の前で跪いてお辞儀する意味のない儀式が政治的パフォーマンスになっており、今や慣例になった政治的パフォーマンスは自分がいかに親しみやすい人物であるかを証明するための単なる手段でしかなく、世間の人々の注目を集めるためには全く面識がなくても、また、今後も決して顔を合わせることのない人たちとでも、気軽に一緒にポーズをとる、そんな政治的パフォーマンスはよく使われている。

しかし、文大統領の目に映っていた状況は違う意味のものである。スタジアムに集まった観衆は権力による支配の産物といえるもので、おそらくそう思われてもある程度は仕方がないことではあるが、観衆自体からはみなぎるパワーが感じられた。平凡な北朝鮮市民の政治への献身は単なる独裁政権の証だと一蹴してはならないと私は思っている。大規模な集会や完璧なマスゲームの裏には相当なショーマンシップや心理学的にもただならぬエネルギーが要されるのである。

韓国では今やそういった光景は昔話になってしまった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だろう。もちろん、2016年に朴槿恵を政権から引きずりおろしたろうそくデモはまだ記憶に新しい。ろうそくデモはハイレベルな政治参加への文化をもたらし、朴槿恵政権を倒すという当初の目標からすれば、成功したといえる。しかし、朴槿恵政権の裏に潜んでいた制度的腐敗、韓国経済に大きな影響力を及ぼすようになり新たに浮上した海外投資銀行、トランプ政権への盲従的な支持や執着、イランと戦争しようとするアメリカ内のネオ・ファシズムに対しての完全沈黙、等の問題は全く改善されていない。文大統領は「ろうそく革命」で誕生した大統領としての神話が消えつつある。

韓国で政治が衰退してしまったのは、人間の経験に基づくファシズム的アプローチや過度な産業主義のせいである。暮らしのありとあらゆる面でサービスが有料提供されるようになった。健全でない文化が韓国の出生率をかつてないほどに低下させてしまい、それに加えて、最近ではイエメン難民への不満が一気に噴き出し、それが移民者への敵対心となった。

結果的に老衰してしまった社会は高齢者が政治をほぼ支配していることを意味している。実際、政財界で決定権を握っているのは70歳以上の男性である。この問題は富の集中によりさらに深刻になってしまった。ほとんどの若者は政治プロセスからは疎外されており、ごく一部の若者しか政治参加への強い意志は見られない。多くの若者は変化への希望を諦めてしまい、スターバックスでコーヒーを飲んだり、ゲームやポルノ等で現実逃避することしか興味を示さなくなってしまった。まさに政治が崩壊してしまったのである。

リベラリズムは80年代の民主化運動や2000年代初めの盧武鉉政権に影響を及ぼした勢いをほぼ失くしてしまった。とりわけ、目につくのはリベラル的な政治論争が狭い範囲のシンボル的問題に限定されてしまったことである。太平洋戦争当時、日本軍が性的虐待を行なった「慰安婦問題」については限りなく議論される一方で、今日、韓国人男性が行なっている移住女性への虐待について関心を示す者はほとんどいない。農民の生計を脅かす自由貿易についてはタブーなテーマになってしまった。

老年期を迎えたリベラル指導者のほとんどが80年代の「民主化運動」の追憶に浸ったままで、今日の労働階級の若者たちが直面している深刻な問題は把握していない。彼らはアメリカの民主党員と同様に、企業との緊密な協力よりは左派からの批判にしか関心を示さない。結局、年老いた指導者たちのほとんどが相当な資産の所有者であり、より公平な社会を作ることよりも自分の身内がよい大学に進学できることにしか余念がないのである。

ところで、つい最近、非常に影響力を持つリベラル系政治家が主催する本のサイン会に招かれた。その会場では今年53歳になる私が最年少参加者であるという事実に衝撃を受けた。絶滅した恐竜のアロサウルスやディメトロドンのように化石化した参加者たちは70、80年代の学生闘争の話を何時間も延々とした後に、その当時の歌を歌いあった。参加者たちは民主主義について語ったり、何人かの保守政治家に対しての批判は行なったが、熾烈な学歴競争社会が支配する悪夢のような世界で必死に生き残ろうと歯を食いしばっている普通の若者たちが直面する現実については一切口にしなかった。

一つ確かなことは、衰退してしまった経済のもとで日々塾通いや仕事に追われる韓国の若者たちはそのイベントについて何も知らなかったということである。しかし、もし、若者たちがそのイベントに招かれたとしても、有意義な時間を持てたと思う者は誰一人としていなかったであろう。

また、先月、リベラル系の書店で友人と一緒にコーヒーを飲む機会があった。その書店に陳列してあった韓国語の教育、経済、社会、文化関連の本はたいへんすばらしかった。書店の社長は現代社会について真剣に考えている知識人であった。しかし、年配の知識人が作った知識空間と現代社会で自分の道を見出そうと孤軍奮闘する一般人の間では埋められない溝があるように見受けられた。韓国各地のカフェやコンビニであくせくと働いている多くの若者は、リベラル系書店にある本を読むことで得られるものがあるはずである。おそらく最近の若者は読書習慣をあまり身に着けていないであろうが、本を読むことで現代社会でも真の価値を見出せることはできるであろう。

確かなことは、若者たちはリベラル系書店が存在することも知らず、書店に埋め尽くされている書籍をあまり身近に感じてないということである。残念ながら、若者たちは自分たちが置かれている大変な境遇への共感を歌謡曲の歌詞から見出そうとしている。よかれと思ってリベラル系書店を営んでいても、高等教育を受けた裕福な経営者には現代社会であくせくする人たちへの接近法はわからないのである。

私は韓国で過ごした11年4ヶ月の間、リベラルな非政府組織(NGO)で活動してきたが、どのNGOでも参加の文化が非常に薄れてきたので、活動からは全部身を引いた。そのNGOからは未だに会費の支払い請求があったり定例会議にも招待を受けたりするが、それ以外の行事には参加する機会もなく、私が積極的に参加して手助けできるものもなかった。会員資格がさほど重要でないことは明らかである。むしろ、定例会議にはリベラルの裕福な寄付者の方が必要に思えた。わかりやすく述べると、リベラルの寄付者はグリンピースの活動家がホッキョクグマを守るキャンペーンを展開するように自分の活動を見守るだけである。グリンピースはホッキョクグマに意見したり会員登録を要請したりすることはなく、リベラル団体は労働階級の人々には加入要請も行なわない。

私が最も力を入れてきたNGOは参与連帯なのだが、ソウルと大田の会員として活動してきた。当時、外国人を含む韓国内の全労働者を対象としたセミナーを開催して、労働者が求める事項についてはよりわかりやすくするべきだと主張してきた。私が求めたのはNGO事務所と参与連帯のホームページにイベントを公示することだけだった。しかし、私の提案は受け入れてもらえなかった。

