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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총장님께” (경향신문 2017년 1월 25일 )

 

경향신문

“반기문 전 총장님께”

2017년 1월 25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예상되는 가운데 대선에 출마해 대통령이 되어 달라고 반기문 전 총장께 접근한 사람이 많은 걸로 압니다. 당신이 보유한 차별화된 기술과 국제사회에서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는 분명 좋은 자산이 되어줄 겁니다. 짙은 불확실성의 안개가 한국을 뒤덮은 이 순간에 당신이 나서야 한다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당신 주변을 둘러싸고 있겠지만, 잠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심사숙고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대선의 경우 이미 여러 사람이 출마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모두 그 역할을 잘해낼 수 있는 분들이죠.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이 임무를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은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당신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트럼프는 인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공공연히 반대하고, 유엔을 분열로 몰고 갔던 존 볼턴에게 외교정책 자문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엑손 전임 최고경영자(CEO)인 렉스 틸러슨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했습니다.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대응책을 지지하지 않고,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모든 활동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핵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정학적 위기의 심각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제2의 냉전 혹은 열전이 발생할 경우, 동북아시아 중심에 있고, 미•중 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은 첫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한국은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 반 전 총장님이 갖춘 뛰어난 네트워크를 활용해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계획을 차단하고, 기후변화를 우선순위로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할 대타협을 이루고, 구속력 있는 미래 비전을 이끌어낼 독창적이고 강력한 이니셔티브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은 전 세계 다양한 주체를 하나로 모아서 이 노력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고, 이를 잘해낼 사람은 바로 반 전 총장님, 당신입니다. Read more of this post

“제임스 매티스, 선장 없는 한국 방문…한국, 트럼프 행정부에 ‘NO’라고 해야” (아시아투데이 2017년 1월 27일)

 

아시아투데이

“제임스 매티스, 선장 없는 한국 방문…한국, 트럼프 행정부에 ‘NO’라고 해야”

2017년 1월 27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1989년 일본의 보수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베스트셀러를 펴냈다. 일본이 그동안 능력에 미치지 못한 성과를 보여왔다는 주장과 함께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할 수 있는 일본, 건실하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자신감 넘치는 일본을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냉소적인 우파 정치가이지만 그의 주장은 오늘날의 한국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은 한국이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이 미국 정책에 크게 어긋나있다거나 한국이 그들의 행동과 관련된 어떠한 것도 가질 수 없다는 식의 극단적이고 도발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의 초대 국방장관인 제임스 매티스는 다음주 한국을 방문해 선장이 없는 한국 정부에게 협력에 대한 일련의 요구를 할 것이다. 분명 그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우선적으로 한국을 일본과의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차기 국무장관으로 내정된 렉스 틸러슨과 백악관도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이 섬을 떠나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이 나설 것을 제안했다.

이같은 발언은 너무나 선동적이어서 이들이 망상을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전쟁선포와도 다름없다. 한국이 미래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이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오랫동안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비즈니스, 학계, 지방정부 및 NGO 등에서 한국의 안녕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교류가 있었다. 한국은 중국과 경제적으로 더 긴밀해지고 있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영유권도 없는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확장 행보를 펼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응에 나설 것이다. 잘 살펴보면 이러한 영토분쟁은 과거에도 빈번히 발생했었고, 현재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영토분쟁도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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为世界史的发展贡献韩国智慧

贝一明 (石岳峰 翻译)

  韩国似乎对于美国特朗普政府的登场束手无策。过去70,80年代政府官僚们标榜学习的美国突然变成了似乎比全斗焕时期的军事政府更加右派的政府。

  特别是在比起任何问题都要要紧的安保与军事领域,韩国需要尽快树立自己的立场。由亿万富翁和极右派们构成的特朗普政府正在为与中国政府进行的一场大规模军事对决而做着准备,许多人都预测韩国将成为这场对决的舞台。

  正像驻韩日本大使突然被本国召回的事件一样,华盛顿的极右派分子们正在试图与日本一同对韩国施加压力。

特朗普时代的韩半岛

  特朗普的出现并不是空穴来风,实际上在过去的日子里,关于韩半岛,美国军事方面的态度有着巨大的变化。

 在美国陆军战争学院战略研究所最近公开的一份叫做《在大城市中发生的军事性突发事件(Military Contingencies in Megacities and Sub-Megacities)》的报告中,明确指出美国需要为可能引起大规模死伤的在大城市发生的军事冲突而做准备。菲尔.威廉姆斯(Phil Williams)教授与维尔纳.赛勒(Werner Selle )教授在这篇报告书中提到,这样的军事冲突在不久的未来将要发生,并且难以避免。特别在其中将首尔列举为可能发生这种军事冲突的城市。

 “最有可能发生的情况是:在首尔出现类似的军事冲突。在某些方面,这与斯大林格勒保卫战的情况相似,位于韩国首都首尔及周边地区的区域是一个居住着2300万人口的经济核心地区。”

  在作者的立场看来,未来将首尔推入炮灰的战争,比起与北韩的,更像是美国与中国之间的战争。

  另外,本报告中首尔未必被看作是一个需要全力防卫的同盟国的首都,反而更像是一个较大的地缘政治游戏的受害者,同时,数百万首尔市民还被描绘成了这个地缘政治游戏的牺牲品。

  这种认知变化的方式是很重要的,美国军部并没有把韩国当作盟友来看待,而仅仅看作是将中国束缚起来的战争舞台。他们把韩国与叙利亚,乌克兰等国家一视同仁,将其看作为代理战争的对象。

  1月13日,当时的候任国务卿蒂勒森毫不犹豫的透露了这样的一个想法,即他主张应该封锁中国进入南海的途径,这就好比中国要求美国允许夏威夷从美国独立。

   如果想避免这种噩梦般的情况发生,韩国应该采取果断措施,来结束这种由外国势力之间的小规模代理战争所引发的国内政治的分裂。为此,韩国应当维持自己的独立性,应积极提出自己的关于东亚和平与安定的计划和愿景。

  非常肯定的一点是,这种愿景和计划是不能以聘请昂贵的说客,通过购买美国的武器,劝说美国不要放弃韩国的方式来实现的。

  美国的武器商人一直把美国与中国的冲突视为获取利益的机会,当“反恐战争”的借口不再有效的情况下,他们会绞尽脑汁的去制造类似于冷战或者是热战之类的各种战争。他们认为捏造出的危机越大,权力维持的期间也会随之变长。

  韩国的政界人士尝试与美国极右派人士合作的同时也与中国保持良好的关系,但这样的做法是很难令中国信服的。中国人不是傻子。他们很清楚美国极右派们试图通过以挑起冲突的方式来维持自己统治权威的危险性。在当今经济停滞的背景下,军事主义极有可能成为强大的政治武器。

