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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이코 민주주의” 다른 백년

다른 백년

“미국의 사이코 민주주의”

2019년  4월 8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미국 보스톤 정신분석 연구소(Boston Psychoanalytic Society)의 랜스 도즈 (Lance Dodes) 박사는 MSNBC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된다.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다 내지는 간단히 정신병환자라고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트럼프는 하루는 북한과 중국을 전쟁으로 위협하다가 갑자기 다음날 그 지도자들에게 애정을 퍼붓는 중이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류의 생존이 경각에 달렸다는 과학적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기후변화 연구를 중단시켰다. 측근들과 함께 미국이 모든 군축 협정을 탈퇴하도록 종용했고, (사전 논의도 없이) 우주 군사화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발족시킴으로써 재앙을 우리 턱 밑까지, 1950년대보다도 가까이, 어쩌면 세계사상 가장 가까이 불러왔다.

지난 2월 5일 연두교서에서는 지금의 “경제번영”은 전임 대통령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이라며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그런데 지금의 이 호황은 고삐 풀린 투자은행들을 등에 업은 기업들이 주식을 환매하며 탄생했을 뿐, 진짜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파산 직전 인구, 홈리스, 재소자 등은 못 본 채 했다. 정색하고 누구에게든 아무 말이나 하는 탁월한 능력을 다시금 선보인 것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교과서 상 사이코패스의 모든 특징을 몸소 보여줬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조력자가 없었다면 여기까지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최악질 사이코패스 존 볼턴(John Bolton)의 도움이 있었다. 볼턴은 이 세상에 핵전쟁을 불러올 생각만으로 신이 나는 사람으로 그동안 시리아,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중국, 러시아와의 전쟁을 동시에 지지해왔다. 미래의 전망이 어두워질수록, 그의 열정은 뜨거워진다.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는 “재림 (The Second Coming)”을 쓰며 볼턴같은 사람을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볼턴은 “피로 어두워진 파도(blood-dimmed tide)”의 “빗장을 열어(loosed)”, “선한 자는 모든 신념을 잃고 악한 자는 격정으로 가득한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대혼란을 가져왔다. 여전히 양심이 남은 또는 전두엽 피질 기능이라도 가능한 자들이 마치 난파선을 탈출하는 쥐떼처럼 미 국무부와 국방부를 떠나자, 볼턴은 정책과정의 공백을 독차지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워싱턴 정가의 모습은 어떠한가?

요즘의 “민주당”을 한번 살펴보자.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민주당, 캘리포니아) 하원의장은 트럼프가 “파병부대 격려”를 위한 그녀의 아프가니스탄 방문계획을 공개하자, 자신의 안전을 위협할 것으로 추정,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렇게 진보적인 펠로시도 애초에 미국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왜 아직도 아프간에 머무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 희생된 (아프간 시민은 차치하고) 미국 노동자의 수치에 대해서는, 왜 미디어에서 더 이상 미국 군대 이야기를 보도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대신 중국이 위구르의 수백만 무슬림을 탄압한 소식을 알리기 바빴다. 구체적인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미국 군대에 희생된 수백만 무슬림에 대해서는 역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정작 군국주의에 대한 논의는 무시하면서 정의로운 세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펠로시는 열성(劣性)사이코패스이다.

버락 오마바(Barack Obama)는 어떤가? 오바마 이름만 들어도 눈가가 촉촉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혹시 오바마 특유의 그 유쾌한 태도 때문에 그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보통 사람들을 이용한 사실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진정한 개혁가에게 명예훈장처럼 따라붙는 개인적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오바마가 어떻게 Goldman Sachs와 JP Morgan에 영혼을 팔았는지 잊은 것은 아닌가? 거저 얻은 존경은 훨씬 더 달콤한 법이다.

그의 아내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는 최근 “비커밍 (Becoming)”이라는 책을 냈다. 정식 출간 전부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오늘날의 정치적 디스토피아를 상징한다. 그녀는 베일에 가려졌던 개인사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며 미국 내 거버넌스의 몰락과 문명사회의 야만적인 타락은 완전히 가려버렸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처럼 미셸도 자신이 권력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그녀는 책에서 작금의 이 악몽이 시작된 첫 8년을 이끈 조지 W. 부시(George W. Bush)를 자신의 “공범”이라고 칭했는데, 이는 단순 말실수가 아니다. 정신병 말기에 접어든 진보진영의 몰락을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부부는 애초에 진정한 “반전” 진보주의자는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회주의” 진보주의자,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뿐이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트럼프의 연두교서에 그답게 대응했다.

공화당, 민주당 할 것 없이 트럼프의 연설에 담긴 무의미한 제스처와 거짓 주장에 박수를 친 것만으로도 최악인데, 샌더스의 근시안적 시각도 비판받아야 한다. 그는 노동자의 임금과 사회 전반의 “불공정”에만 주목하느라 군비의 엄청난 증가나 러시아 및 중국과의 전쟁 위협, 심각한 부의 집중 등 그의 친구 오바마 정권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는 무시했다. 투표자 억압이 있었다는 점이 유감스럽다고 했을 뿐, 그러한 행위가 흉악범죄라는 점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언급을 잊었다.

어쩔 수 없이 샌더스를 지지했더라도 그가 지난 선거에서 한 일을 꼭 기억하자. 그는 유세에 운집한 수만 명 노동자의 고통어린 삶에 대한 연설을 했다. 이 절절한 연설에서 “혁명”을 이야기하며, 한 달 집세도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부자들”과 싸울 수 있도록 현금을 보내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그의 요청에 응답했다. 그들은 목표를 위해 단결했고, 샌더스를 승리의 길로 이끌었다.

그런데 경선 표를 조작했든, 샌더스에 대해 가짜뉴스를 퍼뜨렸든, 클린턴이 앞서나가자 샌더스는 침묵했다. 그는 마치 자신을 지지한 보통 사람들의 표가 무너지는 것이 그들 모두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개인적 문제인 듯 굴었다.

샌더스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너무나 빠르게 클린턴에 굴복했고, 그의 선거운동을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은 빈손으로 그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연설에서 공정한 사회를 역설하고, 노동자의 돈으로 선거운동을 하다가 권력에서 발을 빼지 않으려 그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것 역시 숨길 수 없는 사이코패스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lexandria Ocasio-Cortez)가 있지 않은가.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혼란에 빠진 미국 청년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그녀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질지 몰라도, NATO와 러시아 제재를 찬성하는 점, 민주당에 묶여있다는 점 등을 보면 딱히 낙관적이지 않다.

지난 마틴 루터 킹의 날, 오카시오-코르테즈가 “소수의 부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제도는 부도덕하다”라고 한 발언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을 것이다. 다만, 의회에서의 발언은 로비스트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녀는 부자들이 전쟁도발, 시세조작, 전 세계를 좀먹는 화석연료 등을 통해 부정으로 축적된 재산의 몰수는커녕, 해외 조세피난처의 폐쇄를 위한 법안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보주의”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도 있다. 해리스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무단결석하는 경우, 그 부모에게 징역을 포함한 형사 처분을 적용하는 법안을 지지했고, 피고에게 증인의 신뢰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했으며, 경찰관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자해방지용 정신병동에 머무르는 진보주의자다.

미국 사이코 민주주의의 기원

이런 정치판 사이코패스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우주선을 타고 떨어진 것은 아니다. 행동은 외계인만큼 이상하지만, 이들은 어느 미친 나라의 산물, 100% 미제다. 여전히 금문교와 헐리우드, 자유의 여신상, 그랜드캐년은 건재하지만, 그 이면의 미국은 변해도 너무 변했다.

가족, 이웃, 동포 사이의 사회적 유대는 상업과 소비 열풍 속에 닳아 없어졌다. 정치와 시민사회가 있던 곳에 이제 황량한 사막만이 남았다.

오늘의 이 악몽을 모두 사회 최고위층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동안 이들의 병적인 자기중심주의를 독려하고, 심지어 보상까지 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 지경까지는 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보상을 제공한 것은 부자들 뿐 아니라, 대부분 상위 중산층이었다. 한 때는 중산층이었다가 몰락한 주변의 홈리스를 돌보기보다는 제2의 스티브 잡스, 제2의 빌 게이츠가 되는 것에 집중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사이코적 행태는 사회 모든 계층으로 퍼져나갔다. 변호사, 의사, 교수, 언론인, 기업인, 정부기관장, 그리고 물론 노동조합의 “노조간부”도 예외는 아니다. 기득권을 누리는 자에게 이 무자비한 정부와 기업정책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러한 정책과 그들의 부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물어봐야 소용없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Exxon의 주주가 되는 것과 기후변화 또는 민영교도소의 부상과 투자은행의 수익 간의 관계 등은 총명하고 젊은 하버드 대학생조차 떠올릴 수 없는 금기 주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사고방식 덕분에 부자 동네에서 “진보주의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스타벅스에서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대형마트에서 채식 쇼핑을 하면서, 핵전쟁의 위협과 생태계의 붕괴에는 무뎌지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는 어떤 제품을 미국 포로(노예) 또는 전 세계 공장에 갇혀 반 노예 생활을 하는 노동자가 만들었을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저렴한 물건을 구입하기 쉽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사는” 태도다.

좋은 교육을 받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은 그 생각을 타인들과 나눌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이들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가족들과의 휴가, 멋진 레스토랑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 같은 지루한 대화만 계속할 뿐이다.

이들 상위 중산층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멍청하다”고 치부하는 모습은 더더욱 이상하다. 이들은 인상파 작품과 아방가르드 무용의 가치는 알지만, 제대로 된 교육이 불가능한 학교 밖에 없는 동네에 사는 건 어떨지, 그런 동네에 살면 온통 가짜뉴스만 쏟아내는 미디어 밖에는 볼 수 없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절박함에 응답해주는 것은 오직 우파 대형교회 뿐이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못한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정부가 정권을 잡은 이후, 다수의 “선량한 미국인들”은 이 가련한 부정의 문화에 빠졌고 사이코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을 떼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트럼프가 보여주는 천박함이 자신에게는 무해할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토마스 만(Thomas Mann)이 독일 정치가 잔혹한 광란으로 타락한 1930년대를 묘사한 것처럼 “지루함은 무해함의 동의어가 아니다.”

병리학적 특성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이제 민주당이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있다. 정책논의에서 제3자는 배제하고, 반대해야 마땅한 여당과 시시덕거리면서, 뒤로는 퇴직수당을 모으는 게 바로 민주당의 리더들이다. 이들은 단 한 발자국도 트럼프의 범죄에 맞설 수 없다.

혹자는 부자 몇 명의 배를 불리느라 지난 2년간 경제 파탄을 겪었으니, 교육을 받은 미국인이라면 하나 둘 모여, 부자들과 군국주의, 백인 민족주의가 만드는 작금의 도당을 뒤집을 강력한 시민운동을 조성할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틀렸다.

이 나라의 제도가 아무리 망가져도 고등교육을 받은 미국인들의 “진보” 민주당 그리고 “보수” 공화당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할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간단히 말하면, “결국 미국에 정당은 하나”라는 사실이다.