ところで、4ヶ月前に参与連帯側から脱退理由を問う電話があった。私は理由も説明して、業務担当者に直接会ってもっと積極的に参加できる方法が話し合えたら、また喜んで参加する意志を伝えた。しかし、それに関しての回答は得られなかった。

ならば、韓国の保守主義者の状況はどうかというと、残念なことに、政治の化石化は保守陣営の方がもっと深刻である。光化門広場では保守陣営のデモが定期的に行なわれているのだが、このデモに参加しているのは韓国、アメリカ、イスラエルの国旗を手にする老人たちが大多数である。理由は定かではないが、保守政治家たちが日本との親密な軍事協力を推進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日章旗を手にしている者は見当たらない。

こういった集会では反共、ドナルド・トランプ米大統領のキリスト教界への支援、朴槿恵元大統領の釈放、60、70年代の漢江の奇跡への賞賛、等が主なテーマになっている。デモの参加者の中には朴正煕元大統領の顔写真バッジをつけている老人もよく見かける。韓国が国際貿易依存度を高め、農業を軽視し、化学燃料の大量輸入を推し進めたのは朴正煕元大統領の決定的な大きな過ちだと思っているが、朴正煕元大統領の経済成長へのたゆまない推進力や公教育の整備については未だに大きな成果だと評価されることには理解ができる。

私が理解しがたいのは、一時、左翼の労働党で積極的な活動を行っていた老人たちが経済的自立を主要目標とした朴正煕元大統領と今日の保守政党は関連があると思っていることである。朴正煕元大統領ならば、今日の保守陣営が推進している食品やその他商品の輸入依存度を高めたり、外国の投資銀行が韓国経済を直接干渉できるようにしたとんでもない経済政策は決して認めなかったであろう。保守陣営はマッコーリー・グループのような狙った獲物は決して逃がさない海外金融機関に自国のインフラをやすやすと明け渡している。朴正煕元大統領ならば、社会間接資本施設に対する民間投資法(PPI)を推進したり、韓国経済の中枢を担ってきた自営業者たちが経営難に陥るのを傍観しなかったであろう。

今日の保守主義者は韓国の伝統を破壊して、カジノ宣伝や美容整形の奨励・広告等、女性の役割を性的対象として局限すること以外には何も考えてない破壊的な新自由主義経済の政策だけに執着している。

しかしながら、韓国の保守政治を代表する老人集団にも財産はある。それは米韓同盟である。朝鮮戦争前後の米韓関係は貧しい人たちのために惜しみなく尽くす宣教師や平和支援団体のボランティアたちと民主主義を崩壊させた無慈悲な軍部に挟まれてとても複雑な関係だった。

デモ要員の老人たちはアメリカ政府の実際の政策についてきちんと理解しているわけでもなく、両国の関係が進むべき方向についても実質的な提案ができるようには見受けられない。むしろ、アメリカは急激に発展することよりも、安定かつ予測可能な未来を象徴する対象になった。

保守主義者がアメリカにこういった態度をとるのは、昔、優れた文化や経済力を持ち備えていた明に対して敬意を払って接していた事大主義のやり方を彷彿させるものがある。明は1592年と1598年に豊臣秀吉率いる日本が朝鮮を侵略した際、援軍を出兵させた。明・朝鮮の両国はそういった出来事を通して、関係をさらに確固たるものにした。当時の朝鮮の大多数の知識人にとって明は政治的・文化的権威の源泉になった。しかし、既に加速化していた明の政治・道徳・制度の衰退は17世紀初めには抑えが効かなくなってしまった。朝鮮には明の政治文化の面影が強く残っていたのだが、明自体は国内各地で起こった反乱により一気に弱体化し、結局、1644年には完全に崩壊してしまった。

当時の朝鮮の知識人の大多数はその後も300年にわたって明の文化的権威に忠実に従い、満州族が清王朝を建国してからは誰の目にも朝鮮は窮地に陥っている状況であっても、その当時の保守主義者たちは朝鮮では明の制度を維持したという自負心をもっていた。朝鮮の人々は明末期でも衰退の兆候を認めず、明の権威は明が滅びてからも長い間維持された。韓国には今でも明の最後の皇帝、崇禎帝(1627-1644)の年号を用いる儒教寺院がある。

今日の保守主義者の態度はこれにとても類似しているように見えるのだが、アメリカが朝鮮半島での重要な役割を終えてからも、アメリカに対する忠誠心がずっと維持されるかどうかが気になるところである。保守主義者は自分たちにメリットになるアメリカとの関係が維持されることを望んでいるが、それに関しては今や難しくなった。保守主義者たちは文在寅政権がアメリカとの関係を敬遠していることにとやかく言うよりは、むしろ、北朝鮮指導者と「恋に落ちた」と言うアメリカの大統領に対抗するまでに後退した。

 老人たちが支配するリベラル・保守議論、狭い範囲に限定された議論テーマのせいで、韓国では北朝鮮の開放を上手く活用できる能力が麻痺している。北朝鮮と共に推進できるプロジェクトの提案・実行ができるクリエイティブな若者は多いが、根本的に若者は単なる傍観者でしかなく、若者は自分の生き残りをかけて身を削らなければならない状況に置かれている。北朝鮮は未だに多くの問題を抱えているが、今現在の一番の難題は朝鮮半島の新たな可能性を模索する韓国の人々がどこまで手腕を試せるかどうかである。

ハフポストでの自由発言のおしまい

このかた 五年間 日本のハフポストに寄稿してきました。準備は大変でしたし、全くお金をもらいませんでしたが、日本の皆様の重要な対話ができて深い意味がありました。

先週に寄稿を送っても全く返事がこなくてちょっとおかしいと思ったところへこのメールがきました。重要な内容は


編集部が期間限定のテーマを設定し、ブロガー様から、それに沿った文章をお寄せいただく「キャンペーン型ブログ」 」 

要するにハフポストの編集者がまず何が注目する価値があるのかをまず決めて注文することになったです。これから数多くの日本人と対話ができなくなって大変寂しいことです。

いつでもここで連絡をください。

パストリッチ

2019年 1月 8日


‐‐‐‐‐‐‐ Original Message ‐‐‐‐‐‐‐ On 2019년 January 8일 Tuesday PM 5:01, ハフポスト日本版ブログ編集部 <blogs@huffingtonpost.jp> wrote:

いつも大変お世話になっております。

ハフポスト日本版編集長の竹下隆一郎でございます。

これまでハフポストにブログを寄稿していただいた皆様にお送りしています。BCCにて失礼いたします。

日頃より、大変お忙しい中から玉稿を賜り、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ブロガー様から届く1本1本のブログは私自身にとっても大きな楽しみの一つです。時事問題から個人的な経験まで、幅広い内容のブログを起点に、読者を巻き込んだ、たくさんの会話が生まれています。熱いメッセージ、読者をうならせる分析、そして何よりもお一人お一人の「思い」から、いつも力をいただいております。重ねて御礼申し上げます。

