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실학(實學)의 의미 재발견 – 미국 의존적 사고방식 버려야” Korea IT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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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실학(實學)의 의미 재발견 – 미국 의존적 사고방식 버려야”

2021년 1월 10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최근 한국인들은 한때 익숙했던 미국의 정치 및 학술 기관들이 예전같지 않다는것을 파악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버드 교수들이 COVID19에 대한 비이성적 논쟁을 세우는것과 미국 워싱턴 D.C.의 정치인들이 가장 저속한 수준에서 비열한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한국인들은 실망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대부분의 한국 오피니언 리더들은 그들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의 최고 대학에서 공부할 때 가입했던 지식인 커뮤니티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은퇴한 전임 교수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이러한 지식층 내에서 미국의 문화적 제도적 붕괴가 속도를 내고 있는것을 간파하고 점점 뒤로 물러서고 있다.

한국인들은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에서 가져온 콘텐스를 읽고 한국 언론에 구차스럽게 반영해 가며 그들은 한때 극히 존경했던 미국인들의 말도 안되는 발언에 이제는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반응을 자제 하려고 많이 노력 하고 있다.

향수와 부정의 문화가 서울을 휩쓸고 있다. 미국과 한국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신뢰할 수 있는 우방국의 도덕적 붕괴로 사회 지배층에 대한 기본적인 가정이 뿌리째 흔들리면서 한국이 대규모 문화적 정치적 위기를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600년대 명나라(1368~1644년)가 심각한 사회적 균열을 내면서 조선을 휩쓸었던 비슷한 문화적 실명(눈멀음)이 한국을 휩쓸었다.
그 결과 쇄국주의를 택하게 되었던 조선은 미래 발전에 대한 가능성마저 차단하는 국면을 맞이했다.

16세기 후반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군대를 파견한 명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미국이 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기위해 한국전쟁 당시 동맹 관계를 맺은 비슷한 상황이었다. 두나라는 혈의 동맹국이었다.

명나라의 대명률 법과 외교관습, 철학사상, 교육적 및 문화적 규범은 한국에서 의심할 여지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명나라가 17세기 전반에 정치적 내분, 퇴폐, 재정적 파산으로 급속히 붕괴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644년 명나라가 만주족에 의해 전복되었을 때, 만주족의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중국내에서 자국을 갈라놓는 산적 군대가 원인이었다는것을 조선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문화적, 지정학적 지위를 재평가하며 자신들의 전략을 재정립하기보다는 비참하게 망국으로 치닫는 명나라에 대한 향수에 다시 빠져들게 되었다.

정복에 성공한 만주족의 세력은 한국으로부터 새로운 청왕조를 인정하도록 강요했지만, 조선은 그의 죽음 이후 수세기 동안 마지막 황제 숭정 崇禎 연호를 계속 사용했고 서원 한국에서는 오늘날에도 그 연호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개혁보다는 명나라의 잃어버린 중국 전통을 고수하는데서 비롯된 한국의 정통성인 소중화( 小中華)의 사상을 받아들여 숭고한 전통을 지탱한 유일한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싶어했다.

그러한 감정적 지조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외국의 어떠한 영향에서도 벗어나고자 완고했던 조선은 국가 봉쇄를 선택했으며 그 결과로 진보적 과학기술에 뒤처졌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매우 흡사한 반복적인 역사적 사고 방식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미 국무부와 같은 기관들이 전문지식을 배척하고 아첨꾼들로 가득 차면서, 하버드 대학교는 미국의 정치적 자유가 약화되고 경제가 침체되면서 다국적 은행과 제약회사들을 위한 홍보 기관이 되었다. 미국경제는 완전 초부유층의 지배하에 들어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옛 조선처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변질된 미국에 대한 향수에 계속 젖어있을 뿐이다.

명나라 후반과 청나라 초기의 한국 정치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정치학자들은 명나라의 권위를 유지하며, 명나라의 몰락 이후에도 계속 좁고 편협적인 견해를 중심으로 파벌을  정당화 했다.

실학(實學)모델/실용학습

어떠한 개혁과 해외 혁신 수용 모두를 무력화시키는 명나라에 대한 애수와 향수가 국가 전체를 장악하고 있을 당시 18세기 한국의 지식인 몇 명이 새로운 철학적 전망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실학 (實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제가, 박지원, 정약용 등 용감한 학자들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문화•지적 주체성의 설립을 권고하고 한국이 동시대 외국 문화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 할 자격을 키우는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학자들은 또한 청나라가 만주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더 이상 명나라의 맥을 따르지 않더라도 혹 한국에 적합한 청나라의 기술, 정책 또는 제도가 있다면 당연히 채택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즉 그들은 이미 몰락한 명나라에 대한 향수로 인해 조선이 신기술과 지정치학적 현실에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청나라로부터 해롭거나 부적절한 영향을 받는 정책, 기술 및 제도를 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이 학자들은 일본과 서방 국가에 대해서도 같은 경각심을 제시했다.

그 정신이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미국 문화, 기술, 정책 및 공공 기관의 많은 측면이 한국에 엄청난 가치를 계속하고 있으며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혁신이 있다. 하지만 반미주의에서 미국을 최고로 보는것은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이다.
미국은 빛을 많이 잃었고 지배구조의 질과 문화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나같은 미국인은 이점을 당연히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인들이 현실을 스스로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국민이라면 미국 사회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가차없이 거부해야하며 오히려 항거하여야 할것이다.

오늘날 일본, 독일,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한국에 여러 모델과 전통을 공유 제공하고 있지만, 분명 한국에 부적절하고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외국 전문가들의 주장에 대한 지적재산에 무조건 근거하지 말고 여러 다른 국가들의 어떤 부분이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이란 국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놓을 수도 있는 시기가 왔으며 더 나아가 미국에 대처한 한국은 어떠한 전략 위치 또는 격상을 유지할 것이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스스로 확보해야 한다. 워싱턴 D.C의 신호나 허락만 기다리는 퇴보적이고 의존적 사고방식은 과감히 버려야 할 때다. 한국인들이 실학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할 때가 왔다: 과학적 원칙에 따라 한국인들은 외국 모델의 적합성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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