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Institute and Extinction Rebellion “Protest against climate catastrophe” Sunday, May 5, 12-4 PM @ Gwanghwamun

Asia Institute and Extinction Rebellion will join forces to launch a “Protest against Climate Catastrophe” on Sunday, May 5, 12-4 PM @ Gwanghwamun in downtown Seoul. Please meet to start at the statue of King Sejong.

Also, if you can make a contribution to cover the costs of placards and stickers, it will be greatly appreciated.

for more information, contact Emanuel @ 010 3444 1598.

How do you reform government?

We cannot fix the government through policy or by elections. We cannot fix the government by putting in a few ethical people here and there. And we cannot fix government by getting rid of government. Government will always exist in some form or another. To say there is no government is to let it be run by gangsters, or by for-profit organizations which are the equivalent of gangsters.

The only way to improve the government is by creating self-sufficient communities that are run so effectively and so ethically that they become a model for what government can become. When we do that, then government will stop benchmarking corporations and their ruthless efficiency and go back to benchmarking communities their supportive, participatory processes.

Emanuel Pastreich

April 22, 2019

“反抗灭绝已初具系统” 多维新闻

多维新闻

“反抗灭绝已初具系统”

贝一明

2019年 4月 22日

如今,一场声势浩大的运动正如野火般席卷全球,其内容是以和平方式敦促全社会,尤其是政府机关,针对气候变化这一灾难采取革命性应对措施。“反抗灭绝”(Extinction Rebellion)一词在短短几周前还几乎不为人所知,然而现在这一旨在彻底改变气候变化相关讨论、鞭策人民行动起来的运动正开展得如火如荼——在伦敦举行的大范围罢工也许会对与环境政策密切相关的大众与官方话语产生深远影响。

罗杰·哈勒姆(Roger Hallam)是发起反抗灭绝的中心人物之一。当然,参加该运动、为抵抗气候变化而付出努力的知识精英有很多,然而其中像哈勒姆先生这样,不局限于气候变化应对政策的细枝末节、放眼于令公共话语发生根本性转变的专家却寥寥无几。

时至今日,伦敦国王学院研究员罗杰·哈勒姆已就这一最具关键性的问题开展多年研究:如何策划行之有效、摧枯拉朽的政治运动。

罗杰·哈勒姆曾同亚洲研究所就上述罢工运动及其所具有的明示性与暗示性意义展开对话。他针对这一体现人道的举措之本质做出了见解颇深的论述,同时展望了世界相关领域的未来政治格局——我们心知肚明,根本不能把人类自救的希望寄托给现有的京都议定书和巴黎协定。

在这场访谈中,罗杰·哈勒姆对人性的看法毁誉参半。我由此想起了格斯·斯佩思(Gus Speth)——这位耶鲁大学的教授认为,上述问题应当通过确定政府顾问的标准职能来解决。他表示:

“以前我认为,最严重的环境问题是生物多样性丧失、生态系统崩溃和气候变化,并且相信经过三十年的缜密研究之后,这些问题就能迎刃而解。可是我错了。对环境影响最深的,是人类的自私、贪婪和冷漠,而要根除这几种痼疾,我们需要的是文化和精神层面上的转变,但我们的科学家对此无能为力。”

我们很快就能通过伦敦的大型抗议活动看到哈勒姆及其发起的反抗灭绝能否成功,但不论怎样,有关气候变化对应政策的讨论已经因他们而改变。这场为争取时间、以人类的自私和冷漠为敌的战斗已进入全新阶段,我们即将见证历经脱胎换骨的环保运动遍地开花;这样的运动凌驾于艾尔·戈尔的环保思想之上,更将已沦为笑柄的碳交易远远地抛在身后。

贝一明:身处反抗灭绝中的你在以立即停止使用矿物燃料、拒绝三十年的过渡期为诉求,组织伦敦大罢工和随后的全球运动时,是什么心情?

罗杰·哈勒姆:首先我想郑重声明,在我组织反抗灭绝的过程中,有许多人伸出了援助之手。我在他们的帮助下,于去年一月为崛起网(Rising Up Network)撰写了一篇题为“面对真正的问题”(Pivoting to the Real Issue)的文章;该网站是专供发起、参与反抗灭绝的活动家、学者和研究人员开展深入思考、探讨如何应对当前严峻形势的平台。

于是九到十个月以后,我们在2019年四月开始着手准备——反抗灭绝很有可能成为第一场针对西方国家政府发起的、极具规模与意义的非暴力反抗行动。怎么说呢?这项事业让我既欢欣鼓舞,又紧张万分。

反抗灭绝与许多反气候变化活动有所不同,其斗争形式并不局限于发表演说。我们计划团结几千人占领大概五条转盘路,桥梁也行,直到政府答应同来自英国全国与世界各地的年轻人就日益严峻的气候问题和迫在眉睫的生态崩溃问题进行会谈。

倘若这一诉求得不到满足,我们就会采取进一步行动,封锁通往威斯敏斯特的交通要道——那里是伦敦重要的政府部门所在地。

如果他们还是执迷不悟,我们就去火车站阻止两列火车发车。也就是说,我们采取的是层层升级的非暴力反抗策略。也许不等这周过完,我们大伙就会被捕入狱,但我们决意抗争到底,唤醒社会。

贝一明:在这场抗议活动中,那些意欲摆脱矿物燃料主导型经济的人是否拥有一席之地?比如希望不使用化石燃料就能做出食物的人,还有渴望不动用塑料制品、石油和煤炭也能正常生活的人?

