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50년 신생국이 아닙니다” (조선BIZ 2015.08.14)

조선BIZ

한국은 50년 신생국이 아닙니다”

2015.08.14

전병근 기자

모처럼 최고 지도자 입에서 책 이야기가 나왔다.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읽은 것이라고 했다. 제목까지 거명했다.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저자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다.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미합중국인이다.

그래도 한국 고전문학을 20년 가까이 공부했고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영어로 옮긴 학자로 일찍이 국내에도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산 지 8년째다. 한국 이름까지 있다. 이만열. 결혼을 앞두고 한국인 장인이 지어준 이름이다.

그런 그와 나는 구면이다. 3년 전이었다. 안동에서도 차로 30분을 더 들어간 군자마을에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주제가 선비 정신이었다. 한국사학계의 원로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와 대담 상대로 나선 이가 그였다. 알고 보니 학벌이 길고 굵었다. 예일대 학사에 도쿄대 석사, 하버드대 박사 과정을 차례로 거친 동아시아 문화 연구자라고 했다.

그래 봐야 한국 전통 사상에 대해 얼마나 알까. 입을 열 때마다 ‘썬비’ ‘썬비’ 하는 그의 발음만큼이나 학문적 내공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하지만 그의 책을 찾아 읽으면서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는 문제의식이 진지한 사람이었다. 한국에 대한 얕은 이해로 자기 몸값을 유지하려 드는 외국인 학자 같지는 않았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현재 상황에 대한 관찰과 보편적 해답의 모색과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은 한국이 100여 년 전 구한말의 상황과 다를 것이 없다면서 더욱 열심히 일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지 않으면 언제 나라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경고를 만고불변의 진리나 주문처럼 외고 있다. 한국이 여기서 경제 발전을 멈추고 근면한 생활을 중단한다면 또다시 저개발 국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우려감은 한국에서 가장 자주 동원되는 논리다.”

“한국인들은 5000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위대성을 이야기할 때는 1960년대 이후 기적적 경제 발전만 거론한다. 한국의 장구한 역사는 최근 50년의 기적적인 국가 발전을 설명하기 위한 극적 반전을 노리기 위해 등장하는 어두운 서막처럼 느껴진다. 이중적이다.”

“한국인은 한국의 과거를 소개하지 않고는 국제 사회에 한국의 정체성을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담담한 심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국제 사회에 소개할 수 있다면 한국의 존재는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다. 그것으로부터 한국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색깔이 다른 또 하나의 멋진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제국주의 정책을 채택한 경험이 없는 선진 모범 국가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비록 두서가 없고 의욕이 앞선 글이기는 하지만 이 짧은 에세이 몇 편이 과도하게 위축된 한국인의 자신감과 지나치게 굴절된 한국인의 자존심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이를 통해 한국인이 더 많은 성취감을 얻고 더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게 되기를 기대한다.”
지난 9일 낮 서울 역사박물관 카페에서 그와 만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대화는 시종 한국말이었다. 몇 차례 질문 속도가 빨랐을 때 되물어온 것 외에는 막힘이 없었다.

대통령이 여름 휴가 중에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읽었다고 해서 화제의 저자가 됐다. 언제 알았나?

그날 회의 중에 누가 문자를 보내왔다. 방송에 나왔다고. 그전에는 전혀 몰랐다. 배경도 모른다. 두세 달 전에 한 일간지에 대통령의 방미 어젠더에 대한 기고문을 쓴 후에 청와대 홍보관인가가 누군가 찾아서 한 번 식사한 적은 있다. 한두 달 전에. 그게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 기고문에서는 무슨 얘기를 했길래?

아베한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박 대통령 다음으로 방미 앞둔 시진핑을 염두에 두라고 했다. 중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이야기하고 양국 조절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대통령이 당신 책 이야기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소감은?

글쎄. 기분은 좋지만, 동시에 걱정도 됐다. 사실 내가 한국을 대단히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교수이지 정치인도 아닌데. 어떤 의미에서 고맙고 영광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대통령이 굳이 왜 내 책만 언급해서 특별히 강조했는지 나도 궁금하다.

지금으로서는 나는 교수 일과 아시아 연구소에서 세미나 기획하고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주목을 받으면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싶지만, 한계를 느끼고 있던 참이다.

-2년 전에 나온 책이다. 그때는 어떻게 출간하게 됐나?

4년 동안 신문에 쓴 글을 묶고 확대 보완해서 내게 됐다. 사실 출판사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얼마나 팔렸나?

대통령이 언급하기 전까지 1만4000부 정도 나간 것으로 안다. 큰 히트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팔린 편이다. 대통령 발언 후에 5000부 더 찍었다고 들었다.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라니. 제목은 누가 지었나?

