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창조’가 필요한 곳은 외교 분야다”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3년10월23일

정작 ‘창조’가 필요한 곳은 외교 분야다”

임마누엘  폐스트라이쉬

 링크

한국에서는 요즈음 ‘창조경제’라는 말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창조경제란 개념은 창의적 접근법으로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잠재력을 이끌어내자는 것으로, 기업인의 상상력이 더 강조되고 문화 콘텐츠의 경제적 가치가 특히 빈번하게 거론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커지고 있는 경제적, 문화적 글로벌 영향력을 고려할 때, 한국에 더욱 중요한 과제는 바로 ‘창조 외교’이다. 창조 외교란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민감한 역사 문제 등에 대하여 창의적인 접근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창조 외교를 모색하면서 명심해야 할 말이 있다. 그것은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의 명언인 “문제를 해결하지 말자. 새로운 기회를 찾자”이다.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개별적 문제 해결에 집중하다 보면 결국 안 되는 일에 집착하게 되고 심각한 근시안적 사고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 해결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지평을 열고 포괄성이 있는 비전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

창조 외교는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지만, 난 특히 한국과 동북아 지역 간의 관계에서 큰 외교적 전환,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고 싶다.

일본 관계를 보면, 한국은 외교 갈등의 굴레에 갇혀서 일본이 먼저 외교적 움직임을 보이면 그때에야 대응 방식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양상을 보인다. 일본 정치인이 태평양전쟁 때의 일본 역할을 긍정하거나 다시 군국화하자는 입장을 보이면 그제야 한국은 대응한다. 그 굴레를 이젠 벗어나야 할 때다. 일본과 한국, 혹은 중국과 이뤄진 관계의 첫걸음은 긍정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하고, 한국은 그 관계를 먼저 리드하여 그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주도해나가야 한다. 한국은 일본을 비판하면서 일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는지를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

둘째로, 역사 문제에 발목 잡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국은 오직 한국인만이 태평양전쟁의 희생양이라고 보는 관점을 버려야 한다. 비록 일본이 인종차별 정책을 시행한 분명한 침략자였지만, 당시 그에 상응하는 많은 일본인이 일본 군국주의 때문에 고통받고 죽어갔다는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인은 일제 식민 시대 당시 겪었던 억압을 계속 기억하고 있지만 동시에 한국인들은 엄청난 외교적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일본 내에도 많은 일본인이 오늘날 일본의 우익 집단과 우익 정치 세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런 일본인들은 일본 사회 속에서 보통 고립되어 있다. 만일 한국이 계속 일본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만 한다면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일본인들조차 한국을 동반자로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태평양전쟁에 관한 대화 내용에 한국인 희생자와 함께 일본인 희생자들까지도 포함한다면, 한국은 한국에 우호적인 일본인들과 손을 잡고 미래의 희망과 새 역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일 관계는 새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그것으로 게임은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배우지 못한 역사에 대해 한국이 분명한 방식으로 논의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일본 전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고 일본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이면 많은 일본인은 한국에 끌릴 것이다.

예를 들면, 1930~40년대 일본 군국주의에 희생된 수많은 일본 지식인, 공무원, 일반 시민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는 위와 같은 영웅들에 대한 기념비조차 없다. 만일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에 희생된 한국인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일본인 희생자들을 위한 기념비 건립을 추진한다면 이것은 엄청난 영향이 있을 것이다. 결국은 희망 있는 평화적 일본의 모습은 한국 사람들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일본 사람들한테 전달해야 한다.

한국은 또한 양국 국민이 1930~40년대에 겪은 고통을 보여주면서 당시 일어난 일을 진실되게 보여주는 아시아 역사 박물관을 건립할 수도 있다. 그 박물관에서 전시물을 일본어로 설명한다면 진실을 찾는 소외된 일본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킬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식민 시대를 배경으로 대하드라마도 만들 수 있다. 그 드라마는 30년대 40년대 일본 및 한국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싸운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할 것이며, 그 가운데 한국인하고 일본인이 협력해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장면이 많을 것이다. 그 드라마에서 친하게 협력해서 더 나은 동북아를 위해서 노력하는 일본인과 한국인의 모습을 극적으로 그려내고, 만약에 일본에서도 많은 시청자가 생기면 한·일 관계 개선에 큰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일본의 문제는 냉정하게 멀리 내다볼 필요가 있다. 일본을 비판하면 우리는 기분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 비판하는 말의 대상은 결국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다. 오히려 일본 국내에 지한파(知韓派)를 육성하는 게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고 새로운 일본으로 개편할 가능성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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