罗杰·哈勒姆:这是我个人的观点:不必对参与行动的民众做过度细分。待相关视频发布之后,欢迎大家随时从中了解彼此的观点。

但就我个人的理解,反抗灭绝的主要目标是开辟一片政治空间,让各国人民得以在其中共同决定自己在未来三十年中是生是死。直言不讳地讲,人类目前面临的关键问题是:“我们是否还要继续碌碌无为,直至死去——或者更直接一点,我们是否愿意让自己的后代死于非命?”希望我们得到的答案是“不,我们要活下去”。要生存,就得解决一系列政治、科技和社会问题,从而在生死存亡之际将渡过这场浩劫的可能性最大化。

在这场抗争运动中,我们要建立起广泛的战线。我们或许会在无关大体的问题上存在分歧,但我们还是会通过抵抗运动和自我牺牲,通过大规模政治活动团结在一起,哪怕触犯现行法律也在所不惜。我们认为,掀起社会危机是最为有效的办法——或许事实正是如此。我希望人人都能明白,只有社会危机才能让那些重要的问题得到重视。我们应当在未来十年里将碳排放量削减50%,而这一目标根本无法通过渐进式的、传统的政治运动来解决。

我是国王学院的政治学家;我在经过专业分析后得出的观点是:显而易见,现在常规途径走不通。不论你持何种政治意见或者政治观点,都要认识到这是结构政治学领域的问题。很遗憾,如果不施加强有力的人为干预,社会变革就难以迅速实现。

现在回到你的问题——我们要创造条件,让他们拥有一席之地。我们不会居高临下地说,“来吧,跟着我们寻找问题的解决方法”,而是会开辟一片空间,让大家集思广益,以民主的方式决定应当采取何种政策、推动何种变革。

贝一明:在关于气候变化的讨论中,我们看到世界范围内竟然有许多接受过良好教育、思想进步的知识界人士刻意淡化气候危机的严重性,甚至直接从依靠矿物燃料获利的集团机构那里收取回扣,这一现象实在令人大跌眼镜。知识分子为何会误入歧途?

罗杰·哈勒姆:实际上,追本溯源,从心理学的角度看,知识分子不愿意相信自己不喜欢的东西,这一结论的确让人失望。我们之中有许多人,尤其是西方人,都天真地认为只要运用理性、开展具体分析,就能推导出应该如何行事,周围环境并不会对我们造成影响。然而已有科学证据表明,事实恰恰相反。倘若我们所处的社会环境本身存在机能失调问题,那么我们便很难抽离自己,客观地对待一切;如果我们属于某一特权集团,且因为社会的这种失调状态而获益——哪怕这种利益只是暂时的,那么我们就更难超脱于事外了。于是这种看似矛盾的局面就形成了:知识越是丰富,就越可能跻身富人阶层;越是富有,就越不想听到负面消息。所以我们计划在英国做几百场巡回演讲。

通常意义上的普罗大众比博闻广识的知识精英更能接受现实,是因为后者身陷死亡崇拜,无法自拔。

贝一明:这里有个十分严峻的问题。我来举个例子:大批大批的进步左翼——我不喜欢这样的词,但又不能不用——网站在讨论帝国主义、对外战争一类的话题,但对气候变化问题欲言又止,甚至视而不见。让我印象最深的是,美国极左社会主义平等党的网站对资本家如何排挤各汽车厂工会大谈特谈,却对汽车生产过程中存在的问题未置一词。

罗杰·哈勒姆:几百年来,我们都认为向自然索取一切天经地义,不必承担任何后果,我觉得这真的是个大问题。人们可能会说,大自然没有意识,因此不会像工人阶级一样觉得自己受害至深,应当奋起反击。的确,自然跟人类不一样,它没有自主决策能力。

然而事物总有两面性。一方面,我们对自然索求无度,没有受到任何抵抗,可另一方面,大自然即将毁灭我们,我们却无法与之理论。我们不能站到它面前,说:“抱歉,这两、三百年以来,我们一直在折磨你。现在我们知道错了,你能不能把冰雪撒回北极?”不论我们是否幡然悔悟,北极的冰层都在消失。我们目前正处于这样的境地:左右两翼的人尚未在人类生存的基本问题上达成一致,因为几百年来,尤其在最近四十年里,我们对自然大肆破坏,从来没想过它也会反过来吞噬我们。

所以你说的那种现象不足为奇,它深深地植根于我们的文化。沉浸在某种文化之中的人,一旦发现自己大错特错,心理上就会产生极大的不适感。我们在生活中都有过这种体验。我并不想在这里说教,只是具体问题具体分析。

我们有各种不良习惯:酗酒,磕药,欺侮他人。在某种意义上,我们迟早会迎来清算时刻,但人们难以想到这一点。我们对世界的认识与它的实际情况南辕北辙,对左右两翼的人来讲,事实都是如此。只有大规模的抗争运动才能改变这一现状,在这一关键时刻,我们就该采取这样的行动。

贝一明:目前视频聊天等五花八门的技术成果层出不穷,令人耳目一新。科技似乎正呈指数级发展态势,然而科学思维和科学分析却日渐不为人所用,请问人类为何会失去科学思维的能力?

罗杰·哈勒姆:其实这个问题我已经间接回答过。人类智力似乎没有发展的上限,然而我们说到底是社会动物。我们在社会空间中生活,在大多数情况下,理性会被感性所压制。如果身边的人做坏事,我们很可能会效尤,就连聪明人也不例外。

现在,出现了你我这样对上述真相有所察觉的“异类”。形势日益严峻,我们所处的系统中出现了一个临界点,也有为数众多的人发现大事不妙,开始明白自己不喜欢的事未必不是真的。正因如此,我们走到了这一步,发起了反抗灭绝。我们并不缺少愿意面对现实的人。

贝一明:最近媒体频频报道亚历山大·奥卡西奥-科特兹议员和她的绿色新政。在仔细研读过相关资料之后,大家就会发现她的观点漏洞之大,简直通得过一艘超级油轮。然而在所谓的“进步”政治团体内部,她提出的政策却成了批评的禁区,没有人愿意开展深入调查,弄清楚它的意义何在。绿色新政能否真正解决迫在眉睫的问题?