침묵의 , 여름, 가을, 겨울

1960년대 수백만 시민이 거리로 나와 반체제 시위에 나서게 한 경고신호는 지나친 지 오래다. 현재의 상황은 당시보다 심각하다. 인류 멸망도 가능한 핵전쟁과 기후변화, 불합리한 부의 축적 등이 산재해있다. 자리를 박차고 행동에 나서지는 못할망정, 이런 문제를 주변 친구나 이웃과 논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어쩌면 우리는 로마제국 말년과 같은 데카당스 시대를 지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네로 황제의 리얼리티 쇼 버전 내지는 칼리굴라 황제의 모조품 정도 되지 않을까? 트럼프가 세계은행 차기 총재 후보로 자신의 딸 이방카(Invanka)를 거론하는 것을 보면, 로마제국 후기와 확실히 잘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빅터 호스팅 (Viktor Horsting) 그리고 롤프 스노에론(Rolf Snoeren)이 만든 패션회사 빅터앤롤프(Viktor and Rolf)는 참신한 오트쿠띄르를 위해 자극적인 이미지를 찾고자 했고, 실제 그들의 패션쇼 포스터 중 하나는 특히 크게 눈길을 끌어 이들의 회고전에 선택되기도 했다.


Viktor and Rolf Fashion Artists 25주년 기념

그런데 이 포스터는 보는 입장에서는 참 혼란스럽다. 화려한 붉은색 담요를 몸에 두르고 침대에 누운 부유해 보이는 백인여성이 등장하는데,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구겨진 베개 위에 흩어져있다. 그녀는 수평의 풍경과 달리 수직으로 그려졌고, 르네상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처럼 오른 팔에 금발의 아이를 살포시 안고 있다.

그런데 부를 상징하는 이 이미지는 배경의 불편한 상황과 배치된다. 엄마와 아이는 폐허가 된 집, 아마도 허리케인 카트리나 또는 허리케인 마이클의 잔해 앞에 서있다.

인프라의 붕괴, 기후변화, 긴축재정 등으로 고생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이 여성이 대조되면서 그녀의 부와 특권이 더욱 매력적으로, 흥미롭게 그려지는 것이다. 이 이미지가 더욱 재미있는 점은 부자들 그리고 이들을 부러워하는 자들이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전 뜰에 작은 농장을 지어 평범한 소작농의 삶을 즐겁게 경험한 것과 비슷하다.

이 이미지에서 미적 쾌감을 느낀다면 사이코패스 같은 행동일 것이다. 결국 부자들은 분기별로 수익을 내려면 채굴산업과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이윤추구는 재앙을 부르는 기후변화를 야기했고, 시민들이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없게 만들었다.

이들은 거대한 벙커와 땅을 사서 기후변화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신도 속이고 있다. New Yorker에 실린 에반 오스노스(Evan Osnos)의 기사, “슈퍼리치가 최후의 심판을 준비하는 방법 (Doomsday Prep for the Superrich)”에 이와 같은 부자들의 움직임이 생생히 묘사되었다.

이러한 병든 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청년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유한 아이들이 자기도취에 빠져 노닥거리는 광고를 봐야만 한다. 광고계는 아이들에게 이런 이미지를 롤 모델로 제시하며, 사회적 불평등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많이 가진 자를 찬양하는 것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어떻게 미국의 정신을 멈췄나

이 사이코 민주주의는 주기적인 데카당스 시대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일까? 고등교육을 받은 자들이 기후변화와 핵전쟁 위험을 가볍게 무시하는 극단적인 인지부조화를 보면 분명 다른 요인이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빠른 기술발전으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파악하는 능력이 크게 저하되면서, 우리는 게임과 소셜 미디어, 포르노, 위기대응능력을 망가뜨리는 그 밖의 오락 활동의 수동적 소비자로 전락한 것이 아닐까.

스마트 폰이 우리의 두뇌 속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생을 마감할 즈음에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카툰 작가 스티브 커츠(Steve Cutts)는 “아 유 로스트 인 더 월드 라이크 미? (Are you lost in the world like me”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 악몽과도 같은 세상을 그려냈다. 이렇게 체득된 수동성은 사회계층과 시대를 아울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작가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 The Shallows)”라는 책에서 어떻게 인터넷이 즉각적인 자극에 반응하여 복잡한 사고를 하는 두뇌의 능력을 마비시키다시피 하는지 광범위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우리가 글로벌하게 서로 소통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그 기술에 의해 교묘하고 모순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정보의 망망대해 위에서, 스스로 생각할 물 한 방울이 없어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인간 두뇌의 신경가소성이 오히려 경직된 행동을 독려하는 등, 부정적인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뉴런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생성한 회로가 매혹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계속 이 회로를 사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구글 검색이나 페이스북 포스팅이 주는 빠른 응답은 뉴런을 자극하고, 쾌락의 흥분제를 분비한다.

오래 전 복잡하고 입체적인 사고, 즉 개인의 오랜 경험이나 사회, 문화적 변화의 경험 등을 위해 사용되었으나,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신경 회로는 보이지 않는 신경의 자연도태에 의해 가차 없이 제거된다.

신경학자 노만 도이지(Norman Doidge)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약 우리가 정신적 능력의 활용을 멈춘다면, 그 능력을 그냥 망각하는 게 아니다. 두뇌 안에 그러한 능력을 위해 배정된 공간이 다른 기능에 넘어가는 것이다.” 니콜라스 카는 이를 더 명료하게 표현했다. “우리의 뉴런과 시냅스는 생각의 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두뇌에 내재된 유연성 때문에 지적인 쇠퇴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몇 시간씩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SNS나 메신저를 하느라 기후변화로 인한 리스크 또는 트럼프 행정부가 2월 7일, 중거리핵전력 (INF) 조약 탈퇴를 결정한 후 따르는 군비경쟁의 리스크를 판단할 능력을 잃은 것이다. 이런 재앙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문데다가 종말을 불러올 이런 문제들을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니콜라스 카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러 심리학, 신경생리학, 교육학, 그리고 웹 디자인 연구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글을 훑어 읽고, 서둘러 여러 생각을 하며, 피상적인 학습을 장려하는 환경에 노출된다. 책을 읽으면서 가볍게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하면서도 깊은 생각을 할 수는 있다. 다만 이를 기술이 독려하거나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뉴런의 빠른 자극을 위한 정보 프로세싱 때문에 인류 전체가 “피상적” 사고에 사로잡히는 경우, 직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거나 옹호하기는커녕, 그 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사이코패스 뒤의 사이코패스

아직 퍼즐 한 조각이 남았다. 현재의 상황이 모두 인류애 따위는 없는 탐욕스러운 부자 몇 명의 책임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이들의 가면을 벗기고, 장막 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술이 모든 제도를 대체하였음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우리를 파멸로 몰고 온 이 부자들을 위해 판을 깔아준 궁극의 사이코패스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전 세계의 슈퍼컴퓨터 수만 대다. 매일, 매 분, 매 초마다 이들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소수점 아래 열 번째 자리까지 계산해내며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바로 이 슈퍼컴퓨터가 JPMorgan Chase, Goldman Sachs, Barclays, Bank of America의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이들 컴퓨터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즉 윤리적 거리낌 없이 지구 전체의 금전적 가치를 평가하고 철저히 알고리즘에 기초하여 이윤을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뒤를 버티고 있는 이 슈퍼컴퓨터들에게 빌 게이츠(Bill Gates)와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즉각적인 궁극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떠나는 길에서 만나는 재미없는 부록 같은 것이다.

슈퍼컴퓨터가 마침내 인간 문명을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이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당장 컴퓨터에 생태계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인간성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고, 이윤만을 근거로 사회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면 그만이다. 눈, 비디오, 게임 등이 인간 두뇌의 신경 네트워크를 재구성해서 도파민에 의한 단기적 사고만을 장려하더라도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하면 그만이다. 슈퍼컴퓨터가 스스로 의식을 갖기 한참 전에 인간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직 완전히 정신을 놓지는 않았다. 다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불편한 일들을 많이도 슈퍼컴퓨터에게 맡기고 있다. 다중병렬 슈퍼컴퓨터라는 눈먼 자들이 인류라는 애꾸눈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일본 조선학교 학생들이 바라본 한반도 변화” 프레시안

프레시안

“일본 조선학교 학생들이 바라본 한반도 변화”

2019년 4월 6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지난해 12월에 일본 오사카에 있는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와 요코하마의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는데, 고립된 채 유지보수조차 되어 있지 않은 학교 건물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정치인들은 북한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조선학교에 대한 재정지원을 중단하고 폐쇄하라며 지역 사회에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 내 조선학교는 다른 국제학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심스럽고 위험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1990년대 도쿄대학교에서 공부했을 때 동료들에게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일본 사회의 엘리트였으며 우정을 바탕으로 소수 공동체에 접근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에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다. 당시 나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동료들에게 감동했다. 내가 일본의 강력한 의사 결정 커뮤니티에 들어간 미국인이 된다는 생각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들은 조선학교에 대해 아주 낯선, 전체주의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조선학교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평범한 일본인과의 교류를 거부한다고 했다. 일본인들 눈에는 조선학교와 학생들이 이데올로기적이고 융통성이 없으며 비밀스럽고 기이한, 마치 북한 음모의 한 부분처럼 묘사되었다. 

이후 조선 고등학교에 다닌 사람을 만나 그들이 일본에서 자신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겪은 끔찍한 차별에 대해 알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東大阪 朝鮮中級学校 (2018年 12月)
 

Ⅱ. 
나는 한국인과 결혼해 한국에서 12년 이상 살고 있다. 도쿄대에서 공부했던 시절과는 다른 시각으로, 조선학교를 찾은 셈이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에는 능숙하지만 일본어는 그렇지 못한 딸 레이첼과 같이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우리가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도쿄대의 오래된 기숙사가 생각났다. 1987년 당시 도쿄대 기숙사는 수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지만, 사려 깊고 창의적인 학생들로 가득했다(비록 지금은 다들 뿔뿔이 흩어졌지만). 

동오사카 조선 중급학교 역시 제대로 수리되어 있지 않았다. 건물 외벽의 페인트가 벗겨졌으며, 내부 콘크리트는 갈라져 있었다. 학교는 조선인 교육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우익세력에 의해 정부의 지원이 중단된 채 학교 학생들과 가족들의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지키고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투쟁 의지는 강했다. 최근 한국과 일본 간 긴장이 높아지면서 한국에서도 조선학교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한국인을 적대시하는 우익세력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일본 내 조선학교의 투쟁 의지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토요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과외 활동에 집중하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몇 시간에 걸쳐 축구를 하고 그림을 그리며 전통 한국 무용과 한국 음악을 연습하는 등 자신들의 활동에 몰입했다. 

Ⅲ. 
나는 조선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에 엄청난 교감을 느꼈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학교만의 특징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는 상업적인 시설이 전혀 없었다. 어디에도 광고가 없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는 상업 디자이너가 제작한 것도 아니었다. 화장을 하거나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학생도 없었다. 학교의 장식물은 오롯이 학생들이 활동의 일부로 직접 만든 것이었다.

학교는 협동을 통해 운영되는 소규모 공동체였다. 그것은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헌신적인 몇몇 사람에 의해 한국 문화가 보존되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1987년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봤던 문화가 그대로 느껴졌다. 이에 지난 30년 동안 과도하게 상업화된 소비문화로 사라진 것을 조선학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12명의 중학생들과 마주 앉아 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하고, 일본 사회가 조선학교와 학생들에게 적대적인 압력을 가할 때 대응 방법 및 그들의 생각을 들었다. 학생들은 비교적 개인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말했다. 

