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해법요? 전통문화를 공부하세요” (한국경제 매거진)

한국경제 매거진 

2014년 2월 

 

[THE INTERVIEW]

“창조경제 해법요? 전통문화를 공부하세요”

 

“한국이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의 답은 이미 한국인이 갖고 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우수한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해외 탐방에 나설 일이 아니다. 그저 조선시대의 실록과 같은 역사적 기록물을 뒤지는 것만으로도 미래를 위한 실마리를 찾아내는 데 충분하다. 이방인의 눈으로 ‘한국 문화의 자부심’을 말하는 그로부터 ‘한국의 창조경제’를 위한 조언을 들었다.

pastreich

인터뷰를 위해 서울 덕수궁 근처의 한식당에 자리를 잡으려던 찰나,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앳된 학생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더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에게 말을 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는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다. “혹시 일본어도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세 나라 중 가장 자신 있는 언어”라고 답한다. 동아시아 3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미국인이라니. 어딘지 생경한 듯하면서도 또 그리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인다. 그의 첫인상 역시 비슷했다. 잘 차려입은 슈트에 빨간색 캡모자를 눌러쓰고, 훤칠한 키로 성큼성큼 걸어와 “안녕하세요” 시원스레 인사하며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모습. 서글서글하면서도 거침없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진중한,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을 어색하지 않게 어우르고 있었다.

동아시아 문명의 석학, 한국에 말을 걸다
그가 한·중·일 언어에 능통한 것은 사실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다. 그는 동아시아 문명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석학이다. 미국 예일대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1987)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비교문화학 석사과정(1992)을 공부했다. 미국으로 돌아가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 학위(1997)를 받았다. 말하자면 그는 ‘중국과 일본, 한국의 전통문화’를 모두 공부한 학자인 셈이다.

“중국과 일본을 공부하다 보니 한국도 알아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1995년 서울대 중문과 대학원 연구원으로 와서 한국의 한문소설을 많이 공부했어요.” 그는 또 하나,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의 적극적인 성격에 끌렸다고 말한다.

“중국과 일본 문화도 재미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문화 교류에 가장 적극적이었어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도 저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고 싶다고 자문을 구하거나, 연구를 제안한 건 한국인이 유독 많았죠. 그러다 보니 한국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늘 ‘제가 한국을 선택한 게 아니라 한국이 저를 선택했다’고 말하거든요.”

그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터를 잡은 게 지난 2007년이니 벌써 한국 생활 7년째다. 그리고 그 7년 동안 그는 ‘한국의 진가(?)’를 알리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2007년에는 조선 최초의 소설가 연암 박지원의 단편소설을 영어로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오랜 한국생활에 대한 소회를 풀어낸 에세이집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를 시작으로 2012년에는 노암 촘스키 등 세계적인 석학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한국의 미래에 대한 조언을 담은 ‘세계 석학들 한국 미래를 말하다’를 엮어내기도 했다. 가장 최근인 2013년에는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은 전통문화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화두를 던졌다. 그러니 그는, 어쩌면 한국인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더 많이 연구하고 깊이 이해하는 ‘이방인’인 셈이다.

창조경제? 한국은 이미 ‘창의적인 민족’
“한국은 선진국에서 좋은 것들을 배워 와서 더욱 발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은 이미 창의적인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기회의 땅’입니다. 하버드대를 졸업해 의사로 일을 하던 제 지인 중 한 명도 얼마 전부터 삼성전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그 사람이 냉정하게 따져보고 ‘기회를 찾아’ 한국의 기업을 선택한 겁니다. 4~5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죠. 그런데 정작 한국인들만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궁금하다. 한·중·일 세 나라의 전통문화를 공부한 석학조차 한국 문화를 이토록 높게 평가하는데, 그의 말마따나 ‘왜 우리만 그걸 모르고 있는 걸까’. “재미있는 질문이다”라며 운을 뗀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답한다.

“삼성뿐 아니라 지금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를 무대로 대단한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더 좋은 경영을 배우기 위해 해외로 나가지만, 해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우수한 경영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한국을 공부할 수 없는 건, 누구도 한국의 대단한 노하우를 영어로 번역하거나 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한 노하우를 가졌는지 확인할 기회가 없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그가 한참 골똘히 생각하더니, 이내 다시 답변을 이어간다.

“사실 한국에서도 요즘은 창조경제가 화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미 한국이 창조경제의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문화만 봐도 그 사례는 무궁무진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만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이런 시스템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거든요. 이런 기록관리 시스템을 한국의 행정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데이터 관리에 적용한다면 그게 바로 창조경제가 아닐까요.”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많다. 난개발로 인해 복잡하고 특색 없는 대한민국의 도시. 따라서 이 같은 도시 환경을 바꿔보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이름하여 생태도시다. 한국의 공무원들과 연구원들은 이 생태도시 기법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 같은 나라에 해외 순방을 나선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한양은 완벽한 생태도시였다는 것이 이에 대한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답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의력 넘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 대표적으로 예일대의 기숙사는 유명 교수들과 학생이 식당에서 자유롭게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며 토론 문화를 키워간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대학에선 이 같은 문화가 사라졌지만, 조선시대 성균관만 하더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학자들이 제자를 양성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해 왔다는 것이다.

전통문화+상상력=무한한 가능성! 
실제로 최근에는 이 같은 그의 주장에 흥미를 보이는 기업들로부터 특강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도 현대자동차와 한화그룹 같은 기업들에 ‘창조경제와 전통문화’를 주제로 강연을 다니고 정부나 학계에서 주최하는 각종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 또한 많아졌다고 말한다.

“기업들이 저를 찾는 이유는 아마 창조경제에 대한 영감을 받기 위해서일 겁니다. 그런데 한국엔 창의적인 인재들이 너무 많아요. 다만, 그 창의적인 인재들을 기업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인재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전통문화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는 게 저의 대답인 거죠.”

‘전통문화에서 힌트를 얻어라.’ 조금은 두루뭉술하고 일반적인 대답에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요구했더니 “그걸 왜 외국인에게 물어보냐”며 껄껄 웃는다. 동아시아의 문화를 공부한 학자로서 자신은 그저 화두를 던지고 힌트를 줄 뿐, 결국 ‘한국의 미래를 위한 답’을 찾는 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패션이나 대중음악 등 문화적 트렌드의 중심지는 도쿄였다면 지금은 한국의 신사동쯤에서 시작된 한류가 그 중심이니까요. 다만 학자의 눈으로 보자면, 이제부터 중요한 건 그 가능성을 얼마나 오래 지속할 것인가 입니다. 문화적 콘텐츠의 힘이 필요한 건 그래서죠. 전통문화를 그대로 갖고 오라는 게 아니라 그걸 얼마나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창의적으로 적용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는 현대문화와 고전 작품 속에서나 어울리는 전통문화가 어울리기나 할까.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그 속에서 우리조차 깨닫지 못한 잠재력을 말하는 외국인 교수의 조언에 지금 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이는 이유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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