罗杰·哈勒姆:我们可以把它当成这样一种尝试:缓解生态危机的同时维持这种假象——人类能够同自然继续保持剥削与被剥削的关系。我想部分左翼人士会表示这样做会令人类受益良多,但我们要质疑事实是否真的如此。有力证据表明,今时今日已经不可能在维持消费主导型生活方式的同时解决环境危机,因为我们正处在千钧一发之际。我觉得我们需要清楚,全球气温增幅正在接近两度这个阈值。

我还想从科学的角度谈一谈。巴黎协定有一个根本上的缺陷:首先,大气中碳元素含量的增加晚于气温的上升,因此全球变暖已无可避免,但各方在拟订巴黎协定时并没有考虑到这一情况,而且忽略了已被排入生态系统的碳、全球暗化、大气中残留污染物的影响,以及愈来愈暖的气候。将北极冰层融化以及会由此而引发的气温上升等不良影响纳入协议是后来的事。

我们已经处在巨大的危机之中,“维持当前的生活方式与原有的愿景”——这种想法毫无益处。

不过,我认为进步人士开始像我于去年一月在“面对真正的问题”一文中说的那样,开始讨论真正的问题,这真的是个好现象。所谓真正的问题,就是我们在过去两百年中实现的变革此刻有化作乌有的危险,因为社会即将分崩离析,我们人类也很可能会灭亡,而没有人类,打造先进文化便无从谈起。

贝一明:关于围绕保守主义开展的政治讨论,我也有一个问题。我读到、听到的许多报道都说:“这些保守派跟我们有价值观上的分歧,对我们的气候变化应对政策持反对态度,我们要慢慢地说服他们、启发他们。”可是我发现有少数“保守派”企业曾经推广使用一种危险物质,而至少自二十世纪八十年代开始,他们便清楚这种物质对环境有害;其应用历史已有四十到五十年。

如果你我这样做,哪怕只是造成很小的影响,我们都会入狱,财产也会被查封。既然这种行为堪比犯罪,为什么还要称其背后的观念为“保守主义”?

罗杰·哈勒姆:众人皆知,有钱有势的人总能逍遥法外。在“坏人能有多坏”这件事上,我们永远都不会失望——许多思想激进的左翼进步人士喜欢研究这个问题,我们应该知道坏人为什么做坏事。

然而恕我直言,具有关键意义的,并不是这个问题,而是:我们只剩下十年的时间来实现经济增长方式转型,寻找一线生机。我认为我们应当关注迅猛政治变革的实用性,也就是说,我们需要参考的文献,有别于那些只描述坏人有多“坏”的文章和书籍。

政坛人士最大的问题是,即便在生死存亡之际,他们也没有读自己应该读的文献,讨论自己应该讨论的事情。我建议大家讨论一下如何改变这一现状,而这正巧是我专门研究的学术课题。要改变社会,泛泛说来,发起反抗灭绝是最为有效的途径;我们要呼吁民众积极参与这场非暴力抵抗运动,为身边的人做些有益的事情,迫使有钱有势的群体收回荼毒我们后代的罪恶之手——这就是反抗灭绝的根本意义所在。

我们发email,送赞助,请说客,等等,令自己与科学分析、客观信息和传统运动形式渐行渐远。倒不是说这些做法本身有什么不对或者无甚效果——有许多有识之士在走这条路。然而客观地讲,问题在于我们要在仅仅十年的时间里完成经济增长方式转型。

在这种情况之下,上述手段恐怕无法发挥作用——这一观点完全有证可循:三十年以来,全球碳排放量增长了60%,其在2017年的增幅是1.6% ,2018年的是 2.7%。换句话讲,在钻研各种科学技术的同时,我们也在迈向灾难和绝境。

因此这就需要我们采用最具效率的机制来发动变革。我们会通过大量违法行动来制造席卷社会、波及政府和政治阶层的政治危机,令全社会知晓义务应当与权利共存,让政治阶层明白自己有保护人民的责任,倘若不履行职责,便会失去手中权力所依附的政治合法性。这就是反抗灭绝的总体框架。

Protest of one against those who ignore climate change in Seoul

Protest of one against the criminals ignoring climate change in US and South Korea

어늘 혼자서 기후변화를 무시하는 미국 과 한국의 세력에 반대하는 시위를했어요

미국대사관 앞에

In front of the US embassy

“미국의 사이코 민주주의” 다른 백년

다른 백년

“미국의 사이코 민주주의”

2019년  4월 8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미국 보스톤 정신분석 연구소(Boston Psychoanalytic Society)의 랜스 도즈 (Lance Dodes) 박사는 MSNBC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된다.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 내지는 간단히 정신병환자라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트럼프는 하루는 북한과 중국을 전쟁으로 위협하다가 갑자기 다음날 그 지도자들에게 애정을 퍼붓는 중이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류의 생존이 경각에 달렸다는 과학적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기후변화 연구를 중단시켰다. 측근들과 함께 미국이 모든 군축 협정을 탈퇴하도록 종용했고, (사전 논의도 없이) 우주 군사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발족시킴으로써 재앙을 우리 턱 밑까지, 1950년대보다도 가까이, 어쩌면 세계사상 가장 가까이 불러왔다.

지난 2월 5일 연두교서에서는 지금의 “경제번영”은 전임 대통령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이라며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그런데 지금의 이 호황은 고삐 풀린 투자은행들을 등에 업은 기업들이 주식을 환매하며 탄생했을 뿐, 진짜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파산 직전 인구, 홈리스, 재소자 등은 못 본 채 했다. 정색하고 누구에게든 아무 말이나 하는 탁월한 능력을 다시금 선보인 것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교과서 상 사이코패스의 모든 특징을 몸소 보여줬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조력자가 없었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최악질 사이코패스 존 볼턴(John Bolton)의 도움이 있었다. 볼턴은 이 세상에 핵전쟁을 불러올 생각만으로 신이 나는 사람으로 그동안 시리아,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중국, 러시아와의 전쟁을 동시에 지지해왔다. 미래의 전망이 어두워질수록, 그의 열정은 뜨거워진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재림 (The Second Coming)”을 쓰며 볼턴같은 사람을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볼턴은 “피로 어두워진 파도(blood-dimmed tide)”의 “빗장을 열어(loosed)”, “선한 자는 모든 신념을 잃고 악한 자는 격정으로 가득한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대혼란을 가져왔다. 여전히 양심이 남은 또는 전두엽 피질 기능이라도 가능한 자들이 마치 난파선을 탈출하는 쥐떼처럼 미 국무부와 국방부를 떠나자, 볼턴은 정책과정의 공백을 독차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워싱턴 정가의 모습은 어떠한가?

