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사이클의 끝점… 정치 시스템 혁신·시민참여 확대해야” (디지털타임스)

디지털타임스

“올해는 사이클의 끝점… 정치 시스템 혁신·시민참여 확대해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인터뷰

2017년 3월 2일

예진수 선임기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 이름 이만열·53)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잘 안다는 평을 듣는 학자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물어보면, 선비 정신과 공동체 정신 등 우리 문화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훌륭한 강점들을 무지개처럼 뽑아내 보여준다. 명문 예일대에서 중국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도쿄대와 하버드대에서 각각 석· 박사 학위를 받은 석학이다.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커피를 가지고 온 여직원에게까지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그의 태도에서 동양적 예의와 따뜻함이 묻어났다.

지난 2월 23일 디지털 타임스 회의실에서 만난 그에게 대통령 탄핵심판 와중에 있는 한국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대해 다각도로 물어봤다. 정치, 경제와 문화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해박함과 통찰력에 “아 그렇지”라며 절로 무릎을 쳤다.

-한국 사회가 일찌기 볼 수 없었던 대변혁기를 맞고 있다. 정치가 길거리 싸움으로 전락했다는 혹평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통령도 탄핵 심판 중인데 미국에서도 탄핵이 있을 수 있다. 시민 의식이 약해졌다는 것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 트렌드다. 미국 백악관이나 한국의 청와대, 국회의 정치인과 일반 시민들은 직접 관련이 없다. 정치인들이 자기들끼리만 정치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끼리 서로 모르고 교류하지 않는다면 선거가 있더라도 큰 의미가 없다.”

-로버트 퍼트넘도 ‘나홀로 볼링’이라는 책에서 정치적 냉소와 무관심이 팽배한 사회를 지적했다. 그것과 같은 맥락인가.  

“맞다. 유명한 그 책에 나온 것처럼 과거에는 시민들이 동네 사는 사람들 이름을 다 알고 있었고 직접 민주주의를 뜻하는 참여적 행사가 많았다. 서울에서 몇년째 살고 있지만 옆집 사람과 같이 모여서 얘기한 적이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희박한 ‘사회적 사막’이 됐다. 1970년대는 절대 민주주의가 아니었지만 동네 사람들을 서로를 잘 알고 있었고,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주기적으로 만나서 교류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테다 스카치폴도 ‘축소된 민주주의(Diminished Democracy)’라는 책에서 같은 주장을 폈다.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착한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기대할 게 별로 없다. 미디어도 수동적이 됐다. 신문을 읽어도 핵심 정책이나 현재 국회에서 검토되고 있는 법안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없어 답답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국민 무관심 때문이라고 보는가.

“국민적 무관심이 정경유착의 큰 이유다. 유교경전인 ‘대학’에 나오는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있다. 아무도 없을 때도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이다. 최순실 사태를 비롯해 수 많은 부정 사건들의 배경을 보면 이것은 내가 홀로 하는 행동이며, 다른 사람이 모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돈과 권력이 형성된다. 신독과 정반대다. 공자와 맹자 사상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상당히 옳다. 조선 시대에도 많은 고위관료와 학자 등은 소박한 생활을 했다. 경복궁도 중국에 비할 때 소박하며, 화려한 것이 거의 없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검소한 태도로 살았고, 나라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이상한 거래를 안했다.”

-촛불집회를 광장 민주주의라고 하는데,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았나.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법에 의한 지배와 책임 정치를 요구하는 모습은 매우 숭고한 것이며, 정치의식의 고동이 먼 나라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있다. 비록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정치인의 말이라고 해도 일단 의심하고 봐야 한다. 정치인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들을 판단해야 한다. 당신이 뽑은 정치인을 계속 주시하고 감시해보라. 그러면 작은 변화가 나타난다. 한국에서 시민들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국회를 찾아가서 직접 의원들과 토론하는 문화가 없는 것도 문제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한국경제가 장기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국에서는 무역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다국적 차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올해는 심각한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 해운업과 조선업 등의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간신히 견디고 있는 산업에 국민 혈세를 지원해 간신히 유지시키는 정도다. 한국은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 교류를 급속하게 축소한 중국, 보호무역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 사이에 끼어있다. 세계적으로 완전 자유무역 체제가 붕괴 위기에 노출해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한 자유무역과 재정 금융 투자 전략은 일부 효과가 있었지만 재검토가 필요하다.”

