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정치’에서 ‘습관의 정치’로 (중앙일보)

중앙일보

정책의 정치’에서 ‘습관의 정치’로

2014년 8월 9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한국 정치 시스템의 변화를 위한 대대적인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정부기관 개편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이들이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뭔가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듯이 국민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 의심한다.

전방위로 펼쳐지는 정부의 신속한 조치는 일시적인 만족을 가져다줄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장관 교체나 정부조직 개편, 또는 세월호 사태에 직접 관련된 몇 명을 처벌한다고 해서 앞으로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이 겪는 문제는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탐욕스러운 기업과 자신의 잇속만 챙기려는 정부 관리 간의 불투명한 거래 관행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친 부패 문화의 한 단면일 뿐이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정부 불신이 심화된다.

이 문제는 어떤 정책도, 어떤 정치인도 풀기 어렵다.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일반 국민들은 진정한 지도자를 원하기보다는 기적을 행할 ‘마술사’를 원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도자란 우리가 선출하고 몇 년간 우리를 대신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의 기대에 어긋날 경우 쫓아내면 그만인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지도자란 바로 우리의 지지를 바탕으로 우리의 이상을 실현하는 자들이다. 그런 지도자가 우리를 도울 순 있겠지만 문제 해결의 주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지도자에게서 어떤 기적을 바라고 표만 던지면 변화가 오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번지르르한 법안이 세상을 바꾸리라는 환상도 떨쳐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습관의 정치’다. 문화란 정책을 통해 바뀌기보다 각 개인이 자신의 습관을 바꿈으로써 서서히 바뀐다. 일단 위기를 넘기고 법안만 통과시키면 된다고 스스로를 기만할 게 아니라 사회 문제가 각 개인의 일상적인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행동이 보다 더 투명해지고, 각자 속한 직장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할 때만이 사회 전반에 정책적 차원을 능가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그렇게만 되면 이기적인 무리들도 태도를 바꾸도록 압박이 가해질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태도가 건전해지면 정부도 예전의 활력을 되찾고 잘못된 시스템도 제자리를 찾는 법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선 정치인들이 전혀 일관성 없는 공약을 남발한다. 그들은 TV에 출연할 때는 선량한 군자인 양하지만 이내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돈 많고 힘 있는 자들과 만나러 달려간다. 정치인들은 학부모들에게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열을 올리지만 몇 시간 뒤엔 엘리트 집단을 만나 부동산 투기와 자녀의 해외유학 문제를 이야기한다.

정치를 바로잡으려면 우리 주변에 올곧은 정치인들이 있을 때만 해결 가능하다. 항상 대중교통만 고집하고, 자신과 가족에게 득이 되는 거래를 거부하고, 연설할 때나 CEO를 만날 때나 일관되게 서민을 위해 이야기할 때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나는 가끔 서울에서 열리는 환경 기술 세미나에 참석한다. 많은 경우 고급 호텔에서 열리고 냉방은 춥게 느껴질 만큼 빵빵하게 튼다. 참석자 대부분은 기사가 모는 고급차를 타고 온다. 만찬장에는 먹을 수 없을 만큼 푸짐한 음식이 나오고, 그 절반 이상이 음식 쓰레기로 버려진다. 이처럼 환경을 사랑한다는 이들조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환경을 해치는 모순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습관의 정치’는 생소한 개념이 아니라 한국의 오랜 전통이다. 조선시대가 500년을 지탱한 것은 이런 형태의 정치를 포용한 놀라운 문화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중용(中庸)에 “군자란 홀로 있을 때도 조심스레 행동한다(君子愼其獨)”란 구절도 있지 않은가. 건전한 정치의 시작은 ‘사회 전체를 위해 과연 무엇이 옳은가’라는 끝없는 고민에서 시작된다. 최고의 지도자란 이처럼 올바른 습관이 체질화돼 심지어 홀로 있을 때도 쓸데없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요란한 정책적 변화보다 우리의 일상 습관을 바꿈으로써 사회를 바꿀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자기 습관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의 비폭력 저항 운동, 스스로 물레를 돌리고 손수 옷감을 짜는 카디 운동과 스와데시 운동도 그렇게 습관에서 시작됐다. 만일 우리가 보다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면 주변 사람들부터 보다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투명한 정부를 원한다면 우리의 일상생활부터 투명해져야 한다. 정치에 신념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습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세상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려면 하루하루 우리의 습관부터 ‘작은 혁신’을 이어가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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