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잠깐 들렀다가…” (여성조선 2013년 10월)

“친구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잠깐 들렀다가…”

여성조선

2013년 10월

 

인터뷰 전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교수에게 혹시 단골 찻집이 있냐고 물었다. 잘 아는 곳이 있다며 장충동의 한 찻집을 추천했다. 전통찻집 한가운데 앉아 있는 파란 눈의 꺽다리 교수가 이질적이면서도 잘 어울렸다. 기꺼이 주말을 내준 그와 그렇게 처음 만났다.

페스트라이시 교수는 올해로 한국 생활 18년째에 접어든 ‘베테랑 외국인’이다. 예일대, 도쿄대, 하버드대를 거쳐 현재 경희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있다. 그가 얼마 전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냈다. 한국말로 된 책으로는 벌써 세 번째다. 지난 두 권의 책과 차이가 있다면, 지정학적 위치에서 현재의 한국을 적나라하게 ‘후벼팠다’는 것. 애정이 있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 외국인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진실 말이다. 그와 유창한 한국말로 한 시간여 대화를 나눴다.

박지원 소설 “스토리텔링이 있어 좋아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교수의 한국 이름은 이만열이다. 소리 내어 읽어보면 알겠지만, 영어 이름과 가장 유사한 발음의 이름이다. 꽤 오랜 기간 한국에 발붙이고 살면서 그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에 정이 들었다.

“이번 책은 기존에 낸 두 권의 책과는 목적이 좀 달라요. 전에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내용의 책을 냈다면, 이번엔 덜 대중적일지도 몰라요. 한국인 스스로 자국의 단점을 깨닫고 가능성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든 책이에요.”

그가 기존에 쓴 책들을 쭉 펼쳐 보였다. 그중 유일하게 영어로 번역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연암 박지원 소설을 번역했어요. 18세기 한국 고전문학 중 가장 외국인이 접근하기 쉬운 소설이라 생각했어요. 일단 스토리텔링이 있거든요. 다른 고전소설은 단조로운 면이 있는데, 박지원 소설은 등장인물도 다채롭고 스토리가 재미있어요. 당시로서는 드물게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도 흥미롭고요.”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예덕선생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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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 교수가 아시아의 고전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일대 재학 시절, 그는 중문학을 전공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내에서 중국 문화를 전공한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앞으로 중국이 크게 성장할 것이란 얘기는 있었죠.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의 안목은 정확했다. 중국의 입지는 점차 커졌고, 심지어 그 어려운 한자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고.

“표음과 표상, 두 개가 합쳐져 의미를 더하는 것에서 한자의 매력을 느꼈어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는데, 그런 점에서도 (복잡한 글자 자체가) 흥미로웠죠.”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도쿄대에서 비교문화학 석사 과정을 밟는 동안, 그는 아시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그때가 1987년이에요. 일본이 막 경제적으로 부상할 때였죠. 미국 언론에서도 많이 주목했어요. 일본은 그전에 유학하던 대만보다 훨씬 깨끗하고 질서정연했어요. 프랑스나 독일을 떠올릴 만큼 문화수준도 높았고요.”

중국과 일본을 거쳐 그다음으로 눈을 돌린 나라가 한국이다. 1991년 도쿄대 석사 시절, 친구 결혼식 때문에 잠깐 들른 게 한국과 맺은 첫 인연이다.

“사실 그때만 해도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깨끗했어요. (당시 한국은) 공기도 안 좋고 거리는 지저분했어요. 김포공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 창밖에는 쓰레기나 공장만 눈에 띄었죠. 별로 좋은 인상을 못 받았어요. 다만 결혼식 때 만난 한국인들이 정말 친절했던 것만은 기억나요. 지금은 오히려 한국이 (일본보다) 더 깨끗하죠.”

아시아 3국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그가 느낀 한국만의 색깔은 무엇일까.

“주로 17~18세기 조선시대의 작품을 공부했어요. 일본, 중국과 비교하면 좀 더 순수한 유교사상이 (작품에) 배어 있어요. 주로 도덕이나 윤리에 관한 문제를 많이 다루고요. 불교적 요소는 의외로 많지 않아요. ‘불교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일본에 비하면 말이죠.”

유교사상, 선비정신은 신간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한 부분이다. 국가 정체성이 모호한 한국이 ‘선비정신’을 채택하는 건 어떨지 조심스레 제안한다.