-경제 분야에서 어떠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고도 성장 시기의 한국은 돈을 저축해서 국내의 자본을 모았다. 한국의 교육 수준이 높았던 것도 성장의 동력이 됐다. 앞으로 한국 정부는 국내 금융 제도를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꼭 필요한 규제는 해야 한다. 빈부격차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인천공항에 가면 비싼 옷과 시계 등만 판다. 시민들을 위한 생필품 100개, 1000개보다 하루에 부자에게 값비싼 시계 1개만 팔면 된다는 발상이다. 앞으로 중소기업과 서민경제를 키워야 한다. 대기업에 대한 금융 비중을 줄이면서 일반 서민에 대한 마이크로 파이낸스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이 100만원이든 500만원이든 쉽게 빌릴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그 아이디어를 보고 투자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한국 국내 금융과 내수 기반 산업, 기술, 교육 기반 육성이 무척 중요하다.”

-한국의 산업 공동화가 심각하다. 

“지금은 몇가지 주기가 절묘하게 겹치고 있다. 첫째는 5년 정권 주기의 마지막 1년이라는 점이며, 10년의 보수 정권이라는 사이클의 끝점이기도 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1961년 시작된 한국의 산업화가 60여년만에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 산업의 성장 둔화라는 싸이클이다. 이미 많은 제조업체가 해외로 빠져나갔다. 경제가 좋아질 전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인종 차별 주의 등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는 “모든 공장을 중국으로 보내선 안된다”고 진실을 얘기한 점 때문이다. ‘미국우선주의’를 들고 나온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왜 한국 정치인 중에서는 ‘코리아 퍼스트’를 얘기하는 사람이 없는가. ”

-교육 분야 혁신도 시급한데. 

“교육은 미래에 대한 투자다. 김구의 문화론은 굉장히 멋있다. 그것은 김구의 발상만이 아니고 한국 유교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가 핵심이며 ‘문화가 잘 되면 다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퇴계 국제심포지엄에서 내가 발표한 내용도 한국 유교 사상의 강한 점은 교육과 행정, 윤리가 일치했다는 점이라고 꼽았다. 정치나 행정에 도덕적· 윤리적 목표가 있었다. 한국의 청년들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체화된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야 하며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들과 힘을 합해 돕는 따뜻한 커뮤니티를 만듦으로서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보나. 

“일자리 문제나 경기 침체, 정치 문화 후진성 등을 개별 개별의 문제로 보고 있고, 시스템 자체의 혁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지만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지금 부각되고 있는 문재인·안희정·이재명·안철수·유승민 의원 등 누구나 다 가능하며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제도적인 정치 문화, 시민사회, 정부 시스템을 제대로 혁신하면 정치인이나 개인은 큰 관계가 없다. 정부 역할을 제대로 하느냐는 그 주체가 보수냐와 진보냐의 문제도 아니다. 강한 정부란 장기적 계획을 세워서 제대로 실천하는 정부다. ”

– 시민들의 참여 역시 중요하지 않을까. 

“굉장히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1974년에 물러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국민들로부터 인기도 없었다. 하지만 닉슨 대통령 때 아주 좋은 정책과 법안이 많이 통과됐다. 인종 차별 문제와 환경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했다. 많은 시민들의 강력한 요청 때문에 닉슨은 어쩔 수 없이 제도를 바꾸게 된 것이다. 정치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치 문화가 중요하다. 많은 정치인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게 아니고 자기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희생의 문화가 꼭 필요하다. 자기만 생각하지 않고 옆사람, 이웃, 나라, 세계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예진수 선임기자 jiny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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