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엄격해진다고 자유 잃는 건 아니다” (중앙일보 2014년 10월 11일)

중앙일보

“규제 엄격해진다고 자유 잃는 건 아니다”

2014년 10월 11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많은 한국인은 선진국에 비해 개인의 창의성 발현이나 자기표현에 인색한 한국 문화를 아쉬워한다. 그런 서구 ‘선진국’은 실제로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개방적이거나 창의적인 문화 속에 살고 있는지는 사실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는 아마 다른 차원의 문제이리라. 다만 한국에 사는 외국인 입장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인들이 보다 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한 곳들이 의외로 많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가령 대부분의 외국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은 교통질서 위반자들의 처벌에 좀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행인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거의 매일 보게 된다. 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무거운 철제 파이프나 건설자재를 싣고 보행자 사이를 신기에 가까운 실력으로 누빈다. 이 ‘배달의 민족’ 후손 중 한 명이 음식을 나르다 어린 아이를 친 끔찍한 장면을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목격했고 그 기억은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하고 자동차나 오토바이보다 보행자에게 통행의 우선권을 주는 일은 시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발전 속도에 걸맞게 도시도 오토바이보다는 행인의 안전을 고려해 설계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 모두에게 경찰이 ‘의미 있는’ 범칙금을 매기는 동시에 인도를 마치 도로인 양 종횡무진하는 오토바이족들에게 가혹한 처벌을 해야 마땅하다. 만일 한국 경찰이 교통 안전 규칙을 집행하는 데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라면(예컨대 한 차례 이상 위반자에겐 즉시 면허를 정지시키고 습관성 위반자에겐 징역형을 선고한다면) 한국이 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모범이 되지 않을까.

당국이 보다 강하게 대처해야 하는 분야는 또 있다. 건물과 상점의 외관에 관한 규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령 스위스처럼 훌륭한 도시환경 덕분에 우리가 부러워하는 나라들에선 집주인이 자신의 집을 유지•보수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심지어 창문, 지붕, 석고, 외벽 장식 등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규정이 마련돼 있다.

엄격한 규제는 특히 동네의 역사적 고유성을 유지, 계승한다는 점에서 조화로운 환경 유지에 필수적이다.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랑스러운 역사가 깃든 동네에는 아예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거나 한옥이 몰려 있는 곳에선 그 같은 특성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한옥만 짓도록 하는 등 엄격한 규정이 필요하다. 그런 동네에선 안내 문구도 모두 멋진 서체로 나무 판에 쓰게끔 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내가 보기에 그런 규정으로 덕을 볼 동네가 한국에는 많다.

집 소유주에게도 자신의 집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정해진 기준 이하로 내버려두지 않게끔 유도해야 한다. 서구의 수도에서 매력적인 거리를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런 엄격한 규정과 그 규정을 잘 따르는 주민들 덕분이다.

규제에 대한 이 같은 요구는 도시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의 시골 지역도 간판이나 건축과 관련된 엄격한 규정으로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다. 농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이 한국의 전통건축이나 주변 환경을 무시하고 무분별하게 지은 건축물 탓에 망쳐지는 경우가 잦다. 만일 개성 있고 매력적인 지역에 들어서는 모든 건물이 전통건축 양식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한다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질 관련 규정도 엄격하게 만들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도시와 시골의 모습을 확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만일 가재나 도롱뇽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수질을 개선하고 위반 시엔 실효성 있는 벌금을 부과한다면 한국이 생태학적으로 세계적으로 모범 국가로 부상할 뿐만 아니라 관광수입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규제가 엄격해진다고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준을 높이고도 도시환경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로운 표지판을 만들고, 낡은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나무와 꽃을 심는 일을 동네 주민들이 직접 맡도록 하면 부수적인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을 준다. 이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도시공간의 유지•보수는 향후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예컨대 독창적인 수공예품이나 목제품, 벽돌 쌓기 등의 기술 수준을 계속 높여야 하며 그런 분야의 장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만들어가는 환경에 자부심을 갖게끔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업에서 큰 성공을 못 거둔 사람들의 심적 고통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규제’라고 하면 대다수 한국인은 고개부터 내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갖가지 규제로 자신들의 일상생활이 심각한 침해를 받고, 심한 경우 우울증이나 극단적인 선택에까지 내몰린 슬픈 경험 때문이리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훨씬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한 곳이 의외로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One response to ““규제 엄격해진다고 자유 잃는 건 아니다” (중앙일보 2014년 10월 11일)

  1. 핑크나인 October 16, 2014 at 9:57 am

    특히 간판이나 교통안전에 따른
    규제강화는 크게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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