요즘의 “민주당”을 한번 살펴보자.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민주당, 캘리포니아) 하원의장은 트럼프가 “파병부대 격려”를 위한 그녀의 아프가니스탄 방문계획을 공개하자,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것으로 추정,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렇게 진보적인 펠로시도 애초에 미국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간에 머무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 희생된 (아프간 시민은 차치하고) 미국 노동자의 수치에 대해서는, 왜 미디어에서 더 이상 미국 군대 이야기를 보도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대신 중국이 위구르의 수백만 무슬림을 탄압한 소식을 알리기 바빴다. 구체적인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 군대에 희생된 수백만 무슬림에 대해서는 역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작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무시하면서 정의로운 세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펠로시는 열성(劣性)사이코패스이다.

버락 오마바(Barack Obama)는 어떤가? 오바마 이름만 들어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혹시 오바마 특유의 그 유쾌한 태도 때문에 그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보통 사람들을 이용한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진정한 개혁가에게 명예훈장처럼 따라붙는 개인적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오바마가 어떻게 Goldman Sachs와 JP Morgan에 영혼을 팔았는지 잊은 것은 아닌가? 거저 얻은 존경은 훨씬 더 달콤한 법이다.

그의 아내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는 최근 “비커밍 (Becoming)”이라는 책을 냈다. 정식 출간 전부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오늘날의 정치적 디스토피아를 상징한다. 그녀는 베일에 가려졌던 개인사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며 미국 내 거버넌스의 몰락과 문명사회의 야만적인 타락은 완전히 가려버렸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처럼 미셸도 자신이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녀는 책에서 작금의 이 악몽이 시작된 첫 8년을 이끈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를 자신의 “공범”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단순 말실수가 아니다. 정신병 말기에 접어든 진보진영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부부는 애초에 진정한 “반전” 진보주의자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회주의” 진보주의자,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뿐이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트럼프의 연두교서에 그답게 대응했다.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트럼프의 연설에 담긴 무의미한 제스처와 거짓 주장에 박수를 친 것만으로도 최악인데, 샌더스의 근시안적 시각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는 노동자의 임금과 사회 전반의 “불공정”에만 주목하느라 군비의 엄청난 증가나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전쟁 위협, 심각한 부의 집중 등 그의 친구 오바마 정권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는 무시했다. 투표자 억압이 있었다는 점이 유감스럽다고 했을 뿐, 그러한 행위가 흉악범죄라는 점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언급을 잊었다.

어쩔 수 없이 샌더스를 지지했더라도 그가 지난 선거에서 한 일을 꼭 기억하자. 그는 유세에 운집한 수만 명 노동자의 고통어린 삶에 대한 연설을 했다. 이 절절한 연설에서 “혁명”을 이야기하며, 한 달 집세도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자들”과 싸울 수 있도록 현금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그의 요청에 응답했다. 그들은 목표를 위해 단결했고, 샌더스를 승리의 길로 이끌었다.

그런데 경선 표를 조작했든, 샌더스에 대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든, 클린턴이 앞서나가자 샌더스는 침묵했다. 그는 마치 자신을 지지한 보통 사람들의 표가 무너지는 것이 그들 모두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개인적 문제인 듯 굴었다.

샌더스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너무나 빠르게 클린턴에 굴복했고, 그의 선거운동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은 빈손으로 그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연설에서 공정한 사회를 역설하고, 노동자의 돈으로 선거운동을 하다가 권력에서 발을 빼지 않으려 그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가 있지 않은가.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혼란에 빠진 미국 청년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그녀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질지 몰라도, NATO와 러시아 제재를 찬성하는 점, 민주당에 묶여있다는 점 등을 보면 딱히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 마틴 루터 킹의 날, 오카시오-코르테즈가 “소수의 부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제도는 부도덕하다”라고 한 발언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다. 다만, 의회에서의 발언은 로비스트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녀는 부자들이 전쟁도발, 시세조작, 전 세계를 좀먹는 화석연료 등을 통해 부정으로 축적된 재산의 몰수는커녕, 해외 조세피난처의 폐쇄를 위한 법안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주의”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도 있다. 해리스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무단결석하는 경우, 그 부모에게 징역을 포함한 형사 처분을 적용하는 법안을 지지했고, 피고에게 증인의 신뢰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했으며, 경찰관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자해방지용 정신병동에 머무르는 진보주의자다.

미국 사이코 민주주의의 기원

이런 정치판 사이코패스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우주선을 타고 떨어진 것은 아니다. 행동은 외계인만큼 이상하지만, 이들은 어느 미친 나라의 산물, 100% 미제다. 여전히 금문교와 헐리우드, 자유의 여신상, 그랜드캐년은 건재하지만, 그 이면의 미국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가족, 이웃, 동포 사이의 사회적 유대는 상업과 소비 열풍 속에 닳아 없어졌다. 정치와 시민사회가 있던 곳에 이제 황량한 사막만이 남았다.

오늘의 이 악몽을 모두 사회 최고위층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동안 이들의 병적인 자기중심주의를 독려하고, 심지어 보상까지 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 지경까지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보상을 제공한 것은 부자들 뿐 아니라, 대부분 상위 중산층이었다. 한 때는 중산층이었다가 몰락한 주변의 홈리스를 돌보기보다는 제2의 스티브 잡스, 제2의 빌 게이츠가 되는 것에 집중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사이코적 행태는 사회 모든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변호사, 의사, 교수, 언론인, 기업인, 정부기관장, 그리고 물론 노동조합의 “노조간부”도 예외는 아니다. 기득권을 누리는 자에게 이 무자비한 정부와 기업정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러한 정책과 그들의 부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Exxon의 주주가 되는 것과 기후변화 또는 민영교도소의 부상과 투자은행의 수익 간의 관계 등은 총명하고 젊은 하버드 대학생조차 떠올릴 수 없는 금기 주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사고방식 덕분에 부자 동네에서 “진보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스타벅스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대형마트에서 채식 쇼핑을 하면서, 핵전쟁의 위협과 생태계의 붕괴에는 무뎌지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는 어떤 제품을 미국 포로(노예) 또는 전 세계 공장에 갇혀 반 노예 생활을 하는 노동자가 만들었을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저렴한 물건을 구입하기 쉽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사는” 태도다.

좋은 교육을 받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은 그 생각을 타인들과 나눌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족들과의 휴가, 멋진 레스토랑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 같은 지루한 대화만 계속할 뿐이다.

