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틈에 낀 ‘새우 콤플렉스’ 이제 그만 버려라” 중앙일보 2013년 8월 25일 (서평)

  “고래 틈에 낀 ‘새우 콤플렉스’ 이제 그만 버려라”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서평)

중앙일보 2013년 8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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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이 끝나던 1953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7달러, 소말리아 수준이었다.”

한국의 기적을 논할 때면 으레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한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수치이자 한국인들이 자랑스레 인용하는 팩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뽐내는 게 현명한가. 이는 큰 잘못이라고 고개를 가로젓는 푸른 눈의 외국인 학자가 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ㆍ49ㆍ사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다. 그가 지적하는 잘못은 분명하다. 찬란한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무시다. “과거 한국이 소말리아와 비슷했다고 강조하면 문화 수준까지 같았을 거란 오해를 부른다”는 것이다. 이런 추정은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국 전반을 깔봄으로써 한국인, 한국 제품을 믿지 못하는 신뢰성의 위기를 부른다는 것이다. 한국 제품, 한국 기업, 한국 경제가 대접 못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기원이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국의 과거를 보고, 미래를 알아 주는 동아시아 전문가이자 글로벌한 인문학자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한·중·일 3개국 언어에 능통하다. 미 예일대에서 중국 문학을 전공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에서 석사를 땄다. 그 후 미 하버드대로 진학, 중ㆍ일 간 비교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학문적 동기에서 비롯됐다. “중국·일본 문학을 연구하다 보니 중간에 낀 한국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서울대로 와 1년간 한국어를 공부한다. 그때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느꼈다고 한다. 한국 특유의 ‘문화적 유연성’을. “뭐가 될지 모르지만 한국 문화엔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한국 문화에 심취해 있다.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법하다.

6년째 한국에 체류 중인 그는 누구보다 한국 문화 예찬론자다. 한국의 전통을 연구해 온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한국은 뛰어난 문화적 전통을 가진 국가로 이미 선진국”이라는 거다. 이 때문에 올바른 자기정체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그에 걸맞은 전략을 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런 인식에 터잡아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최근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작은 사진)이란 책을 냈다.

지난 22일 이뤄진 인터뷰와 책 내용을 토대로 그의 진단과 조언을 소개한다.

한국을 큰 격차로 능가하는 선진국 없어

한국은 각종 지표와 국가 브랜드 이미지 등으로 볼 때 이미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한국인은 높은 평가에 익숙지 못하다. ‘국제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하면 당황한다. 여기서 열심히 안 하면 빈국으로 떨어질 거라고 우려한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두 세대 만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유일한 국가다. 짧은 기간 탓에 한국은 자신의 위상을 제대로 인식할 여유가 없었다. 아직 저개발국가의 정체성에서 못 벗어난 셈이다.

특히 한국인은 지정학적 상황으로 자신들을 ‘고래 사이에 낀 새우’로 인식한다. 불운하게도 주변국들이 세계 최강인 중국·일본·러시아다. 영토ㆍ인구 등을 비교해 볼 때 자연스레 자신을 약소국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선진국’의 개념조차 명확지 않다. 때로는 미국을 뜻하거나 유럽·일본을 포함하기도 한다. 선진국이란 한국과 현격한 격차가 있는 유토피아라는 인식도 있다. 하나 큰 격차로 한국을 능가하는 선진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인이 잘 인정하진 않지만 이미 한국은 모든 면에서 수준 높은 국가다.

약소국이란 잘못된 인식은 중대한 문제점을 낳는다. 우선 선진국에 걸맞은 책임까지 외면하게 된다. 둘째, 선진국형 국가 전략이 아닌 개발도상국에 맞는 정책을 택함으로써 불편한 족쇄를 차게 된다. 셋째는 모범국가로 거듭나는 기회를 잃게 돼 옛 식민지, 한국전의 전장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차 버리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제2, 제3의 한국을 꿈꿨던 국가들을 실망시킬 위험이 있다.

자기비하는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준다. 한국산 제품, 한국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쳐주지 않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국 수출 규모는 5560억 달러(약 625조원)다. 그런데 한국이 국제적으로 당하는 디스카운트 비율은 평균 9.3%. 수출액 기준으로 58조원에 해당한다. 만약 제대로 대접받아 58조원을 더 받았다고 치자. 이 돈을 대외원조에 썼다면 한국은 지구촌 최대의 구세주가 됐을 거다.

