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s and Squares

Insights into Korea's Sudden Rise

The old knit tablecloth

The old knit tablecloth

Emanuel Pastreich



“When I was a kid, I asked my father about the old knit tablecloth we had in the dining room. He told me this story. After the war my great grandmother had written to see if any family had survived in Hungary. After a few months, they received a response from some surviving relatives and a correspondence started up. The family sent the tablecloth as a gift to my great grandmother in Brooklyn at that time That was many years ago and my grandmother was still alive. The next time I mentioned this matter was when I was a recent college graduate. I had grown interested in Europe and was curious, after a trip to Poland, as to whether I might have family in Hungary My grandmother passed away when was a freshman in college so my father was the only one I could ask. My father had forgotten all about the exchange of gifts he had told me about. He only remembered that the tablecloth had been in the family for a long time.”

“The Unbearable Sadness of THAAD” (Kyunghyang Shinmun July 17, 2016)

Kyunghyang Shinmun

“The Unbearable Sadness of THAAD”

July 17, 2016

Emanuel Pastreich


When I read that South Korea has agreed to deploy the THAAD missile defense system, I was swept over with a profound sense of sadness. For all the misunderstandings that have emerged, many in the United States and Korean military have worked together over the years for a common purpose of establishing stability in the face of a perceived North Korean threat. But this time all logic and science has fallen out of the debate. In fact, it seems as if the decision to deploy was made at the highest level with minimal consultation with the wide range of experts on security who have harbored doubts about the effectiveness of missile defense. The project seems to be driven more by the potential for profit, and recalls the tragic consequences of the political machinations of multinational arms dealers one hundred years ago that drew the world into World War One.

To start with, THAAD is an outdated technology whose ability to stop missiles is doubtful. To the degree that THAAD might work, it does so for missiles flying at high altitudes. North Korea does not need to send missiles at high altitudes to attack South Korea, if such an unlikely scenario unfolded.

After all, if North Korea wanted to kill tens of thousands, or more, South Korean civilians, it does not need to use any missiles at all, but rather can use its substantial artillery units for which Seoul is fully within range. THAAD is entirely useless against artillery.

Moreover, there are any number of strategies that render the missile defense system ineffective. As THAAD is aimed at missiles flying at a high altitude, most likely is will simply encourage the Chinese, who perceive the system as intended primarily to deter them, to build many more missiles. That will only bring on an arms race and greater insecurity.

There is only one way to respond to the threat of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s such as the SALT (strategic arms limitation treaties) that brought stability to Europe. During the early 1970s, the two sides of the Cold War divide made a commitment to addressing their various disagreements in three ways: through bilateral nuclear agreements between Moscow and Washington, through political and economic discussions in the 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CSCE), and through the reduction of military forces in Europe in the Mutual and Balanced Force Reductions (MBFR) negotiations. But today the United States is not even considering such an approach.

But there is even more to this tragic decision. The immediate threat to security in Northeast Asia is not missiles or nuclear weapons. Creating a peaceful political environment and embracing disarmament regime, starting with the United States, will greatly reduce the chance that such weapons would ever be employed.

But drones are developing at a rapid rate and pose a poorly-understood security threat around the world. The players behind future drone warfare may not even be nation states at all. We have not even started to draft protocols to address the proliferation of drones in the region and their employment. Drones are potentially the most destabilizing aspect of an arms race in East Asia.

Finally, the entire region faces the existential threat of climate change, rising oceans, spreading deserts and the potential of massive dislocation over the next twenty years of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The cost of mitigating climate change, by shifting away from fossil fuels and creating a low-consumption economy, and the cost of adapting to its impact on society through new infrastructure, policy and institutions will cost trillions of dollars and eventually dominate our economy. The United States, China, Japan, Russia and other nations must cooperate closely in the long-term response and establish a common security agenda based on the response to climate change.

It is no longer an option for Koreans to meekly follow mis-informed policies like the deployment of THAAD that are issued from Washington D.C. think tanks wallowing in corruption. We cannot waste our precious resources and Korea will be the greatest victim if it permits a greater arms race. If Korea has the bravery and the vision to propose a new security agenda for East Asia with a focus on climate change and emerging threats, and if Korea includes the other nations of East Asia as partners in this enterprise, Korea will find unexpected supporters in the United States or elsewhere.

A nuclear strike on South Korea from North Korea is a highly unlikely scenario. The threat of drone warfare is certain. The existential danger of climate change is guaranteed.

