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는 춘추관•집현전에서 배워라” (경향신문 2016년 7월 28일)

 

경향신문

“‘싱크탱크’는 춘추관•집현전에서 배워라”

2016년 7월 28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근래 들어 서울에서는 싱크탱크의 중요성이 회자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정책을 보다 현대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요인처럼 다뤄지면서 싱크탱크는 마치 선진국의 반열에 들기 위한 관문처럼 취급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제임스 맥간 교수가 만든 싱크탱크 색인에는 한국에서 자리를 잡은 여러 싱크탱크가 들어 있다. 예를 들면 국립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방연구원, 외교안보연구원, 그리고 민간 싱크탱크로는 동아시아연구원, 아산정책연구원, 세종연구소 등이 있다.

사람들이 중시하는 이 색인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은 재정과 인력규모 그리고 주요 기관지에 게재된 횟수다. 그러나 이런 싱크탱크들이 시민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지, 그 연구결과는 실제로 건전한 사회 만들기에 효과적인지, 어떤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한 홍보가 아닌 공동성을 갖고 있는 분석인지에 대한 정밀한 심사는 없다. 물론 국립연구소는 공무원 개개인의 전문성을 위한 교육에 집중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 기후변화, 빈부격차, 빠른 기술발전의 영향에 집중하고 여러 배경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의 활발한 논쟁은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동아시아연구원 같은 민간 연구소의 경우 결국 재정규모라고 하면 싱크탱크가 기부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민간 연구기관 중 아산정책연구원은 최근 가장 두각을 보이며 여러 전문가 및 정책결정권자들을 초빙해 규모 있는 콘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했다. 근래에 나는 이 단체의 총회에 참석했다가 그 분위기가 너무나 폐쇄적으로 변한 데 깜짝 놀랐다.

포럼에서 나눈 이야기는 피상적이거나 의례적이었고, 기후변화나 양극화 심화, 혹은 서구사회에서의 극우세력 대두와 같은 중요한 현안은 다뤄지지 않았다. 젊은 학생이 몇 명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토론에 20대가 참여하는 일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나는 아산포럼에 초대됐지만, 내가 아는 서울에 있는 많은 전문가들은 이 행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해외에서 초대받은 인사들은 우리가 항상 보곤 하는 이들로 구성돼 있었다.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항상 군사동맹이나 자유무역협정 같은 화제만을 강조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이들은 지난 20년간 되풀이해오던 북한 체제 붕괴와 같은 공허한 이야기만을 반복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이 전문가들이 이미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인정한 미사일방어 기술을 홍보하고, 고조되고 있는 핵전쟁의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유일한 접근법인 ‘전략적 무기 제한 협정’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한국 사회의 교육제도에서 학원이 담당하는 기능과 한국 사회의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싱크탱크 집단이 하는 기능은 결국 같아지지 않겠는가? 사교육기관인 학원이 한국의 교육제도하에서 그들 스스로의 배만 불리며 교사가 학교에서 실제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주변화시키는 것과, 이런 싱크탱크 집단이 그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정책결정 과정을 민영화시키려고 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가? 민간 싱크탱크들은 그 역량과 전문성의 부족으로 인해 정부관료, 국회의원 및 기타 정치전문가들이 하고 있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정부 산하의 연구소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간 싱크탱크가 정부보다 나은 역할을 한다는 건 한국을 보다 나아지게 하기보다는 프로세스의 중대한 요소들을 사유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단기적 이익을 생각하는 싱크탱크 집단에 한국의 미래를 위한 연구를 맡기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

한국은 분명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법이 필요하며, 그 답은 교육혁신과 더불어 정부기관 내에서의 활발한 논의, 그리고 정부 각 분야 관료들의 의사결정에의 참여권 확대에 있다. 또 전문가 및 비정부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역사에는 춘추관이나 집현전과 같은, 이미 독립성을 갖춘 연구기관의 훌륭한 전례가 있다. 춘추관은 500년이 넘도록 정부 활동을 기록하였으며, 정책영역에서 좋은 전범이 되었다. 집현전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 당대의 현안들을 공리적 관점이 아닌 윤리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기관이었다. 한국 역사에는 이처럼 윤리적이며 장기적 안목을 지닌 열린 기관의 전범이 풍부하다. 해외 싱크탱크의 경우, 좋은 사례도 있지만 문제점도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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