학교의 기본 주제는 협력이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팀의 일원으로 협력하는 곳이었다. 이런 태도는 개인을 파괴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나르시스트적 소비문화에 의한 인간성 파괴를 감안할 때 그들의 문화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레이첼은 학생들과 한국어로 대화했다. 레이첼은 그들과 점심을 먹은 뒤 오사카 시내를 구경하고, 저녁 8시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레이첼은 학생들과 오사카 시내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레이첼은 그들이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배력하는 모습에 감동받은 것처럼 보였다. 

Ⅳ. 
그리고 며칠 후, 우리는 요코하마에 있는 가나가와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했다. 김찬욱 교장과 조선대학교를 졸업한 그의 딸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왔다. 아버지와 딸은 지역사회에 기반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일 양국의 대안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또 지금까지 학교가 어떤 압력을 견디며 살아남았는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나와 레이첼은 우리를 위해 다코야키를 만들어온 15명 정도의 학생들과 함께 앉았는데, 레이첼은 나는 아랑곳없이 그들과의 대화에 빠져들었다. 

나는 김 교장과 함께 그의 사무실에서 한 시간 동안 일본에서 한국어로 교육을 하고, 일본 및 전 세계에 걸친 제국주의와 식민 통치의 유산을 정확하게 지적하는 데에 따르는 엄청난 어려움에 대해서 대화했다.  

김 교장은 일본의 심각한 사회 및 경제 문제에 관한 공개 세미나 자료의 사본을 보여주었다. 나는 조선학교가 당면한 실질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교육하면서 예술·음악·작문 등을 과외 활동이 아닌 필수 항목으로 교육하는 학습법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인상을 받았다.

Ⅴ. 
몇 달 뒤, 내 친구 가와나카 요가 가와가나 조선 중고급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여학생 3명, 남학생 1명 등 총 4명을 각각 A, B, C, D로 표시)을 인터뷰했다. 

학생들은 노래방과 프리쿠라를 좋아하는 여느 일본 학생들과 똑같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이라는 정체성과 ‘분단’이라는 현실을 이해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조선학교의 교육 방식과 일본에서의 생활 방식이 나름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 내용을 전한다. 

– 조선반도(한반도)에 통일과 평화의 징조가 보이는데, 학생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나

학생 A : 북남 수뇌회담이 진행되었을 때 이야기지요? 역사를 배우는 사람으로, 기쁜 일이지만 ‘겨우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학생 B : 우리가 조국을 방문할 땐 보통 중국을 경유해서 간다. 그런데 ‘만약 통일된다면 남한을 거쳐 평양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수업 중에 했다. 

학생 C : ‘조선(북한)은 사회주의이고 한국은 자본주의사회이니까, 통일되면 어떤 사회가 될까?’ 같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학생 D : 우리 자신이 특별히 변한 것은 없지만, TV나 신문에서 ‘북조선, 북조선’ 하고 방송하던 게 눈에 띄게 적어졌다. 우리가 ‘통일의 한길로 걸음을 때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분위기다.  

– 일본 사람들이 조선을 더 많이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 

학생 A : 글쎄요. 직접 만나고 교류하면, 선입관이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인식 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내 여러 고등학교와 교류하고 있는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지막에는 ‘평범한 보통 고등학생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는 조선을 잘 아는 조선 사람은 아니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그렇다고 일본 사람도 아닌 조선과 일본 중간에 있는 느낌이랄까? ‘조선인’이 맞지만, 스스로를 ‘조선 사람’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좀 복잡하다. 경우에 따라 ‘조선 사람’이라고 규정되는 건 어색할 때도 있다. 다만, 이런 배경을 정확히 알고 편견 없이 평범한 한 사람으로 대해줬으면 한다. 

– 뉴스를 볼 때 어떤 미디어를 주로 이용하나. 일본의 주요 미디어가 보도하는 내용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나 

학생 A : TV에서 정보를 얻는다.  

학생 B : ‘라인 뉴스'(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이 일본에서 제공하는 뉴스 서비스)에서도.

학생 C : 학교에 있는 조선(북한) 쪽 신문도 본다. 

– 다들 근처에서 사는지. 조선 학교와 지역 주민 간 교류도 궁금하다 

학생 A, B, C, D : 대부분 전차를 타고 통하교를 한다. 다소 먼 거리다. 

– 그렇다면 지역 주민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 

학생 D : 학교 행사가 있을 때면, 선전 포스터를 전달한다.

학생 A : 평상시에는 학교 앞 긴 계단길을 정기적으로 청소하며, 지역 주민과 접점을 늘리고 있다.  

– 우익 단체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일본 사람 중에도 재일교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경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 A : 우리도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 작된 정보가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과 교류할 때도 마찬가지다.  

– 일본에서의 생활, 만족하나? 노래방이나 프리쿠라(‘Print Club’의 일본식 발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도 좋아하나?  

학생 C : 좋다.  

학생 A, B : 일본의 평범한 보통 고등학생들과 같다. 만족한다.

“통일 (統一)에 대한 소고 (小考)” 다른 백년

다른 백년

“통일 (統一)에 대한 소고 (小考)”

2019년 2월 1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북한의 미래에 관한 논의는 대북 협력 확대를 통한 투자와 비즈니스, 교통망, 전력망, 에너지 협력 등의 증대를 꾀하는 이들과 북한은 아직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선진국들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국경의 개방을 수용하지 않는 전체주의 국가이므로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느끼는 이들 간의 싸움으로 비화했다.

지난 해 내내 언론은 이렇게 지극히 단편적인 이야기만 해댔다. 미디어에 드러나는 것 너머의 시사를 통찰하는 시민 토론이 거의 붕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런 미디어의 전략이 꽤 효과적일 수 있었다.

더 이상 한국에서 1970년대 또는 1980년대 인사동 찻집에 모여 금서를 논하던 반대파와 학생들을 찾을 수 없다. NGO 모임의 정기적인 토론은 물론, 가정에서 저녁을 먹으며, 학교에서 친구들과, 또는 찻집에서, 정책, 환경 또는 나라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던 모습마저 사라졌다. 휴대전화를 통해 유쾌하고 무해한 정보를 수동적으로 습득하는 것이 수동적 인구의 일상이 되었다.

언론이 특정 정책을 “진보”로 또는 “보수”로 규정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언론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한다. 프린스턴 대학교 셸던 월린(Sheldon Wolin) 교수가 언급한 “전도된 전체주의(inverted totalitarianism)”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도된 전체주의란 상업매체나 광고주의 압력 등 숨겨진 힘에 의해 일상적인 이슈에 대한 담론이 심각하게 제한되는 정치적 상황으로, 복종을 강요하는 독재자 없이도 전체주의적 시스템이 자리잡도록 한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권력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풍토를 만들어냈다.

일례로, 우리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10분 이상 집중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기업 미디어는 정보 획득의 장이 되었고, 소셜 미디어는 고양이와 디저트 사진을 보여주거나 이따금씩 기업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선보일 뿐이다.

한국 사회가 공동의 문제에 대한 담론을 잃었다는 것은 우리 미디어가 지역경제의 붕괴, 외국계 투자은행의 과도한 영향력,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미세먼지의 재앙, 미국 내 일부 세력이 꿈꾸는 세계대전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제한된 국내의 담론은 남북관계의 발전이 어떻게 비춰지고, 통일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며, 통일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다. 예컨대,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포옹하는 사진들을 잔뜩 보여주면, 남북이 DMZ 양측에서 무기를 제거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협력했다는 소식, 평양의 번듯한 빌딩이 등장하는 장면 등이 긍정적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내용 자체는 모두 긍정적이다. 다만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세계와 단절, 폐쇄된 봉건-사회주의 국가에 살아야 했던 북한 주민들이 이제는 소비사회의 기쁨을 누리고, 훨씬 부유한 남한의 형제자매들처럼 즐기며 살 수 있게 될 것임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도 낙원은 아니다. 한국은 상당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힘을 가졌지만, 그 안에서 많은 이들이 깊은 소외감을 느끼고, 이는 높은 자살율, 일상적인 자기학대와 타인학대를 초래하고 있다. 탐욕스러운 고용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어렵사리 일을 찾는다 해도 사회에 봉사하고, 고급 훈련을 받거나 진정한 인생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는 커녕 커피숍이나 편의점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삶의 모든 측면이 이윤을 쫓는 쇼로 변질되었고, 사람들은 이에 지쳐버렸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이 북한을 빈곤과 고립에서 구원하기 위해 제시하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전세계적으로 힘을 잃고 있다. 미국과 일본, 한국, 유럽에서 1930년대와 1940년대 사회주의의 도전에 맞서 진화한 수정 자본주의는 더욱 탐욕적인 형태로, 1990년대보다는 1890년대에 가까운 모습으로 후퇴했다. 프랑스의 갈등을 참고하면 이러한 모순이 더욱 뚜렷해, 한국과 다른 나라가 겪게 될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소위 “선진 경제”에서 시장은 단조로운 역할만을 하고 있다. 슈퍼 리치 계층은 경제활동을 독점하고, 해당 계층 구성원이라면 얼마든지 돈을 빌리고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봉건주의를 확립했다. 반면,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극도로 제한된 고금리 대출만이 허용될 뿐이다. 언론은 이렇게 민간 은행과 자본이 악몽 같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을 다루지 않고, 정책 결정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의사결정자가 누구인지도 모호하다.

언론이 북한에 도입될 거대한 시장경제를 이야기하는 바로 그 순간, 시장경제는 정작 한국, 프랑스 또는 미국에서 소멸하고 있다. 피터 필립스(Peter Phillip)가 숙고의 연구를 통해 펴낸 저서 “자이언트, 세계 권력의 핵심(Giants: The Global Power Elite)”에서 묘사하는 바와 같이, 슈퍼 리치 계층과 그 조력자들은 이제 서로의 주식을 매입하고, 저금리에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그들 만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에 반해 평범한 사람들은 줄어드는 저임금 일자리라도 잡기 위해 잔혹한 경쟁을 계속해야 한다. 이 착취형 시스템은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글로벌 기관 투자자의 뜻이 아니라, 그저 하늘의 뜻에 따라) 기술로 인해 노동자의 지위가 크게 손상될 것이라 전해진다.

그렇다면 언론이 이렇게 저돌적으로 대북 포용과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보도하는 이면에 은밀히 숨기고 있는 이슈들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리는 누가 무엇에, 왜 돈을 대며, 그로 인해 누가 어떤 이득을 보는 지 등 지저분한 뒷얘기는 하나도 듣지 못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철도가 놓인다면, 북한에서 남한까지 석유 또는 천연가스 수송관이 연결된다면, 그 수송관과 그 석유는 누구 소유인지, 석유를 어떻게 팔 것이며 그 수익금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그 수송관을 설치하기 위해 세금이 쓰이는 경우 납세자들도 그 수익금을 일정 부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등을 우리가 아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들이 어떤 계약을 논의하고 있는지 또는 정부가 북한과 어떤 협상을 진행 중인지에 대해 그야말로 무지하다. 지금 이 시기에는 투명성이 특히 더 중요하다. 광산이나 공장이 정부에 속하는 정부주도형 시스템이 일개 회사 또는 개인이 광산 등 자원에 대한 절대적 통제력을 가지는 자본주도형 시스템으로 변하는 경우에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남한과 북한에 더 큰 빈곤, 더 큰 부의 집중을 불러올 수 있다.