이들 상위 중산층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멍청하다”고 치부하는 모습은 더더욱 이상하다. 이들은 인상파 작품과 아방가르드 무용의 가치는 알지만,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한 학교 밖에 없는 동네에 사는 건 어떨지, 그런 동네에 살면 온통 가짜뉴스만 쏟아내는 미디어 밖에는 볼 수 없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절박함에 응답해주는 것은 오직 우파 대형교회 뿐이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한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정부가 정권을 잡은 이후, 다수의 “선량한 미국인들”은 이 가련한 부정의 문화에 빠졌고 사이코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을 떼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트럼프가 보여주는 천박함이 자신에게는 무해할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이 독일 정치가 잔혹한 광란으로 타락한 1930년대를 묘사한 것처럼 “지루함은 무해함의 동의어가 아니다.”

병리학적 특성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이제 민주당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있다. 정책논의에서 제3자는 배제하고, 반대해야 마땅한 여당과 시시덕거리면서, 뒤로는 퇴직수당을 모으는 게 바로 민주당의 리더들이다. 이들은 단 한 발자국도 트럼프의 범죄에 맞설 수 없다.

혹자는 부자 몇 명의 배를 불리느라 지난 2년간 경제 파탄을 겪었으니, 교육을 받은 미국인이라면 하나 둘 모여, 부자들과 군국주의, 백인 민족주의가 만드는 작금의 도당을 뒤집을 강력한 시민운동을 조성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틀렸다.

이 나라의 제도가 아무리 망가져도 고등교육을 받은 미국인들의 “진보” 민주당 그리고 “보수” 공화당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할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간단히 말하면, “결국 미국에 정당은 하나”라는 사실이다.

침묵의 , 여름, 가을, 겨울

1960년대 수백만 시민이 거리로 나와 반체제 시위에 나서게 한 경고신호는 지나친 지 오래다. 현재의 상황은 당시보다 심각하다. 인류 멸망도 가능한 핵전쟁과 기후변화, 불합리한 부의 축적 등이 산재해있다. 자리를 박차고 행동에 나서지는 못할망정, 이런 문제를 주변 친구나 이웃과 논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로마제국 말년과 같은 데카당스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네로 황제의 리얼리티 쇼 버전 내지는 칼리굴라 황제의 모조품 정도 되지 않을까? 트럼프가 세계은행 차기 총재 후보로 자신의 딸 이방카(Invanka)를 거론하는 것을 보면, 로마제국 후기와 확실히 잘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빅터 호스팅 (Viktor Horsting) 그리고 롤프 스노에론(Rolf Snoeren)이 만든 패션회사 빅터앤롤프(Viktor and Rolf)는 참신한 오트쿠띄르를 위해 자극적인 이미지를 찾고자 했고, 실제 그들의 패션쇼 포스터 중 하나는 특히 크게 눈길을 끌어 이들의 회고전에 선택되기도 했다.


Viktor and Rolf Fashion Artists 25주년 기념

그런데 이 포스터는 보는 입장에서는 참 혼란스럽다. 화려한 붉은색 담요를 몸에 두르고 침대에 누운 부유해 보이는 백인여성이 등장하는데,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구겨진 베개 위에 흩어져있다. 그녀는 수평의 풍경과 달리 수직으로 그려졌고, 르네상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처럼 오른 팔에 금발의 아이를 살포시 안고 있다.

그런데 부를 상징하는 이 이미지는 배경의 불편한 상황과 배치된다. 엄마와 아이는 폐허가 된 집, 아마도 허리케인 카트리나 또는 허리케인 마이클의 잔해 앞에 서있다.

인프라의 붕괴, 기후변화, 긴축재정 등으로 고생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이 여성이 대조되면서 그녀의 부와 특권이 더욱 매력적으로, 흥미롭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 이미지가 더욱 재미있는 점은 부자들 그리고 이들을 부러워하는 자들이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전 뜰에 작은 농장을 지어 평범한 소작농의 삶을 즐겁게 경험한 것과 비슷하다.

이 이미지에서 미적 쾌감을 느낀다면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일 것이다. 결국 부자들은 분기별로 수익을 내려면 채굴산업과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이윤추구는 재앙을 부르는 기후변화를 야기했고, 시민들이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없게 만들었다.

이들은 거대한 벙커와 땅을 사서 기후변화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신도 속이고 있다. New Yorker에 실린 에반 오스노스(Evan Osnos)의 기사, “슈퍼리치가 최후의 심판을 준비하는 방법 (Doomsday Prep for the Superrich)”에 이와 같은 부자들의 움직임이 생생히 묘사되었다.

이러한 병든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청년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유한 아이들이 자기도취에 빠져 노닥거리는 광고를 봐야만 한다. 광고계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미지를 롤 모델로 제시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많이 가진 자를 찬양하는 것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어떻게 미국의 정신을 멈췄나

이 사이코 민주주의는 주기적인 데카당스 시대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일까?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이 기후변화와 핵전쟁 위험을 가볍게 무시하는 극단적인 인지부조화를 보면 분명 다른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빠른 기술발전으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파악하는 능력이 크게 저하되면서, 우리는 게임과 소셜 미디어, 포르노, 위기대응능력을 망가뜨리는 그 밖의 오락 활동의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

스마트 폰이 우리의 두뇌 속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생을 마감할 즈음에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카툰 작가 스티브 커츠(Steve Cutts)는 “아 유 로스트 인 더 월드 라이크 미? (Are you lost in the world like me”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 악몽과도 같은 세상을 그려냈다. 이렇게 체득된 수동성은 사회계층과 시대를 아울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작가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 The Shallows)”라는 책에서 어떻게 인터넷이 즉각적인 자극에 반응하여 복잡한 사고를 하는 두뇌의 능력을 마비시키다시피 하는지 광범위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우리가 글로벌하게 서로 소통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그 기술에 의해 교묘하고 모순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정보의 망망대해 위에서, 스스로 생각할 물 한 방울이 없어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인간 두뇌의 신경가소성이 오히려 경직된 행동을 독려하는 등, 부정적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뉴런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생성한 회로가 매혹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계속 이 회로를 사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구글 검색이나 페이스북 포스팅이 주는 빠른 응답은 뉴런을 자극하고, 쾌락의 흥분제를 분비한다.

