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는 ‘위험한 동네’인가?” (중앙일보 2015년 2월 14일)

중앙일보

“동북아는 ‘위험한 동네’인가?”

2015년 2월 14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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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잡지들을 읽을 때마다 동북아 지역을 줄곧 ‘위험한 동네’로 표현하는 통에 깜짝 놀라곤 한다. 십중팔구 호전적인 북한이나 한•중•일 간 역사•영토 분쟁 탓에 엄청난 리스크가 수반되는 지역이란 의미가 함축돼 있으리라.

일부 기사는 이미 동북아의 위기를 자명한 진실처럼 다룬다. 예컨대 유럽의 선진국들 사이에는 다양한 형태의 지역기구가 정착돼 있다. 이와 달리 동북아는 다원주의 기반이 워낙 허약하다 보니 노골적으로 리스크가 많은 지역까진 아니어도 어딘가 미성숙한 지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나는 ‘아시아 공동사회’를 갈망하는 한국의 한 외교관을 알고 있다. 일전에 그와 차를 마시며 담소하던 중 그가 전해준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그 외교관은 최근 유럽연합(EU)의 한 외교관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동북아가 유럽 수준의 통합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그 외교관은 퉁명스럽게도 이런 답변으로 질문자의 의표를 찔렀다. “무엇보다 유럽이 저지른 실수를 절대 되풀이하지 마세요.”

전후 유럽은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과거의 갈등을 극복하고, 공동시장을 창설하고, 전 부문에서 협력의 새로운 틀을 짜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 다. 나 자신도 유럽이 거둔 이런 성취에 일정 부분 자부심을 느낀다. 바로 나의 어머니가 유럽의 완벽한 통합을 추진해온 룩셈부르크 출신일 뿐 아니라 우리 가족 중 일부는 실제 룩셈부르크 정부에서 오랫동안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은 우리가 동북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유럽 지역기구들조차 해결할 엄두도 못 내는 힘든 숙제들을 안고 있다. 그중 하나가 그리스 총선에서 새로 집권한 시리자 당이다. 시리자를 주축으로 한 그리스 연립정부는 국가부채를 둘러싸고 유럽중앙은행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는 유럽의 가장 약한 고리다. 서로 다른 나라들 간의 경제에 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와 이로 인한 지역연대의 균열 가능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유럽의 또 다른 위기는 심화되는 군사 갈등이다. 이미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고 급기야 러시아와 나토 군을 끌어들일지 모를 위험을 안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이다. 많은 전문가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지난 40년간 우리가 유럽에서 목도한 일 가운데 가장 위험한 사건으로 여긴다.

마지막으로 유럽인들은 지난달 프랑스의 풍자 전문 시사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서 발생한 끔찍한 테러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건 이후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무슬림을 탄압하는 조짐이 나타났다. 문화적 순수성을 외치고 외국인 추방을 부르짖는 우익세력들이 독일•프랑스 등에서 갈수록 목소리를 높여 가고, 일부 국가에선 이들이 사회 주류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로 인한 외국인에 대한 폭력과 인권침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비록 동북아에서 긴장이 계속되고 있지만 유럽의 위기 수준까지 가려면 한참 멀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직은 일본과의 공식접촉을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 나라의 지방자치단체나 NGO, 민간기업 간의 협력은 지속되고 있다. 일부 분야의 교류는 증가하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한중일협력사무국(TCS)을 들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세 나라 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이 조직에서 역내 협력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며 골몰하는 모습을 생생히 지켜봤다. 겸손하면서도 지극히 능숙한 외교관 출신인 시게오 아와타니 현 사무총장은 최근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막상 이곳에 부임하고 보니 TCS가 짊어질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심지어 인사정책까지 포함한 정부 활동의 모든 측면과 연관돼 있다. 최근 TCS는 ‘아시아 채권시장 이니셔티브’와 투자협정 조인뿐만 아니라 물류 속도와 효율성 진작을 위해 매우 세부적 사항에까지 합의하는 등 놀라운 진보를 이뤄 냈다.”

아시아의 통합은 EU의 복사판이 돼선 곤란하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컴퓨터 기술 발전 덕분에 가위 지구촌적 통합 시대를 맞고 있다. 유럽은 1951년 석탄철강공동체를 중심으로 통합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북아도 사이버공간의 새로운 기준을 신속하게 수립하고, 동시에 아시아 기후변화에 대한 다자간 대응방법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

TCS는 상층부가 두터운 관료집단이 아니라 빌딩의 한 층, 그리고 한 사무실에 자리 잡은 작지만 헌신적인 사람들의 집합체다. 뉴욕의 유엔본부나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처럼 멋지고 화려한 공간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몸을 낮춘 접근방법이야말로 오늘날 상향적 의사소통의 ‘글로벌 거버넌스’에 어울리는 가장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동북아의 시대적 도전을 인식하고 이에 잘 대응하려면 고리타분한 위계질서에 기초한 관제탑보다 이처럼 날렵하면서도 강력한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아마도 TCS는 앞으로 많은 나라의 협력체 모범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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