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s and Squares

Insights into Korea's Sudden Rise

 

이코노미조선

 

“아베는 밉더라도 외교·문화전략, 일본에게 한 수 배워야;

조선조의 농업경제·선비정신에 ‘答(답)’ 있다”

 

2015년 5월 6일 

“안녕하세요, 이만열(李萬烈)입니다.”   한자 세 글자가 적힌 명함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는 벽안(碧眼·파란 눈)의 미국인을 처음 만났을 때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 것은 왜일까. 단순히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대화를 주고받아서가 아니다. 그가 쓴 책을 읽고 난 뒤 만나는 자리여서 그렇게 느꼈을지 모른다. 지난 2013년 출간돼 화제를 모은 책의 제목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다. 부제(副題)는 ‘하버드대 박사가 본 한국의 가능성’이다. 책 제목, 부제 모두 다소 도발적이다. 책을 바라보는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외국인이 우리나라(한국)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러나 태어난 곳이 한국이 아니고 한국에 오래 살지 않았으며 한국인의 혈통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한국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이러한 핸디캡을 학문적으로 고증하고 객관화시켰다. 그래서 그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수 있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최근 지정학적으로 가장 ‘핫(hot)’한 곳인 동아시아 3개국을 모두 학문적으로 연구했다. 우선 세 나라 언어를 모두 완벽하게 구사한다. 예일대 재학 중에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대만국립대를 다녀왔다. 도쿄대에서의 석사학위 과정은 수업부터 논문작성까지가 모두 일본어로 진행됐다. 사실상 일본 학생과 똑같은 상황에서 공부한 덕분에 일본어도 수준급이다. 박사학위 과정 중간인 1995년에는 서울대 대학원(중문과) 연구생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바로 이 무렵이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97년 지금의 아내와 결혼에 골인하면서 ‘이만열’이라는 한국이름도 얻었다.

‘선비정신’, ‘북학정신’ 가진 연암(燕巖) 박지원에 매료돼

페스트라이쉬 교수와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 그는 해외출장 중이었다. “귀국 후 밀린 일을 처리하려면 굉장히 바쁘지만, 한국과 관련한 이야기는 언제든지 환영한다”며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그에게서 한국사랑이 느껴졌다.

그가 우리만 모르는 한국의 가치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 꼽는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선비정신의 전통에 가장 감명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소신 있게 주장하는 전통이 매력적이었죠.”

그가 생각하는 ‘선비정신’은 양심을 갖고 행동하는 책임감 있는 지식인의 태도다. 요즘 말로 하면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본이다. 그가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에게 매료된 것도 올곧은 선비정신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그는 연암이 쓴 단편소설 10편을 영어로 번역해 출간할 정도로 연암의 사상에 정통하다.

연암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말이 빨라졌다. 그는 “연암이 쓴 소설은 막연한 꿈속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당시 한국사회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쓴 소설을 읽어보면 당시 사회를 냉정하게 묘사하는 그의 통찰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연암은) 대단히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죠.”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연암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단순히 작가적 기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시대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직관력에 있어서 연암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게 그가 내린 결론이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을 보는 눈은 남달랐어요. 조선은 당시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배척했지만 연암은 청나라의 선진 과학기술, 행정시스템, 건축·도로관리제도 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죠. 취할 건 취하자면서 말이지요.”

그는 “중국, 일본, 미국에 대한 감정은 그대로 두고 그 나라에서 배울 제도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면서 “오늘날 한국이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박지원의 북학(北學)사상을 계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한국 정치·경제·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풍조 중 하나가 바로 ‘새우 콤플렉스’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라는 속담에서 유래된 새우 콤플렉스는 최근 중국과 미·일 등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갈지(之)자를 반복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감 가지고 ‘새우 콤플렉스’ 극복해야

기자가 ‘새우 콤플렉스’라는 말을 꺼내자 그는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한국은 절대 새우가 아니다”고 외치는 그는 한국인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자신감 회복’을 주문했다. 미·중 양국 모두와 외교 마찰을 빚었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배치 논란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이 문제였다”고 꼬집었다.

“한국이 지나치게 미국의 반응에 예민했어요. 프랑스나 영국 등과 물밑으로 실무회담도 하고 협의도 해서 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죠.”

우리에게 새우가 강대국의 등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약자’(弱者)의 이미지라면, 그에게 새우는 ‘한 번에 수십만 개의 알을 낳는, 그래서 어려움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남는 생명력’이다.

“일본은 우익(右翼)의 입김이 강해지는 등 민족주의 경향이 뚜렷해요. 고령화 문제도 극심하고요. 다시 말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나라죠. 중국의 빈부격차나 환경문제는 말이 필요 없어요. 정치혁신도 덜됐고 사회모순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한국도 문제는 많지만 (이 모든 면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단적으로 서울이 얼마나 살기 좋습니까.(웃음)”