If Korea goes along with a misguided program because of the profits to be made, or because of the political benefits to be gained, the costs for the world will be tremendous and future generations will be unforgiving in their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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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mit! Say it isn’t so!


“슬플 사드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 (경향신문 2016년 7월 15일)


“슬플 사드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

2016년 7월 15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 소식에 나는 무척이나 유감스러웠다. 많은 오해는 있었어도 어쨌든 한·미 군사동맹은 오래도록 북한의 위협에 맞서 공조해왔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전혀 과학적인 근거도 타당한 논의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번 배치 결정은 미사일 방어시스템의 효용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아무래도 잠재적인 경제적 이득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며, 종래에는 100여년 전 첫 세계대전의 비극을 불러온 바로 그 양상을 초래한 국제무기상들의 책략과 비슷해 보인다.

우선은 사드 자체가 미사일 방어능력이 의심스러운 구식 시스템임을 지적해야겠다. 사드가 효용이 있으려면 고고도로 날아드는 미사일이 있어야 하는데, 일단 북한이 남한을 공격한다 쳐도 고고도로 미사일을 날려야 할 이유가 없다. 결국 북한이 수만명의 한국인을 살상하려 한다면 미사일이 아닌 직접 포격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서울은 북한이 갖춘 방사포의 사정거리 내에 있기 때문이다. 사드는 방사포와는 무관하다. 더구나 이미 비효율적인 미사일 시스템 전략이 산재한 마당에, 사드가 고고도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는 체계인 한 결국 이것은 미사일 공격체계를 강화하려는 중국을 자극할 공산이 높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위협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안은 유럽에 안정을 가져온 SALT와 같은 것뿐이다. 197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냉전의 양측은 상호 맞지 않는 여러 이해관계를 세 가지로 조정했다. 모스크바와 워싱턴 간 핵무기 협의, 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CSCE)에서의 정치경제적 논의, 그리고 유럽에서의 군감축 및 상호 군감축 협의가 그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그러한 접근방식을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이번 결정이 그보다 더욱 평화에 무심한 것은 커다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은 미사일이나 핵무기 따위가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정착을 위해 미국과 공조해야 무기를 사용할 공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인항공기 기술은 가파르게 발전 중이며 이에 따라 범세계적 안전에 까닭 모를 위협이 되고 있다. 무인항공기를 이용한 미래의 전쟁 수행 주체는 심지어 국가조차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무인항공기와 관련한 어떤 종류의 협약조차도 논의한 바 없다. 무인항공기는 동북아의 무기경쟁구도를 악화시킬 뿐이다.

무엇보다도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위협, 즉 해수면 상승, 사막지역의 확대와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들의 잠재적 혼란에 맞닥뜨릴 것이다. 향후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갈 곳은 아마도 화석연료를 줄이고 연료 소모가 적은 생산형태를 도입한 사회기반시설을 구축하며 그에 따르는 정치적•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일 것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비롯한 국가들은 이 장기적인 방안을 위해 공조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공통의 아젠다 확립에 힘써야 한다.

한국으로서는 워싱턴 DC의 타성에 젖은 싱크탱크에서 나온 사드 배치 같은 이슈에 순응하며 잘못된 결정에 매달릴 시간이 없다. 우리는 이런 일에 몰두할 만한 여유가 없으며 만일 이런 무기경쟁이 가속화할 때 한국은 가장 큰 희생자가 될 것이다. 동북아의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위협에 한국이 단호하게 나서서 해결책을 찾고자 의지를 보일 때, 그리고 이 문제에서 한국이 다른 국가들을 포용할 의지를 보일 때,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은 의외의 많은 지원세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금전적 이익 혹은 정치적 이익에만 매달려 작금의 행보를 계속할 때, 불필요한 비용은 현저하게 늘어만 갈 것이며 결과적으로 후손들에게 큰 부담만 지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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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젊은이의 상상력이 스마트폰의 성장 원동력” (아시아투데이 2016년 7월 11일)


“동아시아 젊은이의 상상력이 스마트폰의 성장 원동력”

2016년 7월 11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현재 동아시아에서 스마트폰이 갖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고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형성하는 새로운 기회를 준다. 스마트폰의 경제적 가치는 더 이상 값싸게 제조한 후 비싸게 판매해 발생하는 이익에만 국한돼서는 안된다.

이제부터는 스마트폰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돼야 한다.

첫 번째로 스마트폰의 제조와 관련 컨텐츠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하는 최대의 기회가 제공되도록 해야한다.

