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한국의 조선업 발달은 분단 후 섬 아닌 섬 됐기 때문”
‘섬의 학문’ 연구하는 마크 셸 하버드대 교수
남정호 기자
2014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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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기자
세계적 석학 마크 셸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18일 섬나라의 특성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셸 교수는 지난달 섬의 특징과 역사 등에 대해 다룬 『도서학(Islandology)』을 출간했다. 오종택 기자 |
“시인들이 뭐라고 표현하든 섬은 영혼의 비유다.”(재닛 윈터슨·영국 여류시인)
일상에 지칠수록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섬. 이런 신비에 싸인 섬을 학문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가 있다. 비교문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마크 셸(Mark Shell) 미국 하버드대 영문학과 교수. 그는 문학도이지만 섬을 연구하는 ‘도서학(島嶼學)’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경희사이버대 특강을 위해 방한한 그를 지난 18일 만나 도서국가의 특징과 섬을 둘러싼 영토분쟁 해결 방안 등을 들었다.
『도서학: 지리, 수사, 정치(Islandology: Geography, Rhetoric, Politics)』(392쪽, 미국 스탠퍼드대 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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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도서학(Islandology)』(아래 사진)이란 책을 출간했는데 어떤 학문인가.
“말 그대로 섬이 갖는 지정학적·역사적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간 지리학자들은 본토(mainland)의 반대 개념으로 섬을 연구했다. 지리학자들이 말하는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땅의 둘레를 배로 완전히 한 바퀴 돌 수 있는 곳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섬의 특성과 함께 이런 땅이 본토와 연결됐을 때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지 등도 도서학의 연구 대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역사적으로 섬이 갖고 있는 역할과 의미 등으로 학문의 영역이 확대됐다.”
-많은 사람이 섬에 매료된다고 했는데 왜 그런가.
“섬이란 공간을 생각해보라. 섬은 바다라는 벽에 의해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다. 사람들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라는 측면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듯하다. 바다처럼 완벽한 벽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한국 전설에 나오는 이어도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죽은 어부들이 간다는 이 섬은 사후의 행복을 상징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인지 한국에도 섬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셰익스피어 공부하며 섬 연구에 관심
-비교문학 전공자가 갑자기 도서학을 연구한 까닭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자 400여 년 전 쓰여진 『햄릿』을 연구하면서 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원래 『햄릿』은 덴마크의 설화를 기초로 했는데, 이야기가 전개된 곳은 육지였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무대를 덴마크 셰란섬 북동부에 위치한 크론보르성(작품에선 엘시노어성으로 나옴)으로 옮긴다. 물론 섬이 갖고 있는 상징성과 공간적 효과 때문일 거다. 셰익스피어는 섬을 작품의 무대로 즐겨 썼다. 『햄릿』 외에 주인공이 폭풍을 만나 섬에 표류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다룬 『템페스트』가 대표적이다. 이런 작품들을 연구하면서 섬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호기심이 발동했다.”
-영국·일본과 같은 섬나라의 특징은.
“아주 거대하지 않는 한 섬나라의 경우 웬만한 곳에선 바다와 쉽게 접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도서국가와 함께 영국·일본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런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바깥 세상으로의 진출에 대해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다. 그래서인지 본토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격적이기 쉽다. 특히 영국·일본은 지난 수세기 제국주의를 지향해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런 도서국들은 바다에 의해 폐쇄된 지리적 조건 때문인지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런 성향은 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타국에 비해 조선업에 많은 정성을 쏟아 이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내왔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마셜 샤린과 같은 학자는 섬나라 국민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이동성(mobility)으로 새로운 문물을 익히는 데 유리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캐나다 출신의 셸 교수는 미국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천재들의 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했다.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 미국인에게 맥아더재단이 수여하는 상이다. 그간의 업적보다 한 학자의 독창성과 잠재력을 평가해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필연일 수 있다. 그의 출생지가 캐나다 세인트로렌스강 하류에 위치한 작은 섬이기 때문이다. 육중한 거구에 수북한 턱수염으로 강할 것 같던 첫인상과는 달리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섬나라 이야기를 들려줬다.
북쪽 막히면서 한국인 심리도 변화
-삼면이 바다에 북쪽은 북한으로 막힌 한국도 섬으로 간주해야 하나.
“그렇다. 섬이란 단순히 지리적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다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에 의해 완전히 차단되면 섬으로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나의 고향인 캐나다도 과거엔 사실상 섬이었다. 북쪽은 아무도 살지 않는 황량한 벌판이다. 남쪽에 놓인 미국과도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한국의 경우 북쪽에 커다란 바다가 놓인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한국이 분단되면서 섬나라가 됐다고 하면 이로 인해 한국인들의 심리도 변했을까.
“물론 그렇다고 생각한다. 내전을 겪은 나라는 예외 없이 국민의 사고방식이 변한다. 남북전쟁이 일어난 미국도 그랬다. 한국인의 경우 반도국가에서 사실상의 섬나라가 되면서 바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조선업이 발달한 것도 이에 따른 현상으로 봐야 한다. 더불어 외부 세계와 단절되면서 고립감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이를 타파하는 방법 중 하나가 다른 나라와의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강력한 동맹을 유지해 온 배경에도 이런 심리적 요인이 작용했을 걸로 본다.”
섬 둘러싼 영토분쟁 비용 막대
-섬의 역사적 역할은.
“과거의 항해는 대부분 해안선을 따라 이뤄졌다. 이 때문에 해안선에 위치한 섬나라들은 해양 운송의 중심지로 발달했다. 홍콩·싱가포르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더불어 섬은 요새화하는 데도 아주 쉽다. 『햄릿』에 등장하는 크론보르성도 발트해에 진입하는 배들을 통제하는 데 안성맞춤인 요새였다. 때론 식민지 정복 등의 전초기지로도 사용된다. 아프리카 북서부에 위치한 카나리 제도가 그런 사례다. 스페인은 식민지시대 때 아프리카 국가들을 정벌하는 군사기지로서 이곳을 활용했다. 이 때문에 이런 곳에는 아직도 군사시설이 많이 남아 있는 경우가 흔하다.”
-많은 섬이 국가 간 영토분쟁의 대상인데 바람직한 해결책은.
“섬을 둘러싼 영토분쟁의 대부분이 전쟁과 같은 무력적 방법이 아닌 한 해결되지 않는다. 딱 5분만 전쟁을 해서 문제를 끝내는 게 최선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웃음) 그렇지 않고 양쪽이 영토분쟁을 질질 끌면 그 비용이 막대하다. 100~200년씩 영토분쟁 중인 곳도 많지 않나. 피해자라고 느끼는 쪽에선 시간이 갈수록 피해의식이 더 커진다. 게다가 분쟁 대상인 섬들은 상업적으로 발달하지 않고, 단순히 상징적인 측면만 강한 경우가 숱하다. 그러니 인내심을 갖고 굳이 건드리지 않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독도의 경우 일본 측에서 ‘그간 미안했다. 이 섬은 너희 것이다’고 해오면 제일 좋겠지만, 그럴 리 있겠는가. 일본의 이런 입장 표명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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