처음엔 내가 ‘다른 대한민국’이라고 제안했는데 출판사에서 앞에 ‘한국인만 모르는’을 덧붙였다.

‘다른 대한민국’이라고 한 것은 무슨 생각에서였나?

첫인상과 다른 대한민국, 한국 정부의 홍보물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다. 나는 한국만의 대단한 전통문화가 있다고 느꼈다. 한국인은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알아도 외국인에게 잘 안 알려주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한국인이 모르는 것들로는 어떤 것이 있나?

가령 한국은 국내 정책과 제도에 관한 한 조선 시대에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만한 규모에 그토록 오래 안정적으로 유지된 정부 시스템은 없었다.

고려 시대의 다문화 전통, 조선 시대의 민본주의와 언로, 사랑방, 조선의 역관제, 중인들의 활약상 같은 것들은 지금 다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17-18세기 예학도 오늘날 법 적용이 어려운 네트워크사회에서 새로운 거버넌스 체계로 재해석할 수 있다.

심지어 외교적 상상력도 과거 주변 강대국을 상대해온 삼국시대나 고려 시대에서 배울 것이 많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이룩한 기적적인 성장의 경우에도 그 배후에 수천 년 지속해온 지적 전통이 있다. 그런데도 한국사를 이야기하면서 이 부분을 생략하는 경향이 많다. 한국이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한국이 지금 자랑하는 특정 기술이나 상품보다도 자신의 문화를 더 위대한 자산으로 인식한다면 한국은 세계에 훨씬 더 많이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잠재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것이다.

책에 보면, “한국이 분야별로 뛰어난 것들은 많은데 유기적으로 연결을 못 시키고 따로 존재한다. 국가 브랜드와 통합하지 못하고 있어 존재감이 떨어지고 외국인이 쉽게 인식하기 어렵다”고 했다. 

가령 민주주의 얘기할 때 서양 고대 그리스부터 프랑스혁명, 미국 혁명 그런 민주화를 얘기한다. 그러면서 한국의 민주화는 80년대에 시작됐다고 한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15세기부터 정부에 대한 투명성 요구하고 권력 견제하려는 시스템이 있었고 주장과 정책적인 시도가 있었다.

그런 사람이 사대부였다. 한국 나름의 권력 분립과 견제 시스템이 있었다.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 못했다. 한국 역사에도 나름의 민주주의 전통이 있었고 어떤 면들은 현대 사회에도 배울 게 있다.

선비 정신도 마찬가지다. 책임감 있는 지식인의 모델이다. 한국의 대단한 전통인데 거의 소개되지 않는다. 내 친구 데이비드 메이슨 중앙대 교수가 최치원을 영어로 소개하는 책 편집을 거의 다 끝냈는데 아직 최치원을 영어로 소개하는 책이 없었다.

세종대왕도 영어책은 몇 권 있지만 권위 있는 책이 거의 없다. 한국의 그런 전통을 한국인도 해외에서도 잘 모른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에 얼마나 손실인지 모른다.
한국 정체성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선비 정신을 들었는데.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의 핵심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의 다양한 요소와 생활, 의식을 하나로 묶는 것이라야 한다. 한국인도 자신을 받아들이는 틀이 되고, 외국인은 한국을 독특한 문화적 존재로 이해할 수 있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또한, 지식사회로서의 한국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선비 정신의 전문가는 아니다. 한국의 지식을 유교 사상으로 보고 연암이나 다산의 글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도 비슷한 지식인이 있지만 특히 한국에는 책임감 있는 지식인 전통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식인의 윤리적 행위의 중요성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 말이다. 특히 정약용은 온종일 책을 읽으면서 항상 사회와 서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해외에 소개할 때 그런 전통을 소개하면 효과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공부하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감까지 겸비한 지식인 리더를 말하나?

선비 정신을 연구한 전문가에 따라 다양하다. 어떤 이는 조선 시대를 말하고 어떤 이는 신라 시대, 단군까지 올라가기도 하는데, 나는 거기까지는 관심이 없다. 선비 정신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내 목표는 아니다.

외국인에게 한국 전통을 선명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정도의 개념 이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행합일의 정신에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도 있고,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는 선비야말로 오늘날 세계 보편적인 지도자상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조선 주자학에 대한 변론도 눈에 띈다. 흔히 ‘추상적인 학문’으로 생각되는데, 그거야말로 진정한 ‘실학’이었다고 썼다.

원래 주자 어록에 ‘실학’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남송의 사상 흐름을 보면 주자학은 오히려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시스템에 가까운 개념이다. 유교, 불교, 도교를 통합하는 우주관이었다.

주자학은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오늘날 필요한 것이다. 과거 유학자는 책을 읽고 편지와 에세이를 썼다. 고전을 읽고 그 풍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주 적은 물품만으로 검소하게 생활했고 행동은 절제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표면적인 의미가 아니라 근본 원리에 대해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책 속의 무한한 깊이와 삶의 완전한 만족감, 나아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다.