   特朗普和他的内阁根本不相信气候变化。他们会担心核战争的危险吗?他们只对通过不可预测的极端事件而获得的政治利益而感兴趣。他们也许在未来的几个月内,会将韩国在安保方面认为理所当然的议题完全无效化。

   特别是,在过去30年间生活美满的韩国人们还没能做好任何准备的前提下,政治,经济,文化方面的危机将接踵而至。

G2时代韩国的生存法

 

  400年前的朝鲜很难理解向其派遣救援兵的明朝会因如同专食腐败动物尸体的土狼,秃鹫般的宦官和贪官而灭亡的事实。已经走向灭亡的明朝明熹宗时期,甚至直到灭亡的1640年,朝鲜仍然没能停止对明朝的侍奉。

  如今,正是韩国需要为国内外的安保做准备的时候。韩国应该针对美国,中国,日本和俄罗斯提出自己的愿景。这种愿景应该在明确理由和道德权威的基础上,具有能够说服这四国的能力。

  难道是非常单纯的理想主义?并非如此。因为这就是韩国生存的唯一途径。

  遗憾的是,在美韩两国内,关于韩国安保方面的专家们更像是向军火商乞讨的人。在那些人中还没有一个真正为韩国安保担忧的人。

  其实并不是束手无策,但是为了寻求方法,在当前韩国的政治局势下,更需要一种想象力,创意力以及单纯的勇气。

  如今的韩国政界人士似乎总爱忙于与少女们自拍或者停留于一些对政治话题的肤浅谈话之中。这些人中很少能找到去警告美国日渐凸显的军事主义或者核战争的潜在威胁的政治人。在过去陷入弹劾局面的时候也没能找到有关全球性战争威胁的议论。

   首先,韩国为了推动自国的政治与外交的议程,应更多的了解特朗普所说的“不可预测性的政治(politics of unpredictability)”的特征。当然这不意味着去学习使人混淆视听的特朗普的手段。这里的不可预测性当然是从战术性层面来讲,并不是从战略性的角度来看。国家行为必须是可预测的,而且要保持一定的一贯性原则。

   我想说的是,韩国在应对中国与北韩时所发挥的安保与军事方面的作用,应当以美韩两国的共同价值为基础,并且需要能够提供一种特朗普政府很难预测到的创意性理念。

   虽然我们看到如今的特朗普政府是如何的混乱以及面目全非,但是韩国政府应该坚决支持诸如核不扩散,裁军,干涉介入等美国的传统价值观。即韩国需要很好的履行美国的传统价值观,反过来看美国却不能很好的保留这种传统价值观的现实,韩国需要有勇气,并且利用精辟的语言向其表达出来。

   日本哲学家荻生徂徕曾经说过:“要想成为一个围棋高手有两种渠道,一个是充分摸清现有的规则,另一个是创造属于自己的规则。”

   在历史的某个时间点上,创造属于自己的规则可以产生最好的结果。特别是越小的国家更需要有勇气来参与定义事件以及设置议题。

   在这方面韩国别无选择。如果盲目地追随非理性并且喜好军事主义的特朗普政府只能是自杀式的行为。韩国如果在中美之间模棱两可的看两国眼色将会不再具有效力。

   韩国应当回到根本上来,抓住关于韩国与东亚安保的主导权。更应当积极的定义什么是真正的危险要素并为其解决想方设法。

   如今的特朗普政府无谋的寻求与中国的直面冲突,并试图出售旧式的武器,这种做法对安保没有任何帮助。在这种非理性的状况下,如果韩国能够认真地考虑什么是安保,相信一定会在意想不到的地方遇到知己。

用“美国式价值”说服特朗普

如今我们需要尽快解决的安保事件应当是有关萨德部署的问题。美国政府不顾中国的反对执意将继续推动萨德在韩国的部署进程,此外,韩国和美国的一些势力还将尝试创造一种中国日益威胁到韩国的浓重气氛。

   当然,中国也采取了写高傲的态度。尽管如此,对于这么重要的问题上,没有一个详细的解释而鲁莽的决定是不合理的。围绕萨德部署与中国的冲突显然是韩国现今面临的重要安保问题。

   遗憾的是到目前为止,关于萨德的争论只是被定型在因萨德部署而导致的来自中国的报复或者萨德部署本身的无用性。但是我想指出的是,没有任何一个人谈到有关萨德部署背后隐藏的美国导弹防御计划(MD)。

2002年6月13日,布什政府废除了于1972年签署的ABM(反弹道导弹)条约。这样的做法违背了国际社会的常识,并且在退出此条约后,美国散布着一种能够通过MD系统来阻止导弹攻击的幻想。

有的情况MD系统可能能阻止低空飞行的一部分导弹,但现实是当对方以各种方式干扰时,将难以阻止载有核武器的洲际导弹。MD系统事实上能通过几种简单的应对措施而被轻松的抵消。

防御洲际导弹的唯一途径是通过细心的谈判而解决。

然而,布什和奥巴马政府忽略了这样的谈判,反而作为应对北韩,中国,俄罗斯以及伊朗威胁的对策,积极的尝试推动MD系统的发展。这个与美国国内试图取消以人力运营军队的军需产业人士的阴谋有关。

自里根政府时期开始,军需产业认为军队是浪费数十亿美金的“吃钱的河马”,他们不希望看到向国家政策提供意见或者事事反对的训练有素的军人。他们主张减少以人力为中心的士兵,取而代之,投入更多昂贵的武器系统。MD系统就是最好的例子。

在此如果美国一旦决定退出NPT(不扩散核武器条约)体系,事态将会变的更加危险。这个条约是限制拥有核武器国家的一项国际条约。但是美国承认了以色列与印度的例外情况。再者奥巴马政府批判北韩的同时开发了新的核武器,这显然是违反了不扩散核武器条约中的规定。

如果韩国按照我的提议发挥自己的主导权,显然会刺激到特朗普政府,但是不论韩国采取何种方式,特朗普政府总会想办法挑毛拣刺,因为这就是政治的惯用手法。

但特朗普政府也不是美国唯一的政治势力,美国也不是世界唯一的超级大国,如果韩国大胆的提出有关区域性武器削减的条约,中国,俄罗斯和日本等很多国家中的支持势力将会拍手叫好。甚至支持者也将会出现在美国的五角大楼。

问题不在于什么是正确的政策,而在于韩国的政治家们非常的懦弱而且各个胆小怕事。他们非常恐惧来自媒体的批评。

如果韩国在今后的六个月内,能够不顾一切承受来自特朗普政府的各种威胁和敌对政策,并且坚持上述的原则,韩国将会获得其他曾经怀疑过自己的许多国家的好感,并且建立新的关系。