“일본의 ‘사무라이’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 다 알아요. 전 세계 어린이들이 사무라이 게임을 하며 놉니다. 심지어 끔찍한 역사를 연상시키는 ‘닌자’조차 긍정적인 개념으로 둔갑시켜 전 세계에 퍼뜨렸어요. 한국도 하루빨리 한국이란 나라를 해외에 알릴 독자적인 개념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을 알리려는 이유 한국이 아쉬운 이유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페스트라이시 교수의 신간은 뭇매를 각오하고 쓴 글이다. 한국을 제대로 질타했는데, 그 이유는 안타까움이 컸기 때문이란다. 한국이 충분한 역량을 가진 나라지만 제대로 국가 브랜드화를 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의 미국 지인들 중에는 아직도 한국이 어렵고 못사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여전히 그렇다”며 돌직구를 날린다.

“1970년부터 198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M.A.S.H>라는 드라마가 있어요. 그 드라마에 한국 시골에 파견된 의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국이) 아주 못사는 나라로 묘사되죠.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6개월 전에 삼촌을 만났는데 “한국 생활이 힘들지 않느냐”며 걱정하더라고요. 서울은 웬만한 미국 도시보다도 살기 좋은데 말이죠. 대다수의 미국인은 삼성이나 현대가 막연히 아시아와 관련된 그룹이라고 알지, 한국 회사란 건 전혀 몰라요. 심각합니다.”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우리만의 축제였던 걸까. 살림살이는 나아졌지만 국가 브랜드 홍보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미국에 코리아타운이 있지만 그곳에서 외국인이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는 거의 없어요. 갈비나 김치를 파는 식당은 있지만 그 밖의 문화를 체험할 곳은 없죠. 한국인 스스로 ‘설마 미국인들이 우리 문화에 관심 있겠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소개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죠. 씁쓸하지만 현실이에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걱정하는 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박지원 소설을 더 많이 번역하고 싶지만, 박지원 외의 문인들의 작품도 번역하고 싶지만, 정작 한국 출판사 중 선뜻 나서는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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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글도 조금 번역해놓은 게 있어요. 기회가 되면 더 많이 (번역)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고전문학을 번역하는 게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데) 중요하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이번 책을 썼어요.”

청국장 좋아하는 남편 국악 전공한 한국인 아내

페스트라이시 교수가 이만큼 한국에 애정을 갖게 된 건 한국인 아내를 뒀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6년 처음 만난 아내와는 이듬해 결혼에 골인했다. 국악 전공자인 아내는 현재 한국과 일본의 불교미술 비교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만났어요.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다보니 도움 받는 일도 많았죠. 지금은 아이들 키우느라 예전만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가 않아요.”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아이들을 위해 집 안에 TV를 없앴다.

“아이가 다섯 살 때까지는 TV가 있었어요. 근데 저랑 아내가 집을 비울 때 항상 TV 앞에 앉아 있어서 치웠어요. 컴퓨터 하는 시간을 제한하고 있지만, 이것도 문제예요. 가능하면 책을 많이 읽게 해요.”

물론 책 읽기를 강요하진 않는다.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요. 엄마, 아빠가 항상 책을 읽고 있으니까 아이들도 그게 당연하다고 느껴요. 가장 중요한 건 설명하는 것이에요. 정치든 사회든 교통이든 사람이든 자연이든 사물이든, 그것이 어떤 원리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설명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책을 무조건 많이 읽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스스로 사고하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해요. 바보같이 읽고만 있는 건 아무 소용이 없죠.”

한 번 더 따져보는 ‘문제의식’은 꾸준히 자녀와 대화하려는 부모의 노력에서 만들어진다. 밥상에서도 마찬가지. 그러고 보니 한국생활 18년 차 외국인의 밥상 메뉴가 궁금하다.

“저는 채식주의자예요. 그래서 불고기 대신 보리밥이나 비빔밥, 청국장과 순두부를 좋아해요. 청국장 냄새가 싫지 않느냐고요? 천만에요. 그것만 있으면 한 공기 뚝딱 비웁니다. 거기에 다양한 나물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고요.”

마지막으로 추석에 대해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 최대의 명절인 ‘추석’까지 칼날을 들이댄다.

“한국인들은 추석이 되면 제사 지내고 음식 만들기 바쁘지, 왜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준비하는지에 대한 의식은 없는 것 같아요. 추석을 왜 지내나요? 조상에게 감사하기 위해서라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이들과 얘기하고 사진도 꺼내보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조상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면서) 정작 조상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추석을 좀 더 뜻깊은 행사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외국인들도 참여하는 과정에서 더 이해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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