한중일의 유학을 다 공부한 셈인데 삼국의 차이가 뭔가?

미묘하긴 한데, 한국이 정통에 가장 가깝다. 일본은 불교가 강했다. 유교가 주류가 아니었다. 18세기부터 시작해서 뛰어난 유학자도 나오고 유교에 관심이 있었지만 유교 제도는 별로 없었다. 과거시험도 없었고 제도적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한국은 복잡하지만 송나라 때 전통이 잘 보존됐다. 몇백 년 동안 전통을 승계하는 서원이나 학교가 남아있었다. 20세기까지도 계속 가장 오랫동안 유지됐다.

중국의 경우 원과 명을 거치면서 역사적 격변이 많았고 전통이 단절됐다. 한국은 20세기에 와서야 단절됐지만 그전에는 잘 유지됐다. 중국은 유교가 그만큼 확고한 중심을 차지한 것도 아니었다.

명나라가 이데올로기로 보면 당연히 유교이지만 도교 관련 요소도 많았고, 청나라 때는 라마교가 상당히 많이 활약했고 이데올로기가 복합적이었다. 반면에 조선 왕조는 전반적으로 유교 지위가 높았다.

우리가 보기엔 조선왕조는 결국 열강에 시달리다가 일본에 강점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지배 사상인 유학에 원인이 있지 않나 하는 인상을 갖고 있다.

일리는 있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첫째, 그런 생각은 일본 강점기 교육 탓이다. 일본은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의 후진성을 강조했다. 근대화에 저항한 양반이 추상론에 빠져 실패했고 일본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많은 한국인이 그렇게 믿고 있으니 그 신화는 성공했다.

19세기 아편전쟁 때 서양의 군사력이나 기술이 중국과 한국보다 압도적으로 우수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아니었다. 그때는 유럽과 중국의 과학기술 제도에서 대단한 차이가 없다. 100년 동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 것이다. 그 시기 동아시아는 전쟁이 없이 평화로웠다. 반면 유럽은 계속 전쟁을 하면서 무기기술이 발달했다.

이어 18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증기기관, 철강 제작 등의 기술, 세계적인 유통 시스템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18세기만 해도 영국보다 한국과 중국의 교육, 위생 수준이 높고 행정 시스템도 좋았지만 19세기가 되면서 정반대가 된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이 격차를 만들었지만 원래 문명의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이 문명의 산물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만 18세기에 동아시아에 전쟁이 벌어지면서 대포 같은 무기를 개발할 필사적인 필요성 있었으면 오히려 이곳의 기술이 더 발전했을 수도 있다. 전통 문화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뒤처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의 침략 정당화 논리라고 했지만, 조선 지배층이 바깥 세상의 변화에 무지하고 안으로 권력 다툼을 일삼다가 나라를 뺏긴 것은 사실 아닌가?

일부 맞는 말이다. 내 책에서 썼지만 한국인은 한반도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한국 문화가 뒤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전통을 잘 보면 아주 우수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모든 게 다 좋다는 게 아니다. 나도 조선 시대에 살고 싶지는 않다.

사실 우리 전통 문화가 위대하다는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주장해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하버드 박사가 말했다’는 것 말고 다른 게 뭐가 있나 반문할 수도 있다. 당신은 그런 전통론자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나는 단순히 한국 것이 좋다고 한 게 아니라, 세계적인 기준에서도 통할 수 있고 좋은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령 조선 시대의 춘추관과 그 결실인 실록 편찬은 대단한 것이다. 어떻게 500년이나 정부 기관이 그만큼 정확한 객관적인 정보를 정리할 수 있는지 아주 인상 깊었다.

한국인이니까 뿌리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나는 한국인도 아니고 그런 것에는 관심 없다. 오히려 그만큼 우수한 행정시스템은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에도 가치가 있는 것이고 전 세계에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유기농도 마찬가지다. 환경을 걱정하는 지금 시대에 아주 좋은 영감과 통찰을 제시한다. 현대적이고 세계 보편적인 적용의 측면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전통이 세계적인 보편 가치나 기준의 관점에서 제대로 소개되거나 드러나지 못한 점에 주목한 것이다. 싸이월드도 페이스북보다 더 빨리 시작하고도 한국만 겨냥한 결과 그렇게 됐다.

영어판을 만들었을 때 크게 투자하지 않고 실력 있는 외국 인력을 고용하지 않았고, 한국판과 영어판이 서로 교류하지 않게 했다. 한국 시장만 생각하고 해외를 사이드쇼로 봤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이 99%이고 한국이 1%여야 하는데 그걸 생각 못 했다.
그걸 당신은 ‘새우 콤플렉스’로 설명했다.