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의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리고 한•중•일 또는 그 외의 아시아 지역의 예술가들이 스마트폰의 기본화면이나 아이콘 등 디자인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는 중국이나 한국 전통을 기반으로 한 문화적 이미지나 디자인을 스마트폰 레이아웃에 적용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당나라나 백제 왕조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원하는 사용자는 존재한다. 아시아 국가들은 스마트폰의 레이아웃과 핵심 디자인은 서구화돼야만 어필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오늘날에는 사실 정반대다.

또한 스마트폰의 이모티콘과 어플리케이션 생산에 대한 현재의 접근 방식은 아시아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수백만 명의 창의적인 젊은 이들과 연결돼있지 않다. 우리는 개방형 플랫폼을 만들어 중국이나 일본,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직접 자신만의 이모티콘을 디자인하여 전세계에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학생들이 모금을 마련할 수 있게 해서 페이스북과 같은 현 어플리케이션을 뛰어넘는 새로운 소셜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의적인 사고의 젊은이들이야말로 그들의 네트워크 기술로 새로운 프로그램과 아이콘, 게임 등을 만들어 우리를 하나로 이어줄 것이다. 이들은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강력하고 역동적인 사이버공간을 구축할 것이다. 다음 세대의 상상력이 스마트폰의 성장 원동력이 될 것이다.

스마트폰의 사회 기여 

두 번째로는 스마트폰을 통해 사용자들로 하여금 국내외적으로 책임 있는 시민이 되는 참여적 사회를 만드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스마트폰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완전히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을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우리 시대의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이슈에 대해 논하는 네트워크 구축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우리가 함께 모여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스마트폰이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청년들이 비디오 게임과 별 의미 없는 주제에 대한 채팅을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면 우리 문화를 저해할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오용이 단지 단기적인 이익이 된다고 해서 차세대의 창의적인 잠재력을 파괴하도록 내버려둬선 안된다. 스마트폰의 주된 목적은 시민들에게 의미 있는 지식을 제공하고, 윤리규범을 가르치고, 젊은이들이 미래에 더 나은 사이버 공간을 구축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하고 창의적인 스마트폰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러 대규모 프로젝트에 의해 스마트폰의 사용이 정의되고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명상과 호흡 운동이 스마트폰 사용에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 그래서 반복적인 패턴이 빠지거나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이 기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연구들에 의하면 스마트폰 사용시 적절한 명상이나 깊은 호흡을 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는 더 수동적으로 변하고 행동에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스마트폰의 사용은 사회에서 시민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스마트폰 사용자는 자신을 단순히 고객이 아니라, 공정하고 정당한 온라인 사회를 형성하는 데 책임과 의무가 있는 세계시민으로 인식해야 한다. 공정한 인터넷을 유지하고, 유해 컨텐츠를 차단하고, 건설적인 협력을 장려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순간부터 책임감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디바이스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예술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부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이것이 가능하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가상공간에서 예술, 문학을 창조하고 새로운 공동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는 페이스북과 같은 원시적인 소셜 네트워크를 넘어서야 하고, 새로운 형태의 협업을 장려하고 지지하는 개방형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미래에 훨씬 더 큰 무언가로 통하는 포털, 즉 통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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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yors of Seoul” (July 9, 2016 JoongAng Daily)

JoongAng Daily

“The mayors of Seoul”

July 9, 2016

Emanuel Pastreich



If you visit the old city hall in Seoul (now a public library), a rather stoic Germanic building built during the colonial period, you will find on the third floor a small museum featuring fascinating exhibitions that detail the development of the city over the last century.

On the wall of the museum hangs a mosaic of asymmetrically arranged rectangles that feature the pictures and short biographies of the mayors of Seoul. The first mayor in the series is Kim Hyung-min who served 1946-1948 in the immediate post-war period.

It seems natural to Seoulites that the list of mayors starts from the establishment of an independent Korea—although this first mayor served before the founding of the Republic of Korea. You cannot included the 18 mayors of Seoul who served during the colonial period because they were all Japanese and carried out an exploitative colonial policy.

There was a first Korean mayor after the war, Lee Beomseung, but he worked in the old colonial system before modern city of Seoul was established.