さて、2019年1月18日より、弊社編集部の「ブログ」の運用方針を変更させていただくことになりました。まずはブロガーの皆様にお伝えしたく筆を執りました。主な変更点を下記の通りご報告いたします。

【主な変更点】

・2019年1月18日をもちまして、ブロガー様がご自身で入稿する運用体制を終了いたします。

・ハフポスト日本版の開設から5年以上が経ち、おかげさまでブロガー様のご寄稿が非常に増えました。残念ながら、編集部での確認や掲載が間に合わないこともございます。1日に掲載できる記事数を超えたブログが集まることもあるためです。そのため、原則すべてのブログを掲載させていただく運用を変更いたします。

・今後は、ブログの内容やタイミング、編集部に寄せられた他のブログおよび編集部が独自に執筆するニュース記事の本数との兼ね合い、あるいはテーマとのバランスなどをもとに総合的に判断し、掲載をお断りする場合もございます。

・今後、編集部からブロガー様に直接ご連絡を差し上げ、当方からテーマをご提案させていただいた上でご寄稿いただく運用が中心となります。その時々の編集方針により、ブロガーの皆様に個別に連絡を差し上げます。

・編集部が期間限定のテーマを設定し、ブロガー様から、それに沿った文章をお寄せいただく「キャンペーン型ブログ」を新しく始めます。こうした運用は、2018年10〜12月に「真ん中の私たち」という企画においても実施いたしました。「帰国子女」「ハーフ」などと称されることもある、多様なルーツをもつ人たちの物語を募り、多くの方から胸を打つブログが寄せられました。こうした形のブログの募集を強化していきます。

“BTS, 그리고 아베의 전략” 프래사언

프래사언

“BTS, 그리고 아베의 전략”

2019년 1월 7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Ⅰ.

한국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지난해 11월 일본 투어는 전 세계에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넘어서는 거대한 상업적·경제적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BTS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한일 양국 관계가 역사 문제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시민들 사이에 새로운 문화적 순환을 만들어내는 차원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어쨌든 BTS는 ‘BTS는 어떻게 세계를 점령했나(How BTS Is Taking Over the World)’라는 도발적인 제목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인터내셔널 판 표지(10월 11일 자)를 장식했다. 기사에는 지난해 9월 BTS의 유엔 연설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윤리적 문제를 강조한 동영상이 포함되어 있다. BTS 멤버 김남준은 당시 연설에서 젊은이들이 느끼는 소외감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긍정적인 태도로 포용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BTS의 곡 ‘Love Yourself’의 노래 및 비디오에 대한 언급은 젊음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수동성 및 소외감으로부터의 탈출구를 제시했다. 또한 기사에는 BTS가 미국 내 모든 공연장을 매진시킨 최초의 한국 밴드로, 영어로 모든 노래를 다시 부를 필요가 없다고 언급하면서 ‘비틀스(The Beatles)’와 비교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BTS는 점점 더 냉혹하고 무관심해지고 있는 경제 체제에 놓인 젊은이들이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신파조의 가사와 춤을 결합함으로써 젊은이들로부터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물론 다른 많은 사람도 젊은이들에게 비슷한 주장을 했다. 하지만 주목을 끌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8일 TV아사히는 다음 날 방영 예정인 자사의 인기 프로그램 <뮤직 스테이션> 생방송에 BTS 출연을 취소한다는 갑작스러운 발표를 했다. 일본 언론은 BTS의 출연 취소에 대한 보도로 가득 채워졌으며, 일본 전역은 며칠간 반한 물결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다.

일본과 한국의 신문은 양국 국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문화적·외교적 ‘입씨름’을 묘사한, 표면적 보도로 가득했다. 생방송 하루 전날 방송 출연 취소라는 TV아사히의 행위는 큰 재정적 위험을 감수한 결정임이 명백했다. 이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했다. 방송 취소에 관련한 전반적인 설명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TV아사히의 결정 및 그것이 갖는 의미를 통해서 이번 사건을 생각해보자. 

무엇보다 TV아사히의 방송 출연 취소 결정은 계약법 위반이다. 양측은 방송 출연과 관련해 정식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그러나 TV아사히는 BTS가 계약을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이를 파기했다. TV아사히가 내세운 유일한 이유는 1년 전 BTS의 한 멤버가 입었던 티셔츠가 그들이 판단하기에 모욕적이었다는 것뿐이었다. 

기업에 의한 이 같은 행위는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트럼프 치하의 미국에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명백한 법치주의의 위반과 공통점이 많다. 

BTS의 행동이 모욕적이었으므로, 처벌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법적 계약의 파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TV아사히의 주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경제 전쟁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증가시키려는 수단으로 발전시킨 경제 제재의 새로운 해석이라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Ⅱ.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러시아, 터키, 북한에 대한 캠페인은 그러한 경제 제재를 다국적 기업이 자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판매하는 무기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경제 제재의 사용은 국제법과 계약법뿐만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와 무역협정을 조롱하는 것이다.

북한과 이란의 사례에서 ‘경제 제재’는 국제 협약(트럼프 행정부는 핵확산 금지 조약에 대한 깊은 경멸을 드러내고 있다)을 통한 핵무기 확산 방지나 인권 침해(트럼프 행정부가 국내외에서 권장하는)의 종식과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경제 제재는 두 가지 중요한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들은 압력을 강화함으로써 대상 국가가 경제 제재로 인한 고통을 피하고자 협상에서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또한 경제 제재는 특정 기업이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NGO, 전문가 및 중소기업의 참여가 완전히 봉쇄된 제제 대상국과의 경제 관련 비밀 협상에 참여할 권리를 얻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모의해서 국제법과 외교를 포기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경제 제재는 일본이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WTO와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원하는 것을 바로 얻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 

BTS의 방송 출연 취소는 미국에 의해 위험 세력으로 간주되지 않은 한국과 같은 경제적 경쟁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소규모 경제 제재를 위한 시안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베 행정부는 강력한 힘을 가진 정치인이 어떠한 항소 수단도 없이 경제적 또는 무역 관계를 명령하는 환경의 조성 가능 여부를 알기 위해 정당한 법적 절차의 중단을 시도했다. 어쩌면 이번 조치는 관료와 다른 일반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규정으로 인해 좌절을 겪은 최상위 계층에게 더욱 적합한 새로운 경제 접근 방식을 위한 시안이었을 수도 있다.

