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학교 존 트리트 교수 의 특강

2012년 6월 7일 예일대학교 동아시아 언어‧문학 존 트리트 교수님 (일본문학전공) 께서 경희대에서 예일대 학한국 전망 관련 해서 특강 하셨어요. 명문 예일대학교는 아직 한국학이 없는 이유를 설명 하시고 예일대와 한국의 인연을 소개 하셨어요. 교수 하고 학생과 매우 유익 한 문답도 하셨어요.

 

발표문 요약:

존 트리트

동아시아 언어‧문학

예일대학교

 

예일대 한국학 연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우선 임마누엘 교수님을 비롯해 환대해 주신 모든 경희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이 강연을 통해 예일대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학 연구의 실정에 대해 말씀드리고 더불어 여러분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학 연구 수요가 지난 20년에 걸쳐 북미 지역 각급 교육기관에서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한국계 미국인과 한국계 캐나다인들의 북미지역 대학 대거 입학, 한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명확한 이해 없이는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 역사와 문화 연구가 가능하지 않음을 직시했기 때문에 한국학 연구의 필요성이 증대하게 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예일대학교는 동아시아학을 연구하는 북미 주요 대학들 가운데 아마 유일하게 뒤쳐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가운데 예일대에만 유일하게 한국학이 개설돼 있지 않음) 예일대에는 중국학과 일본학을 전문으로 하는 뛰어난 교수진의 수는 많습니다만 한국학의 경우 그렇지가 못합니다. 하지만 본교에는 100년 전부터 꾸준히 한국 학생들이 입학해 학문을 갈고 닦았습니다. 최초 한국인 입학생은 1914년 신학과에 입학한 양주삼 학생으로 졸업 후 한국 기독교계의 매우 중요한 인사로 거듭났습니다. 이처럼 예일대 한국인 동문들 가운데는 저명한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한국의 국무총리이자 주미대사를 역임한 이홍구(정치학 박사, 1963) 동문, 이화여대 총장, 한국 최초 여성총리 서리를 역임한 장상(신학, 1970),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자 문화예술 진흥 사업에 힘써온 박성용 회장(경제학 박사, 1965) 등이 있습니다. (더불어 예일대에서 학‧석사를 한 전 주한미국대사 제임스 레니(James Laney)씨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미국대학에서 한국학 연구에 대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점차 바뀌어가고 있지만 그 변화 속도가 빠르지는 않은 형편입니다. 1990년 이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프로그램의 수는 급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예일대의 경 미학 분야 미미 양프로크사완( Mimi Yiengpruksawan), 역사학의 피터 퍼듀(Peter Perdue), 그리고 동아시아언어와 문학 분야에 저(존 트리트‧John Treat) 이렇게 세 명이 한국학을 비롯한 일본, 중국학에 관심이 매우 많습니다. 또한 본교에서는 한국 정부의 협조를 통해 다수의 한국교수진을 초빙한 바 있습니다. 연세대 이제민 경제학 교수, 런던에서 한국 미술 가르친 바 있는 박영숙 교수,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황경문 역사학과 교수 등을 방문교수로 초빙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정치학 분야 조교수로 한국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조석주 교수, 미술사가 전공분야이나 서울대에서 한국미술사와 중국학을 가르쳤던 김윤미 교수를 임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 학자, 학부와 대학원의 한국학 전문가 수가 턱없이 모자란 실정입니다. 예일대에서 제가 맡고 있는 임무 중 하나가 예일대가 직면한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의 많은 학자분들, 대학 관계자분들과 얘기를 나누며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고 오늘 제가 경희대에서 이야기할 부분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사실 예일대는 “한국학 연구”라는 분야가 미국에 자리 잡기도 전에 그 분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었습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자로 유명한 사뮤엘 마틴(Samuel Martin) 교수는 예일대 석좌교수로서 이미 수년간 미국과 캐나다 한국학 분야를 석권하며 연구를 하고 후학을 양성해 왔습니다. 마틴 교수는 그러나 대외적으로 한국학 연구를 확장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홀로 연구하는 편이었습니다. 때문에 사뮤엘 마틴 교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로인한 예일대 내 한국인 역사학자나 사회학자, 혹은 문학자의 초빙으로 연결되는 파급효과가 없었습니다. 사뮤엘 교수의 퇴임과 함께 예일대 내에서의 한국학 연구 확장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좋은 뉴스를 알려드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한국어 재단(Korean Foundation)의 설립과 함께 한국어 연구교재 도서관 설립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되었고, 매년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을 통한 기금 조달로 매년 한국 학자를 초빙할 수 있게 됐습니다. 최근 3년간 한국어 재단 소속 교수를 여러 명 초빙했습니다. 그들은 현재 예일대 학생들에게 근대‧전근대 한국의 역사에 대해 가르치고 있고 미학도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희망은 예일대에 한국학 연구 종신 교수직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난 2008년 이후 본교 재정상의 문제 때문에 예일대 내에서 종신 교수직 늘리기는 쉽지 않은 편이기는 하나 저는 꽤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예일대에서의 한국학의 현재 입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여러분들께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본교와 한국은 꽤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본교는 동아시아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교수들이 현재 본교 로스쿨과 같은 전문대학원 교수진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 정부와 여러 프로젝트를 협력해 수행하는 교수진, 또 한국에서 방문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진들도 매우 많습니다. 한국은 본교의 교육 미션을 함께 이해하며 동반자와 같은 위치로 계속 조력해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 학생 24명이 예일대 학부과정에 입학했습니다. 이는 석사나 박사과정 입학생 수의 4배가량 되는 숫자입니다. 한국인 동문 숫자는 100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저를 비롯한 다수의 교수진이 한국학 연구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3년 저는 우리대학 리차드 레빈(Richard C. Levin)총장 한국 방문 시 동행해 서울대 교수진과 행정 관료들과 만나 양 대학 간 긴밀한 유대에 대해 협의했었습니다. 애초 한국어 재단에 방문해 기금이나 스폰서, 기타 제반사항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서울의 교통체증 때문에 차 안에 갇혀 안타깝게도 방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본교는 한국으로부터 공수한 한국 관련 여러 자료와 수집물, 아카이브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본교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는데 하버드대나 컬럼비아대학과 비교해 볼 때 그 양이 많지는 않으나 예일대와 한국 재단의 지원 속에서 점차 그 양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저희 사서들은 정기적으로 한국을 방문해 한국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와 서울대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수집해오고 기증받은 자료들은 본교 도서관, 예술도서관, 박물관 등지에서 잘 보관, 소장되고 있습니다.