考虑到存有政治派别之间激烈争辩的美国华盛顿外交届的气氛,持有这样的意志并且持之以恒的保持下去一定能够获得最终的成果。

此外,如果韩国积极的提倡区域内武器的削减,同时北韩也协助限制核武器的开发,最终会共同参与到武器削减的行列中。如果我们想要从核战争威胁中解脱,除了削减以外我们别无选择。

韩国媒体为了应对北韩的核威胁,纷纷主张韩国也应当开发自己的核武器,但是即使韩国拥有了核武器也没有人能保障更加安全。

另一方面,韩国的核武装将导致日本,台湾,越南,印尼等国家接二连三的多米诺式核武装扩散的效应。目前中国拥有三百个左右的核武器,并且拥有紧急情况下可以迅速扩张至一万个的能力。即这意味着没有谁是安全的。

韩国应当敦促美国坚持其“美国式的传统原则”。当特朗普政府尝试与中国政府发生冲突的时候,更应提醒之前奥巴马与习近平之间达成的有关气候变化与军事方面的合作的先例。那样的行动将会使韩国获得来自美国与中国方面的尊重。

韩国的另一个作用是建立一个能够坦率的讨论东亚地区内安保的域内平台。

在这里可以讨论由无人机,机器人,网络战,3D打印等技术引发的威胁。另外需要导出限制使用这种技术的协议,并创建对应新威胁的规范。通过这些努力韩国将成为与区域安保关联的政策创新者。

不幸的是,韩国仅仅是拥有了先进的技术,还未能创造出与其相关联的理论和政策,特别是有关安保概念方面很难做出革新式的尝试。

将气候变化设置为核心安保议题

 

韩国需要努力说服气候变化正在威胁着整个人类,更应该坚持主张安保概念应扩展到涵盖气候变化的水平。

如果朝着那个方向发展,军队将会缩减规模,并朝着增加中美韩等国家相互合作的方向进行重组。只有减少了在导弹,战斗机等方面的消费,剩余的资金才能足够应对气候的变化。因为气候变化不亚于战争与我们的生存问题息息相关。

 如上所说韩国在气候变化等议题中获取主动权才是在美国与中国之间生存的唯一途径。因为通过气候变化倡议的方式可以使韩国在国际社会获得良好的声誉,并借此能够逃脱最终是亲中还是亲美的困境,并且能使韩国在两国之间巩固自己的地位。

韩国主张的气候变化倡议将在美国与中国内创建大量的支持群体。还有追求这种国际性声誉的方式要比按照特朗普政府胃口行事的方式更加具有战略性的效果。

但是韩国的战略将会对军需产业的发展产生刺激。但是一个国家的安保是不能被军需产业所左右的。希腊哲学家修昔底德曾说过:“幸福的秘密是自由,自由的秘密是勇气。”

位于中国内蒙古自治区的库布齐沙漠,最近因为气候变化的原因正在慢慢的向北京的方向移动。北韩的酸性土壤也在增加。在韩国本土生物也在逐渐消失。美国在往后的20年将出现急速的沙漠化,甚至将很难再向韩国出口农作物。釜山与仁川也面临着被逐渐增高的海水面吞没的危险。

更大的问题是,我们对于此类问题还没有任何的准备。

韩国的智囊团对于这样的问题没有提过一言半语。那里的专家们只对北韩导弹威胁评头论足。但是北韩的导弹威胁极度的非现实,反而气候变化显得非常的现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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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am-dong sticker for sale

My design for a sticker for my neighborhood Buam-dong (부암동) has been completed and is now available for 500 Won. Buam-dong is named for a cliff which was attributed with spiritual powers where those seeking help would paste magic spells written on paper. “Buam” meaning “a boulder on which paper has been pasted.”  The area was popular for excursions by the yangban from the 19th century and  the powerful politician Hongseun Daewongun 흥선대원군  built his residence here Seokpajeong (석파정). The logo can be interpreted as the meeting of Inwang Mountain and Bukgak Mountain, but there are several other locations where a similar valley is found in Buam-dong.

 

The final graphics were done by Kim Ki-do 김기도.

logo-final

 

 

“Korea Must take control of the Security Narrative Right now!”

Korea Must take control of the Security Narrative Right now!

Emanuel Pastreich

 

January 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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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세계사에 기여하는 길” 다른 백년

다른 백년

“한국이 세계사에 기여하는 길”

2017년 1월 18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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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to-Peer Science: The Century-Long Challenge to Respond to Fukushima” (Foreign Policy in Focus September 3, 2013)

Foreign Policy in Focus

“Peer-to-Peer Science: The Century-Long Challenge to Respond to Fukushima”

September 3, 2013.

Emanuel Pastreich

(with Layne Hartsell)

 

 

More than two years after an earthquake and tsunami wreaked havoc on a Japanese power plant, the Fukushima nuclear disaster is one of the most serious threats to public health in the Asia-Pacific, and the worst case of nuclear contamination the world has ever seen. Radiation continues to leak from the crippled Fukushima Daiichi site into groundwater, threatening to contaminate the entire Pacific Ocean. The cleanup will require an unprecedented global effort.

Initially, the leaked radioactive materials consisted of cesium-137 and 134, and to a lesser degree iodine-131. Of these, the real long-term threat comes from cesium-137, which is easily absorbed into bodily tissue—and its half-life of 30 years means it will be a threat for decades to come. Recent measurements indicate that escaping water also has increasing levels of strontium-90, a far more dangerous radioactive material than cesium. Strontium-90 mimics calcium and is readily absorbed into the bones of humans and animals.

The Tokyo Electric Power Company (TEPCO) recently announced that it lacks the expertise to effectively control the flow of radiation into groundwater and seawater and is seeking help from the Japanese government. TEPCO has proposed setting up a subterranean barrier around the plant by freezing the ground, thereby preventing radioactive water from eventually leaking into the ocean—an approach that has never before been attempted in a case of massive radiation leakage. TEPCO has also proposed erecting additional walls now that the existing wall has been overwhelmed by the approximately 400 tons per day of water flowing into the power plant.

But even if these proposals were to succeed, they would not constitute a long-term solution.

A New Space Race

Solving the Fukushima Daiichi crisis needs to be considered a challenge akin to putting a person on the moon in the 1960s. This complex technological feat will require focused attention and the concentration of tremendous resources over decades. But this time the effort must be international, as the situation potentially puts the health of hundreds of millions at risk. The long-term solution to this crisis deserves at least as much attention from government and industry as do nuclear proliferation, terrorism, the economy, and crime.

To solve the Fukushima Daiichi problem will require enlisting the best and the brightest to come up with a long-term plan to be implemented over the next century. Experts from around the world need to contribute their insights and ideas. They should come from diverse fields—engineering, biology, demographics, agriculture, philosophy, history, art, urban design, and more. They will need to work together at multiple levels to develop a comprehensive assessment of how to rebuild communities, resettle people, control the leakage of radiation, dispose safely of the contaminated water and soil, and contain the radiation. They will also need to find ways to completely dismantle the damaged reactor, although that challenge may require technologies not available until decades from now.