Ⅲ. 
그렇다면 아베 총리가 한국, 특히 BTS를 상대로 이런 전략을 추진하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신일본제철(신일철주금)과 스미토모 금속에게 세계 2차대전 동안 위험한 환경에서 양사의 공장에서 강제로 일했던 4명의 한국인에게 1억 원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현재 7건의 다른 유사한 사건이 법원에 계류 중이므로, 배상 금액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일단 수문이 열리면, 수천 명의 한국인이 향후 수개월에서 수년 사이에 일본 기업에게 수십억 달러 규모의 보상을 청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12년 대법원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전시 징용자의 피해 보상 청구권을 인정한 이후 처음으로 확정된 구체적인 피해보상 판례이다.

보상금을 수령하는 것은 막상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정부가 저질렀던 범죄는 광범위하게 문서로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1945년 이전 한국인이 겪었던 고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와 함께 지난 60년 동안 보상 문제의 논의 및 처리를 제한해왔던 양국 간 합의가 붕괴되었다는 역사적인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체결한 기본 조약에 따라 한국에 대한 일본의 모든 피해 보상이 전부 완료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와 박정희 한국 대통령이 서명한 이 기본 조약은 무상 경제원조 3억 달러와 저리 차관 5억 달러 및 일부 기술 이전으로 한국인에 대한 일본 정부와 기업 및 개인의 모든 보상 책임이 영구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아베 총리 주변의 보수주의자들, 특히 대규모로 대기업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들은 보상 관련 논의를 한국인들로 인해 일본인들 사이에서 애매한 분노가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해왔던 기존 관행이 향후 중단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전혀 반(反) 일본적이지 않다. 이번 판결은 충분한 재정 능력이 있으며, 기업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보상 책임을 진다는, 국제 표준을 준수해야 하는 두 기업의 구체적인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서 논의된 내용은 더 이상 한국의 자존심에 대한 것이 아니며, 기업의 책임에 관련한 것이다.  

Ⅳ. 
일본의 부유한 대주주에게는 이번 판결이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오겠지만, 평범한 일본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이번 판결을 모든 일본인에게 대한 모욕으로 여기길 바라는 강력한 세력이 존재한다. 

아베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맡은 강경 보수주의자 아소 타로는 보상 문제에 대해 노골적으로 말해왔다. 아소 장관은 만주에서 광산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한 집안 출신인데, 징용된 다수의 한국인과 기타 외국인이 근무했던 광산에서는 위험한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적절한 안전 장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아소 타로의 아버지 아소 타카키치는 징용공과 저임금 노동자를 착취해 수익을 창출했던 업체, ‘아소 시멘트’의 소유주였다.

아소 장관과 그의 친구들은 1965년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을 근거로 모든 보상 요구를 묵살해왔다. 일본 정부 및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은 한일 기본조약에 따라 모든 보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계속 주장하면서 한국인의 보상 요구에 대응해왔다.

또한 이 조약은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병 이전에 이루어진 손해에 대해서도 보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어, 조선 말기에 일본 기업이 조선 정부 관리를 매수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선 법을 위반하면서 불법으로 조선의 토지 및 자원을 취득하고 은행과 철도를 건설하는 등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도 보상을 청구할 수 없었다. 

물론 모든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해보자. 100년 전 잘못에 대한 보상 소송을 제기해 성공한 판례는 많다. 바뀐 것은 지난 60년 동안 이 주제가 법적으로 청구가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간주해왔던 양국 간 합의가 파기되었다는 점이다. 1965년 체결된 한일 기본조약으로 일본 기업을 상대로 세계 2차대전 동안 입었던 피해에 대한 보상 청구원이 모두 소멸되었다는 비합리적인 가정은 현재까지 분류된 종전 후 미국-일본-한국 간에 체결된 일련의 조약에서 유래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더 많은 것이 있다. 언론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한국인에게 유리하고 일본인에게는 불리한 것이라고 소개하지만, 그런 해석은 옳지 않다. 무엇보다 조선 왕조가 통치했던 지역에 살았던 사람은 일본 정부에 의해 일본 제국의 시민으로 규정되었다. 해당 기간 그들은 법적으로 한국인이 아니었다. 비록 그들의 법적 지위가 공직 수행과 자산 및 사업체를 소유하는 측면(일부 중요한 예외가 있음)에서 일본 내지인과 완전히 같은 수준은 아니었지만, 1945년 일본 정부가 어떠한 법적 절차도 없이 일방적으로 그들이 한국인이라고 선언하기 전까지 그들은 일본인으로 간주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 정부가 한국인의 국적을 박탈하고, 이들에게 연금과 모든 의료 및 법적 지원 제공을 거부한 것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일본 기업을 대신해서 이루어진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상 요구가 증가할 경우, 일본 내에서조차 그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한국인도 1945년 일본 제국으로부터 시민권을 박탈당함에 따라 그동안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없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태평양 전쟁 기간 징용되었던 일본인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것을 막아왔다. 한국인이 보상을 받기 시작하면 일본인도 같은 요구를 하게 될 위험이 있다. 식민지 시대의 징용 문제 전문가 윌리엄 언더우드는 국민징용령이 실시된 1939년부터 모든 일본인이 징집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 국적자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보상을 청구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번 판결과 보상 문제로 모든 것이 변할 수 있으며, 한일 양국인 사이에서 벌어진 감정적 논쟁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Ⅴ. 
그런데 이 특별한 순간에 보상 관련 판결이 내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강제 징용 문제는 한국 주류 언론에서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 언론의 주요 관심 대상은 세계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강요당한 여성들로, 현재는 27명만 생존해 있는 ‘위안부(성범죄 피해자)’다. 

우리는 다양한 언론 매체의 보도를 통해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이 막후에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및 향후 경제 협력과 관련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한 협상은 대부분 북한 내 기반 시설 구축과 광물 자원 및 탄광 개발권, 향후 일본 기업이 북한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할 수 있는 권리 등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활동 영역은 일본 기업에 매우 유리해질 수 있다. 

이 같은 막후 협상에서 제기되었을 것이 분명한 것 중 하나는 북한 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인이 세계 2차대전 기간 동안 겪었던 고통에 대한 보상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전쟁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한국이 받았던 것과 유사한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북한의 협상자 역시 역사를 잘 알고 있으며, 일본 정치가 돌아가는 원리도 이해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과 함께 향후 북한 경제 개발에 참여하는 대가로 최대한 많은 금액을 요구할 것이다.

아베 정권은 1965년 조약과 유사한 방식으로 비밀리에 북한과 합의하기를 원할 것이며, 일부 기술 이전 및 투자와 함께 그 대가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층에게 일시금으로 제공하려 할 것이다. 북한이 식민지배로 인한 피해보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음을 감안한다면 한국 정부가 상대적으로 덜 적대적인 ‘경제 협력’ 방식을 받아들였지만, 북한의 경우 비록 세부 사항은 비밀로 한다고 하더라도 1965년 한국이 일본과 체결했던 조약에 비해 훨씬 포괄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한국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피해 보상 협정을 체결하게 될 경우, 일본 보수층에서 1965년 영원히 비밀로 묻어두기로 했던 한일기본조약의 내용을 다시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개인이 보상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은 일본과 북한이 진행 중인 보상 협상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남북한과 중국 및 일본 내에서도 수많은 보상 청구가 이어질 수 있다.