어떤 다국적은행, 어떤 국부 펀드가 어떤 조건 하에서 북한에 투자할 가능성이 있는지 아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투자자들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때 북한 또는 남한 주민들을 보호할 장치는 무엇인지, 서명된 (또는 서명할) 계약서를 대중에 공개할 것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좋다.

북한에 공장을 세울 계획이 있다면 다음의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누가 그 공장에 돈을 대는가? 수익금은 누구에게 가는가? 누가 그 공장을 소유하는가? 그 공장의 노동자들이 가지는 권리는 무엇이며, 이들은 수익금 중 어느 정도를 받게 되는가? 이들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환경에 미치는 공장의 영향력 평가를 위해 어떤 단계들을 수행하는가?

북한은 석탄, 금, 철, 희귀 광물을 채굴하는 광산의 환경 영향성을 평가할 전문지식이 없으므로 전문가와 NGO가 이러한 평가과정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러한 기구들은 북한 방문 비자 조차 받을 수 없다.

한편,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은 베트남이나 미얀마에서 일어난 일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앞으로 북한도 베트남, 미얀마와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기업이 베트남의 국유화 자산을 개발하였을 때 평범한 베트남인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베트남이 번영하고 있다고만 들었는데, 이것은 정확한 설명인가? 그리고 산업화가 베트남의 환경이나 일반 노동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까?

우리는 보통 싸게 사서 입고 버리는 옷, 쉽게 소비하는 저렴한 플라스틱, 대수롭지 않게 쓰레기통에 처박는 값싼 스마트폰, 스피커, 선글라스 등에 숨겨진 환경 훼손, 노동자의 피해, 또는 그 밖의 장기적 비용에 대한 토론은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 소비사회 안에서 물건에 숨겨진 진짜 비용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됐다. 이것이야 말로 통일시대의 심각한 문제다.

이제 우리는 북한을 통해 잊혔던 현실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 20~30개의 석탄 발전소를 건립하면, 이는 생태계의 재앙인 동시에 지구 온난화를 부추길 것이며, 이미 위험한 서울의 대기질을 치명적인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말 것이다. 북한이 이윤을 쫓느라 새로 지어지는 공장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을 제대로 규제하지 않는 경우, 한국은 그러한 오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한국 공장들도 북한의 선례를 따를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형편없는 임금과 허술한 환경 보호는 이미 대기오염으로 신음하는 한국 속으로 빠르게 퍼져 나갈 것임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북한 노동자들이 단결권 등 노동자의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할 경우, 한국 기업들은 이 모델을 따라 한국 내 근로자들을 착취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우리는 북한이 시장을 개방하면 한국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고, 부유해질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빠졌다. 하지만 현재의 개발 모델에서는 한국인들조차 자유와 행복과 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아니면 현재 투자은행과 기업이 구상 중인 북한 경제개발계획은 애초에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북한을 대상으로도 몽고나 베트남 개발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저 수익성을 생각할 뿐, 사람에 대한 고려는 없는 계획을 구상 중인지도 모르겠다.

부의 집중화는 통일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 중, 기후변화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전세계적으로 소수의 몇 명에게만 부가 집중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집중화는 법치를 훼손하고, 부패한 미디어의 포장 속에 슈퍼 리치의 사치, 낭비, 화려함을 동경하고 강요하는 문화를 창조한다.

주류 언론의 논조에 따르면, 북한은 가난하고, 남북한 경제에는 커다란 격차가 존재한다. 일반적인 경제용어를 바탕으로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 정착한 북한 사람들 중에는 이 곳 생활의 자기중심성, 경쟁, 타인에 대한 무관심 등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다. 북한을 방문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상업화와 경쟁하는 문화 대신, 예술과 체조, 글쓰기의 목적 자체를 소중히 하는 문화에 큰 감동을 느낀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설명했듯이, 소수의 손아귀에 더 많은 부가 집중되게 되면 한반도의 분단은 못 먹고 못 사는 북한과 잘 먹고 잘 사는 남한 사이의 분단이 아니라, 남북한의 평범한 시민은 더 가난해지고, 극소수의 선택 받은 자들만 슈퍼 리치가 되는 분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남한과 북한 사이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격차를 부인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부의 집중으로 인한 경제적 왜곡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런 추세들은 한반도는 이제 매우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며, 현 상황에서는 북한에서 한강의 기적”을 재현할 가능성은 없음을 시사한다. 앞으로는 물질적인 발전보다 사회 경제적 정의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통일을 위한 노력은 경제 체계가 보통 사람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반드시 의미 있는 응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경제 체계에서는 전세계 무역항로를 따라 저렴한 물품 운송 시스템이 장려되고, 지역경제가 흔들리며, 오직 대기업만이 합리적인 금융을 누릴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개방 경제의 실패로 동네 가게, 동네 공장, 동네 약국, 동네 빵집이 무너진 반면, 스타벅스와 편의점, 프랜차이즈 빵집, 그 밖에 대기업이 진출한 사업들이 번성했다. 대기업들은 값싼 금융을 이용해 수년간 엄청난 손실을 감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가족이 경영하는 소규모 비즈니스를 몰아낸다.

그런데 이러한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장기 고용이나 적절한 퇴직과 건강보험 혜택을 보장받지 못한다. 직원들은 경영과 금융에 대한 의사결정에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고, 일하고 있는 지점을 소유할 권리도 없다.

한때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파산의 위기에 몰리는 소규모 가게들에게는 엄청난 타격이다. 이런 경제학을 북한에 도입할 작정이라면, 북한은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거절해야 한다. 북한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결국 20년 뒤 또는 50년 뒤 국가로서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이지, 당장 비디오게임이나 K-Pop 아이돌을 소개해 주민들을 열광시키는 게 아니다.

“통일”이란 무엇인가?

통일의 궁극적인 의미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모호하고 오해의 여지가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통일을 1990년 독일의 통일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늦은 밤 외국인들과 소주 한잔 하며 수다라도 떠는 날엔 이 꿈 같은 비교가 단골손님이다. 언제나 동독은 서독의 경제발전을 따라갈 수 없어 속수무책이었고, 통일 후 동독 사람들의 삶이 좋아졌으며, 그 결과 독일은 더욱 번영하는 강대국이 되었다는 게 그 줄거리다. 한국도 독일처럼 통일의 이점을 누릴 수 있지만, 서독과 동독은 한국과 북한만큼 소득과 산업개발의 격차가 크지 않았던 바, 한국의 통일은 더 오랜 시간을 가지고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의 소득 및 산업개발 격차는 긴 통일의 과정 중에 북한의 노동자를 싼 값에 착취하는 한국기업 및 다국적기업의 변명으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가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전문 기술을 축적하거나 임금을 저축하지 못한다면, 해당 과정은 북한 주민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보다는 모든 한국인들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북한 노동자가 적은 월급을 벌어 패스트푸드나 휴대전화에 낭비하게 된다면, 이들의 삶은 더 나빠질 뿐이다.

그리고 한국은 어떻게 지난 수십년간 상대적 경제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던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한강의 기적”, 그 중에서도 “기적”이라는 말에 가려져 있다. 한국의 번영은 여러 모순의 종합이지만 기적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은 부분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급격한 산업화계획의 결과였다. 돌이켜보면, 그 급격한 산업화로 한국은 화석 연료와 수입 농산물에 너무 의존하게 되었고 산업화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니다. 다만 그의 정책이 효과적이었다는 점 하나는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 개발 모델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개발 속도를 높이고, 모든 시민이 마치 거대한 군대의 일부인 듯 국가 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산업화로 갈 수 있었던 비결은 외국계 은행과 대기업에서 자본의 통제권을 빼앗아, 정부의 장기 개발 모델 이념에 열정적인 일부 관료들이 그러한 통제권을 갖도록 한 것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국민들의 해외 공금을 전면 제한했고, 국민들이 저축을 통해 (정부 캠페인에서는 저축을 장려) 정부주도 저축계획에 동참, 개발에 자금을 대도록 했다.

또한 한국으로 유입되는 자본을 정부가 통제하여 산업 및 기술의 육성, 기반 시설 개발, 교육에 집중하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은 현재 북한에 계획되고 있는 형태의 단기적 투기 목적에는 사용되기 어렵다.

박정희의 접근방식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북한의 발전을 위해 그러한 모델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지금까지 장기 프로젝트를 통해 어떻게 북한의 교육수준이 올라갈 것인지, 또는 어떻게 북한의 시민사회를 육성할 것인지, 녹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북한의 차세대 지식층을 키워낼 필요에 대해 일언반구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지식인들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니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대기업들이 북한의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크나큰 이해의 상충이다. 결국 이 대기업들은 태생적으로 단기적 이익에만 집중하고, 북한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북한의 개발에 대한 논의는 이해의 상충이 없고, 윤리적인 거버넌스에 전념할 수 있는 정부 관료와 전문가들에게 제한하는 것이 옳다.

그럼 다시 1990년 독일의 통일로 돌아가보자. 상당히 오래 전, 상당히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서유럽의 경제체제와 산업생산은 훨씬 더 넓은 부의 분배를 지지했다. 노조와 정부의 규제로 오늘날 우리가 (국내외에서) 목격하는 노동자의 착취는 불가능했다. 공산권을 의식하여 경제체제를 견제했고, 부의 집중이 최근처럼 과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승리로 떠들썩했던 1990년 독일의 통일은 관료주의적 사회주의 대비, 제대로 된 사회복지국가의 강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급진적 또는 혁명적 사회주의에 전념하는 반대파의 끊임없는 압력과 비판이 없었다면, 독일에서 (또는 프랑스와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그런 사회복지국가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1990년 승리한 자본주의는 수정된, 희석된 자본주의였다. 공산권의 도전이 없어진다는 것은 앞으로 30년간 세상이 파괴적인 형태로 회귀할 것임을 의미했다

소수가 자본을 독점하고 시민들에게 공허한 소비문화를 강요하는 이 악몽 같은 세상과 급작스러운 기후변화의 등장은 무관하지 않다. 유감스럽게도 언론은 소극적이나마 기후변화를 보도하면서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했다. 과학전문가들은 남은 시간이 없다고 외치는 와중에도 말이다.

기후변화 대응은 통일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들은 북한이 환경문제 없이 수십년은 개발을 지속할 수 있다고 태평스러운 가정을 하고 있다. 이 자체로도 위험한 사기행각이지만,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석탄 사용을 장려하는 것보다는 낫다.

분단의 한반도, 특히 북한이 냉전의 마지막 잔재라는 것 역시 근거 없는 믿음 중 하나다. 북한은 정말 자유로운 개방시장, 자유로운 의견 교환, 민주적인 과정을 통한 개인의 잠재력 실현 등 새로운 세계 질서 곁을 방황하는 한물간 사회주의의 잔재인가? 오늘날 파리의 길 위에서 정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세상을 그렇게 보지 않는 게 확실하다.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농부들을 가난으로 몰아넣는 거대 기업형 농업과 싸우는 사람들은 서구세계에서 파라다이스를 찾지 못했다. 물론 북한이 부패의 늪에 빠져 주민들을 억압하며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싱크탱크를 통해 정부에 정책을 강요하는 무자비한 다국적 은행들로부터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한반도의 비극적인 분단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상징인 비무장지대, 즉 DMZ를 생각해 보라.