새우 콤플렉스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비롯된 강박관념 같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주변 강대국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약소국 지위를 염두에 둔 채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자학적 공포심이 핵심이다.

한국은 지난 100여 년 역사에서 엄청난 민족적 고통을 겪었다. 일본에 강제 합병되면서 2등 국민 취급을 받았고, 일본이 항복한 후에도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 합의로 국가가 분단되는 날벼락을 맞았다. 다음에는 북한의 공격으로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하지만 그 후에 성장을 이루고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르고 월드컵 4강에도 오르는 등 빠르게 위상이 올라갔다. 두 세대 만에 저개발국가에서 선진국 대열로 진입했다. 그러다 보니 이 과정에서 한국은 자기 위상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한국은 자기 위상에 대해 현실과 달리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시야도 좁다. 한반도에만 갇혀 있다.

가령 네이버가 전형적인 경우다. 분명히 많은 사람이 네이버에 투자했을 텐데, 네이버에서 많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는 있지만 아직 영어판, 중국판도 없다. 그만 한 검색엔진에 투자한다면 전 세계를 생각해야지.

국내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중국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을 수 있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을 못 한다. 능력이 아니라 사고의 문제다. 한국은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한국이 국제적 위상이나 지위에 비해 책임감이 희박하다는 점도 문제라고 했는데.

가령 한류라고 해서 동남아나 중앙아시아,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 많이 본다. 그런데도 한국은 그 영향력을 별로 의식 안 하는 것 같다. 여기에 나오는 한국인은 호화롭게 살고 흥청망청 산다. 못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나 환경 문제, 사회 도덕 문제에도 무관심하다.

한국 TV 보면 이상한 가족만 나온다. 이기적이고 패륜적인 사람만 나온다. 한국이 성형수술로 유명해지는 것도 자랑할 게 못 된다. 다른 선진국은 기술이 안 돼서 안 하는 것 아니다. 뛰어난 손재주가 왜 그런 걸로 알려져야 하나.

한국을 어떻게 선전하려고 하기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썼다. 부연한다면?

한국이 지난 50년 동안 급속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어느 대통령이나 장관들 덕분만은 아니었다. 그전에 500년간 조선의 우수한 행정시스템의 경험이 있었다. 물론 조선 말기에 사회 모순이 많았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어져 온 전통이 있었다. 아프리카와는 달랐다.

한국인의 생물학적 유전자가 달랐기 때문도 아니다. 향교나 서원 같은 우수한 교육 제도가 있었다. 조선의 통치(governance) 시스템에도 우수한 부분이 많았다. 장기적으로 보고 50년, 100년 예측해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지금보다 나았다.
“한국은 역사를 단절적으로 인식한다. 현대 대한민국도 과거 조선과는 끊긴 별개의 나라처럼 본다. 이 간극이 한국의 목표, 문화적 중요성, 자신감을 해치고 있다”고 썼는데.

한국인들은 지금 한국의 모습이 1960년대부터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말한다. 1950년대 1인당 GDP가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 비슷했지만, 근면 성실하게 일해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고 자랑한다. 외국인도 그걸 들으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소말리아와 결코 같지 않았다. 똑같이 굶주려 있었어도 그중에 기계공학 박사도 있었고, 500년이나 이어온 학문의 전통을 이어온 사람, 행정을 잘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강의 기적은 맨몸, 맨땅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유구한 지적 문화적 전통이 있었다.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잠재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조선과 비교할 때 흔히 일본의 앞선 개방과 근대화를 이야기하는데, 외국에서는 일찍부터 일본을 아시아에서 앞선 나라로 봤다.

나도 1985년 대만에 유학할 때 잠깐 일본을 여행한 적이 있다. 아주 깨끗하고 살기가 좋아서 일어도 배우려고 했다. 일본에 대한 외국인의 전형적 경험을 나도 했다. 실제로 그때 일본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중국을 전공했지만 일본에 유학 가려고 했다.

일본이 근대화에 앞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섬나라여서 중국 대륙과는 거리를 두면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 있다. 가령 18세기 일본 지식인 중에는 자신들이 동양인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반면 중국과 한국은 유교 사상의 중심에 있어서 혁신이 쉽지 않았다.

19세기 아편전쟁 때 한중일 다 충격을 받았지만 한국과 중국은 철저한 혁신이 어려웠다. 자신의 문화 정체성과 관련된 혁신이어야 하니까. 혁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은 17세기부터 국학 전통이 있어서 중국에 대해 거리를 두고 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자기만의 대담한 정치적 혁신을 단행할 수 있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한국의 갑신정변, 중국의 변법자강의 경위를 비교해 보면 분명하다. 한국과 중국은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중국은 나중에 공산주의까지 전면적 혁명으로 갔다. 일본은 전면적인 제도 혁신을 택하면서 혁명까지 가지 않았다. 아마도 중국 문화와 거리가 있어서 가능했다.