오래 전 복잡하고 입체적인 사고, 즉 개인의 오랜 경험이나 사회, 문화적 변화의 경험 등을 위해 사용되었으나,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신경 회로는 보이지 않는 신경의 자연도태에 의해 가차 없이 제거된다.

신경학자 노만 도이지(Norman Doidge)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우리가 정신적 능력의 활용을 멈춘다면, 그 능력을 그냥 망각하는 게 아니다. 두뇌 안에 그러한 능력을 위해 배정된 공간이 다른 기능에 넘어가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이를 더 명료하게 표현했다. “우리의 뉴런과 시냅스는 생각의 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두뇌에 내재된 유연성 때문에 지적인 쇠퇴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몇 시간씩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SNS나 메신저를 하느라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 또는 트럼프 행정부가 2월 7일, 중거리핵전력 (INF) 조약 탈퇴를 결정한 후 따르는 군비경쟁의 리스크를 판단할 능력을 잃은 것이다. 이런 재앙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문데다가 종말을 불러올 이런 문제들을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니콜라스 카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러 심리학, 신경생리학, 교육학, 그리고 웹 디자인 연구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글을 훑어 읽고, 서둘러 여러 생각을 하며, 피상적인 학습을 장려하는 환경에 노출된다. 책을 읽으면서 가볍게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하면서도 깊은 생각을 할 수는 있다. 다만 이를 기술이 독려하거나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뉴런의 빠른 자극을 위한 정보 프로세싱 때문에 인류 전체가 “피상적” 사고에 사로잡히는 경우,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거나 옹호하기는커녕, 그 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사이코패스 뒤의 사이코패스

아직 퍼즐 한 조각이 남았다. 현재의 상황이 모두 인류애 따위는 없는 탐욕스러운 부자 몇 명의 책임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이들의 가면을 벗기고, 장막 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술이 모든 제도를 대체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우리를 파멸로 몰고 온 이 부자들을 위해 판을 깔아준 궁극의 사이코패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 세계의 슈퍼컴퓨터 수만 대다. 매일, 매 분, 매 초마다 이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소수점 아래 열 번째 자리까지 계산해내며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바로 이 슈퍼컴퓨터가 JPMorgan Chase, Goldman Sachs, Barclays, Bank of America의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들 컴퓨터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즉 윤리적 거리낌 없이 지구 전체의 금전적 가치를 평가하고 철저히 알고리즘에 기초하여 이윤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뒤를 버티고 있는 이 슈퍼컴퓨터들에게 빌 게이츠(Bill Gates)와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즉각적인 궁극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떠나는 길에서 만나는 재미없는 부록 같은 것이다.

슈퍼컴퓨터가 마침내 인간 문명을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당장 컴퓨터에 생태계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인간성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이윤만을 근거로 사회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면 그만이다. 눈, 비디오, 게임 등이 인간 두뇌의 신경 네트워크를 재구성해서 도파민에 의한 단기적 사고만을 장려하더라도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면 그만이다. 슈퍼컴퓨터가 스스로 의식을 갖기 한참 전에 인간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직 완전히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 다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불편한 일들을 많이도 슈퍼컴퓨터에게 맡기고 있다. 다중병렬 슈퍼컴퓨터라는 눈먼 자들이 인류라는 애꾸눈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일본 조선학교 학생들이 바라본 한반도 변화” 프레시안

프레시안

“일본 조선학교 학생들이 바라본 한반도 변화”

2019년 4월 6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지난해 12월에 일본 오사카에 있는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와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는데, 고립된 채 유지보수조차 되어 있지 않은 학교 건물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치인들은 북한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조선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폐쇄하라며 지역 사회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 내 조선학교는 다른 국제학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심스럽고 위험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1990년대 도쿄대학교에서 공부했을 때 동료들에게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일본 사회의 엘리트였으며 우정을 바탕으로 소수 공동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에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다. 당시 나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동료들에게 감동했다. 내가 일본의 강력한 의사 결정 커뮤니티에 들어간 미국인이 된다는 생각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들은 조선학교에 대해 아주 낯선, 전체주의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조선학교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평범한 일본인과의 교류를 거부한다고 했다. 일본인들 눈에는 조선학교와 학생들이 이데올로기적이고 융통성이 없으며 비밀스럽고 기이한, 마치 북한 음모의 한 부분처럼 묘사되었다. 

이후 조선 고등학교에 다닌 사람을 만나 그들이 일본에서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겪은 끔찍한 차별에 대해 알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東大阪 朝鮮中級学校 (2018年 12月)
 

Ⅱ. 
나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12년 이상 살고 있다. 도쿄대에서 공부했던 시절과는 다른 시각으로, 조선학교를 찾은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에는 능숙하지만 일본어는 그렇지 못한 딸 레이첼과 같이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우리가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도쿄대의 오래된 기숙사가 생각났다. 1987년 당시 도쿄대 기숙사는 수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려 깊고 창의적인 학생들로 가득했다(비록 지금은 다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 역시 제대로 수리되어 있지 않았다. 건물 외벽의 페인트가 벗겨졌으며, 내부 콘크리트는 갈라져 있었다. 학교는 조선인 교육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우익세력에 의해 정부의 지원이 중단된 채 학교 학생들과 가족들의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지키고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투쟁 의지는 강했다. 최근 한국과 일본 간 긴장이 높아지면서 한국에서도 조선학교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한국인을 적대시하는 우익세력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일본 내 조선학교의 투쟁 의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토요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과외 활동에 집중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몇 시간에 걸쳐 축구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전통 한국 무용과 한국 음악을 연습하는 등 자신들의 활동에 몰입했다. 

Ⅲ. 
나는 조선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에 엄청난 교감을 느꼈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학교만의 특징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는 상업적인 시설이 전혀 없었다. 어디에도 광고가 없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는 상업 디자이너가 제작한 것도 아니었다. 화장을 하거나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학생도 없었다. 학교의 장식물은 오롯이 학생들이 활동의 일부로 직접 만든 것이었다.