Such a plan will require the development of unprecedented technologies, such as robots that can function in highly radioactive environments. This project might capture the imagination of innovators in the robotics world and give a civilian application to existing military technology. Improved robot technology would prevent the tragic scenes of old people and others volunteering to enter into the reactors at the risk of their own wellbeing.

The Fukushima disaster is a crisis for all of humanity, but it is a crisis that can serve as an opportunity to construct global networks for unprecedented collaboration. Groups or teams aided by sophisticated computer technology can start to break down into workable pieces the immense problems resulting from the ongoing spillage. Then experts can come back with the best recommendations and a concrete plan for action. The effort can draw on the precedents of the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but it must go far further.

In his book Reinventing Discovery: The New Era of Networked Science, Michael Nielsen describes principles of networked science that can be applied on an unprecedented scale. The breakthroughs that come from this effort can also be used for other long-term programs such as the cleanup of the BP Deepwater Horizon oil spill in the Gulf of Mexico or the global response to climate change. The collaborative research regarding Fukushima should take place on a very large scale, larger than the sequencing of the human genome or the maintenance of the Large Hadron Collider.

Finally, there is an opportunity to entirely reinvent the field of public diplomacy in response to this crisis. Public diplomacy can move from a somewhat ambiguous effort by national governments to repackage their messaging to a serious forum for debate and action on international issues. As public diplomacy matures through the experience of Fukushima, we can devise new strategies for bringing together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around the world to respond to mutual threats. Taking a clue from networked science, public diplomacy could serve as a platform for serious, long-term international collaboration on critical topics such as poverty, renewable energy, and pollution control.

Similarly, this crisis could serve as the impetus to make social networking do what it was supposed to do: help people combine their expertise to solve common problems. Social media could be used not as a means of exchanging photographs of lattes and overfed cats, but rather as an effective means of assessing the accuracy of information, exchanging opinions between experts, forming a general consensus, and enabling civil society to participate directly in governance. With the introduction into the social media platform of adequate peer review—such as that advocated by the Peer-to-Peer Foundation (P2P)—social media can play a central role in addressing the Fukushima crisis and responding to it. As a leader in the P2P movement, Michel Bauwens, suggests in an email, “peers are already converging in their use of knowledge around the world, even in manufacturing at the level of computers, cars, and heavy equipment.”

Here we may find the answer to the Fukushima conundrum: open the problem up to the whole world.

Peer-to-Peer Science

Making Fukushima a global project that seriously engages both experts and common citizens in the millions, or tens of millions, could give some hope to the world after two and a half years of lies, half-truths, and concerted efforts to avoid responsibility on the part of the Japanese government and international institutions. If concerned citizens in all countries were to pore through the data and offer their suggestions online, there could be a new level of transparency in the decision-making process and a flourishing of invaluable insights.

There is no reason why detailed information on radiation emissions and the state of the reactors should not be publicly available in enough detail to satisfy the curiosity of a trained nuclear engineer. If the question of what to do next comes down to the consensus of millions of concerned citizens engaged in trying to solve the problem, we will have a strong alternative to the secrecy that has dominated so far. Could our cooperation on the solution to Fukushima be an imperative to move beyond the existing barriers to our collective intelligence posed by national borders, corporate ownership, and intellectual property concerns?

A project to classify stars throughout the university has demonstrated that if tasks are carefully broken up, it is possible for laypeople to play a critical role in solving technical problems. In the case of Galaxy Zoo, anyone who is interested can qualify to go online and classify different kinds of stars situated in distant galaxies and enter the information into a database. It’s all part of a massive effort to expand our knowledge of the universe, which has been immensely successful and demonstrated that there are aspects of scientific analysis that does not require a Ph.D. In the case of Fukushima, if an ordinary person examines satellite photographs online every day, he or she can become more adept than a professor in identifying unusual flows carrying radioactive materials. There is a massive amount of information that requires analysis related to Fukushima, and at present most of it goes virtually unanalyzed.

An effective response to Fukushima needs to accommodate both general and specific perspectives. It will initially require a careful and sophisticated setting of priorities. We can then set up convergence groups that, aided by advanced computation and careful efforts at multidisciplinary integration, could respond to crises and challenges with great effectiveness. Convergence groups can also serve as a bridge between the expert and the layperson, encouraging a critical continuing education about science and society.

Responding to Fukushima is as much about educating ordinary people about science as it is about gathering together highly paid experts. It is useless for experts to come up with novel solutions if they cannot implement them. But implementation can only come about if the population as a whole has a deeper understanding of the issues. Large-scale networked science efforts that are inclusive will make sure that no segments of society are left out.

If the familiar players (NGOs, central governments, corporations, and financial institutions) are unable to address the unprecedented crises facing humanity, we must find ways to build social networks, not only as a means to come up with innovative concepts, but also to promote and implement the resulting solutions. That process includes pressuring institutions to act. We need to use true innovation to pave the way to an effective applic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to the needs of civil society. There is no better place to start than the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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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学传统与现代社会的危机

朱子学传统与现代社会的危机

贝一明

2017年 1月 16日

 

人类的需求被过分夸大了,这是错误的幸福观导致的结果。刺激需求、激发需求、创造需要作为经济发展的动力被认为是天经地义,在这样的思想指导下,人类社会的发展一味地朝向无休止地追求欲望的方向,如今已面临诸多难题,环境污染、气候变化、能源危机等等,这些问题深层的原因是,人的道德的丢失。仅仅依靠科学技术无以解决这些难题,我们需要回到朱子学传统中,去寻找现代社会危机的解决方案。

朱子学也称新儒学,是南宋朱熹(1130-1200)明文规定的哲学体系的统称,后来成为中国统治王朝的理念基础,极大地影响了中华民族思想文化。新儒学将早期儒家教诲与自然、政治以及伦理融合在一起,为创造出居于支配地位的世界观,而和佛教中已经发展起来的形而上学用语相结合,在认识论上是一种具有综合性的接近方法。

从新儒学的视角来看,世界是一个道德体系,在这个体系内,学者通过接触儒家经典以达到获得最高的特权地位。新儒学名副其实地成为所有正式教育的基础。或许可以说过去数百年间我们最大的失败便是缺乏这样一种能力,那便是对伟大的新儒学传统重新进行诠释,使之能够迅速适用于当前时代的政治、教育、道德以及法律。

实际的情况是,人们普遍认为新儒学传统阻碍了中国的近代化,要想实现现代化,必须打破严格而不知变通的儒家社会秩序,即人们常挂在嘴上的一句话:必须打破一个旧世界才能建立新世界。