나이든 세대에게 DMZ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세계, 국가의 경제 통제와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 간의 가슴 아픈 분열을 뜻한다.

그들에게 DMZ는 유럽 등지에서 이미 극복한 개인의 고통과 과거의 분열을 기리는 기념물이다. DMZ는 인터넷과 함께 국경이 사라지는 시대, 자유 무역과 자유 관광의 시대, 지난 30년간 자유 무역이 세계의 통합한 지금에도 기묘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보다 효과적으로 DMZ를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DMZ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까?

젊은 세대에게 DMZ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그들은 DMZ를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다가올 미래, 다시 말해 자본과 상품, 슈퍼 리치는 어디든 돈이 되는 곳이면 자유롭게 갈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이동은 제한되는 미래의 전조라 할 지 모른다.

우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둘러쌓고 있는 장벽에서,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도널드 트럼프가 건설 중인 거대한 장벽에서 DMZ의 후예들을 만난다. 이들 벽은 가난한 자들을 차단하고, 무력을 사용해 글로벌 투자가 야기한 경제적 갈등을 해결한다.

바로 우리 주변에도 벽이 쌓이는 중이다. 부자만의 세상을 둘러싼 벽, 안락한 삶을 즐기는 그들이 자신과 급이 다른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도록 쌓는 벽이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곳의 급진적 분열이 편협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작은 집단들로 세분화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드러나지 않은 통일정책의 선례

통일 프로젝트를 더욱 면밀히 보기 위해서는 통일계획을 수립 중인 한국정부와 기업들의 잠재의식 속에 정확히 어떤 통일 모델이 자리잡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그들은 독일 통일을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독일의 통일 과정은 한반도의 역사나 한국인의 본능적인 반응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과거에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통일을 이룬 바 있다. 한반도는 신라나 고려시대에도 통일되었지만, 시간상 너무나 먼 과거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마음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다만, 영향력은 없다 해도 한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 숨겨져 있는 것, 한국인들이 경제 발전과 통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한 그것은 무엇인가?

비교적 최근에도 대규모 경제, 정치적 통일 프로젝트의 선례가 있었다. 1936년 일본인 조선총독에 의해 체결된 “제1차 만주-조선 협력협정 (第一次滿朝協定)” 이다. 해당 협정은 만주와 조선 모두의 빠른 산업화와 효과적인 경제문화적 통일을 위해 “만주와 조선은 하나(滿朝一如)”라는 비전에 시동을 걸었다.

1930년대 후반, 한국의 신문들은 한국 기업들은 값싼 만주 노동력을 활용하고, 만주의 천연자원(석탄, 광물, 비옥한 토양)을 이용해 빠르게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얻었다고 보도하기 바빴다.

2014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북한과의 통일은 “대박(bonanza)”이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사용한 대박이라는 단어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 말은 1930년대 만주가 제공한 경제적 기회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썼던 “천금을 낚아챈다”, 즉 일확천금(一攫千金)의 표현을 현대식으로 직역한 것이다.

박대통령이 1930년대 조선과 만주의 정치경제적 통합을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과 만주가 통합된 그 과정을 통해 많은 조선의 가정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부를 얻었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울림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의 무의식 속에 그런 개념이 내재되어 있었던 듯하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와 경제를 배웠고, 아버지가 야심 찬 젊은이로서 경제 붐을 이용하고자 만주로 가 권력을 얻기 까지를 주목한 것이다. 19세기 수많은 미국인들이 “Go West” 라는 치명적 유혹에 홀렸던 것처럼, 1930년대의 한국인들도 1930년대 만주라는 넓은 땅으로 달려갔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북한의 개발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그리고 1930년대 만주의 개발이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는지를 보면, 그 유사함이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비극적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스스로 길을 찾고, 착취나 대규모 자본투자에 의존하지 않고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개발 모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통일은 반드시 시민운동이어야 한다. 자본가가 가져갈 수익을 걱정하지 않고 개인들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도록 하는 사람들 사이의 거래여야 한다. 통일은 시민들이 비전을 나누고, 실현할 수 있도록 문화와 표현을 되살리는 문화운동이어야 한다. 한반도의 젊은이들이 힘을 모으고, 자신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청년 운동이어야 한다.

통일은 사회 문제, 환경 문제, 그 밖에 모두가 공유하는 문제에 집중하는 동시에, 군국주의와 거대한 권력 경쟁에서 벗어난 평화운동이어야 한다.

“통일대박론, 일제 만주국 개발 방식…약탈적 경협을 넘어야” 경향신문 인터뷰

경향신문

인터뷰

“통일대박론, 일제 만주국 개발 방식…약탈적 경협을 넘어야”

2019년 1월 16일

이만열 이사장의 ‘제대로 된 북한 발전계획’

“북한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담론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봅니다. 또다른 통일대박론에 불과합니다. 경협의 이익은 남북 시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 언어문화학 박사 출신으로 한국의 ‘선비정신’에 주목한 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55·미국명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 2017년 한국 국적까지 취득한 그가 최근 ‘제대로 된 북한 발전계획’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이사장은 지난달 경향신문과 만나 “북한의 풍부한 광물 자원,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빠른 부를 창출하려는 ‘약탈적인 경협’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말했다. 정작 주민들이 아닌 외부 투자자들의 배만 불리는 방식으로 북한 개혁·개방이 이뤄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통일대박론의 뿌리를 일제의 만주국 개발에서 찾았다. 그는 “통일대박론은 당시 한국 부자들이 만주에 투자해 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석탄 등 자원을 개발하면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다는 만주개발론과 같은 맥락에 있다”며 “이에 ‘한반도 신경제’나 ‘동북아 경제공동체’ 주장은 이런 대박론부터 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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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 북한 발전 계획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

“2007년 한국에 온 뒤 북한 이야기는 안 했다. 북한 전문가가 많은 데다 저는 지식도 없어 남한 문제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 자원개발, 값싼 노동력 활용 등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담론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본다. 다른 목소리가 별로 없다고 느껴 내가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북이 같이 발전소를 짓는다는 아이디어도 나오는데 신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를 염두에 두는 것 같아 실망했다.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안 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 한반도신경제구상, 통일경제특구, 동북아 철도공동체 등 논의는 어떻게 보나.

“1970~1980년대 독재 시절이었지만 작은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자기 돈으로 운영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대형마트와 경쟁해야 하는 등 20년 전에 비해 독립적 경제력이 많이 떨어졌다. 북한까지 남한식으로 개발하면 안 된다. 남한의 상황도 심각한데 남한 제도를 북한에 도입한다는 것이 우려스럽다. 남북경협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남북 시민사회 간 협력 방식으로 가야 한다.” 

– 북한도 개혁·개방을 할 때 중국·베트남 모델처럼 외자 유치가 필요하지 않나.

“부분적으로 해외투자를 받을 수 있지만 해외자본에 의지하는 것은 반대다. 1960년대 한국은 해외자본에 의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해외투자를 엄격하게 관리한 게 도움이 됐다. 단기적 이익만 고려하는 기업의 투자는 한계가 있다.” 

–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에 권구훈 골드만삭스 전무를 위촉했다.

“객관적으로 한반도 발전을 분석해야 하는데 골드만삭스에 있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언론에서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이 많지 않아서 놀랐다. 남북경협의 청사진은 기업이 아니라 남한 시민, 전문가, 탈북자가 북한 시민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야 한다.” 

– 문재인 정부도 북한 개혁·개방 시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강조한다.

“박근혜식 통일대박론은 1935년 일제의 만주국하고 조선의 통일 정책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만주국하고 조선은 하나라는 ‘조만일여(朝滿一如)’를 강조하며 일본이 통일을 시키려고 했다. 당시 한국인 부자들이 만주에서 투자해 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석탄 등 자원을 개발하면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조선총독부에서 이를 발표하고 신문 기사에도 나오고 했다. 실제로 남한 부자들은 그 당시 만주에서 돈을 벌었다. 거기에서 공장도 운영하고 개발했다. 하지만 평범한 만주 사람들 삶에는 전혀 관심 없었다. 만주 사람들과 교류하고 더 나은 사회 만들자는 차원이 아니었다. 남북경협의 경우 조만일여식 논리에서 벗어나 북한사회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 통일대박론의 연원이 그렇다면 놀랍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이전에 박정희가 비밀리에 일본에서 기시 노부스케 등을 만나 ‘우리가 만주에선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남한에서 다시 한번 해보자. 많이 도와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노부스케도 이 이야기를 듣고 매우 반가워했다. 실제로 박정희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만주국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민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는 만주개발론은 통일대박론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인 노부스케는 만주국에서 산업개발을 추진하고 A급 전범이지만 전후에 무죄로 풀려난 뒤 총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 문재인 정부가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얻어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 

“조만일여, 통일대박론 같은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빈곤한 북한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대신 국제 투자자들이 혜택을 보는 ‘약탈 경제’ 계획이 지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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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 최근 탈북자들과 세미나도 했다고 들었다.

“독일이 통일될 때 문제가 적지 않았다. 동독에서 공동체, 공동농업, 예술활동이 많았지만 통일 이후 다 사라졌다고 한다. 동독에서 서독과 다른 패러다임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사라진 것이다. 탈북자들도 공동체적 활동이 없어지고 모든 게 수익 위주로만 되는 사회라면 문제라고 했다.”

– 북한이 가야 할 제3의 길, 대안적 발전 모델은 무엇인가.

“지금 남한이 생각하는 경제는 일본식의 경제다. 성장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게 많다. 원래 경제란 표현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유교사상에서 나온 게 아닌가. 돈을 좇기보다 윤리적 원칙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고 시민을 살리자는 의미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경제 분야에서 잘 해 성과를 내고 기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제3의 길은 협력적인 경제와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고유의 경제 공동체 의식과 마을 중심의 나눔 전통을 살리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커먼스(Commons·공동체의 규칙에 따라 자원을 공동으로 이용·관리하는 것) 사상을 수용하면 된다.”

– 남북 협력도 이런 방식으로 가능한가.

“충분히 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토론하면 충분히 제3의 협력 방식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사실 대북 제재는 어떻게 보면 북한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고민하는 시민사회에 대한 것이다. 남한 정치인, 경제인은 남북정상회담 수행원 자격으로 북한에 가기도 하는데 다른 협력을 구상하는 사람들은 가지 못한다. 또 일본, 미국, 중국, 남한의 자본은 철도·도로 등 인프라, 자원 개발 등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 내용이 뭔지, 맞는 방향인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 올해 상반기 ‘제대로 된 북한 발전계획’에 대한 책을 낸다고 들었다.

