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무기여 잘 있거라” (중앙일보 2014년 11월 22일)

중앙일보

동아시아, 무기여 잘 있거라”

2014년 11월 22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이달 중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총회에서 미국과 중국은 기후변화 대응 문제에 대한 협력을 약속했다.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건설적인 미래상을 보인 것이고 희망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APEC에서의 낙관적인 연설과 선언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는 여전히 동아시아 지역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 간에는 영토분쟁과 역사 문제, 그리고 자원 문제 등이 갈등의 근원으로 존재하고 있고 이에 따른 세력균형 문제와 군사비 지출 폭증은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동아시아 안보 모순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그렇지만 평화를 위한 방안이 아직 존재한다는 점에서 희망은 남아 있다.

 동아시아 평화 논의의 출발점은 이 지역 엘리트의 각성이다. 현재 동아시아 지역의 엘리트들은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동아시아에서 위험하고도 불필요한 갈등이 심화되는 배경의 하나다. 오늘날 아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과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한탄할 만하다. 유럽 국가들은 제국주의 시대 모순이 극대화된 세계대전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 수천만 명의 생명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도하고, 핵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인식한 뒤인 1970년대가 돼서야 전쟁 예방을 위한 협상에 나선 것이다.

 한·중·일 지식인들이 책임감을 갖고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을 주장해야 하는 시기를 더 이상 미룰 순 없다. 구체적인 평화질서 구상과 군축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사실 동아시아에서 평화를 논의하기에 적당한 다자 회의체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6자회담은 북핵 문제를 다루는 회의체지만 9·19 공동성명에서 동아시아 평화 가능성을 탐색하자는 합의를 이룬 적이 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지역 안보포럼이나 안보협력회의도 한·중·일 3국의 평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다.

 평화를 위한 진취적인 방안도 이미 제시돼 있다. 95년 존 엔디콧(우송대 총장) 교수가 제안한 ‘동북아 제한적 핵무기 금지 구역 설정 방안’은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비핵지대론은 남극 비핵지대 조약, 동남아시아 비핵지대 등 이미 발효된 8개의 비핵지대 전례에 기반을 둔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북한을 적극적으로 협상에 참가시키기 위해 한·중·일이 북한과 상관없이 우선 평화협정을 협상의제로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협상은 핵무기뿐만 아니라 군비 감축에 관한 일련의 협상과 병행돼야 한다. 해군 함정과 탱크, 전투기와 미사일 방위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 군사 훈련 감시 장치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인 항공기와 로봇, 3D(3차원) 프린팅과 사이버전쟁 등 신기술에 대해서도 협상을 진행해 조약에 반영해야 한다. 전역 미사일 방위는 포괄적 무기 조약의 일부로 다뤄야 한다. 그렇게 광범위한 군축 협상이 이뤄진다면 동아시아는 전 세계를 선도하는 모범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신뢰는 평화 논의를 성공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바마-시진핑’의 기후변화 대응 협력 선언은 특별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재균형’으로 알려진 미국의 정책은 오류와 편견이 내재된 접근법으로, 조속하게 시정되고 완전하게 재구성돼야 한다. ‘재균형’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을 겨냥한 도발적 구상이 마구잡이식으로 유포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호주 등이 미국의 동맹으로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는 대항세력이 돼야 한다거나, 미국 해군이 서태평양 구역에서 두 배로 증강돼야 한다는 주장이 대중의 눈과 귀를 현혹하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 안보 구도를 헝클어 놓고 결국 미국에도 자기 발등을 찍는 격이 될 것이다. 중국도 국제사회의 책임 행동기준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미국도 냉전시대 이분법적 사고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군축 및 평화 논의는 기후변화 대응 논의와 병행돼야 한다. 기후변화는 이제 안보 위협으로 다뤄야 하며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 대응은 군대의 개념과 역할을 바꾸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평화 논의를 질적으로 변경시키고 궁극적으로 격상시키는 소재가 될 수 있다. 군대가 인류 공통의 재난에 대응하는 신속 대응 조직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획기적인 안보정책 전환이 국방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안보 혁신과 창조에 대한 전환은 궁극적으로 한국에 유리하다. 국방 분야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전면적으로 혁신 임무 혁명이 필요하나 예산을 경감할 뜻이 아닐 수 있다. 한국이 만약 이런 전환을 주도할 수 있다면 미국과 중국·일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군대 혁신의 선도자가 될 수도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조그만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면 동아시아가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변모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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