不可否认的是,不少文人陷于由新儒学传统的模糊思想推出的关于自我与社会的抽象而非现实的观念之中,抽象地谈论道德与孝悌,忽视了实用学问。他们不再关心简练的治国方法,不关心为提高百姓生活所必需的技术。这些人以读书度日,对社会毫无贡献。由于他们的失败,中国在近代化进程中很长一段时期处于落后状态。

隐藏在上述想法更深层次的观点是,认为西方文化与制度(位于政治或伦理深层的哲学,以及17世纪以来在欧洲不断发展的科学和逻辑学的接近方法)既是卓越的传统,也是近代化的一个核心,同时是通往文明的必要而积极的阶段。

然而从整体上看,18世纪之前,在中国发展出了远比欧洲复杂、微妙的舆论平台,政策过程也更为和平,让更多的读书人参与进来。一个有趣的现象是,尽管中国更加重视文字的价值,但是中国的文盲率远高于19世纪欧洲的文盲率。由此看来,文盲率与经济发展水平的相关性比较高。但是更高的经济发展水平并不意味着具有更高的国家治理水平。


 

直面时代的挑战

 今天我们面临的挑战是,发掘出适用于今日社会、同时与今日社会相关的诸多新儒家传统所蕴含的丰富财富。原因在于这个社会已逐渐变得不可持续,处于过度消费与欲望冲动的恶性循环的边沿,无法展示出人类共同的蓝图。

摆在我们面前的是两个严酷的现实:

第一,西方传统在道德层面的崩溃。尽管西方将先进技术(比如蒸汽机或高水平航海装备等)与有利于政治的精简机构(尽管也建立了全球贸易体系)相结合,在鸦片战争时期显示出压倒性的威力,使得人们在所有领域重新深入地思考文化与制度,但是在今天那种氛围已经发生了天翻地覆的变化。

西方世界大量地生产出漠不关心文化、科学与伦理规范的强大的极右势力,这些极右势力采取不理智、反科学的态度。这种新文化极其明显地表现在人们呼吁美国唐纳德·特朗普政府的本能这一低级政治短见。如果还有其他什么的话,那只是西方文明逐渐和更为彻底的消费文化、叫嚣着的世界大战的观念以及急剧增加的鸡毛蒜皮、萎靡不振的文化相结合的结果。

另一方面,为何在中国近代化遭遇失败,而法国、英国、德国却在19世纪实现飞速发展?假如我们阅读有关历史资料,这时才会发现与中国的相对和平状况相比,西欧国家显得更加不确定,更加残酷和野蛮。

针对环境的可持续发展,那些能够为未来优先制定计划的新文明,探索其根源却是在中国。而且最重要的是,心、伦理以及政治能够最为有机地结合的地方正是来自于有着新儒学传统根基的国家。

通过重新实施的公务员考试制度,我们可以提示出接触政治的新方法,从而让我们的社会活性化,并能够为西方输入充满灵感的新儒学传统。公务员考试制度作为一个应对给现代政治学造成严重危害的政治或极端主义危机的解决方案,也毫不逊色。

现代社会面临着精神上的荒漠,人们及时行乐,道德常识匮乏。我们生活在这样一个空间,即我们放任自己处于虚无的真空状态,要么助长或煽动自己进行无意义的消费,我们在两种状态里徘徊。这看起来只是表面的问题,实则潜伏着深刻的危机,因为它削弱了我们试图对社会进行改革的努力,最终使社会陷入严重的矛盾之中。

其原因在于我们只能提出技术的、公式般的解决对策,而无法在社会政治领域内提出现实可行的精神方面的应对方案。令人惋惜的是,尽管今天我们围绕管理与政治展开讨论,但是这些针对“改革”或“领导能力”的陈腐讨论,既同我们的实际经验相违,更重要的,又未能分析出这个时代在心理上、精神上面临的挑战。

尽管新儒学将焦点置于精神层面的自我修养上,但是它显然不同于宗教,而是与政治或实用的管理问题有着密切联系。这一点使得新儒学成为这个时代的重要财富,这是因为新儒学摒弃了现代宗教的自我放纵及其他世俗性特征。新儒学不具有排他性,不主张必须放弃其他宗教信仰或哲学信仰,反而起到将在现代社会被错误分离的三种因素——自觉、人伦与善政结合到一起的作用。

新儒学传统在精神层面上的这一特性使得它与当今时代有着密切关系。一方面,我们需要应对社会变化给我们的生活带来的心理冲击与精神冲击,但是从现代社会多元化这一角度来看,我们也需要克制明显带有宗教性质的举动。在同人类经验直接相关的心理层面、精神层面的沟通上,无论在政治以及道德方面,新儒学传统为我们提供了更加广阔的空间。

在新儒学传统中,政治或人际关系不是或者无法成为有效的、单独的问题。然而政府运营、机器运转、社会关系改善的方式常常成为伦理方面的问题,常常假设包括所有成员之间互相的体系性献身,因此在儒家的体系内,所有事情都不存在单方面的消耗。

新儒学传统令人惊讶地为我们揭示出技术高速发展条件下社会所应当遵循的某些方针的指引。尽管我们无从知晓技术是如何改变着这个世界的,原因在于技术革命对我们认识的一切手段产生着影响,技术甚至在我们实际无法看到的非常原始的水平上对我们的社会产生影响。

为了有效了解周围的世界,我们需要领悟隐藏在一切现象之下的更为深奥的形而上学的道理。新儒学传统包括了人类社会应对技术革命的策略与方法,同时还为我们提供了其他传统所没有的、在讨论与人类社会有关的长期计划时所要求的模式(解决方法)。

我们生活在通过电视或网络再现的影像占据支配地位的数字化时代。我们处于最肤浅地理解这个世界的阶段(比起任何一个潜在的原则或者形而上学),世界由于数字化革命而变得平凡。我们所不具备的,是对隐藏于我们所观察的一切现象深层的形而上学的感知力。

迄今为止一直在弱化的我们的这种现实经验,在新儒学传统中被准确地、有效地加以了说明。对同事物表面不一致的内在道理予以关注,对世界运转法则予以关注,正是我们在这个时代迫切需要做的事情。在事物的表面被视为全部的今天,这种洞察力不能不认真加以提升。

 新儒学传统确切地向我们揭示了认识世界的方法应当是观念性的、形而上学的分析方法,同时揭示了我们应当如何锻炼身心以获得来自自然、社会以及人类知识绵绵不尽的启发。技术革命通过将实体处理为数字化形象,再对形象进行修剪、变换与强化,无形中干扰了客观世界原有的图像,在认知世界的问题上引起了一定的混乱,并且让人们对形象产生了过多却没有什么益处的依赖。