그는 “일본, 중국, 독일 등과 달리 위아래 관계를 중시하는 패권주의 사상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도 한국의 커다란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 평등한 유대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신 깊숙이 박힌 올곧은 선비정신은 잘못된 정책은 비판하고 활발히 토론하게 만드는 민주적인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토대가 됐다. 다소 자신감은 부족하지만, 중화사상과 같이 ‘한국이 세계 최고’라는 오만한 민족주의가 없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러기 때문에 한국이 다른 나라를 인정하고 유연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의 어머니는 룩셈부르크 출신입니다. 외할아버지는 차관까지 지낼 정도로 정부에서 오래 일하셨죠. 룩셈부르크는 새우라고도 할 수 없는 유럽의 조그만 나라지만 1950~60년대 유럽 경제의 핵심역할을 했습니다. 나라는 작았지만 비전이 있었기에 나중에 유럽 금융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었죠. 새우라도 충분히 현명하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새우처럼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을 이어주는 가교(架橋)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 그는 <조선일보>에 쓴 칼럼에서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지형학적 특징을 활용하려면 똑똑한 외교, 즉 ‘창조외교’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가 말하는 창조외교는 날이 갈수록 냉랭해지고 있는 대일(對日)관계를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열쇠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34년 동안 갖은 고초를 당한 한민족 입장에서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에 대해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원망에 대한 정도(程度)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워했다. 듣기에 다소 거북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그의 이러한 주장은 개인적인 집안 내력과 관련이 있다.

“저의 아버지쪽 가족은 유대인이어서 독일인에게 몰살당했어요. 많은 유대인이 학살됐죠. 하지만 아버지는 독일어를 공부했고, 독일에서 일도 했고, 교류도 많이 했어요. 한국만이 태평양전쟁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본 군국주의 치하에서 희생된 일본인도 많은데, 이런 일본인 희생자를 기리는 박물관이나 비석을 세운다면 일본 내의 반(反)우익집단을 포섭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죠. 노골적으로 우익성향을 드러내는 아베 총리는 아니꼽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니 일단 만나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국과 뜻을 같이 하는 일본인들과 손잡고 일본 사회에 한국의 목소리를 내야죠.”

‘유연한 외교’는 일본의 특기(特技)다. 그 역시 일본의 이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노무현 정부 때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일했는데, 당시는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집권했던 시기였어요. 노무현 정부 관계자들이 대사관에 와서 공화당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많이 노력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사실 노무현 정부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대부분 민주당 사람들이었어요. 아마도 당시 (한국)정부 관계자들은 야당인 민주당이 힘이 없다고 판단한 거 같아요. 그런데 그 다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다음 (미국)선거에서 민주당이 전승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최근 대미(對美) 외교경쟁에서 한국이 일본에 크게 밀리는 상황이 충분히 납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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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새우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이 한국이 1등 국가가 되기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문화산업·경제구조 모두 전통에서 해법 찾아야

외교뿐만 아니다. 그는 냉정하게 “문화콘텐츠 생산 및 홍보 전략에 있어서도 일본이 한국보다 두 서너발 앞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이 국제사회에 알린 자국 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무라이’ 정신이다. 일본은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사무라이로 전 세계에 자국 문화의 신비로움을 알렸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동아시아 3국의 언어문화학을 전공한 그에게서 나온 대답은 “뭔가 뚜렷한 게 없다”다. 우리 정부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K-팝, 드라마 등을 활용한 한류(韓流) 문화 콘텐츠에 대해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계점이 뚜렷하게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한류는 한국인의 일상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요. 무엇보다 한국 특유의 도덕적인 콘텐츠를 담아내고 있지 못하죠. ‘그냥 재밌게 놀자’식이지 전통적인 도덕적, 윤리적인 내용은 부족합니다. 이제는 고급스러운 문화전략이 필요한 때거든요.”

그렇다면 과연 그가 생각하는 한류 대체재(代替財)는 무엇일까. 그가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한국의 고급스러운 전통문화’였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고려시대 사찰의 내부구조, 백제의 멋진 문양, 한복의 아름다운 요소를 현대화시켜 현대 디자인에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단 전통 문양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전통 의식주 모두가 총망라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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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다 김치랑 삼겹살만 먹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음식문화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정부가) 이걸 소개하지 않아요. 중국 사천(四川)요리, 프랑스 보르도(Bordeaux)요리처럼 충청남도의 지방요리나 사찰요리를 소개할 수 있는데 한국음식이라고 하면 죄다 김치에 비빔밥만 생각나게 하니….”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떠오른 생각이 ‘이 사람이라면 오늘날 한국 경제 앞에 놓인 난제의 해법도 풀 수 있겠다’였다. 인문학자는 문헌을 고증하고 비교 분석하는 사람인데 경제 문제를 꺼내는 것 자체가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그는 자신만의 생각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그가 내린 결론은 ‘전통적인 경제구조로의 회귀(回歸)’였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은 무역을 중심으로 발전했고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앞으로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중심으로 경제효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내수경제를 활성화하는 전통적인 경제구조, 다시 말해 ‘자급자족경제’로 돌아가야 합니다.”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특히 농업을 강조했다. 그는 “건전한 경제구조를 위해서는 튼튼한 농업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와 중국의 산업화에 대비해 국내 농작물 수요를 자체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농업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서울 안국동의 모 카페에서 두 번째 인터뷰를 마치고 광화문에 볼 일이 있어 가봐야 한다는 그가 좁고 복잡한 골목이 이어진 안국동 안쪽 길을 능숙하게 빠져나갔다. 자세히 보니 그의 파란색 모자에 ‘서울(SEOUL)’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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