Ⅵ. 
이제 TV아사히가 BTS의 방송 출연을 갑자기 취소한 것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일 양국 언론에서 어떤 식으로 다루었는가를 살펴보자. 이번 방송 취소는 세계 2차대전 당시 일본인이 겪었던 고통에 대한 한국인의 문화적 무감각에 대해 일본인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지난해 10월 26일 <도쿄 스포츠>는 BTS 멤버 지민이 1년 전 광복절에 촬영한 유튜브 동영상에서 우측 상단 모서리에 버섯 모양의 구름이 있는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고 지적하며 그가 ‘반일적’ 행위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 티셔츠는 반일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BTS와 관련해 여러 게시물을 포스팅했던 반한(反韓) 그룹 ‘자이토쿠카이(Zaitokukai)’는 BTS의 도발적인 행위를 파악한 다음, 무대에서 이 티셔츠와 관련한 반한 시위를 펼쳤다. 이어서 다른 연예인이 문제의 티셔츠에 대해 논평했다. 

TV아사히가 갑자기 BTS의 <뮤직 스테이션> 출연을 취소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TV아사히의 뒤를 이어, NHK와 후지TV 또한 BTS 관련 방송을 취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복절에 입은 티셔츠는 ‘애국심, 우리 역사, 해방, 한국’이란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오른쪽에 있는 원자 폭탄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이미지를 한국의 해방 투쟁과 연결시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것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한국 해방 관련 티셔츠 중에서 상대적으로 순화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티셔츠를 그런 식으로 보도록 일본인이 말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불쾌하고 모욕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도 지민은 티셔츠의 버섯 모양 구름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비판한 일본 언론은 젊은이들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증대시킬 필요성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문제의 티셔츠는 일본이 세계 2차대전 중 저지른 행위가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악랄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시각은 한국과 미국의 구(舊)세대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티셔츠가 지민에게 있어 그토록 중요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의 핵무기 사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었다면, 직접 그들에게 질문했어야 했다. TV아사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Ⅶ. 
이와 관련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아마도 모호한 의도였을 것이다. 티셔츠는 전체적으로 태평양 전쟁을 비난하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고, 대부분 징용을 갔다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해 사망한 많은 한국인에 대한 추모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일본 및 해외 언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BTS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멤버 중 한 명이 일련의 사진 중 하나에서 나치 친위대 ‘SS’의 두개골 휘장이 달린 군대 모자를 들고 포즈를 취한 사진 때문이다. 

또한 이에 대한 비판은 언론에서 원자폭탄 관련 ‘논란’이 일어난 바로 직후에 제기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유대계 단체 ‘사이먼 위젠탈 센터(SWC)’의 아브라함 쿠퍼 부소장 겸 글로벌 사회 행동 담당 이사는 ‘과거를 조롱한다’는 이유로 BTS를 비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엔에 초대되어 발언하기도 했던 이 그룹이 일본인과 나치 희생자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쿠퍼 부소장은 아소 타로 재무장관이 히틀러에게 찬사를 보낸 것이나 일본 대중문화에서 나치 이미지가 인기를 얻고 있는 사실, 또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일본에서 반(反)유대주의 저술이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BTS가 반유대주의 의제를 갖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멤버들이 홀로코스트에 대해 무지했고, 그로 인해 고통받은 이들의 감정에 무감각했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들의 행동은 잘못되었으며, 그들은 사과를 했다. 그러나 일본이나 다른 곳에서 나치 문양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미국과 유럽의 많은 소위 보수주의자들은 나치 운동에 깊은 매료되었음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나는 어린 시절 중서부 지역에서 카우보이와 인디언이 등장하는 연극에 출연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한 팀은 미국의 ‘인디언’들을 추격하는 백인 ‘카우보이’ 역을 맡았다. 비록 그 해석이 부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나는 19세기 미국 원주민 학살을 축하하는 데에 내가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Ⅷ. 
BTS는 광범위한 사과를 했으며, 순회공연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일본 나고야에 있는 폭탄을 이용한 협박을 비롯해 일본 곳곳에서 폭력 위협과 온라인상의 비난이 계속되긴 했지만, 도쿄 돔에서 열린 BTS 콘서트에는 5만 명이 넘는 팬들이 모였다. 단 2명만 반대 시위를 벌였다. 

BTS 구성원들은 역사 교수가 아니다. 나는 현대 사회에서 그와 같은 강력한 반지성적 트렌드가 없기를 바라지만, BTS를 비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TS의 노래는 청소년들이 처해 있는 환경에 대한 세련된 감성을 제시함으로써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여전히 자신과 서로를 사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새로운 경제 모델을 위한 커먼즈 경제 구축 ” 세미나

북한의 새로운 경제 모델을 위한 커먼즈 경제 구축 논의에 시민사회의 참여가 필요하다”

아시아인스티튜트 및 커먼즈파운데이션 세미나

2019년 1월 7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교수)
레인 하셀  아시아인스티튜트 연구원 (촐라 롱콘 대학교 교수)
락빙더 싱 아시아인스티튜트 한반도 평화 운동 대표
최정수 MRI Network 대표이사
최영관 (커먼즈파운데이션 대표)

최근 아시아 인스티튜트는 남북간 대화와 화해 분위기에 맞추어 남북한이 미래에 건설해야 할 바람직한 경제 문화 및 체계에 대해 공유경제 지원 재단인 한국 커먼즈파운데이션과 함께 공동 세미나(커먼즈와 한국)를 2018년 12월11일 서울 이태원의 커먼즈파운데이션 사무실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임마누엘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는 이날 “남북간 경제 협력 문제 등에 대해 남북 대화가 이뤄지고 있으나 남한 내 주요 기업가 등에게만 관련 정보가 공유되고 시민 사회는 참여할 기회가 없어 우려스럽다”며 “북한에 공유 경제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시민사회에서 활발히 제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영관 커먼즈파운데이션 이사장은 “통일 이후 북한에 새로운 경제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커먼즈 경제체제 도입 역시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북한이 국유화한 토지와 건물에 대해 국유화를 풀고 사용권과 소유권을 구분해 커먼즈화 해내어 지역 공동체 사회가 활용하는 경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 이사장은 “다만 이러한 경제 모델을 북한 지도부가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라며 “북한이 베트남식 경제 발전을 추구한다면 커먼즈 개발은 불가능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외 세미나에 참여한 참석자들의 대화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공개하오니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분들에게 모쪼록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화의 원문을 가급적 그대로 실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일부 어색한 문장 등은 윤문하였음을 밝힙니다. 세미나에 제시된 의견은 참가자 개인의 의견이고 아시아인스티튜트의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또한 밝힙니다.