당신은 책에 “한국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일상적인 관리와 보존, 재건에 무관심하다. 그 대신 특정 지역 전체의 재개발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옛날 골목을 청소하고 꾸미는 사람, 미적인 도시환경을 만드는 생활 예술가”라고 썼다. 이 구절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리트윗이 500회를 넘어갔다.

한국 사람들은 옛것을 없애고 새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앞으로도 농업에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들 직업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방에 가면 오히려 좋은 기회를 맞을 수 있다.

추석 문화도 다문화 사회에 걸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무 대화도 없이 시간만 보낼 게 아니라 선조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의 시간으로 삼으면 좋을 것이라고 썼다.

이미 다문화사회인데 의식이 못 따라간다. 시골에 가도 외국인 다문화 아이들이 아주 많다. 우리 아들은 3년 전 서울에서 조그만 국제학교를 다녔지만 학생이 다 한국인이었다. 딸은 장충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국제학교보다 외국인 학생이 훨씬 더 많았다. 우즈베키스탄, 중국, 베트남 아이들이 많다. 대도시에도 시골에도 이제는 외국계가 적지 않다.

그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자기 문화로 느낀다면 앞으로도 대단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끝까지 자기 문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외국인이 어울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나?

한국인이 의식을 바꿔야 한다. 외국인하고 한국인이 공동으로 뭔가 많이 해야 한다. 서로 어울려야 한다. 나만 해도 한국 문화를 어느 정도 공부하고 8년을 살았지만 같이 연구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없었다.

아주 최근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예산 200만원 정도의 연구 제안을 받은 게 유일하다. 국내에 분명히 많은 학자가 한국 문화를 연구하고 있지만, 대개 한국인끼리 연구하고 맨 마지막에 외국어 번역 업체에 맡기는 식이다. 처음 기획 단계부터 외국인과 작업하는 것도 필요하다.

요즘 TV에 외국인이 많이 등장한다. 미디어를 통해 견해를 발표하고 책을 내기도 한다. 어떻게 보나?

사람들 의식이 바뀌는 과정에서 효과가 있고 좋은 일이다. 다만 그 단계에서 머물면 곤란하다. 한국 전문가들 육성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냥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어 책을 읽고 한국어로 발표할 줄 아는 외국인도 필요하다.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국제학부에 가서 영어로만 읽고 쓰고 말하다가 간다. 실제로 한국어로 논문도 안 쓴다. 그러면 한국어 실력에 한계가 있다. 나는 도쿄대 갔을 때 일어로 수업 듣고 논문도 썼다. 그 결과 지금도 일어는 어느 정도 자신 있다. 그때 영어로 수업 들었으면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가령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학생에게 엄격하게 한국어 실력을 요구하고 그만큼 좋은 교육도 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외국에서 유능한 사람 데려오려면 영어를 편하게 쓰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어가 걸림돌이 돼서 우수 인력이 안 온다는 반론도 있다.

균형 있게 하는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기업에서 영어 잘하고 미국에서 MBA 한 사람 필요하겠지만, 동시에 한국어로도 충분히 책 읽고 발표하고 실무를 볼 수 있는 외국인도 필요하다. 가령 인도 정도면 현지 인력에 한국어 교육을 충분히 해서 인재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지금은 우연히 그런 인재가 배출된다. 전략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국 기업 내에서도 외국인을 데려와도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결정에서 배제된다. 다 한국인들이 한다. 외국인이 와서 큰 활동을 하려면 한국어 실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20-30대 우수한 외국인을 유치해서 1년 정도라도 어학에 투자하면 낭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해외에 한국을 알리려면 외국 지식인에게 한국을 묶어서 표현해 제시하는 좋은 영문 개설서나 문학 작품도 나와야 한다고 했다. 요즘은 오히려 외국에서 한국에 관한 심층적인 글과 책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애덤 존슨 스탠퍼드대 영문학 교수가 퓰리처상을 받았는데 탈북자들을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북한에 대해 쓴 책이었다.

미국에 있는 한국 전문가도 대개 북한 전문가가 더 많다. 한국 정부나 기업들은 워싱턴DC에 있는 정치 컨설팅업체에 엄청난 돈을 쓰고 있지만, 지한파 육성에는 돈을 안 쓴다. 단기적이고 일시적 기대 효과에만 연연한다. 일본은 로비스트들에게도 돈을 쓰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 지일파 인재를 육성한다.

당신은 언제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나?

1991년 재미교포 한인인 대학 동창 결혼식 참석차 한국에 처음 왔다. 그때 나는 일본 도쿄대에서 유학 중이었다.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 사람들이 무척 친절했다. 그전에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한국 문화 전통이 있다는 정도는 알았다. 한국의 문학이나 역사는 배우기 전이었다.

