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의 再발견”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3년 7월 11일

“주자학의 再발견”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대한민국 사회에는 주자학에 대한 광범위한 고정관념이 존재하고 있다. 즉 주자학은 구시대의 사유 체계로서 서양 문화와 제도 유입을 바탕으로 이룩한 현대 한국에서는 더 이상 재고할 가치가 없는 이론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20세기 전반기에 겪었던 일제 강점이라는 비극적 경험 때문에 주자학을 이러한 역사적 질곡의 주요 원인으로 인식하며 더더욱 멀리 여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중국이나 일본의 유학자들 이상의 철학적 경지를 이루었던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와 같은 분들의 위대한 사상조차도 무지와 무관심 속에 역사 속으로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말도 들었다. “조선의 양반들은 책을 읽는 데에만 시간을 소일했을 뿐이고 실질적으로 사회에 기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양반들의 이러한 실수 때문에 한국은 일본에 비해 근대화에 너무 뒤처지게 되었고 서양 과학이 한참 후에 소개되었을 때에야, 즉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를 통해서나 실질적 근대국가의 성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록 조선의 양반 계층이 당대의 조류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들의 지배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자학 사상을 이용하며 서양 문명을 배척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표현은 전체적으로 볼 때 큰 오해와 편견을 낳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학자들이 조선 침탈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지어낸 “한국인들이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뒤처졌기에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해주었다”는 신화와 동일한 맥락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19세기 일본 지식인에 관한 역사를 연구하며 깨달았던 점은 당시 일본의 지성인들도 조선의 교육과 문화적 전통, 그리고 조선 지식인들의 높은 수준을 폭넓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신화가 지금까지도 무시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바로 현대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동경은 한국이 지속적 현대화를 통해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모습들을 다 버려야 한다는 믿음을 근거로 만들어진다. 이 믿음은 특히 한국의 40대와 50대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내가 주자학을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고 제안하면 그들은 그 무슨 구시대적 발상이냐고 오히려 나를 나무라곤 한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이 세계의 그 어느 지역보다 유독 한국과 일본 중국에 급속히 도입 정착되고 이 세 나라가 성공적 현대화의 길로 접어든 경이로운 역사적 사실은 어떤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까? 그것은 서양의 물질문명을 충분히 포용하고도 남는 주자학 또는 유학이라는 광대하고 심오한 정신문명이 전통문화의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 이 세 나라는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의 대열에 들어서 있다. 이는 주자학과 서양 과학기술이 성공적으로 접목되었기에 가능하다.

현대화에 대한 우리 한국인들의 믿음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러한 전제는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성공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파고들어가 보면, 이를 위해서는 전무후무한 미래 시대의 새 성장 동력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더구나 새로운 글로벌 사회를 선도할 사상 체계의 시작점이 한국의 전통 사상으로부터 조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도 일축한다.

중국 남송시대의 주희(朱熹)는 그의 아이디어가 단순히 공자의 도덕철학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주자학은 도덕철학과 함께 격물(格物), 즉 사물의 근본을 파고드는 학문이었고 따라서 주자학은 형이상학의 학문으로서 과학과 정치를 다루고 있었다. 따라서 주자학은 한국 과학 발전을 막았던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과학기술의 토대 역할을 하였다. 조선 초기에 법전을 바탕으로 한 법치주의의 성립과 더불어 과학기술 장려 및 한글 창제와 같은 눈부신 문화 발전을 가져온 것은 어쩌면 주자학을 새로 국시로 도입한 효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주자학은 19세기에 들어왔던 서양의 학문과 문물을 배척했고, 이것은 한국사의 비극이며 오늘날 이것까지 긍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것을 근거로 한국이 조선시대에 쌓아올렸던 모든 주자학의 학문, 한국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학문을 부정하고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린다면 그 손해는 너무나 막대하다. 한국인이 주자학의 전통을 쓸모없는 것이라 여긴다면 조선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지적인 전통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은 오로지 춘향전이나 홍길동전 등 극소수 간략한 작품만이 남게 된다. 엄청난 양의 유서 깊은 조선의 지혜는 오늘날의 정부와 기술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이것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인이 조선의 전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미래에도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펼치는 일에 실패할 수도 있다.

링크

One response to ““주자학의 再발견” (조선일보)

  1. minsu July 11, 2013 at 8:25 am

    오늘 조선일보에서 읽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감동하여 글을 남기긴 처음이네요..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한국이어서 그런지 많은 부분에서 배움이 있었습니다. 너무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이 기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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