학교는 협동을 통해 운영되는 소규모 공동체였다. 그것은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헌신적인 몇몇 사람에 의해 한국 문화가 보존되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1987년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봤던 문화가 그대로 느껴졌다. 이에 지난 30년 동안 과도하게 상업화된 소비문화로 사라진 것을 조선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12명의 중학생들과 마주 앉아 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고, 일본 사회가 조선학교와 학생들에게 적대적인 압력을 가할 때 대응 방법 및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학생들은 비교적 개인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말했다. 

학교의 기본 주제는 협력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팀의 일원으로 협력하는 곳이었다. 이런 태도는 개인을 파괴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나르시스트적 소비문화에 의한 인간성 파괴를 감안할 때 그들의 문화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레이첼은 학생들과 한국어로 대화했다. 레이첼은 그들과 점심을 먹은 뒤 오사카 시내를 구경하고,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레이첼은 학생들과 오사카 시내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레이첼은 그들이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배력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것처럼 보였다. 

Ⅳ.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요코하마에 있는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다. 김찬욱 교장과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그의 딸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아버지와 딸은 지역사회에 기반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일 양국의 대안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또 지금까지 학교가 어떤 압력을 견디며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와 레이첼은 우리를 위해 다코야키를 만들어온 15명 정도의 학생들과 함께 앉았는데, 레이첼은 나는 아랑곳없이 그들과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나는 김 교장과 함께 그의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일본에서 한국어로 교육을 하고, 일본 및 전 세계에 걸친 제국주의와 식민 통치의 유산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데에 따르는 엄청난 어려움에 대해서 대화했다.  

김 교장은 일본의 심각한 사회 및 경제 문제에 관한 공개 세미나 자료의 사본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선학교가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교육하면서 예술·음악·작문 등을 과외 활동이 아닌 필수 항목으로 교육하는 학습법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인상을 받았다.

Ⅴ. 
몇 달 뒤, 내 친구 가와나카 요가 가와가나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여학생 3명, 남학생 1명 등 총 4명을 각각 A, B, C, D로 표시)을 인터뷰했다. 

학생들은 노래방과 프리쿠라를 좋아하는 여느 일본 학생들과 똑같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이라는 정체성과 ‘분단’이라는 현실을 이해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학교의 교육 방식과 일본에서의 생활 방식이 나름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 내용을 전한다. 

– 조선반도(한반도)에 통일과 평화의 징조가 보이는데, 학생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나

학생 A : 북남 수뇌회담이 진행되었을 때 이야기지요? 역사를 배우는 사람으로, 기쁜 일이지만 ‘겨우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학생 B : 우리가 조국을 방문할 땐 보통 중국을 경유해서 간다. 그런데 ‘만약 통일된다면 남한을 거쳐 평양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수업 중에 했다. 

학생 C : ‘조선(북한)은 사회주의이고 한국은 자본주의사회이니까, 통일되면 어떤 사회가 될까?’ 같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학생 D : 우리 자신이 특별히 변한 것은 없지만, TV나 신문에서 ‘북조선, 북조선’ 하고 방송하던 게 눈에 띄게 적어졌다. 우리가 ‘통일의 한길로 걸음을 때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분위기다.  

– 일본 사람들이 조선을 더 많이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 

학생 A : 글쎄요. 직접 만나고 교류하면, 선입관이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인식 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내 여러 고등학교와 교류하고 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지막에는 ‘평범한 보통 고등학생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는 조선을 잘 아는 조선 사람은 아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일본 사람도 아닌 조선과 일본 중간에 있는 느낌이랄까? ‘조선인’이 맞지만, 스스로를 ‘조선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좀 복잡하다. 경우에 따라 ‘조선 사람’이라고 규정되는 건 어색할 때도 있다. 다만, 이런 배경을 정확히 알고 편견 없이 평범한 한 사람으로 대해줬으면 한다. 

– 뉴스를 볼 때 어떤 미디어를 주로 이용하나. 일본의 주요 미디어가 보도하는 내용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나 

학생 A : TV에서 정보를 얻는다.  

학생 B : ‘라인 뉴스'(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이 일본에서 제공하는 뉴스 서비스)에서도.

학생 C : 학교에 있는 조선(북한) 쪽 신문도 본다. 

– 다들 근처에서 사는지. 조선 학교와 지역 주민 간 교류도 궁금하다 

학생 A, B, C, D : 대부분 전차를 타고 통하교를 한다. 다소 먼 거리다. 

– 그렇다면 지역 주민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 

학생 D :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선전 포스터를 전달한다.

학생 A : 평상시에는 학교 앞 긴 계단길을 정기적으로 청소하며, 지역 주민과 접점을 늘리고 있다.  

– 우익 단체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일본 사람 중에도 재일교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경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 A : 우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 작된 정보가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과 교류할 때도 마찬가지다.  

– 일본에서의 생활, 만족하나? 노래방이나 프리쿠라(‘Print Club’의 일본식 발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좋아하나?  

학생 C : 좋다.  

학생 A, B : 일본의 평범한 보통 고등학생들과 같다. 만족한다.

Stephen Jenkinson on “The Meaning of Death”

Stephen Jenkinson

Says in “The Meaning of Death” something quite profound about our age, and how the fate of our civilization is tied to the personal experience of death.

I have watched the video maybe twenty times and have been both moved and confused by what he said. I transcribed the entire text, but I am still not sure exactly what he is saying. What I can say is that I would not have been drawn to it if it were not compelling.

Stephen Jenkinson

“The Meaning of Death”

You know I was asked, many, many times when I was in the front lines of the.. No! When the people in death’s shade thought I was a good idea–to come and talk about finding meaning at the end of life.

That was the standard request

So you can see the idea that meaning is somehow potentially elusive, or even fugitive. And has to be somehow be wrung from the circumstances is behind that question.

It is a particularly modernist dilemma

To find meaning.

But the real problem is in conceiving of it as something that you have to find. You can see the language implies that it is hidden, or that you are not looking in the right place, or that there is some nefarious architecture that keeps it from you, or that… You understand—or that

you have to claim so-and-so as your personal savior.

What but what if the meaning is not hidden? What if is not something to find.

What if the story is that meaning is not found at all, but it’s made. It is made by the willingness to proceed as if certain things must be.

