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을 분리해서 생각하자” (중앙일보 2016년 3월 5일)

 

중앙일보

“과학과 기술을 분리해서 생각하자”

2016년 3월 5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나는 2008~2010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정부 출연연구소 사람들과 긴밀하게 일했다.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해 연구소 사람들과 열띤 대화를 나눴다. 당시 연구자들은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출범으로 과학기술부가 사라진 사실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들은 과학기술부라는 독립 부서가 장기적인 연구 지원을 통해 한국의 고속 산업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과학기술부를 다시 설립할 게 아니라 ‘과학’과 ‘기술’을 분리해 ‘교육과학부’와 ‘산업기술부’를 만드는 게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과학과 교육을 한데 묶는 게 적절하다. 교육과 과학은 둘 다 논리와 상상력을 동원해 진리를 체계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교육의 결합은 한국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정부 관리와 학교 행정가들이 교육을 ‘진리와 윤리적인 이해의 추구’라기보다 용역 혹은 어쩌면 효용으로 간주하게 됐다. 그 결과 교육은 사실(事實)의 전달에 불과한 것으로 의미가 축소됐다. 사실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됐다. 과학을 교육부가 가져가게 된다면 교육은 단절적인 사실의 암기라는 현 상태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배움에서 진리 추구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새롭게 의식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술이란 ‘과학적인 원칙을 실생활에 창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술은 산업과 좋은 짝을 이룬다. 불행히도 많은 한국인은 산업을 금융의 연장으로 간주하는 게으르고도 위험한 습관에 빠졌다. 기술은 투자자들을 위해 이윤을 만드는 수단이 돼버렸다. 그러한 편협한 시각 때문에 우리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의 적용’이라는 산업의 본원적 모습으로부터 멀어졌다.

우리는 흔히 다음과 같이 가정하기 쉽다. 산업은 사람들이 소비하고 싶은 상품을 생산함으로써 부(富)를 창출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윤을 사용해 상품을 구매한다. 하지만 어떤 문제들의 경우에는, 그저 상품을 무료로 나눠줘 모든 사람이 그 상품을 소유하도록 보장하는 게 최상의 해결책이다. 또한 산업이 오로지 돈 벌기와 관련됐다고 전제하는 것은, 지역경제에서 지극히 유용하게 기능할 수 있는 물물교환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게다가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이 시대에 과학과 기술을 혼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기술은 사람들을 오도하는 가상현실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TV나 비디오게임에 나오는 나무나 깨끗한 물을 보고 사람들은 환경이 건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사막화와 공기 오염이 우리를 둘러싼 실상이다. 과학의 기초인 정직한 진리의 추구가 교육과 일상생활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장기적인 발전에 필요한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우리가 과학과 기술을 혼동한다면, 우리는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된다. 또 기술의 사용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을 찾아낼 수 없게 될 것이다.

비디오게임과 같은 기술은 사람들을 현실의 본질로부터 이탈시켜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 또 관심이 다른 곳으로 심하게 쏠려 있기 때문에 심각한 도전에 대해 더 이상 체계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이러한 기술의 오용(誤用)이 사회나 한국의 경쟁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따져보면 비디오게임으로 얻게 되는 이윤은 중요하지 않다. 불행히도 점점 더 많은 한국인이 컴퓨터 게임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우리는 사회에서 기술이 긍정적으로 사용되도록 기술 사용을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규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과학을 활용해 학생들이 언제 컴퓨터를 학습을 위해 사용할 것이며, 언제 학생들에게 컴퓨터나 다른 기기 사용을 허락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규칙을 수립해야 한다.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을 때에는 학생들이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책을 창출하는 활동에 참가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컴퓨터 사용과 불사용이라는 두 가지 체험 사이를 오가는 것이 훌륭한 교육 효과를 낳는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기술의 사용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과학, 특히 ‘기술의 과학(a science of technology)’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한국에는 엄청난 발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잠재력을 구현하려면 기술의 가능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시장의 수요나 욕구를 기술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은 무책임하다. 또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에 살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을 배신하는 것이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과학적으로 사고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기술 사용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지고 있는 윤리적인 의무다. 기술의 부정적인 영향을 면밀히 파악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충동적이며 사회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한국인들이 양산될 것이다.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다스리는 나라의 미래는 정말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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