But it struck me immediately that this pantheon of mayors was deeply wrong. After all, the first first “mayor” of Seoul (Commissioner for Hanseong City Government) was Seong Seok-rin who took up the office in 1395. An astonishing 832 people served as mayors of Seoul from the founding of the Joseon Dynasty until the Japanese occupation. Granted that the position did not have the same authority as the modern mayor of Seoul, and only a short term of rule, nevertheless, those public servants all deserve to be listed as mayors of one of the few cities in the world with a literally unbroken administrative history of over six hundred years.

So what is the psychology behind the decision to leave out 551 years of Seoul history from this museum about Seoul?

Clearly there is a profound cultural break in Seoul’s history which makes it hard for current Seoulites to associate themselves with that long history and its culture. Whereas most Parisians can name all of the bridges over the Seine River, few Seoulites can name the bridges over the Cheonggyecheon. The past is all around us in the form of monuments, and occasionally surviving buildings, but we pay little attention to those traces. They could be, by contrast, an inspiration for building a new Seoul.

More often Seoul tries to create a culture that will motivate and inspire its citizens by becoming like London, or Singapore, or Paris. The best example of this obsession with becoming some other city is the project to transform the Seoul Station Overpass into a public park covered with plants and works of arts. This plan is based on the High Line Park on the West side of Manhattan and although the results may be interesting, the plan is entirely based on an imported concept that will be implemented by the Dutch firm MVRDV.

But what Seoul really needs is not “Manhattan-ness” but rather “Seoul-ness.” The challenge for the city is how it reinterprets and makes relevant the sleeping traditions of the past, in order to create a new urban environment that leaves as many older buildings standing as possible, and hints back to the city’s roots, even back to the 14th century.

But the city is moving quickly in the wrong direction. All across Seoul, glass and steel office buildings and apartment buildings are being thrown up that completely ignore the ancient alleys of the city and which do not even hint at the traditions of Seoul’s architecture in their exteriors, or, for that matter, in their interiors.

The destruction of Seoul’s deep structure, whether it is the building of apartment buildings along the edge of the Kyunghee Palace that are alien to the traditional urban environment, or the erection of massive office buildings at Uljiro 2-ga which leave no space for the merchants or the ordinary citizens who have made the neighborhoods of Seoul feel like intimate villages for the last five hundred years.

Such radical changes in the urban environment do not create vitality, but rather break up the very continuity that encourages innovation. To make Seoul into another Singapore is to kill everything that has made Seoul so resilient. If you want to find vital culture in Seoul, seek out the factories around Uljiro 3-ga where artists make their sculptures in the back street factories run by small businesses, or visit Jungang Market where local merchants have joined up with artists have to create a vital culture.

I am not suggesting that we should try to restore Seoul to what it was in the past. That is not possible. Rather, new buildings should be built to last and built with a profound sense of Seoul’s past. We should see modern buildings as new variations on melodies from the distant past, using elements of traditional hanok, and at times even choosing clay and wood over glass and steel.

At the same time, our vast ignorance of the mayors of Seoul during the Joseon Dynasty means that we know nothing about the policies that were employed in the administration of the city for five hundred years. Few of us, including those working in city hall, know about the policies for the promotion of government officials in the city of Seoul during that time, the environmental preservation and urban farming policies, the management of markets and factories, and the local administration of the districts of Seoul.

We do not have the vaguest idea what wisdom lies in the policies of Seoul from those days, or what parts might be applied to the present, or to the future. The collective wisdom, the institutional knowledge of the city, which is its greatest treasure, has been thoughtlessly tossed aside in our rush to make Seoul into a modern city indistinguishable from other modern cities around the world.

Seoulites feel that to be too closely tied to Seoul’s past will somehow hold them back, tying them to a backwards city of poverty and filth. But although a wealthy city like Copenhagen or Munich may look attractive, it is not Seoul. We will find the keys to this city’s future in its past. We must reinterpret the back streets, the urban policies, and the communities of the past and find in those patterns the past offers hints of what a sustainable future Seoul should look like.

I have no doubt that the hundreds of previous mayors of Seoul have much wisdom to share with us if we will only listen.


“역대 ‘서울시장’은 몇 명일까” (중아일보 2016년 7월 9일)


“역대 ‘서울시장’은 몇 명일까”

2016년 7월 9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서울특별시청 청사였던 서울도서관에 가보면 게르만적인 금욕주의가 느껴진다.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이 건물 3층에는 지난 세기 서울의 발전을 다룬 작은 전시 공간이 있다. 벽면에는 역대 서울시장의 사진과 약력을 적은 패널들이 모자이크를 이루며 걸려 있다. 이 전시물에 따르면 초대 시장은 1946~48년 재직한 김형민이다. 그전에도 이범승이라는 첫 한국인 서울시장이 있었지만 당시 시정(市政)은 아직 옛 식민 체제를 답습한 상태였다. 현대적인 서울시 행정이 확립되기 전이었다.