新儒学传统中包含着相当普遍的适用性,可以不费力地直接加以运用,前提是我们有这样的内在需求,当我们在面对前所未有的挑战时,当我们在制定政策寻找解决问题的方法时,我们以真诚的态度回到新儒学传统智慧的海洋。


 

堕落带来的挑战

我们如今面临着以下几个严峻的事实。对当今社会威胁最大的不是恐怖主义、经济停滞或者政客们的所作所为,而是堕落在我们的文化中的蔓延。我们生活在这样的文化中,即人们不关心国家的未来,漠然地沉迷于美食、美酒、性、娱乐、休闲和游乐。人们生活的目的在于眼前的满足,牺牲精神早已从人们的价值领域中消失。这些都是堕落的典型表现。可悲的是为了创造市场需求,我们做着扭曲的努力,同时我们失去了人类本性的原始力量,将无休止的欲望吹嘘成生命的多彩体验。

我们丢弃了新儒学传统理智、节制、心性,而放任自己成为脱缰野马。人们近于痴狂地沉迷于各种美食带来的味觉刺激,性名正言顺地成为了广告传播的最佳诉求方式,人们只需打开电视即可看到广告中裸露的女性画面,而且明显带有性暗示,这在20多年前不可想象。商家们通过这种所谓的营销策略达到销售产品的目的,然而这也在所有领域导致了大面积的道德沦丧,从而使得政治效力低下。

导致的结果是,国家有关福利、安全或价值观的政策宣告落空,转而沦落为只是在积累财产、强化权力上有所作为。我们需要认识到这样一个事实,即假如社会整体都被这种堕落所取代,那么这种问题根本无法通过经济政策或技术政策来获得解决。

在这里,新儒学传统同样能够为我们提供很多启示。如何恢复文化以及良好的习惯,新儒学中记录了很多可行的方法,并且阐明了堕落的属性,给出了系统的治疗方案。最重要的是,新儒学作为道德行为的动力,强调廉耻的重要性。正是廉耻意识的丧失成为了现代社会的一个悲剧。

在传统社会,一些行为被看作是如同遗弃父母一般可耻而错误的行为,道德义务深入人心,社会接受了深奥的羞耻心的形式。正如儒家有言“君子慎其独也”,伦理意识应当和我们受谁监视无关,而是应该发自内心。
由于丧失了传统的羞耻心,人们认为只要照顾好孩子或者履行职场分配的工作,便是在按照道德行动。他们没有意识到应当考虑这样的必要性,即为了社会全体自身行为应当具有的伦理意义,应当考虑由周围人来决定所应采取的措施。

因此新儒学也包括许多有助于纠正被扭曲的教育体系的东西。现在的教育成了学习本身,不再是具有价值的一项事业,和知识相关的心理层面与精神层面还是处女地。事实上,毕业证仅仅是求职的前提条件,孩子们接受的教育只是提高抽象劳动价值的一种手段。

在新儒学传统中,教育本身对教师和学生来说都是道德行为,在这一过程中,教师与学生之间的人际纽带大多会成为维持终生的关系。

教与学的所有层面在新儒学传统中被拥有精神意义的“敬”概念所主宰。学习这一行为产生了共同研习的团体,人们在小区也主导了针对我们今天不幸遗失的伦理政治的协议。


 

认识与环境

新儒学传统为我们今天所处的繁忙的消费时代提供许多启示。儒学的实践精神为没有过度消费与破坏自然的冲动、拥有活跃性现实参与性的生活提供了一种方案。

我们回顾一下儒学家曾是如何生活的。他阅读书籍,写信或者写随笔,为了更好地理解经典的含义,背诵这些经典。他使用很少的资源,极为谦逊地凡事亲为。他不需要为了在自己人生中寻找别的什么意义而去某个地方或者做某件事。他关心内在的原则而非表象,他只需阅读几卷主要典籍便可找到真理和满足感。

也许我们今天在这个世界上面临的最大挑战,便是减少那些生活在富裕国家、享有特权地位的人对自然资源的巨大浪费。我们有必要摆脱想要拥有好车、居住在大房子里、品尝各种美食的强迫观念。我们坚信自己幸福,却带着过度消费这一悲伤的枷锁。过度消费对环境造成破坏性的影响,也威胁着人类的未来。

我们面临着消费文化的危机和它所导致的气候变化,在这样的形势下,我们回到新儒学传统经典中,学习儒学家们为我们展示的模范精神,获得深刻的启示。当每个人的个人生活合乎道德规范,由此构成的社会生活才是健康的,才有美好的未来。今天对环境造成的巨大危害大多是由生活在富裕的发达国家、消费过多资源的人们所造成的。如果我们不诚心诚意杜绝过度消费,我们便无法向我们的子孙承诺一个可持续发展的世界。

环境破坏背后的另一个原因是,在以数字化为代表的时代,我们的行为和围绕在我们周围不断变化的现象之间的因果关系,对此我们既缺乏认识又缺少警惕。我们看不清我们每天所做的事情和我们周围发生的事情之间有何种联系,以为它们之间不存在任何联系。

我们片刻也没有考虑过使用塑料或纸张会对环境造成何种影响,当我们用餐或者坐在咖啡馆内,我们习惯性使用一次性筷子,用纸杯喝茶喝咖啡,对此我们毫不介意。我们从不去思考我们对为我们服务的工作人员的态度,对他们轻慢而无礼,可想这已使得我们国家的文化降低到了何种程度。

回归儒教传统的核心,有必要意识到我们所做的一切行为最终都是道德行为这一事实。读书、吃饭或者和朋友交谈等所有行为都可以对社会产生积极的影响。

恢复调控我们生活的道德水平,熟悉它的方法,了知其深远的意义,我们便能够创造出健康的政治文化。在良好的文化环境里,人性也会有相应的健康的表现;人性的健康表现,有利于形成良好的文化环境,这是一个良性互动,也是一个充满希望的基本事实。我们无法改变人的本性,但是我们可以通过重新构建具有高尚的伦理行为、被健康生活的各个方面所预期的新文化,从而去实现我们的目标。 원문언어

或许可以说过去数百年间我们在东亚最大的失败便是缺乏这样一种能力,那便是对伟大的新儒学的传统重新进行诠释,使之能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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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퇴폐주의, 현대인은 수치심을 잃어버렸다” (아시아튜데이 2017년 1월 16일)

아시아튜데이

“소비주의•퇴폐주의, 현대인은 수치심을 잃어버렸다”

2017년 1월 16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주자학 전통이 내세우는 엄격한 개인의 도덕적 규범, 교육의 역할에 대한 확증, 그리고 공직에 대한 헌신이 20세기 한국의 근대화를 가로막았고, 창조성을 억압하여 융통성 없는 남성중심의 가부장 사회가 되는데 일조했다고 여긴다. 이 또한 조선 후기에 유입되어 강점기 시대에 변질된 주자학 전통의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이 가진 장점 중 많은 부분이 주자학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이 있다. 특히 세종대왕에서 다산 정약용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훌륭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올바른 거버넌스 (governance, 조직 운용)와 교육, 그리고 도덕적 책무감이 있었다.

