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상품화는 이제 그만” (중앙일보 2014년 8월 30일)

중앙일보

“여성의 상품화는 이제 그만”

2014년 8월 30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링크 

 

한국의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의 모습은 지난 5년간 줄곧 왜곡돼 많은 이들의 우려를 자아낸다. 잡지·입간판·포스터·지하철, 그리고 텔레비전 광고에는 한결같이 고혹적인 포즈를 취한 여성들로 넘쳐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가위 ‘소프트 포르노’로 여겨졌을 법한 모습들이다. 간혹 남성 모델을 내세울 때도 있지만 특히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활용하려는 광고업계의 시도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들은 인간의 은밀한 욕구에 호소해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인간의 타고난 매력을 저속하게 변질시켜 즉각적인 만족과 즉흥적인 소비를 이끌어내는 데 여념이 없다. 바야흐로 여성의 상품화 시대다.
여성을 상품화하려는 전략은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어릴수록 각종 매체가 던지는 은밀한 메시지에 현혹돼 ‘육체적 매력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이런 숨은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상업화된 성(性)’이야말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사회적 인정을 받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한다. 요즘 취업을 위한 면접에서 업무수행 능력보다 외모가 갈수록 중시되는 분위기도 이 같은 외모지상주의를 계속 부채질한다. 비싼 돈을 들여 면접용 사진을 따로 찍고, 입사하고자 하는 회사의 업종에 어울리는 면접용 머리 손질까지 유행이다.

매력적인 외모가 현대적 의미에서의 여성해방과 일맥상통한다는 오도된 광고는 여성의 잠재력을 짓밟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편향된 광고가 범람하지 않았으면 자신의 창의성을 비주얼 아트나 문학, 공공 서비스, 또는 사회발전에 도움을 주는 여러 행동으로 표출하고도 남았을 여성들이 화장품이나 성적 메시지가 깃든 의상, 성형수술, 비속한 태도 등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도록 강요당한다. 이로 말미암은 외모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여성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완벽한 외모를 갖도록 압박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처럼 외모지상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주변 친지나 가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상실하는 등 부작용도 심각하다. 패션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마치 외계에서 온 듯한 싸늘한 표정의 여성 모델들을 보노라면 이런 문제의 심각성이 십분 이해될 것이다.
일전에 지하철에서 서로 절친한 사이인 듯 보이는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겉으로는 자신들의 대화에 열중하는 듯했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들이 어떻게 비칠까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보다 더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성들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 보니 전혀 즐겁지 않은 듯했다. 간간이 들리는 그들의 웃음소리는 아무 의미가 없었고, 표정도 한결같이 슬퍼 보였다. 외모지상주의 세계에 갇힌 이들은 자신의 내면적인 슬픔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처럼 여성의 외모만 따지는 저속한 문화는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때론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잃고 소외감에 시달리면서 자살을 부르기도 하고, 집착적인 행동을 하거나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면서 외모나 매너보다는 능력과 열정이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적 메시지가 깃든 모든 광고를 예외 없이 금지하면 어떨까. 우리의 딸들이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이 같은 광고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가 기성세대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무차별로 노출되는 광고에서 단지 담배나 술만 금기시할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혹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마치 현대적인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한국적 현실이 안타깝다. 여성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표출하고 스스로 성취한 것으로 평가받을 때가 진정한 여성해방이 아닐까. 여성이 자신을 표현하고 남들과 차별화하려는 욕구가 의상·화장품·헤어스타일로 쏠리는 현실에서 탈피해야 한다. 시중에 넘쳐나는 패션잡지를 펼쳐만 봐도 필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리라.
한국 여성들이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도록 강한 압박을 받게 되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는 건설적이고 활동적인 중요한 역할을 외면하게 된다. 자신의 실제 모습과는 다르게 보이려는 이런 압박감은 기존의 문화를 크게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상적이고 저급한 문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1990년대 필자가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만 해도 한국인의 독서량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다. 어디 그뿐인가. 굳이 비교하자면 일본인보다 외모나 사치품 등에 대해 훨씬 더 느긋한 태도를 지녔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인들, 특히 젊은 여성을 보면 그런 추세가 완전히 역전됐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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