일본 고전 문학을 6년 공부했지만 한국에 대해 소개된 것은 거의 못 봤다. 동경대에 실력 있는 한국 유학생은 봤지만. 마치고 하버드대 박사 과정으로 갔을 때는 한국학 교수도 3명이나 있고 한국학 전공자 학생들도 많고 해서 한국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다.

동경대에서는 19세기 중국과 일본 한시를 비교 연구했고, 하버드대에서는 17-18세기 동아시아 통속소설을 비교 연구했다. 그러다 1995년 하버드대 박사과정 중에 서울대에 교환 학생으로 왔다.

그때 인상은 어땠나?

서울은 아주 복잡했고,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았다. 미적 감각이 일본에 비해 부족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단히 친절했다. 내 성격과 잘 맞는 부분이 많았다. 한국 전통 사상과 문학에 끌렸다. 나는 요즘 외국인들이 흔히 얘기하듯이 한류에 빠져서 온 경우가 아니다. 지금도 한국 유행가나 영화는 잘 모르고 별 관심도 없다.

요즘도 그런 질문 받지만, 나는 지금도 매운 것 못 먹고, 채식주의자이기 때문에 고기도 안 하고, 다른 여러 한국 관습에 익숙한 것도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한국은 다산의 사상이나 선비 정신, 조선의 위대한 행정 시스템, 뛰어난 무형 문화 전통에 있다.

한국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일본 유학 마치고 하버드 박사 과정에 가서 일본과 중국을 비교 연구하던 중에 그 사이에 있는 한국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연암 박지원 소설을 보고 상당히 깊이가 있는 작품이고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성격의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나름의 전통을 더 공부하게 됐다.

(그는 박지원(1737-1805)의 소설 양반전 허생전 등 10권 전 권을 영어로 번역해 서울대출판부에서 냈다.)

하버드대는 한국학이 강하다. 우수한 학생도 많고. 그때부터 한국 전공 학생들과 교류도 많았고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어 수업도 있어서 들었다. 중국과 일본은 오래 해서 아는 것도 있고 해서 새로운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해보니까 언어도 재밌었고 한중일 고전소설 비교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또 선행 연구를 조사하면서 한중일 비교는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앞으로 중요할 것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교수가 되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한중일 소설 비교 연구를 하면 주목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이 지금처럼 중요한 나라가 될 줄은 몰랐다. 공부하다 보니 한국에 초청도 받고 연구도 하게 됐다. 100% 내가 한국을 선택했다기보다 한국도 나를 선택한 측면이 있다.

그전에 동아시아 문화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미국 중서부인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에는 동양 사람을 못 봤다. 아버지가 샌프란시스코로 직장을 옮기면서 나도 따라가서 고등학교를 거기서 나왔다. (아버지는 교향악단 사장으로 20년 근무했다.) 그때 중국, 일본계 친구들 많이 사귀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할 생각이었는데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에 불어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다른 방향으로 가볼까 생각하던 중에 앞으로 중국이 중요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자 공부도 재미있었다.

책에 보니 외할버지가 룩셈부르크 정부의 차관까지 지냈다고 썼던데.

어머니가 룩셈부르크 출신으로 미국에 유학 왔다. 아버지는 미국 태생이긴 하지만 유대계 헝가리인이다. 12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온 집안 후손이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6개월 때 뵌 적이 있다고 이야기만 많이 들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와서는 상당히 의식한다. 룩셈부르크는 미묘하게 한국과 유사한 점이 있다. 독일과 프랑스 대국 사이에서 시달림을 받았다.

아버지 쪽 집안에는 나치 학살 피해자도 있고, 어머니 쪽 외할아버지는 친불계인데 그 형은 친독 나치당으로 활동하는 등 집안이 서로 갈라진 아픔이 있다. 내 혈통에 나치 지지자도, 학살당한 유대인도 있는 셈이다.

그래서 비슷한 지정학적 처지에 있는 한국에 내가 끌린 건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유학 생활 더 오래 했지만 한국과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울대에 교환학생으로 자원해 온 건가?

한국을 좀 더 깊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책도 좀 읽고 실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학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일본에서 6년 살았지만, 친구는 2-3명 정도였는데 한국은 1년 새 4-5명이나 생겼다. 아내도 만났고. 일본도 좋은 나라인데 코드가 맞는 사람을 못 만났다.

이만열이라는 한국명은 언제 지었나?

18년 전에 장인 어른이 지어주셨다. 1995년 유학생으로 왔을 때 친구 소개로 아내를 처음 만났다. 중앙대 국악과 대학원 석사 과정이었는데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97년 결혼 후 미국으로 가서 11년간 살았다. 아내는 지금은 다시 대학원에서 한일 불교 미술사를 공부한다.