주자학은 중국 송나라(1127-1279) 시대의 학자 주희 (1130-1200) 가 설립한 철학 체계를 이르는 말로, 이는 이후 중국과 조선 왕조 건국의 기반이 됐다. 주자학은 형이상학과 인식학을 합성한 접근법으로, 자연세계와 통치 세계 그리고 윤리 영역을 포용하는 세계관을 창조하기 위해 초기 유교의 가르침과 불교의 형이상학적 용어를 결합한 것이다. 주자학의 세계관은 실질적으로 조선시대(1392-1911)에 행해진 거의 모든 정규교육의 토대가 됐다.

어쩌면 지난 100년 동안 동아시아의 가장 큰 실패는 현시대 정책과 거버넌스, 교육, 도덕성과 법에 대한 논의를 위대한 주자학 전통에 비추어 재해석할 수 없었던 우리의 무능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주자학 자체가 역사교과서의 몇 줄에 불과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인 교육을 받은 이들에게 크게 노출이 되지 않다 보니 주자학 전통은 한국의 근대화를 가로막고 우리가 서구화되고 발전된 환경을 위해 극복해야만 하는 엄격하고 유연하지 못한 유교적 사회질서로 연관되곤 한다

이 잘못된 믿음은 근대화의 ‘실패’가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된 주된 원인이자 주자학 전통이 한국의 최대약점으로 여겨지는 한국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주된 내용은 주자학 전통이었던 추상적 이론과 원칙, 그리고 조상들의 가르침에 대한 맹목적 충성에 사로잡힌 양반들의 실수로 한국은 서구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는 곧 근대화 실패의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은 주자학 전통이라는 모호한 학문으로부터 만들어진 자아와 사회에 대한 추상적 이론과 비현실적인 사고에 사로잡혀있었다고 주장되고 있다. 즉, 양반들은 ‘덕’과 ‘효’에 대한 주자학의 고지식한 추상적 관념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더 이상 국가를 다스리는데 필요한 노하우나 국민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기술에 관심을 두지 않고 실용학문의 중요성을 간과했습니다. 그들은 종일 책을 읽으며 사회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한국은 근대화에 뒤쳐졌으며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 이후에야 서구과학이 도입되고 실질적인 국가성장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믿음은 ‘서양의 문화와 기관, 즉 17세기 유럽에서부터 이어져온 거버넌스의 배경철학, 윤리, 그리고 과학과 논리에 대한 접근방식이 곧 우월한 전통이자 근대성의 유일무이한 조상이며, 문명화로 향하는 필수적이고 긍정적인 단계이다’라는 가정이 뒷받침한다. 이 주장은 (18세기 이후) 기계공학이나 (19세기 이후) 의학분야의 경우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고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한중일 3국은 18세기 이전에 훨씬 더 복잡미묘한 공공 분야가 있었으며 유럽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훌륭하게 광범위한 분야의 지식인을 정책과정에 참여시켰다. 또한 문해력에 대한 가치가 더 높았고 19세기 이전 문맹률은 유럽보다 동아시아가 더 높았다.

오늘날의 문제와 맞서다

오늘날 우리가 맞서야 하는 문제는 오히려 주자학 전통에서 발견한 소중한 지혜를 오늘날의 사회, 즉 소비와 충동적인 욕망으로 얼룩진 지속불가능하고 근시안적이며 인간의 공통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 일은 오늘날 냉엄한 현실의 두 가지 문제점으로 더 시급해지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서양 전통의 도덕적 와해다. 만약 서양의 고급기술과 정교한 관리기관이 문화제도에 대해 아시아 수준으로 심도 있게 재고했더라면, 오늘날의 환경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서방이 만들어낸 극단적 보수주의는 문화나 과학 또는 윤리적 규범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며, 비합리적이며 반과학적이다. 이 새로운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거버넌스를 하기 위한 이들의 근시안적이고 본능에 호소하는 저속한 접근방식이다. 오히려 서구문명은 점점 급진적인 소비문화와 세계전쟁, 그리고 더 진부하고 추상적인 표현문화와 가까워지고 있다. 학교에서 우리는 19세기에 한중일이 근대화에 실패했고 프랑스와 영국, 독일은 급속도로 성장했다고 배웠지만 현재 서구 문명은 아시아에 비해 더 의문스럽고 잔인하고 야만적이다.

지속가능성과 환경보전을 강조하며 미래를 생각하는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은 오히려 아시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자학 전통에서 유념, 윤리와 거버넌스가 가장 정교하게 결합돼 있다.

우리는 재해석된 주자학 전통이 현대 정치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오늘날의 위태로운 거버넌스와 극단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공무원심사제도를 통해 거버넌스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안하여 서방 사회가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볼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정신적 황폐에 빠져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영혼에 공허함을 주어 우리를 생각 없는 소비주의로 이끈다. 이 극심한 위기는 우리가 하는 사회개혁의 노력을 위축시키고 불가피하게 끔찍한 모순을 낳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사회정책에 관하여 단지 기술적이고 관료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뿐,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관리와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진부한 ‘혁신’과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있고, 이는 현실과 관련이 없고 이 시대의 심리적, 정신적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주자학은 정신적 계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종교가 아닌 거버넌스와 실질적 행정 문제를 다룬다. 이것이 현 시대에 필요한 이유는 방종하고 세속적인 근대종교를 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자학은 배타적이지 않다. (타 종교나 철학적 신념을 버릴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 잘못 분리되어 있는 실천과 정신적인 인식, 개인 윤리와 훌륭한 정부를 하나로 화합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측면이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우리 삶에 미치는 사회 변화의 심적, 정신적 영향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다양성으로 인해 논쟁이 종교적으로 치닫지 않게 해야 한다.

주자학 전통은 거버넌스 뿐만 아니라 도덕성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인간 경험의 심적, 정신적 측면에 대한 보다 솔직한 논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주자학은 거버넌스 또는 인간 관계가 단순히 효율성이나 재주의 문제가 아닌 정부를 운영하고, 가계를 운영하고, 사회관계가 발전하는 방식으로 보기 때문에 항상 윤리적인 문제이자 한 체제의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하는 약속을 수반하게 된다. 유교 체제에서 일방적인 행동은 없다.