주요 참석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교수)

최영관 (커먼즈파운데이션 대표)

레인 하셀 (촐라 롱콘 대학교 교수)

최정수 MRI Network 대표이사

정리

허재현(아시아인스티튜트 연구원, 전 한겨레신문 기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남북간 대화가 계속 되고 있다. 남북간 경제협력 문제도 논의되고 있는데 남한 대기업 중심으로 남북간 경제가 통합될 것인지 북한의 관료주의 사회주의 경제 제도가 남을 것인지 또는 제3의 길을 갈 것인지, 혹은 공유경제의 가능성은 있는지 그에 대해서 여러분과 같이 논의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을 기대한다.

=지금은 매우 급격한 변화의 시기이다. 다음달 어떤 상황이 될 것인지 파악해야 하고 매일매일이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 시민들은 북한에 갈 수가 없다. 북한 사람 만날 수도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공유경제 시스템을 공유해볼 시도조차도 못한다. 그러나 남한의 대기업 사장과 청와대 비서관 또는 대통령은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남한이 세우고 있는 북한의 발전 계획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점이 너무나 많다. 한국전력이나 다른 기업들이 북에 뭔가 제안을 한 것 같지만 제대로 콘텐츠를 본 게 없다. 청와대가 가서 경제 분야에서 뭘 협상하고 오고 있는지 모른다. (재산 등) 소유권이나 수익 이런 것들 언급이 하나도 없다. 민영화인지 국영화인지도 모르고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때에 분석하는 게 시기상조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의 세미나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참가자1

=남북간 통일 화해 과정에서 선진국에서 나오는 제안이 무엇인가. 뒤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다. 철도 개발이나 북한의 자원들을 어떻게 빨리 개발하고 수입할 수 있는지, 새로운 자원을 빨리 개발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고 있을 거다. 남북 경제의 미래에 대해 자원 개발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다. 피투피(P2P) 나눔문화 등 이런 게 없다. (경제 분야에서) 한국이 모범적인 나라는 아니고 전면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위협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우리는 실패했다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 내 희망은 이번 토론 끝나고 몇가지 조건이나 청사진이라도 나오면 좋겠다. 미래 한반도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의논하면 좋겠다.

-최영관

=북한 사회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전쟁이 있기 전의 식민지 상황과 그 전의 왕조시대까지. 한국은 유럽 등과는 다르게 봉건제라고 하는 제도가 없었다. 왕은 있었지만 그런 왕조사회가 유럽의 봉건제랑은 다르다. 북한은 식민지 항일 운동 했던 사람들이 많이 정착했고. 왕조시대 때는 신라시대부터 그당시 평민 사회에는 커먼즈 시스템이 있었다. 마을 공동체와 경제 공동체 별로 우리가 얘기하는 그런 커먼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시대 때도 존재했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모든 (남한에서는) 커먼즈 조직이 와해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은 미국과 일본의 자본으로 산업화를 겪는다. 남한은 아이엠에프(1997년 경제위기) 시대 이후 초경쟁 사회로 바뀌고 빈부격차도 전세계에서 2위인 국가가 되었다. 자살률 1위로 가는 나라가 한국이다. 공동체가 다 깨지고 자본주의 고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남한은 완전히 종속적 자본주의 형태로 바뀌어 버렸다.

=북한에는 항일운동 했던 사람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이 주로 정착했다. 남한과 북한의 사회주의자들 북으로 가서 북한이라는 국가를 만들었다. 북한은 1980년대 초반까지는 남한보다 경제가 좋았다. 그 이후 고난의 행군 거치면서 북한 경제가 몰락했다. (미국이 주도한) 대북제재가 큰 이유였다. 남과 북 모두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고 남한은 종속적 자본주의 틀 안에 있고 북한은 사실 민족주의인지 국가사회주의인지 모를 그런 시기에 있다. 그리고 실제 지배세력이라는 자들이 빨치산 1세대부터 해서 군부까지 해서 자긍심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다. 이런 게 남한과 북한의 차이점이다.

=지금 상황에서 통일 논의가 부각되면서 북한 사회를 자본주의화 할거냐 아니면 또다른 국가 중심의 경제로 갈거냐, 국가자본주의와 혹은 아니면 그냥 자본주의. 또다른 방안이 있느냐가 관심이다.

나는 커먼즈 사회를 고민한다. 많은 공동체들이 북한에도 깨져 있다. 피투피(p2p) 형태의 북한 장마당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커먼즈 자원, 그런 지속 가능한 사회를 과연 북한에 전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거를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게 제 생각이다.

=결국 북한의 현재 지도부가 이러한 제안(공유경제 아이디어 등)을 받아들일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커먼즈 사회로 간다 했을 때 김정은 체제의 권력을 쥐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과연 자기 권력을 놓고 커먼즈 사회화할 것인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의아스럽다. 커먼즈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북한이라는 사회가, 거기도 사람 사는 사회라는 개념을 갖고 접근 해주면 좀더 커먼즈 사회의 긍정적인 부분 엿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허재현

=청중1님의 의견 잘 들었다. 다만 평가하기 전에 한국의 상황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남북간 대화를 하기까지 수십년의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남북간 대화 마저도 언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엎어질 수 있다. 그래서 기대 수준을 높게 갖고 벌써부터 섣불리 실패니 뭐니 평가하는 것은 너무 이른 것 같다. 아마 외국인(청중1)이라서 한국 사회를 좀더 깊이 이해 못하신 측면 있는 것 같다.

=다음으로 최영관 이사장 설명 잘 들었다. 커먼즈 경제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최영관

=커먼즈이 조직적 체계는 기본적으로 피투피다. 탈 위계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자원을 관리하는 거다. 자원은 두가지다. 비물질적 자원과 물질적 자원. 학술연구나 지적재산권 아이티(IT) 이런 것들은 비물질적인 거다. 물질적 자원은 북한의 지하자원과 토지 건물 이런 것들이다. 사실 북한을 개발한다 했을 때 대규모 자본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재벌이 됐든 금융 자본이 됐든. 그렇지 않고 커먼즈적으로 구성하려면 여러 기술적인 것들, 블록체인 등이 사용가능하다. 글로벌하게 자금을 운영해서 커먼즈화가 가능하다. 토지부터 지하자원 채굴권이나 지식과 관련된 것은, 지식은 오픈소스 통해서 피투피 생산하는 것이다. 하드웨어에 대한 설계도는 다 공개돼 있지만 그거 생산하는 주체는 피투피 생산 구조를 갖는다. 북한에 전력난이라든지 이런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을 피어(peer?) 생산하는 거다. 이런 오픈 된 것을 다 주고 그 사람들이 스스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참석자1

=(허재현 의견에 대해) 나는 다만 국가나 경제에 있어서 우리가 성공했다는 오만한 마음가짐에 대해서만 강조했을 뿐이었다. 3만불 소득 그런게 경제의 성공이 아니니 우리가 옳으니 따라와라 그런 마음으로는 안된다. 공통적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그런거 고민해야 하고 그런걸 강조하는 차원이었다.