서울대 교환 학생 때 친하게 지낸 사람으로 지금껏 연락이 이어진 사람이 있나?

교환 학생으로 온 것은 중문과였지만 국문과 수업도 많이 들었다. 정병설 지금 서울대 교수와 당시에 아주 친했다. 같은 고전소설 전공에다 비교 연구에 관심이 많고 해서.

학위를 마친 후에는?

1997년 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에 한 학기 연구원으로 있다가 이듬해 일리노이대에 취직해서 8년간 교수로 있었다. 2005년 조지워싱턴대 교수로 있으면서 주미 한국대사관 자문 일도 잠깐 했다.

그때부터 한국에 올 생각을 했나?

처음엔 미국인 입장에서 미국이 한국을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북한 전문가는 많아도 남한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남한이야말로 정치, 경제, 외교적으로 역할이 커지고 있는데 한국 자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미국인들 상대로 한국의 중요성 알리는 활동들을 했다. 한국 문화원 자문도 하고 그곳에서 내는 잡지 ‘다이내믹’ 편집장도 하고 세미나도 열고 했다.

한국으로 와서 살게 된 것은 어떤 계기가 있었나?

2007년 이완구 당시 충남도지사가 당선된 후 보좌관으로 오게 됐다. 이 도지사 밑에서 일한 최민호 박사가 안식년으로 워싱턴DC에 1년 와 있었는데 소개를 한 것이었다. 의논 끝에 우송대 교수로 와서 강의하면서 보좌관 일도 겸하게 됐다.

그전에 2006년 고려대 국문과에서 교수로 초빙받은 적도 있다. 당시 총장이 국제화를 추진하면서 국문과에 외국인 교수도 받으려고 했다가 교수들 반발로 취소됐다.

나는 한국에서 교수를 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충청남도 도지사 보좌관 제의를 받으면서 외국인이 쉽게 알 수 없는 한국의 내부를 이해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막상 와서 겪어보니 좋은 점도 있지만 어려움도 많았다. 아이들의 한국 적응도 쉽지 않았고 대학과 도청의 이견으로 인한 문제가 적지 않았다. 많이 배웠다.

대전에는 4년 있었다. 충남도 보좌관 2년, 대전시와도 국제화위원회 같은 여러 곳의 자문 활동을 했다. 그러다 2011년에 경희대로 갔다.

책에 보니까 대전시 문장(emblem)도 만들고 했던데 혼자 만든 건가?

그건 시청 자문으로 한 게 아니고 개인적인 관심에서 만들어 본 것이다. 나는 ‘대전 사람만 모르는 다른 대전’이라는 제목의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대전에 대한 역사, 문화,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대전하면 주로 대덕연구단지와 과학도시를 이야기하지만, 그곳에 옛날 신라 시대부터 산성이 많은 곳이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그때 대전 소개하는 웹 사이트도 개발하고 책도 쓰려고 했다. 대전시 지원도 없이 도안이 들어간 티셔츠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대전뿐만이 아니라 한국이 전반적으로 자기 고장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반면에 유럽에 가보면 작은 마을도 휘장을 만들어 자동차에 붙이고 다닐 정도다.

유럽은 오랜 봉건제 전통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물론 그런 관계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한국에도 지역마다 향토사학자가 없지는 않겠지만, 한국이 가지고 있는 대단한 유산에 비하면 그것에 대해 주민이 갖는 관심이나 지식은 너무 부족하다는 얘기다.

자녀들은 한국 생활을 좋아하나?

둘 다 미국에서 태어났다.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까지 다니다 왔고, 딸은 세 살 때 왔다. 아들은 모국어가 영어이고 딸은 한국어가 더 편하다. 아들은 2년 정도 한국 학교에 다니다가 적응이 안 돼 작은 국제학교에 보냈다. 딸은 계속 한국학교에 다녔는데 다음 학기부터는 국제학교에 자기도 도전하기로 했다.

좋은 경험을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 둘 다 한국 이름이 있다. 지민과 정민이다. 하지만 이제는 벤저민, 레이철이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학교 아이들이 한국인으로 인정을 안 해서다. “너는 외국인이니까 한국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해서 다 포기했다. 이제는 한국 이름 절대 안 쓰겠다고 한다. 주변 아이들로부터 한국인으로 인정받았다면 훨씬 쉽게 생활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한국학교에 다니고 있을 텐데.

외모가 차이 난다고 따돌리는 건가?

100% 그렇다. 아이들 보기에 조금 다르니까 외국인 취급하는 거다. 나 같은 어른이야 익숙하지만, 아이들은 힘들어한다. 그냥 친구랑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고 싶은데 항상 외국인 취급을 받고 하니까.

이제 우리도 다문화 사회라고 하는데 아직 그런가?