서울시장의 수를 광복부터 세는 것은 서울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식민시대 18명의 서울시장(경성부윤)을 포함시킬 수는 없다. 모두 일본인이었던 그들은 식민 착취 정책을 수행했다.


나는 이 시장들의 ‘판테온’이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최초의 ‘서울시장’은 1395년 한성부판윤으로 취임한 성석린이다. 조선왕조에는 수백 명의 ‘서울시장’이 있었다. 권한이나 임기 연한에 있어 한성부판윤을 서울시장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세계에서 몇 안 되는 600년 넘게 지속된 도시의 수장으로 기억될 자격이 있다.


서울시 역사 중에서 551년을 빼버린 결정의 이면에는 어떤 심리가 숨었을까.


깊은 문화적 단절이 서울의 역사를 갈라놓는다. 현대 서울 사람들은 서울의 오랜 역사와 문화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파리 사람들은 센 강 위에 놓인 다리들의 이름을 안다. 청계천 다리들의 이름을 열거할 수 있는 서울 사람은 소수다. 기념물이나 풍파에도 살아남은 건물의 형태로 과거가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흔적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 흔적들이야말로 새로운 서울을 건설하는 데 영감을 줄 수 있다.


서울은 런던•싱가포르•파리처럼 됨으로써 시민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불어넣는 문화를 창조하려고 한다. 다른 도시가 되겠다는 집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서울역 고가공원 프로젝트다. 나무가 우거지고 예술 작품으로 뒤덮은 공원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의 모델은 맨해튼에 있는 하이라인 공원이다. 흥미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겠지만, 이 계획은 전적으로 수입한 개념에 따라 네덜란드 회사인 MVRDV가 수행할 것이다.


서울에 진짜 필요한 것은 ‘맨해튼다움’이 아니라 ‘서울다움’이다. 서울에 필요한 도전은 잠자는 과거 전통을 재해석해 오늘에 맞는 적실성을 찾아주는 것이다. 서울의 뿌리를 암시하는 새로운 도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서울은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유리와 강철로 서둘러 지은 사무실 빌딩과 아파트가 옛 골목을 완전히 무시한다. 건물 외장과 내장은 전통 건축에 대해 짐작조차 못하게 한다. Read more of this post

“The Confucian Approach to Public Diplomacy in Korea” (Asia Today July 3, 2016)

Asia Today

“The Confucian Approach to Public Diplomacy in Korea”

July 3, 2016




Emanuel Pastreich


What would be the qualifications of a Korean diplomat in response to the rapidly changing nature of diplomacy in our age? Here is a lecture entitled, “What does diplomacy mean in our age?” by Prof. Emanuel Pastreich, Senior Advisor ofAsiaToday and director of The Asia Institute. This lecture was conducted for over fifty Korean diplomats engaged in the field of public diplomacy and cultural diplomacy at the Foreign Office building on June 27. [Editor’s Note]


When I met with Korea’s Ambassador for public diplomacy Cho Hyun-dong last month we talked briefly about my current research and I met with a small group of diplomats interested in public diplomacy. Ambassador Cho made a rather unusual offer to me after our meeting. He suggested that I could come to the foreign ministry to deliver a talk on the topic.

He left it up to me to write the paper, giving me the freedom to explore various themes. He also suggested that there might be an opportunity to develop it into a more complete report or monograph at a later date.

I felt that this opportunity to talk with Korean diplomats about the field of diplomacy, rather than a specific topic in current affairs, was a tremendous honor, and a chance to share some of my ideas about the rapidly changing nature of diplomacy in our age.

I am deeply concerned about how the nature of international relations is being so rapidly transformed by technological change that the field of diplomacy is simply not keeping up and we will be facing a serious crisis in the future when nations are rocked by forces within and without of which policy makers simply have no understanding.

I spent many hours writing the talk and discussed its content with several friends in advance.

The sky over Seoul was bright blue and the lecture hall on the 19th floor had a perfect view of Bukhan Mountain and the Blue House. The room was filled with over fifty Korean diplomats engaged in the field of public diplomacy and cultural diplomacy.