“올해 3월 출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35년 만주 상황과 현재 상황을 비교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지점이 빈부격차 문제다. 남북 모두 일반 시민들과 부자들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1980년대 남부의 보수적인 주에선 노조를 말살하는 법률이 있었다. 이 법률의 최종 목표는 남부가 아니라 북부였다. 이것과 비슷하게 북한에 적용한 나쁜 정책을 남한에서 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증거는 없지만 남한 기업들은 북한에 투자할 때 남한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 노동자의 임금이 낮으니 남한의 최저임금도 내리자고 할 수도 있다. 북한의 잘못된 개발이 남한 시민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북한의 새로운 경제 모델을 위한 커먼즈 경제 구축 ” 세미나

북한의 새로운 경제 모델을 위한 커먼즈 경제 구축 논의에 시민사회의 참여가 필요하다”

아시아인스티튜트 및 커먼즈파운데이션 세미나

2019년 1월 7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교수)
레인 하셀  아시아인스티튜트 연구원 (촐라 롱콘 대학교 교수)
락빙더 싱 아시아인스티튜트 한반도 평화 운동 대표
최정수 MRI Network 대표이사
최영관 (커먼즈파운데이션 대표)

최근 아시아 인스티튜트는 남북간 대화와 화해 분위기에 맞추어 남북한이 미래에 건설해야 할 바람직한 경제 문화 및 체계에 대해 공유경제 지원 재단인 한국 커먼즈파운데이션과 함께 공동 세미나(커먼즈와 한국)를 2018년 12월11일 서울 이태원의 커먼즈파운데이션 사무실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임마누엘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는 이날 “남북간 경제 협력 문제 등에 대해 남북 대화가 이뤄지고 있으나 남한 내 주요 기업가 등에게만 관련 정보가 공유되고 시민 사회는 참여할 기회가 없어 우려스럽다”며 “북한에 공유 경제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시민사회에서 활발히 제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영관 커먼즈파운데이션 이사장은 “통일 이후 북한에 새로운 경제 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커먼즈 경제체제 도입 역시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북한이 국유화한 토지와 건물에 대해 국유화를 풀고 사용권과 소유권을 구분해 커먼즈화 해내어 지역 공동체 사회가 활용하는 경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 이사장은 “다만 이러한 경제 모델을 북한 지도부가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라며 “북한이 베트남식 경제 발전을 추구한다면 커먼즈 개발은 불가능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외 세미나에 참여한 참석자들의 대화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공개하오니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분들에게 모쪼록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화의 원문을 가급적 그대로 실으려고 노력하였으나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일부 어색한 문장 등은 윤문하였음을 밝힙니다. 세미나에 제시된 의견은 참가자 개인의 의견이고 아시아인스티튜트의 공식입장과는 다를 수 있음을 또한 밝힙니다.

주요 참석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이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교수)

최영관 (커먼즈파운데이션 대표)

레인 하셀 (촐라 롱콘 대학교 교수)

최정수 MRI Network 대표이사

정리

허재현(아시아인스티튜트 연구원, 전 한겨레신문 기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남북간 대화가 계속 되고 있다. 남북간 경제협력 문제도 논의되고 있는데 남한 대기업 중심으로 남북간 경제가 통합될 것인지 북한의 관료주의 사회주의 경제 제도가 남을 것인지 또는 제3의 길을 갈 것인지, 혹은 공유경제의 가능성은 있는지 그에 대해서 여러분과 같이 논의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을 기대한다.

=지금은 매우 급격한 변화의 시기이다. 다음달 어떤 상황이 될 것인지 파악해야 하고 매일매일이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 시민들은 북한에 갈 수가 없다. 북한 사람 만날 수도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공유경제 시스템을 공유해볼 시도조차도 못한다. 그러나 남한의 대기업 사장과 청와대 비서관 또는 대통령은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남한이 세우고 있는 북한의 발전 계획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점이 너무나 많다. 한국전력이나 다른 기업들이 북에 뭔가 제안을 한 것 같지만 제대로 콘텐츠를 본 게 없다. 청와대가 가서 경제 분야에서 뭘 협상하고 오고 있는지 모른다. (재산 등) 소유권이나 수익 이런 것들 언급이 하나도 없다. 민영화인지 국영화인지도 모르고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때에 분석하는 게 시기상조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의 세미나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조금이라도 자극이 되었으면 한다.

-참가자1

=남북간 통일 화해 과정에서 선진국에서 나오는 제안이 무엇인가. 뒤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다. 철도 개발이나 북한의 자원들을 어떻게 빨리 개발하고 수입할 수 있는지, 새로운 자원을 빨리 개발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고 있을 거다. 남북 경제의 미래에 대해 자원 개발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다. 피투피(P2P) 나눔문화 등 이런 게 없다. (경제 분야에서) 한국이 모범적인 나라는 아니고 전면적으로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위협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우리는 실패했다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 내 희망은 이번 토론 끝나고 몇가지 조건이나 청사진이라도 나오면 좋겠다. 미래 한반도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의논하면 좋겠다.

-최영관

=북한 사회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전쟁이 있기 전의 식민지 상황과 그 전의 왕조시대까지. 한국은 유럽 등과는 다르게 봉건제라고 하는 제도가 없었다. 왕은 있었지만 그런 왕조사회가 유럽의 봉건제랑은 다르다. 북한은 식민지 항일 운동 했던 사람들이 많이 정착했고. 왕조시대 때는 신라시대부터 그당시 평민 사회에는 커먼즈 시스템이 있었다. 마을 공동체와 경제 공동체 별로 우리가 얘기하는 그런 커먼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시대 때도 존재했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이후 모든 (남한에서는) 커먼즈 조직이 와해되었다.

=한국 전쟁 이후 남한은 미국과 일본의 자본으로 산업화를 겪는다. 남한은 아이엠에프(1997년 경제위기) 시대 이후 초경쟁 사회로 바뀌고 빈부격차도 전세계에서 2위인 국가가 되었다. 자살률 1위로 가는 나라가 한국이다. 공동체가 다 깨지고 자본주의 고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남한은 완전히 종속적 자본주의 형태로 바뀌어 버렸다.

=북한에는 항일운동 했던 사람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이 주로 정착했다. 남한과 북한의 사회주의자들 북으로 가서 북한이라는 국가를 만들었다. 북한은 1980년대 초반까지는 남한보다 경제가 좋았다. 그 이후 고난의 행군 거치면서 북한 경제가 몰락했다. (미국이 주도한) 대북제재가 큰 이유였다. 남과 북 모두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고 남한은 종속적 자본주의 틀 안에 있고 북한은 사실 민족주의인지 국가사회주의인지 모를 그런 시기에 있다. 그리고 실제 지배세력이라는 자들이 빨치산 1세대부터 해서 군부까지 해서 자긍심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다. 이런 게 남한과 북한의 차이점이다.

=지금 상황에서 통일 논의가 부각되면서 북한 사회를 자본주의화 할거냐 아니면 또다른 국가 중심의 경제로 갈거냐, 국가자본주의와 혹은 아니면 그냥 자본주의. 또다른 방안이 있느냐가 관심이다.

나는 커먼즈 사회를 고민한다. 많은 공동체들이 북한에도 깨져 있다. 피투피(p2p) 형태의 북한 장마당이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커먼즈 자원, 그런 지속 가능한 사회를 과연 북한에 전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거를 낙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게 제 생각이다.

=결국 북한의 현재 지도부가 이러한 제안(공유경제 아이디어 등)을 받아들일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커먼즈 사회로 간다 했을 때 김정은 체제의 권력을 쥐고 있는 여러 사람들이 과연 자기 권력을 놓고 커먼즈 사회화할 것인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의아스럽다. 커먼즈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북한이라는 사회가, 거기도 사람 사는 사회라는 개념을 갖고 접근 해주면 좀더 커먼즈 사회의 긍정적인 부분 엿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허재현

=청중1님의 의견 잘 들었다. 다만 평가하기 전에 한국의 상황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남북간 대화를 하기까지 수십년의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남북간 대화 마저도 언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엎어질 수 있다. 그래서 기대 수준을 높게 갖고 벌써부터 섣불리 실패니 뭐니 평가하는 것은 너무 이른 것 같다. 아마 외국인(청중1)이라서 한국 사회를 좀더 깊이 이해 못하신 측면 있는 것 같다.

=다음으로 최영관 이사장 설명 잘 들었다. 커먼즈 경제에 대해 조금 더 쉽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최영관

=커먼즈이 조직적 체계는 기본적으로 피투피다. 탈 위계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갖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해서 자원을 관리하는 거다. 자원은 두가지다. 비물질적 자원과 물질적 자원. 학술연구나 지적재산권 아이티(IT) 이런 것들은 비물질적인 거다. 물질적 자원은 북한의 지하자원과 토지 건물 이런 것들이다. 사실 북한을 개발한다 했을 때 대규모 자본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재벌이 됐든 금융 자본이 됐든. 그렇지 않고 커먼즈적으로 구성하려면 여러 기술적인 것들, 블록체인 등이 사용가능하다. 글로벌하게 자금을 운영해서 커먼즈화가 가능하다. 토지부터 지하자원 채굴권이나 지식과 관련된 것은, 지식은 오픈소스 통해서 피투피 생산하는 것이다. 하드웨어에 대한 설계도는 다 공개돼 있지만 그거 생산하는 주체는 피투피 생산 구조를 갖는다. 북한에 전력난이라든지 이런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을 피어(peer?) 생산하는 거다. 이런 오픈 된 것을 다 주고 그 사람들이 스스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참석자1

=(허재현 의견에 대해) 나는 다만 국가나 경제에 있어서 우리가 성공했다는 오만한 마음가짐에 대해서만 강조했을 뿐이었다. 3만불 소득 그런게 경제의 성공이 아니니 우리가 옳으니 따라와라 그런 마음으로는 안된다. 공통적으로 뭘 할 수 있을지 그런거 고민해야 하고 그런걸 강조하는 차원이었다.

=남한에서 커먼즈 경제에 대해 모르는 거도 이해한다. 그런 점에서 임마누엘 교수가 주도해서 커먼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것이 첫 발자국이고 앞으로 상당히 오래된 여정이 있을 것이다.

참석자2

=한반도를 둘러싼 150년의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2018년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 아마 150주년일거다. 당시 조선은 그 메이지 유신 이후 10년 차로 개항은 했지만 리더십의 부재가 있었다. 결국 불행한 역사를 한반도에 만들었고 일본에 지배당하고 일제가 패망 이후에 밀실 담합에 의해 남북이 분단되고 그런 일이 있었다.

=커먼즈 이런 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러시아 일본을 무시할 수 없기에. 관계 정립에 관한 양쪽이 다 동감할 수 있는 전략적인 합의가 중요하다. 거대 화두일 수 있겠지만 그런 부분도 함께 고민이 되었으면 한다.

임마누엘

=답은 하나다.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과 비슷하다. 열강 사이의 갈등이다. 경제적 모순하고 그런 비슷한 현상이 있다. 이러다 세계 대전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두가지 특수한 유례없는 조건이 있다. 첫번째는 인터넷이나 기술발전에서 국가가 해체되고 있다. 새로운 식으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있고 초국가적인 네트워크를 만들고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의 가능성도 있다. 19세기에 새로운 시스템이 성립되지 않은 과도기가 있었는데 묘하게 그런 기회를 잡으면 새로운 시스템으로 지방 국가, 지구 글로벌 거버넌스까지도 가능하다. 두 번째 비슷한 원인 있지만 심각한 환경문제다. 수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적인 증명 갖고 보면 가장 큰 안보 문제이고 그외 합쳐서 노력하면 그거밖에 없다는 사람 많다. 안보나 안전보장의 정의를 다시 한다면, 한국 사람이 용기 있다면 시스템이나 그런거 만들 기회 있다. 근데 할 수 있어요? 못할 수도 있고.