=남한에서 커먼즈 경제에 대해 모르는 거도 이해한다. 그런 점에서 임마누엘 교수가 주도해서 커먼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 첫 발자국이고 앞으로 상당히 오래된 여정이 있을 것이다.

참석자2

=한반도를 둘러싼 150년의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2018년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 아마 150주년일거다. 당시 조선은 그 메이지 유신 이후 10년 차로 개항은 했지만 리더십의 부재가 있었다. 결국 불행한 역사를 한반도에 만들었고 일본에 지배당하고 일제가 패망 이후에 밀실 담합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고 그런 일이 있었다.

=커먼즈 이런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러시아 일본을 무시할 수 없기에. 관계 정립에 관한 양쪽이 다 동감할 수 있는 전략적인 합의가 중요하다. 거대 화두일 수 있겠지만 그런 부분도 함께 고민이 되었으면 한다.

임마누엘

=답은 하나다.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과 비슷하다. 열강 사이의 갈등이다. 경제적 모순하고 그런 비슷한 현상이 있다. 이러다 세계 대전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두가지 특수한 유례없는 조건이 있다. 첫번째는 인터넷이나 기술발전에서 국가가 해체되고 있다. 새로운 식으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고 초국가적인 네트워크를 만들고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의 가능성도 있다. 19세기에 새로운 시스템이 성립되지 않은 과도기가 있었는데 묘하게 그런 기회를 잡으면 새로운 시스템으로 지방 국가, 지구 글로벌 거버넌스까지도 가능하다. 두 번째 비슷한 원인 있지만 심각한 환경문제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적인 증명 갖고 보면 가장 큰 안보 문제이고 그외 합쳐서 노력하면 그거밖에 없다는 사람 많다. 안보나 안전보장의 정의를 다시 한다면, 한국 사람이 용기 있다면 시스템이나 그런거 만들 기회 있다. 근데 할 수 있어요? 못할 수도 있고.

레인 하셀

=커먼즈에 대한 설명, 세가지 원칙에 관해 설명하고 싶다. 피투피의 정의가 뭔지. 우리가 피투피를 통해 만들고 싶은 세상이 뭔가. 저나 임마누엘 교수 이런 분들의 많은 지정학적 정치역사학적 관점과는 다른 측면에서 내가 이러한 점 오게 된 계기는 2013년 여름 이만열 교수와 함께 피투피 관련 기사가 필요하다 해서 후쿠시마 원전 붕괴 사태에 대해 아무도 제대로 기사를 쓰지 않아서다. 피투피에 대해 워싱턴 파운데이션 미셀 본즈 등등 협력해서 기사썼는데 북한과 관련한 글도 코리아 타임즈에 기사화 했다. 기술적인 부분을 조금 아까 말씀하신 라벤더 싱 박사님이 부언해줄 거다.

=피투피의 정의가 무엇이냐. 이것은 관계의 역동이 피투피다. 그래서 정의 관계 역동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 잠깐 임마누엘 교수님 동원해서 관계 역동. 이제 중요한 것은 코리아라는 말조차도 C로 시작하는 거도 관계역동의 사례이다. 왜 C가 더 맞는지는, 고려부터 시작해서 우표들 보면 C로 시작하는데 일제가 K로 만들어. 조선을 식민지로서 알리기 위해 서열상 오리엔탈인지. J 다음 K 로 한건지. 새로운 리버럴리즘인지 모르지만. 공유된 경험이라는 게 중요하다. 관계의 역동을 만들 때 비슷비슷한 상황 속에서 상상력이 도발되고 관계가 어찌되냐 물질 비물질 이런 거 최영관 이사장이 말했듯이 많은 것을 자극하는 거를. 세가지 원칙을 설명드리겠다.

=오늘날 소위 현대 대학이라는 것과 비교를 하겠다. 대학을 보면 학술망을 통해 전자 메일을 교환했던 시대가 있었고 그거는 임마누엘 교수 본인이든 다 썼던 이메일 시스템. 그것이 다 아시다시피 http 만들고 했다. 1995년 초반에 개인 사유물이 아닌 이메일 시스템으로 등장했었고 그것이 커먼에서 이야기하는 공유물이었다는 거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활동이 인터넷 초기 등장했을 때 엄청난 많은 개인 개발자들이 해커들이 같이 만드는 리눅스 공유 소프트웨어 만들고 인터넷 개발했고 10년 지난 뒤 구글이 출발해서 이런 종합적인 매트릭스 상황 판단해보자면 그 이후에도 지속적 기술 발달이 일어난 것이 2009년에 블록체인이 등장해서 정보 검증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온 거다.

원칙. 프리 어소시에이션(자유로운 협력). 생산적 활동에 참여하면서 많은 코드들이 오고가고 하면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그 이야기 듣고 상대방이 자유스럽게 대응을 보여주는 그런 원칙이다.

첫 번째. 자네가 뇌 과학 외과의사에게 수술 받겠냐 고등학생에게 받겠냐 하면 외과의사에게 받겠지. 비행기를 타더라도 전문 조종사의 것을 타겠지. 전문가가 인정받게 되는 원칙이 하나 등장한다.

두 번째는. 논문들을 서로 검토할 때는 피어뷰라고 하는 학자들간의 어떤 논문의 흠결이나 하자 문제 등에 대해서 학계에서 피어리뷰를 하는 그런 관점에서 비록 사이언스 과학. 그런 탁월성이 어떤 피투피의 세가지의 두 번째다.

여기에 세 번째는 ‘인테그럴 뷰 오브 서드뷰’ 라고 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몇몇 사람들이 미셀바운스라는 커먼즈 운동가. 하버드 대학의 여러 커먼 관계. ‘웰스 오브 네트워크’라는 책자라는. 1700년대 아담 스미스 국부론에 빗댄 그런 책을 썼다. 커먼즈 베이스드 프로덕션. 통합된 사고가 나온다는, 위키피디아 라는 것들도 한 개인으로 기업으로서는 만들기 힘든 건데. 맨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완결에 가까운 시스템 만들었다.