이런 수모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한국은 인구 2000만 명이 넘는 나라 가운데 제국주의를 채택하지 않고도 선진국이 된 최초의 국가”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더불어 갖가지 문화적 유산을 재발견해 이를 널리 자랑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국인 품안에 있는 보물 찾아야

한국과 관련해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즐겨 하는 비유가 있다. 어떤 이가 친구에게 보석을 받았다. 한데 친구는 잘 숨겨 준다고 그가 잠든 사이, 보석을 옷 안쪽에 넣고 바느질로 기워 뒀다. 그러곤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났는데 겨를이 없어 보석 이야기를 못했다. 평생 가난했던 주인공은 옷 속 보석을 모른 채 살았다. 오랜 세월 후 친구를 만난 뒤에야 자신이 늘 보석을 품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법화경』 속 무가보주(無價寶珠) 이야기다. 그는 외친다. “한국인 안에 보물이 있는데 그걸 왜 찾지 않느냐”고.

그가 먼저 꼽는 자랑스러운 전통은 ‘선비 정신’이다. 일본은 사무라이를 자신들에 대한 전략적 이미지로 삼아 발전시켰다. 이런 노력은 외국인들이 일본에 친근감을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선비 정신이야말로 사무라이 못지않게 한국의 정체성을 알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할 걸로 확신한다. 우선 선비 정신은 한국 역사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또 개인적 차원에서 도덕적 삶과 학문적 성취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행동으로 나타난다.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조화를 이루려 한다. 또 선비 정신은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특징을 지녔다. 그는 “중국이 한류(韓流)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유교 전통과 사대부 사상을 재발견한다면 이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으려 할지 모른다”고 예상했다. 한국이 선비 정신을 조속히 자기정체성으로 삼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파생된 교육열은 한국의 기적을 일궈 낸 원동력이었다. 1950년대 국민소득은 비슷했을지 모르지만 한국과 소말리아는 완전히 달랐다. 이 무렵 기아 상태였던 한국에선 사람들이 구호식량을 타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했지만 그 줄에는 화학과 기계공학을 공부한 전문가도, 국가 전략에 높은 식견이 있는 지식인도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통치 시스템도 내세울 만한 전통이다. 한국은 국내 정책과 제도에서 선진적인 나라였다. 특히 500여 년간의 조선시대 때 가장 발전적 형태를 보였다. 어떤 정부도 그토록 오래동안 안정적이지 못했다. 이런 안정 속에서 자라난 지적 전통이 한국의 기적을 낳은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이야기할 때 이 부분이 무시되기 일쑤다. 한국 역사에 살아 있는 민주주의 전통도 간과되는 것 중 하나다. 최고 통치자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다. 고려 성종 때 최승로는 절대 권력을 허용하지 않는 유교적 이념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도록 왕에게 건의한다. 파격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성종은 수용했다. 특출난 성군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단 당시 분위기 때문으로 보는 게 보다 객관적이다. 고구려 때에는 28명의 왕 중 포악한 군주 3명이 신하에 의해 축출되거나 죽임을 당했다. 오래 전부터 정치의 핵심 목표가 백성의 안위에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근본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역관·예학도 재조명해야 할 덕목

구체적인 풍습과 제도 중에서도 자랑스러운 게 많다. 여러 사람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사랑방이 대표적이다. 문학이나 예술 분야의 사람과 행정관료, 학자들이 교류하는 장소였다. 이를 통해 창의적 경영과 행정이 가능했다.

역관제도도 빼어난 전통이다. 17~18세기 조선은 폐쇄된 나라라는 인상을 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조선에는 중국과 일본보다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통역 전문가가 훨씬 많았다. 중국어·일본어는 물론 몽골어와 만주어 전문가도 있었다. 국가 주도로 역관이란 통역 전문가를 양성했는데 이때 회화ㆍ작문 능력까지 갖추도록 교육했다. 문법과 독해만 강조하는 지금보다 나았다.

자율적 규범을 강조하는 예학은 작금의 네트워크 시대에 재조명해야 할 덕목이다. 악성 댓글과 신상털기가 난무하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도덕적 행동을 권장하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예학이 바로 이를 가르치는 학문이다. 이 밖에 옛 골목과 전통시장, 추석, 정겨운 농촌 등도 한국이 내세워야 할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거론됐다.

그렇다면 한국의 참다운 모습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1000개의 거울’로 설명한다. 큰 잔디밭에 1000개의 거울이 있다고 하자. 거울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면 별 효력을 낼 수 없다. 그러나 한 지점으로 빛을 모으면 강철도 녹인다. 한국인들의 인식을 일치시킨다면 큰 힘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야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이유로 더 값을 받을 수 있는 ‘코리아 프리미엄’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nam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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