Like, life has to continue, not you have to continue. That life is not your lifespan, or your children’s lifespan, or the lifespan of what you hold dear.

How about holding dear the fact that nothing you hold dear lasts? How about holding that close to your bosom? That’s making meaning of the end of life, the willingness to do that.

It is not hammered into the sky for all to see so that nobody can forget.

You see how precarious the whole proposition is. It actually has to be lived out and told in order to pertain.

It ha(s) no police, it ha(s) no enforcement branch.

You know.

If you’re not willing for it to be so, it probably won’t be. End. Well, what’s the consequence of that? Well, it is not a conjecture, look around you. Our way of life is the consequence.

Life does not feed life. Life is on the receiving side of life, always. No it is death that feeds life. It is the end of life that gives life a chance.    

It is a hurtful kind of comfort, maybe, that the dominant culture of North America is in some kind of beginning stage of a terminal swoon.  Because it’s the beginning, it is hard to tell the difference between that and dancing, or having a good time, you know.

But, it is terminal alright, meaning that there is no turning back from it, there is no undoing it.

Alas, it is worse than talking about it as a punishment.

It’s not a punishment, no more that dying is a punishment for being born.

Our particular dilemma, I think, is trying to live with the realization that what the world requires of us humans is not that they piss off already and why don’t you all die and then we’ll go back where we were.

No, I think that the world whispers, “All we need of you is that you be human—that’s it.

The dilemma is in the meaning of the word, “human.”

What has to die is your refusal to die; your refusal for things to end.

If that dies, life can be fed by (that) and so the plea is not for punishment, it’s for remembrance. You are not supposed to feel bad about having forgotten. You are supposed to feel more. See, that is the invitation.

书评 “未来中国” 多维新闻

多维新闻

“【书评】未来中国: 关乎人类与地球命运”

2019年 4月 5日

“【书评】未来中国:关乎人类与地球命运””

现代文化出版社 (香港)

作者:贝一明

书评:蔡鑫

未来,在我们手中

《环境恶化将使人类面临灾难》、《全球变暖警报拉响:2030年—2052年全球或升温逾1.5摄氏度》、《俄工业城市因环境污染导致积雪变绿,导致居民抗议》、《财富集中度创新高:82%全年财富被1%群体获得》……

翻开报纸、打开网页,我们会发现这样的新闻已经屡见不鲜,而它们所反映的,不过是人类世界的一个小小侧影。其实哪怕不借助媒体,我们也会发觉自然环境每况愈下,社会环境与被古人称为“大同”的理想状态渐行渐远:苍穹中,因为雾霾的遮蔽,群星不再璀璨:大地上,茵茵绿草与清澈的河流愈发难以见到;目之所及,到处是为富豪们量身订做的房地产与奢侈品广告;还有,智能手机从通讯设备变成了人们的生活必需品,越来越多的人可以不读书,不看报,甚至不跟家人交流,但绝不能不碰手机……面对诸多问题,我们不禁会为人类的前途担心,不知如何才能打开通往光明未来的大门。

贝一明教授的《未来中国——关乎人类与地球命运》一书给了我们确切的答案:钥匙就在我们自己手中。本书既含有以某档节目、某则广告为切口,针对社会问题开展的深刻思考,也有宏大视角下关于中国传统文化和科技失控、生态文明等全球性问题的细致分析。书中文章涵盖政经、文化、教育、科技、环保、国际关系等领域,可谓五花八门,包罗万象——人类生态系统和人类社会系统本就错综复杂,因此在探寻人类的未来之路时,我们需要从多方面、多角度加以研究考量。

贝一明教授是一名对中国文化有深入了解的美国人,同时在韩国居住多年。丰富的人生阅历使他得以用独特的视角来观察世界。在许多中国人心中,美国等西方国家兼具先进制度与先进科技,似乎是人类的乐土;但贝一明教授在这本书中针对美国政治、经济、外交策略等方面的弊端做了深刻解读与分析,明确指出,从长远来看,美国的做法只会让各种危机愈演愈烈,令人类的前景愈发黯淡无光。还有,他认为,迅猛发展的科技给我们的生活带来了极大的便利,可同时也造成了环境污染、资源浪费、人际关系淡漠、文化贫瘠等严重问题,在引领我们走向幽冷的深渊。那么,面对重重困境,我们究竟应该去何处寻求解决之道?

作者指明的方向是——回归中国传统文化。也许很多人,哪怕是中国人,都会觉得这个答案让他们大跌眼镜:我们在“传统”与“落后”之间划上了等号,将先贤典籍束之高阁,任其蒙尘,全然忘记了古老的土地上也能开出明艳的花朵。以儒家思想为例,政治上有“从道不从君,从义不从父,人之大行也”的主张,经济上有“下贫则上贫,下富则上富”“不患寡而患不均”的理念,教育方面,有“有教无类”、“因材施教”的方针,甚至在环保方面,也早有“钓而不纲,弋不射宿”的教诲。这些理论,直到今天仍能给我们以启迪。

正如书名所述:《未来中国,关乎人类与地球命运》。作者在字里行间也流露出殷切的希望:愿中国读者能够受到启发,建设一个更好的中国;愿中国能够蒸蒸日上,带领世界走向更好的明天。

乎人类与地球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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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journalism criminal?

The journalism surrounding the attack on Labour leader Jeremy Corbyn displays all the signs of deep criminality. The media suggests that Corbyn was “egged,” harmlessly struck with an egg in good fun. In fact, eye witnesses affirm that he was brutally struck with the intention of inflicting physical injury. The egg was just a special topping. One can’t help but think that the “egg effect” was planned by those who orchestrated the assault for the very purpose of creating such a false and confusing narrative.

The message to thoughtful politicians and officials is clear: “you will not even get accurate reporting about how you were attacked. The war on the opposition will be carried out by stealthy means and Corbyn and his like should just shut up or disappear.” What should have been a historic moment that brought out mass demonstrations and an affirmation of the need to protect thoughtful politicians from attack has been normalized and ignored, treated like a minor event barely worthy of notice. We can easily imagine what the next step in this process of normalization will be.

Congratulations! fascism has metastasized

Congratulations!

Fascism has metastasiz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