큰 문제다. 한국은 지금 급속히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데. 레이철은 지금까지 장충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다문화반이 2년 전에 생겼다. 주 1회 다문화 아이들과 공부하는 시간도 생겼다. 하지만 그뿐이다. 지난 50년 동안 한민족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그걸 탈피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겠지.

지금 운영하는 아시아 연구소는 어떤 곳인가?

경희대 교수 세 명, 숙명여대 교수 6명 등이 같이하는 싱크탱크다. 주로 대학생 고등학생 대상으로 문화, 국제관계, 환경 문제를 토론하고, 진지한 세미나도 연다. 어제도 경복궁과 창덕궁의 역사와 문화를 비교 설명했다.

원래 대전에서 시작했다. 그때는 주로 과학기술 관련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중국 일본 미국 등 연구원 국적이 다양하다. 청소년이 쉽게 참여할 수 있고, 국제관계와 문화도 같이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그때만 해도 별로 없었다.

혹시 그동안 글도 쓰고 책도 내고 하는 동안 한국학 전공자들로부터 섣부른 이야기라는 비판을 듣지는 않나?

원래 내 전공은 고전 문학인데 정치외교나 과학기술 같은 다른 분야까지 글을 쓰고 활동하는 데 대한 지적이 비판의 80%쯤 된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고 인정한다.

한국 문화를 잘 몰라서 그런다는 지적은 별로 없었다. 좀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어에 대해서도 오히려 엄격하게 지적해 주면 나로서는 좋겠다. 지금이라도 한국어 수업을 더 하고 싶다. 발음도 고치고 표현도 배우고 싶다.

전공 이외 이야기를 하는 데 대한 비판이 많다고 했는데 그래도 발언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라도 의견을 말하는 외국인이 별로 없어서다. 과학기술 분야는 내 전공은 아니지만 원래 관심이 있었다.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한국의 전통 과학기술에 대해 잘 알면서 한국어로 얘기할 줄 아는 외국인은 몇 명 없다. 외교안보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도 여러 행사에 초대받고 특강도 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나 같은 외국인도 필요하니까 그 역할을 했다. 물론 내가 아주 잘해냈는지는 모르겠다.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판결을 받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나는 한국이 ‘강남 스타일’ 같은 한류 음악 말고도 가치관에 있어서도 세계에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는 나라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본다. 아직 거기까지 못 가고 있다. 동시에 미국인에게도 한국을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

그래서 워싱턴포스트 같은 미국 매체에 영어로 기고도 한다. 나는 한국 홍보맨이 아니다. 미국을 위해서도 미국인들이 한국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가 피상적이라고 했다. 제대로 된 토론에도 참여시켜달라고 썼다.

그런 경우가 많다. 한국인을 만나서 가벼운 이야기는 하는데 심도 있는 대화는 잘 안 된다. 한국인들은 외국인과 심도 있는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늘 “한국에 언제 왔느냐” “매운 김치 먹을 수 있느냐” “아이가 몇 명이냐” 매번 이런 문답만 주고받다가 끝난다. 오늘도 한국 신문을 읽었지만 이런 얘기를 한국인과 토론할 기회는 많지 않다.

고전문학 전공자인데 이제는 국제관계에 대한 글도 쓴다. 앞으로 계획은?

나는 사실 고전문학자로 외교안보 전문가가 아니다. 그런데도 요즘은 국제정치에 대한 칼럼도 쓴다. 공부는 하고 있다. 뭐가 가장 바람직한 길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지난달에도 캐나다에 가서 중국의 고전문학과 춘향전 비교 발표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이쪽에 연구에 몰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좀 더 다양하게 활동하면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을 것 같다.

건방진 얘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미국인으로 한중일 모두 소통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내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과 미국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 책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소개하는 책을 쓰는 중이다. 빠르면 내년 초에 나올 것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1964년 텍사스 내슈빌 출생. 예일대에서 중문학 학사(1987), 도쿄대에서 비교문화학 석사(1992),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1997) 학위를 받았다.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겸임교수, 주미한국대사관 홍보원 이사, 우송대 솔브릿지 국제경영학부 교수를 지냈다. 경희대 국제대 교수 겸 아시아 인스티튜트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세계 석학들 한국 미래를 말하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연암 박지원의 단편소설’ ‘중일 고전소설의 세속성 비교관찰’ 등이 있다.

One response to ““한국은 50년 신생국이 아닙니다” (조선BIZ 2015.08.14)

  1. Eunmi Pang August 17, 2015 at 8:05 pm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고
    당신의 글을 읽을수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1세기의 지금의 과학문명시대에서
    과거와 현재,미래를 연결하는
    터널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만신으로서,
    또 얼마전부터 혁명을 꿈꾸고 준비하는 사람으로서당신에게 희망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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