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ablishing a Korean Tradition of Democracy to Inspire” (한국어)

“Establishing a Korean Tradition of Democracy to Inspire”

An essay arguing that Korea’s democratic tradition must be traced back over the last thousand years to properly have the depth necessary to inspire the world. We have mistakenly assumed that the Korean democratic tradition is a product of the 1980s, thus unnecessarily limiting its possible impact.

Emanuel Pastreich (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2012년 1월 15일

 

전통의 재발견과 한국식 민주주의”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주제를 갖고 아시아 각국을 바라보면 긍정적인 변화와 더불어 부정적인 변화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최고 권력자를 선출하는 나라가 많아지는 현상은 긍정적이지만 정치에 깊은 관심을 잦고 참여 하는 시민들은 오히려 줄고 있다. 그 결과 2년에 한 번 정도 정치인을 상품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그친다면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지 않는 악순환이 조성된다. 이런 현상은 현대 아시아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민주주의 위기가 임박했다는 진단을 내릴 수도 있다.

위기를 예방하기 위해 시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선진적인 민주주의 제도와 운영 방식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는 모범국가가 나온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모범국가 역할을 대한민국이 해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상상해 본다. 한국인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당장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한국 정치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평가는 매우 낮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이 돼 있고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하면 모범적인 요소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거쳐야할 절차가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현재 수준으로 발전된 배경과 연원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흔히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1980년대에 갑자기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고 하는 설명을 자주 하는데 뭔가 부족한 설명이다. 그 시기에 민주화 투쟁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민주화 투쟁 사례는 찾아볼 수 있다. 다른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그 투쟁을 성공시킨 배경이다.

만일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내용으로서 최고 통치자의 절대적 권력 행사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존재 여부라고 한다면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그리고 3국 시대 사회에서도 민주주의는 존재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중국 송나라 시기의 유교 사상을 국가적 지도 지침으로 수용했는데 이 사상은 민주주의적 요소가 매우 강한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과거를 통해 인재를 선발했고 왕안석이나 사마광 등 최고의 지식과 강인한 실천 의지를 완비한 문인 선비들이 정부 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북송의 황제는 절대적인 위상을 가지지 못했다. 황제와 관료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고 보호한 송나라 시기 유교는 비록 선거 제도는 없었지만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세계적인 모범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 성종 임금 시기에 최승로는 유교 이념에 따라 나라를 다스릴 것을 제안했다. 최승로의 제안은 사실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각종 제도와 장치를 도입하자는 부분이 핵심이었다. 그러므로 이 건의는 파격적이었지만 성종은 건의를 수용했다. 성종이 특출난 성군이라서 수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대체로 사회 분위기가 수용을 강박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 어떤 연유든 이후 고려는 법과 제도에 따라 중요한 사안이 처리되는 나라라고 하는 성격이 크게 강해졌다.

고구려 시기에는 다소 자극적인 사례에서 민주주의 요소를 만날 수 있다. 고구려 국왕 28명 가운데 모본왕 등 3명이 신하에 의해 죽음을 당했는데 3가지 사례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최고위급 신하가 국왕 축출을 주도했고 정변의 명분은 포악한 정치로 백성을 도탄에 빠트렸다는 주장이고 거사 성공 이후 주동자는 스스로 국왕에 오르지 않고 왕실 혈통을 찾아 차기 국왕으로 옹립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국왕의 절대 권력에 대해 신하들이 반기를 들고 정치의 핵심 목표를 백성의 안위에 두는 전통이 2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판단은 과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산 반도체의 기적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이러한 한국의 민주주의 전통은 모른다. 최근 한류를 통해 한국은 주목받는 나라가 됐지만 장기적인 영향력 즉 문화나 제도, 사상 차원에서 한국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나라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 전통에 대해 알게 된다면 이런 상황은 변경될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생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고 한국의 위상과 한국 상품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다.

앞으로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 발전을 지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허황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외국인인 내가 바라보건대 운명에 가깝다. 다만 그 역할을 성공적이고 생산적으로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한 시행착오를 거쳐 수행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한국인이 선택하기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공적인 과제 수행을 원한다면 한국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온 스스로의 민주주의 전통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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