이러한 출발의 첫걸음을 우리가 하는 거다. 의약품 성공하는 오픈소스 만들고 그런 공개된 오픈 소스로 많은 프로세스를 진행. 윈도우 이런거만으로 안된다는 거만으로도 대개 공유된 경제 그런 거 긍정적 역할을 했다.

블록체인 얘기 좀더 하면. 2005년. 2세대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코딩이 지속되면서 아주 적은 수수료 내고 해외에 돈을 보내는듯한 그런 기능뿐 아니라 이제는 해시태그를 동원하는 텐도(?)라는, 홀로체인이라는 그런 제3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엄청난 자원의 소비 채굴의 전력 오염도 안드는 그런 세대로 가고 있다. 즉 인터넷에 ‘메디파이어’라고 하는 기술들이 공유된 자산들을 활용해서 자산을 활용하는, 기술적 논의는 다양하게 갈거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흔히 매일 가치를 교환해야 하는 상황. 신분증 결혼증명서 각종 상황에 대한 인증의 기술을 이러한 거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코딩을 통한 어떤 부가가치를 만드는, 효과적이고 참여적인 경제 활동에 커먼의 기술을 얼마든지 동원가능하다. 엄청난 도도한 흐름, 핵문제 폭풍 기후문제 지구 온난화, 거대한 큰 문제가 될 것이다는 점에서 2050년 정도가 되면 해수면 상승하면서 ‘아 물이 왔네’ 이렇게 안되어야 하듯이 커먼의 기능을 갖고 어떻게 이야기 할까.

남북간에 많은 대화를 하면서 휴전선 초소 없어지지 않느냐? 새로운 제3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어로 의견을 밝힌 것을 한국어로 옮겨 다소 부정확하게 정리되었음을 밝힙니다)

-참석자3(Mushin Schilling, 독일)

=독일에서 왔다. 1989년 동서독 통일 당시에 독일에 있었다. 부센즈라고 하는데 내가 목격한 이야기를 하겠다. 정말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통일이 예측하지 않은 상황에서 왔고 우리는 눈으로 목격했다. 물론 남북이 동서독하고 비교하는게 얼마나 적합한지 모르겠다.

=피투피 얘기를 하자면, 그당시 동독에는 스탈린의 통제 하에서 그 나름대로의 커먼은 있었다. 집 지으면 못질 잘하는 사람들끼리 돕고 하는 게 있긴 했지만 급작스런 변화로 동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고. 그런 과정에서 우왕좌왕 하는게 있었다. 체계적이고 질서 있는 통제에서 일이 일어날거라 생각하는 건 어쩌면. 국가가 나중에 개입하고 체제가 등장하면 많은 부분 압박 일어나고 규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이 꼭 전체를 위해 긍정적 역할은 아니다. 동독의 대부분 사람들은 상당히 자신들이 압박받고 불우한 환경에 있다는 생각했다. 실직이나 그런. 극우단체 등장하고 하는 과정들, 많은 박탈감을 표명한다. 제발 한국 사람들이 커먼즈 시스템 속에서 기회를 잡아서 무언가 하나라도 실행에 옮기기를 바란다.

참석자4 (아감잣싱,12세)

=(북한 지도층이 체제 변화를 인정하게 하려면) 김일성 일가를 전쟁범죄자가 아닌 것으로 하는 그런 합의가 필요할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김씨 일가의 신분을 보장해야 한 뒤 통일을 논해야 한다. 조선인민군의 무장해제를 유엔군의 감시하에 시킨 다음에 평화통일을 하는 조약을 또 서명해야 한다.

=유엔과 북한 정부가 통일을 위해 논의하고 일단 통일 되자마자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으로 가서 향후 수년간 관리체제를 설치해서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시키면서 안정화 작업을 시작할 거다. 10년 후에 민간인 출입 가능해지면 민간업체가 북한에 가서 건설을 할 건데 북한의 산업 자체가 (남한 등에 견줘) 30-40년 뒤떨어져 있다. 이걸 현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장기적 개발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침내 한국이 진정한 통일을 이루었다 볼 수 있을 거다.

-참석자5 (이은심,시인)

=독일에서 오신 분이 말했듯 통일이 어느날 갑자기 물밀 듯이 터져오는 힘에 의해 되는 거다. 그 힘이 남보다는 북에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 탈북자가 한때 밀려왔듯이. 그들이야말로 정말로 목마르게 통일을 원하는 세대가 아니겠는가. 그걸 위해서 우리가 보수들이 보기엔 아리송하게 문 대통령이 과연 저렇게 해도 될까, 안보를 우려하는 마음으로 보는데. 그너머에서 유인을하기 위한 평화 유인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그걸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 나름대로 구로에서 (지역운동을 하면서) 탈북 여성과 대화해보면. 장마당이라는 건 이미 프리 마켓의 베이스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 나름대로 세계의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거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본다.

-허재현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어떻게 커먼즈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건지 커먼즈 파운데이션이 구상하고 있는 좀더 구체적 아이디어가 있다면 최영관 이사장으로부터 듣고 싶다.

-최영관

=‘커먼즈 파운데이션’에서하려는 건 토지와 건물에 있어서의 커먼즈화다. 사용권과 소유권을 구분하려는 계획. 사용권과 소유권을 분리시키면, 예를 들어 건물은 다중이 소유하게 되고 다중에 의해 결정하는 거에 의해서. 토지에 대한 사용이라든가 그런 커먼즈 조직으로 만들 수 있고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싼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커먼즈 조직을 만들 수 있다.

=에티오피아의 주정부에서 제안이 왔다. 토지가 있는데 자기네 토지가 아니래. 국유화된 토지인데 국가 소유와 사적 소유가 아닌 커먼즈화 하는 그런. 커먼즈의 소유인데 다중의 소유이다. 피어투 피어, 수평적 관계에서 그렇게 땅을 소유하고 그 지역의 농민들이 농사짓고 농산물 갖고 살게 해주는, 그런 일부 적은 수익을 남겨서 소유권 갖고 있는 사람에게 일정 부분의 배당할 수 있는 그런부에 있어서 재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보다 ‘센트럴라이제이션’을 어떻게 할까 하는 면에서 커먼즈를 고민중이다.

=북한에도 토지 건물에 관해 토지는 국유화 되어있는데 국유화를 풀어야 한다. 국유화도 국가가 사적 소유인데 커먼즈화 해서 풀고. 공동체들이 들어가 사용하는, 자원도 마찬가지겠다. 철광석이든 희토류든 석유든 그런거 많다는데 그런걸 커먼즈화 해서 자원을 지속관리하게 해주는 조직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다. 국유화도 아니고 민간 소유도 아닌 그런, 과연 북한 지도부가 이런 거를 받아들일까의 문제가 있다. 아마도 북한은 베트남식 경제발전을 추구할 수도 있다. 그러면 커먼즈 개발은 불가능해진다.

서재현 편집

フールハウ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