레인 하셀

=커먼즈에 대한 설명, 세가지 원칙에 관해 설명하고 싶다. 피투피의 정의가 뭔지. 우리가 피투피를 통해 만들고 싶은 세상이 뭔가. 저나 임마누엘 교수 이런 분들의 많은 지정학적 정치역사학적 관점과는 다른 측면에서 내가 이러한 점 오게 된 계기는 2013년 여름 이만열 교수와 함께 피투피 관련 기사가 필요하다 해서 후쿠시마 원전 붕괴 사태에 대해 아무도 제대로 기사를 쓰지 않아서다. 피투피에 대해 워싱턴 파운데이션 미셀 본즈 등등 협력해서 기사썼는데 북한과 관련한 글도 코리아 타임즈에 기사화 했다. 기술적인 부분을 조금 아까 말씀하신 라벤더 싱 박사님이 부언해줄 거다.

=피투피의 정의가 무엇이냐. 이것은 관계의 역동이 피투피다. 그래서 정의 관계 역동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 잠깐 임마누엘 교수님 동원해서 관계 역동. 이제 중요한 것은 코리아라는 말조차도 C로 시작하는 거도 관계역동의 사례이다. 왜 C가 더 맞는지는, 고려부터 시작해서 우표들 보면 C로 시작하는데 일제가 K로 만들어. 조선을 식민지로서 알리기 위해 서열상 오리엔탈인지. J 다음 K 로 한건지. 새로운 리버럴리즘인지 모르지만. 공유된 경험이라는 게 중요하다. 관계의 역동을 만들 때 비슷비슷한 상황 속에서 상상력이 도발되고 관계가 어찌되냐 물질 비물질 이런 거 최영관 이사장이 말했듯이 많은 것을 자극하는 거를. 세가지 원칙을 설명드리겠다.

=오늘날 소위 현대 대학이라는 것과 비교를 하겠다. 대학을 보면 학술망을 통해 전자 메일을 교환했던 시대가 있었고 그거는 임마누엘 교수 본인이든 다 썼던 이메일 시스템. 그것이 다 아시다시피 http 만들고 했다. 1995년 초반에 개인 사유물이 아닌 이메일 시스템으로 등장했었고 그것이 커먼에서 이야기하는 공유물이었다는 거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활동이 인터넷 초기 등장했을 때 엄청난 많은 개인 개발자들이 해커들이 같이 만드는 리눅스 공유 소프트웨어 만들고 인터넷 개발했고 10년 지난 뒤 구글이 출발해서 이런 종합적인 매트릭스 상황 판단해보자면 그 이후에도 지속적 기술 발달이 일어난 것이 2009년에 블록체인이 등장해서 정보 검증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나온 거다.

원칙. 프리 어소시에이션(자유로운 협력). 생산적 활동에 참여하면서 많은 코드들이 오고가고 하면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그 이야기 듣고 상대방이 자유스럽게 대응을 보여주는 그런 원칙이다.

첫 번째. 자네가 뇌 과학 외과의사에게 수술 받겠냐 고등학생에게 받겠냐 하면 외과의사에게 받겠지. 비행기를 타더라도 전문 조종사의 것을 타겠지. 전문가가 인정받게 되는 원칙이 하나 등장한다.

두 번째는. 논문들을 서로 검토할 때는 피어뷰라고 하는 학자들간의 어떤 논문의 흠결이나 하자 문제 등에 대해서 학계에서 피어리뷰를 하는 그런 관점에서 비록 사이언스 과학. 그런 탁월성이 어떤 피투피의 세가지의 두 번째다.

여기에 세 번째는 ‘인테그럴 뷰 오브 서드뷰’ 라고 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몇몇 사람들이 미셀바운스라는 커먼즈 운동가. 하버드 대학의 여러 커먼 관계. ‘웰스 오브 네트워크’라는 책자라는. 1700년대 아담 스미스 국부론에 빗댄 그런 책을 썼다. 커먼즈 베이스드 프로덕션. 통합된 사고가 나온다는, 위키피디아 라는 것들도 한 개인으로 기업으로서는 만들기 힘든 건데. 맨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이제는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완결에 가까운 시스템 만들었다.

이러한 출발의 첫걸음을 우리가 하는 거다. 의약품 성공하는 오픈소스 만들고 그런 공개된 오픈 소스로 많은 프로세스를 진행. 윈도우 이런거만으로 안된다는 거만으로도 대개 공유된 경제 그런 거 긍정적 역할을 했다.

블록체인 얘기 좀더 하면. 2005년. 2세대로 진화 발전하고 있다. 코딩이 지속되면서 아주 적은 수수료 내고 해외에 돈을 보내는듯한 그런 기능뿐 아니라 이제는 해시태그를 동원하는 텐도(?)라는, 홀로체인이라는 그런 제3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엄청난 자원의 소비 채굴의 전력 오염도 안드는 그런 세대로 가고 있다. 즉 인터넷에 ‘메디파이어’라고 하는 기술들이 공유된 자산들을 활용해서 자산을 활용하는, 기술적 논의는 다양하게 갈거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흔히 매일 가치를 교환해야 하는 상황. 신분증 결혼증명서 각종 상황에 대한 인증의 기술을 이러한 거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코딩을 통한 어떤 부가가치를 만드는, 효과적이고 참여적인 경제 활동에 커먼의 기술을 얼마든지 동원가능하다. 엄청난 도도한 흐름, 핵문제 폭풍 기후문제 지구 온난화, 거대한 큰 문제가 될 것이다는 점에서 2050년 정도가 되면 해수면 상승하면서 ‘아 물이 왔네’ 이렇게 안되어야 하듯이 커먼의 기능을 갖고 어떻게 이야기 할까.

남북간에 많은 대화를 하면서 휴전선 초소 없어지지 않느냐? 새로운 제3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영어로 의견을 밝힌 것을 한국어로 옮겨 다소 부정확하게 정리되었음을 밝힙니다)

-참석자3(Mushin Schilling, 독일)

=독일에서 왔다. 1989년 동서독 통일 당시에 독일에 있었다. 부센즈라고 하는데 내가 목격한 이야기를 하겠다. 정말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통일이 예측하지 않은 상황에서 왔고 우리는 눈으로 목격했다. 물론 남북이 동서독하고 비교하는게 얼마나 적합한지 모르겠다.

=피투피 얘기를 하자면, 그당시 동독에는 스탈린의 통제 하에서 그 나름대로의 커먼은 있었다. 집 지으면 못질 잘하는 사람들끼리 돕고 하는 게 있긴 했지만 급작스런 변화로 동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고. 그런 과정에서 우왕좌왕 하는게 있었다. 체계적이고 질서 있는 통제에서 일이 일어날거라 생각하는 건 어쩌면. 국가가 나중에 개입하고 체제가 등장하면 많은 부분 압박 일어나고 규제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이 꼭 전체를 위해 긍정적 역할은 아니다. 동독의 대부분 사람들은 상당히 자신들이 압박받고 불우한 환경에 있다는 생각했다. 실직이나 그런. 극우단체 등장하고 하는 과정들, 많은 박탈감을 표명한다. 제발 한국 사람들이 커먼즈 시스템 속에서 기회를 잡아서 무언가 하나라도 실행에 옮기기를 바란다.

참석자4 (아감잣싱,12세)

=(북한 지도층이 체제 변화를 인정하게 하려면) 김일성 일가를 전쟁범죄자가 아닌 것으로 하는 그런 합의가 필요할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김씨 일가의 신분을 보장해야 한 뒤 통일을 논해야 한다. 조선인민군의 무장해제를 유엔군의 감시하에 시킨 다음에 평화통일을 하는 조약을 또 서명해야 한다.

=유엔과 북한 정부가 통일을 위해 논의하고 일단 통일 되자마자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으로 가서 향후 수년간 관리체제를 설치해서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시키면서 안정화 작업을 시작할 거다. 10년 후에 민간인 출입 가능해지면 민간업체가 북한에 가서 건설을 할 건데 북한의 산업 자체가 (남한 등에 견줘) 30-40년 뒤떨어져 있다. 이걸 현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장기적 개발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침내 한국이 진정한 통일을 이루었다 볼 수 있을 거다.

-참석자5 (이은심,시인)

=독일에서 오신 분이 말했듯 통일이 어느날 갑자기 물밀 듯이 터져오는 힘에 의해 되는 거다. 그 힘이 남보다는 북에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 탈북자가 한때 밀려왔듯이. 그들이야말로 정말로 목마르게 통일을 원하는 세대가 아니겠는가. 그걸 위해서 우리가 보수들이 보기엔 아리송하게 문 대통령이 과연 저렇게 해도 될까, 안보를 우려하는 마음으로 보는데. 그너머에서 유인을하기 위한 평화 유인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그걸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 나름대로 구로에서 (지역운동을 하면서) 탈북 여성과 대화해보면. 장마당이라는 건 이미 프리 마켓의 베이스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 나름대로 세계의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거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본다.

-허재현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어떻게 커먼즈 경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건지 커먼즈 파운데이션이 구상하고 있는 좀더 구체적 아이디어가 있다면 최영관 이사장으로부터 듣고 싶다.

-최영관

=‘커먼즈 파운데이션’에서하려는 건 토지와 건물에 있어서의 커먼즈화다. 사용권과 소유권을 구분하려는 계획. 사용권과 소유권을 분리시키면, 예를 들어 건물은 다중이 소유하게 되고 다중에 의해 결정하는 거에 의해서. 토지에 대한 사용이라든가 그런 커먼즈 조직으로 만들 수 있고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아주 싼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커먼즈 조직을 만들 수 있다.

=에티오피아의 주정부에서 제안이 왔다. 토지가 있는데 자기네 토지가 아니래. 국유화된 토지인데 국가 소유와 사적 소유가 아닌 커먼즈화 하는 그런. 커먼즈의 소유인데 다중의 소유이다. 피어투 피어, 수평적 관계에서 그렇게 땅을 소유하고 그 지역의 농민들이 농사짓고 농산물 갖고 살게 해주는, 그런 일부 적은 수익을 남겨서 소유권 갖고 있는 사람에게 일정 부분의 배당할 수 있는 그런부에 있어서 재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보다 ‘센트럴라이제이션’을 어떻게 할까 하는 면에서 커먼즈를 고민중이다.

=북한에도 토지 건물에 관해 토지는 국유화 되어있는데 국유화를 풀어야 한다. 국유화도 국가가 사적 소유인데 커먼즈화 해서 풀고. 공동체들이 들어가 사용하는, 자원도 마찬가지겠다. 철광석이든 희토류든 석유든 그런거 많다는데 그런걸 커먼즈화 해서 자원을 지속관리하게 해주는 조직을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다. 국유화도 아니고 민간 소유도 아닌 그런, 과연 북한 지도부가 이런 거를 받아들일까의 문제가 있다. 아마도 북한은 베트남식 경제발전을 추구할 수도 있다. 그러면 커먼즈 개발은 불가능해진다.