본교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프로그램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최김승자 교수의 총지휘하에 매우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매년 50여명의 학생들이 4단계 과정의 한국어 수업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예일대는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중국, 일본, 한국 학생들을 포함해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름 방학기간을 이용해 매해 12명 정도의 학부생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서강대에서 계절학기 수강을 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떤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예일대 역사학 분야에서 한국의 현대사를 제대로 재정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한국 역사학자들이 예일대 교수로 임용되게 되면 그들이 차차 한국어 연구, 그리고 제반 한국어 영역에 대한 연구 범위나 커리큘럼, 프로그램 신설 등을 통해 저변을 확장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경희대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대학과 예일대가 긴밀하고 우호적 관계를 맺어나가고 상호 협조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이제 제 개인적인 이야기로 제 강연에 가름할까 합니다. 저는 1974년 처음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일본 시모노세키선 3등석 칸에 가까스로 몸을 싣고 부산항에 도착한 게 74년 11월입니다. 한국어도 전혀 구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서울시내 어느 허름한 여관에 방을 잡고 넓은 도시를 신기한 눈으로 돌아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은 이제 매우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제가 본 모습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제 머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느 여인이 한강에서 빨래를 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또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으로 왕 못지않은 매우 푸짐한 식사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던 아이들의 모습도 떠오르고 박정희 대통령을 경호하기 위해 군인들이 정렬한 모습들도 기억납니다. 제 오랜 기억을 들춰내고 한국학 연구에 대한 강연을 만인 앞에 펼칠 수 있는 귀한 자리를 만들어준 경희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제 강연은 여기서 마치고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북미 대학들의 한국어 연구에 대한 궁금한 점은 무엇이든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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