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정상회담을 향해”(중앙일보 2015년 10월 31일)

중앙일보

“창의적인 정상회담을 향해”

2015년 10월 31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중•일 정상회의가 11월 1일 서울에서 열리게 돼 다행이다. 이번 회의는 3국 정상이 동북아의 미래에 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인프라 구축, 금융•교육•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인 협력의 청사진을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해 3국 정상이 기존의 강경 일변도 자세를 탈피해 북한 문제 해결과 나아가 통일에 이르게 할 장기적인 계획 수립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한•중•일 정상회의가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 회동이 되도록 하는 동시에 3국 간 정책을 둘러싼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개최되도록 할 방안을 찾는 일이다. 그러려면 정상회의가 흔히 리무진으로 상징되는 고위급 외교관에 한정된 만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세 나라 초등학교 간의 다양한 교류 활동을 포함해 예술가와 영화 제작자 및 NGO 간의 공동 프로젝트 진행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모든 수준에서 확장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 관건은 혁신과 창의다. 문화적 요소와 친근한 교류를 통해 정상들 간에 긴밀한 관계가 수립돼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번 회의가 기존의 정상 간 만남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일이다. 흔히 외교 하면 딱딱한 표정의 외교관들이 자국의 확고한 입장에 기반해 서로 밀고 당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다분히 의식적인 행위를 연상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런 건 아니다. 치열한 의견교환 과정 속에서도 외교의 주역들이 정신적 교감을 통해 서로 한발씩 물러남으로써 회담이 끝난 뒤엔 인식 차를 크게 좁혀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필시 뒤따를 관료집단의 엄청난 저항을 고려하면 단 한 번의 정상회의가 놀라운 변화를 유발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뭔가 상징적이면서도 동시에 ‘임팩트 있는’ 행동을 통해 정상회의의 기조를 바꾸는 일종의 ‘선순환 과정’을 유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초 예정돼 있던 미국 정치인들과의 만남은 뒤로하고 불현듯 한 무리의 노숙자들과 점심 식사를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을 뿐만 아니라 모든 논의의 기조를 순식간에 바꾼다.

한•중•일 3국 정상들이 서울의 한 자폐 아동 학교를 몇 시간 방문해 그들과 놀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만남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만 된다면 힘든 도전에 직면한 아동들과 만나는 시간을 갖는 지도자의 모습에 일반 시민들이 감명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정상들 자신도 힘겨운 협상에서 잠시 벗어나 젊은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인류 공통언어인 ‘친절’을 몸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경험이야말로 정상 간 논의에 놀랍고도 인간적인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흔히 외교행사는 당사자끼리 빡빡한 일정 속에 진행되는 협상이나 의전 행사와 산책이나 테니스 경기 등을 통해 서로 흥겨운 시간을 갖는 비공식 행사로 나뉜다. 하지만 세 지도자 간에 서로 전혀 다른 차원의 상호 작용이 가능한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자국이 직면한 도전들을 논의하면서도 이를 딱딱한 협상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서로 흉금을 터놓고 나누는 진지하고 지적인 의견 교환의 시간 말이다.

지도자들이 형식적이고 공식적인 역할에 얽매이기보다는 서로 지적인 교감을 나눌 공간을 만든다면 필시 상호 관계를 심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약간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만 있다면 정상회의와 관련된 공식적인 부분들까지도 확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이처럼 딱딱한 분위기의 회의에서 음악가 등 예술가들이 보여줄 마술과도 같은 능력을 무시하면 곤란하다. 정상회의에서 엄격한 의식과 의전만 따르다 보면 기존의 틀을 깨는 참신한 생각을 하기 어렵다. 이럴 때 뮤지션이나 화가들을 끌어들인다면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 예술가들이 국가원수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이슈를 바라보는 이색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지도자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때 웃음을 자아내는 코미디는 문제 해결에 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번 정상회의의 모토를 현대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에게서 빌려오면 어떨까. “문제를 ‘불리지’ 말고 새로운 기회를 찾자!”(Don’t Solve Problems-Pursue Opportunities!)

만일 우리가 문제에만 집중해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문제뿐이다. 그러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문제 자체보다는 새로운 기회와 잠재성에 눈을 돌린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날 지적 흥분과 낙관적 사고가 저절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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