주자학 전통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급속한 기술의 발전에 적용할 수 있는 여러 가치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기술이 얼마나 세상을 변화시켰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기술의 진화는 우리가 인지하는 방식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고 기술은 사회의 기초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세상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려면 모든 현상의 밑바탕이 되는 원리의 형이상학을 인식해야 한다. 주자학 전통은 어쩌면, 비록 필자가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보진 않았지만, 인류사회가 기술 진화에 적절히 대처하고 인류사회의 미래를 위한 다른 어떤 전통보다 높은 차원의 장기적 계획수립에 필요한 체계를 포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재현되는 시각적 이미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 원칙이나 형이상학적 존재보다 점점 더 많은 중요성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대, 이른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피상적인 이해만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함정에 갇혀 있으며 우리의 인식지평은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2차원적인 세계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눈으로 보는 모든 현상 뒤에 있는 형이상학 존재를 가늠하는 지혜다.

주자학 전통은 현대사회의 이런 결함을 짚어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다. 눈에 보이는 사물 반대편에 서서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원칙을 파악하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겉모습이 절대적인 시대에서 통찰력은 아주 중요하다.

분명히 주자학 전통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분석함과 동시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단련하여 한 차원 더 높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기술의 진화는 현실세계의 이미지를 혼란 시켜 현대 사회를 혼돈에 빠뜨렸고 우리는 추상적인 원칙 대신 보여지는 이미지에 치우치는 안 좋은 습관을 만들게 됐다. 우리가 전례 없는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원칙과 정책을 만들고자 한다면 주자학 전통은 우리에게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많이 전해 줄 수 있다.

퇴폐주의의 도전 

진실을 직면하자.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테러리즘도 아니고 경제 침체도 아니며 특정 정치인들의 행동도 아니다. 최대 위협은 바로 우리 문화에 확산된 퇴폐주의다. 오늘날 개인은 국가의 미래에 대해 별로 염려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음식, 음주, 성적 쾌락, 휴가와 스포츠를 무분별하게 탐닉한다. 삶의 목표는 순간적인 쾌락이 되어버렸고 희생이란 가치는 잊혀졌다. 이것이 전형적인 퇴폐주의다.

안타깝게도, 시장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잘못된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는 인간의 원시적인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젊은이들에게 욕망을 멋진 경험으로 위장했다. 우리는 전통적 유교사상이 주장하는 합리성과 자제력, 그리고 마음가짐을 한 마리의 풀어놓은 짐승으로 대체했다.

텔레비전 속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입안으로 많은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대고 있고, 수많은 광고에는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포르노그래피로 금지되었을 만한 야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나온다.

이는 제품을 판매하는 전략일 수 있지만, 모든 분야의 거버넌스를 저해하는 도의의 퇴폐를 불러일으킨다. 결과적으로 정책은 국가의 복지나 안보 또는 가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금정적 풍요와 권력을 모으기 위한 기회로 변질됐다.

만약 사회 전체가 이 퇴폐주의에 빠진 것이라면, 이 문제가 경제 정책이나 기술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도 주자학 전통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 문화와 건강한 습관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과 퇴폐의 성격과 그 치료법에 대해서도 많이 쓰여있다. 무엇보다 주자학 전통이 강조하는 것은 도덕적 행동의 원동력인 수치심(shame)의 중요성이다. 수치심을 상실한 것이 현대 사회의 비극이었다.

전통적 사회에서 특정 행동은, 이를테면 노부모를 유기하는 행위 등을 수치스럽고 잘못된 것으로 여겨졌다. 도덕적 명령은 내면화되었지만 수치심으로 형태화됐다. 유교의 가르침에 “군자필신기독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혼자 있을 때에도 반드시 신중하게 행동한다 ”는 뜻이다. 윤리는 남이 지켜보든 아니든 자신이 스스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수치심이라는 전통적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녀를 잘 돌보고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다하는 것이 도덕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이나 혹은 주변인들의 행동이 사회 전반에 어떤 윤리적 의미가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자학은 우리의 부서진 교육체제에 많은 것을 전해줄 수 있다. 교육은 산업이 되어 더 이상 배움에 대한 가치가 없어졌으며, 지식의 정신적, 영적 측면은 탐구할 수 없게 됐다. 오히려 학위는 직업을 찾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으로 전락했고 아이들이 받는 교육은 단지 추상적인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이 됐다.

그러나 주자학에서는 교육자체가 스승과 제자 모두에게 도덕적인 행위로 보고 있다. 스승은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미래의 노동력을 최대로 향상시켜주는 것도 아니다. 이 과정에는 스승과 제자간의 평생 갈 수 있는 유대관계가 필요하다. 가르침과 배움의 모든 측면은 주자학 전통에서 ‘존경’이라는 영적 의미가 담겨있다. 배우는 행위는 해석의 공동체를 만들었고 그 공동체 속에서 윤리적 거버넌스에 대한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이는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부족한 측면이기도 하다.

 

인식과 환경 

마지막으로, 주자학 전통은 분별없는 소비문화에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 제품을 소비하거나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적극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유학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상상해보자. 그는 책을 읽고 편지와 에세이를 썼다. 고전을 다시 써보며 그 글의 뉘앙스를 잘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는 매우 적은 생활용품만을 사용했고 매우 절제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표면적인 의미가 아닌 근본원리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므로 그가 읽는 책 속에서 무한한 깊이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오늘날 국제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은 선진국에서 엄청나게 낭비되고 있는 천연자원을 줄이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더 좋은 차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 더 큰 집에 살고 싶은 욕구, 음식을 과하게 먹고 싶은 욕구를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과소비는 행복의 준다’는 믿음아래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는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몇 권의 책에서 깊은 깨달음을 찾아내는 유학자 모델은 소비문화의 위기와 그에 따른 기후 변화를 겪고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지구 환경의 엄청난 피해는 소비문화의 정점을 찍고 있는 선진국들로부터 온다. 우리가 소비를 급격하게 줄이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지속 가능한 환경을 물려줄 수 없을 것이다.

환경 파괴의 또 다른 요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디지털 표현의 시대에서 인과관계라는 행동간의 연관관계를 인지 못하게 된 점이다. 더 이상 우리는 매일 하는 일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과의 관계를 명확히 볼 수 없게 됐다. 심지어 서로 관련이 종종 이 부분을 잊곤 한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있을 때에도 일회용 컵에 커피를 마시며 이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는 카페 종업원을 건방지고 무례한 태도로 대하면서 이런 태도가 우리 문화를 타락시킨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찬란한 유교전통의 최고점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궁극적으로 도덕적인 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 책을 읽고, 식사를 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이 모든 행동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삶의 도덕적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건전한 정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인간 본성을 바꿀 수는 없지만, 수준 높은 윤리적 행동을 모든 삶에 적용하는 문화를 재정립하는 방식으로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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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period of increasingly irrational discussions concerning the nature of the threat of nuclear weapons, I find this very straightforward chart to be quite help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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