I first discussed the impact of technology on international relations and how our assumptions about the nature of the nation state no longer applied. I then spent some time discussing the serious challenges posed by climate change and suggested that the response to climate change would increasingly dominate all aspects of diplomacy and security.

What was perhaps most unusual about the talk was the amount of time that I spent talking about the Confucian tradition and the strengths of traditional Korean government. I felt strongly that Koreans are not aware of just how many precedents for good government exist in Korea’s past and how much we can learn about good governance by studying past precedents from the sixteenth or seventeen centuries.

I drew attention to Choi Chi-won, the great Korean diplomat of the Silla Dynasty who used culture as a mean to reinforce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was perhaps uniquely able to play a central role in policy in both countries.

I closed the talk with a few remarks about the role of women in diplomacy. As I had anticipated, more than half of the diplomats in the audience were women. I told them that I had great hopes for an age in which women would play a central role in Korean diplomacy, but I also suggested that women had to create their own women’s culture that moved beyond the highly commercialized femininity that is rampant in Korean society.

I recommended that women needed to reinterpret the Confucian tradition to make it inclusive of women in order to assure that Korea did not lose the very best of the Confucian tradition of good governance. I hinted that only through the creative reinterpretation of Confucianism can we make it relevant to the present day, but at the same time, Korean Confucianism offered the potential of true inno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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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 on leadership at Chunghyun High School in Gyeonggido, Korea (June 10, 2016)

I had a chance to deliver a lecture for high school students at Chunghyun 충현고 High School, in Gyeonggi-do on June 10, 2016. It was my fourth speech for Korean students at regular public high schools delivered in Korean.

Nothing it more important to me, and to the Asia Institute, than to communicate with young people who strive to create an identity for themselves, and the future, in the face of tremendous challenges. I received many, many questions from the students and had a chance to give away about twenty copies of my books to those who asked questions. I was particularly touched by a question about the issue of suicide. I felt that clearly the student who asked me about student suicide knew many who had attempted suicide. The discussion was extremely moving, and made me aware of just how great the challenge of creating a meaningful life is in this age of radical commercialization.



Lecture for high school student at Chunghyun High School.

Lecture for high school student at Chunghyun High School.


Standing with students after the talk.

Standing with students after the talk.

Listening to a student

Listening to a student


“안정적 직장, 공무원? ’지성인은 도구가 아니다’”

2016년 7월 30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투데이 김유진 기자)

급변하는 외교 정세에 대응하는 한국 외교관의 소양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시아투데이 상임고문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이 지난 27일 외교부 청사에서 진행한 ‘급속하게 변하는 세상과 한국 외교에 대한 전망’ 강연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이 강연은 공공외교와 문화외교 분야에 종사하는 50여 명의 한국 외교관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외교의 역할 

지난달 조현동 공공외교대사와 만나 현재 연구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만남 이후 조현동 대사는 내게 다소 특이한 제안을 했다. 외교부를 대상으로 강연을 할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는 주제 선정을 전적으로 내게 맡겼다. 또한 나중에 더 완전한 보고서나 논문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제안도 했다.

나는 외교에 대해 한국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수 있는 큰 영광이자, 오늘날 급변하는 외교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수락했다.

외교부 청사 19층에 위치한 강당에서 바라본 서울의 하늘은 푸르렀고, 북한산과 청와대가 한눈에 보였다. 강당은 이내 공공외교와 문화외교 분야에 종사하는 50여명의 한국인 외교관들로 채워졌다.

가장 먼저 국제관계에 미치는 기술의 영향과 민족 국가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가정이 더 이상 국제 외교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말했다. 이후 기후 변화가 야기하는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거론했고, 기술변화에 대한 대응이 외교와 안보의 모든 측면을 지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강연에서 가장 특이했던 점을 꼽으라면 유교의 전통과 과거 한국 정부의 좋은 점에 대해 강조한 부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인들이 좋은 한국 정부의 과거 사례가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는 것을 통절히 느꼈다. 따라서 우리가 16·17세기 과거로부터 좋은 거버넌스(국가 경영)의 사례를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신라 시대의 위대한 한국 외교관이었던 최치원을 그 사례로 들며, 그가 문화를 양국 관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마지막으로는 외교에서 여성이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예상했던 대로 강연에 들어온 관객의 절반은 여성이었다.

한국이 유교 전통의 거버넌스가 가진 장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여성을 아우르는 형태로 유교 전통을 재해석해야 한다고도 권했다. 다만 이 시대와 연관성이 있으려면 유교주의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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