서재현 편집

“북한 경제 개발은 제3의 방식으로 해야” 중앙일보

중앙일보

“북한 경제 개발은 제3의 방식으로 해야”

2018년 11월 9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은둔의 왕국’ 문이 열리고 있다. 그 문이 완전히 열릴 때 북한은 새로운 실험의 장이 될 수 있다. 정부 운영 방식과 기반 시설 구축 등에서 다른 나라들이 해 보지 못한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의 이익들이 남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이미 미국의 자본가와 일본•중국의 투자자들이 북한의 풍부한 광물 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빠른 부를 창출할 ‘약탈 경제’를 계획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발견된다. 그렇게 되면 빈곤한 북한 주민들에게 갈 이익이 국제 투자자들에게 가게 된다. 이것은 최근 이라크에서 나타난 모습이기도 하다.

대안이 있다. 북한이 착취적 성장을 거부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경제•정치적 성공에 도달하는 제3의 길이 있다. 그것은 현재 국제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글로벌 커먼스(commons)’ 경제를 활용하는 것이다. 협력적 생산 방식으로 사회를 구축하는 커먼스 체제는 이미 곳곳에서 여러 분야로 퍼지고 있다.

북한은 사실상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국가들의 문화를 망가뜨린 상업주의나 소비 물신주의도 거의 없다. 그래서 새로움에 대한 상상력의 폭도 넓을 수 있다. 북한은 그 어떤 곳보다도 포괄적인 방식으로 ‘블록체인’이나 ‘홀로 체인’과 같은 ‘검증 인터넷’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의사 결정 과정이 사회 전체에 분산되면 권위주의 정치를 타파할 수 있고, 사회 공동체가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다. 북한의 노동력과 광물자원이 착취를 당하는 대신에 자본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작동되는 긍정적인 세계화의 모델을 개발할 수도 있다.

북한에는 현대적 기술이 거의 없다. 북한의 출발점이 제로(0)이기에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다. 북한의 모든 건물을 태양광 발전에 활용할 수 있다. 북한에서 지역별 경제적 자치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암호 화폐 및 크라우드 펀딩을 사용해 지역 협동조합을 육성할 수도 있다. 외국인 투자를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진공청소기, 세탁기, 태양열 발전기 등 주요 물품들을 공동체에 맡기는 공유경제 시스템을 도입할 수도 있다. 북한의 개방은 이렇게 건강한 국제화 모델을 구축할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Read more of this post

 “한국인들에게 ‘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중앙일보

중앙일보

 “한국인들에게 ‘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18년 10월 12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최근에 ‘혁명’이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 사용된 어느 은행의 TV 광고를 봤다. 한때는 극좌파들을 설명할 때 쓰였던 용어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널리, 별다른 거부감이나 비판적 고려 없이 사용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특히 생활 패턴과 기술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기에서 혁명이라는 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Read more of this post

“한반도평화구축을 위한 韓․美․中 시각과 국회의 역할” 국제정책세미나 (2018년 11월 6일 국회의원회관)

对于朝鲜半岛和平构筑的中韩美观点 与国会的角色

国际政策研讨会

한반도평화구축을 위한 시각과 국회의 역할

국제정책세미나

2018 11 6日 星期二 () (9:30-4:30)

국회의원회관

2세미나실

주 최 :

설 훈 최고위원(더불어민주당)

나경원 국회의원(자유한국당)

최경환 최고위원(민주평화당)

하태경 최고위원(바른미래당)

주 관 :

아시아미래지식인포럼

 

 

정책토론회 10:00-12:00

 

 

한반도평화구축을 위한 시각과 국회의 역할

좌 장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한국측 :

남북한간 지속가능한 협력의 제도화 방안

박명림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관장, 연세대학교 교수)

 

미국측 : 한반도 평화와 미국의 역할 방향

이만열 [Emanuel Pastreich]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중국측 : 한반도평화프로세스와 동아시아 협력의 향방

송성유, 북경대학 교수

 

설 훈 최고위원(더불어민주당)

나경원 국회의원(자유한국당)

최경환 최고위원(민주평화당)

하태경 최고위원(바른미래당)

 

 

2 (라운드테이블) : 2:00-4:00

 

동아시아 평화와 협력을 위한 지식인 네트워크 구축

 

사 회:

임한필 아시아미래지식인포럼 사무총장

 

한국측 :

이희옥 성균관대 중국연구소장)

윤경우 국민대 부총장)

배경임 아시아미래지식인포럼 대표)

홍면기 전 동북아역사재단 실장)

박장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우성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윤은주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 사무총장)

나흥수 행동하는양심 사무처장)

배현주 한신대 외래교수)

 

아시아미래지식인포럼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과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이후 다양한 접촉 및 회담이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 미국, 중국의 입장차이가 존재하고 있으며 미․중무역 갈등과 국제 정치환경의 변화 그리고 남한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한반도평화구축을 위한 로드맵이 불안정함.

○ 현재 한국, 미국, 중국의 한반도평화구축을 위한 입장과 방향이 무엇인지를 학자, 전문가, 정치인을 통해 들어보고 대한민국 국회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들어보고 향후 함께해나가야 할 방법과 대안은 무엇인지를 모색하고자 한․미․중 정책세미나를 갖고자함.

4.27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유관국 정책협력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의의와 보완, 발전 방향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국회비준 문제 등 국회의 역할을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등의 입장과 향후 협력과제 등을 모색하고 회의의 정례화 및 정책건의 채널을 확보하고자 함.

 

 

“좇는 사회는 위험하다” 중앙일보

중앙일보

“좇는 사회는 위험하다”

2018년 8월 16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비행기가 출발하기까지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 인천국제공항에서 책 원고에 활용할 아이디어를 기록할 수 있는 노트와 펜을 사려고 돌아다녔다. 그런데 노트와 펜을 파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내 앞에 펼쳐진 곳은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고가의 옷이나 번드르르한 핸드백을 판매하는 매장들이었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이나 손님이나 모두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이어 나는 주류 판매점과 고가의 손목시계, 향수 및 화장품, 전자기기 매장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침내 서점의 구석에 숨겨져 있는 내가 찾던 물건들을 발견했다. Read more of this post

“환경부가 한국을 주도할 수 있다면?” 프레시안

프레시안

2018년 7월 31일

“환경부가 한국을 주도할 수 있다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난 11년 동안 나는 환경부와 직접 협력해 일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들은 2008년 당시 내가 살던 대전시의 미래를 위한 제안서를 작성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 1월 ‘대덕넷’에 게재된 ‘대전은 세계경제 이끌 첨단 환경도시’의 초안을 작성할 당시 한국 핵융합 연구소 연구원 한정훈 박사와 함께 작업했습니다.

그 제안서에서는 대덕 연구단지의 과학 전문가들과 대전시의 협력을 촉구했고, 이는 ‘대전 환경 포럼'(나중에 ‘대전 녹색 성장 포럼’으로 변경) 결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포럼은 시민들과 정부 공무원 및 과학 전문가들이 한 데 모여 대전을 생태 도시로 진화시킬 방법을 논의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이 포럼이 언론을 통해 언급되기는 했지만, 자동차에 기반한 도시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내가 만난 환경부 관리들은 친기업적인 이명박 정부가 건설사들을 통해 진행하는 파괴적 행위들이 실제로는 환경에 이롭지 않음에도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뻔뻔하게 홍보해야만 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한 나는 한국의 시민들이 보호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던 환경부에서 도움이 되기를 원했던 관리들에게는 예산이 지원되지 않았고, 부동산업자와 개발업자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온 ‘4대강 프로젝트’에 따라 자연 하천에 대한 콘크리트 제방과 골프장을 홍보하도록 강요받았던 관리들에게는 예산이 지원되었음을 목격했습니다.

따라서 환경부의 고위 공무원 150여 명을 대상으로 나의 저서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레드우드 펴냄)에서 제시한 한국 경제의 재고를 주제로 한 강연에 초청한다는 이메일을 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김은경 현 환경부 장관은 사회 및 환경 문제를 다루는 활동가로서 오랜 세월을 보냈고, 지방 정부에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나는 김 장관이 산업화에 집착하는 한국 사회에서 환경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내 저서를 읽은 김 장관은 외국인이 와서 보다 큰 환경 정책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번 행사가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강연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세종시에 있는 환경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여행 자체는 환경 친화적인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 갈 길이 매우 멀다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세종시에는 기차역이 없습니다. 이곳에 오기 위해서는 자동차 에어컨을 세게 튼 채로 대기를 오염시키면서 시골을 가로질러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낭비적인 생활양식 장려가 주목적인 아파트 단지 건설을 위해 나무들이 베어지고 토양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환경부가 위치한 곳은 기후에 대한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거의 없는 내부로 외부와는 차단된 뱀 모양의 정부 청사 건물 안에 있습니다. 강한 에어컨 덕에 재킷과 넥타이를 착용하고 강연하는 데도 매우 쾌적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전기는 태양열 발전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기후변화’라는 단어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환경 문제를 다루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묘사한 포스터가 있었습니다. 수년간 어설펐던 환경 정책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들 사이에서 변화에 대한 진정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번 행사와 관련해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내 연설은 매우 직설적이었고, 지난 80년간 한국에서 성공의 상징으로 여겨왔던 산업화 사회가 매우 심각한 위험에 빠져들었음을 암시했습니다.

석유와 석탄의 수입을 중단하는 한편, 모든 정부 정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자유무역 이데올로기에 반하므로 농산물 수입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화석 연료를 홍보하는 기업들의 방송 지원이 기후변화에 관한 보도를 위험하게 왜곡하므로, 이들 기업의 TV 광고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런 연설은 매우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의견 차이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어떤 적개심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나는 기후변화에 관한 이 정직한 대화에서 진정한 열정을 느꼈습니다.

나의 발언이 끝난 후 한 관리가 “미국이나 중국, 일본에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왜 한국을 선택했습니까?”라고, 종종 받았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K-POP이나 김치 또는 갈비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며, 오히려 과거 한국 정부의 전통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정치 및 경제의 장기 지속성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전에도 이런 대답을 했지만, 말한 후 그 질문에 대한 보다 정확한 답이 떠올랐습니다.

실제로 일본과 중국 환경부,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조차 금지되어있는 나의 모국인 미국의 환경부였다면 이런 연설을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환경운동가 그룹뿐만 아니라 실제로 정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나의 신랄하고 더 나아가 혁명적일 수도 있는 발언이 공식적인 방식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기적이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나의 발언을 검열하려는 어떠한 시도나 내가 발언한 내용을 담은 복사물을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배포하는 것을 주저하는 움직임이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지난 3주 동안 각각 별도의 프로그램에 따라 군대의 모든 지부에서 나온 장교들을 대상으로 한 네 번의 강연에서도 환경부에서 겪었던 것과 유사한 놀라움을 경험했습니다. 소령급 및 대령급 장교 앞에서 나는 기후변화, 사회의 파편화, 반(反)지성주의의 확산과 같이 최근 대두되고 있는 위협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했습니다.

내가 11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던 진정한 이유는 이런 한국 주류사회의 개방성에 있습니다. 때로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최고 수준에서 솔직히 토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투쟁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불과하므로, 제도적•문명적 재앙에 직면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전기 사용과 환경 문제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들은 석탄 및 석유 연소를 통한 전력 발전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기상 이변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긴 투쟁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도덕적 책임에 대해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실패할 것인가”라고 언급했던 불교 철학자 스티븐 젠킨슨 (Stephen Jenkinson)의 발언을 상기하곤 합니다. 이번 환경부 강연을 통해 적어도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음은 지난 7월 27일 환경부 강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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