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本には技術よりも科学的思考が必要」 (ハフィントンポスト  2017年 6月 26日)

ハフィントンポスト

「日本本には技術よりも科学的思考が必要」

 2017年 6月 26日

エマニュエル・パストリッチ

 

日本人は様々な状況において、自国が成し遂げた最新の技術革新を誇ったりする。また、時には他の国が支配する技術をうらやましがったりもする。私はこの10年間、日本の研究機関と協業して、日本社会を監察してきた。その結果、日本における最も深刻な問題は技術不足ではなく、科学的思考の衰退だと確信が持てるようになった。

最新の自動車やロボットは日本人には何か奇跡的なものとして感じられるようである。このような感覚は技術的な成就に畏敬の念を吹き込むのだが、既存の思考に安住してしまい、批判的な分析能力を急速に低下させてしまう。スマートフォンが政府や経済にどのように作動するのか、その原理を理解しようと試みなければならない。

日本メディアの流すニュースに対しても、視聴者は面白くないものには興味を示さず、複雑なテーマも単純化して一行の文章に要約できると考えている。もちろん、短いプログラムを撮影して編集するのに使用する技術は最先端のものである。

卓越した広帯域サービスのおかげで、日本では最新のスマートフォンでプログラム(動画)を即時に視聴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脳の部位には思考を司る部位と感覚的な刺激に反応する部位とがあるが、前記したような状況において、エンジニアたちは前頭葉皮質を活用して、相当な思考の過程を経なければならない。しかし、メッセージが伝わる所は、感情的な反応を処理する、扁桃体に代表されるような原始的な機能を備えた脳の部位である。

日本の国民は教育、マスコミ、政策の決定が科学的方法で厳しく規制されることを強く要求しなければならない。それは日本社会の階級の下部に属する国民の利益の為に必要な規制だからである。 Read more of this post

“수학이 다스리는 나라 대한민국” (중앙일보2017년 6월 24일)

중앙일보

“수학이 다스리는 나라 대한민국”

2017년 6월 24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나는 우리 학생들이 미래를 걱정하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몹시 가슴 아프다. 나를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단지 그들이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만은 아니다. 학생들은 일상의 표면 아래에 감춰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와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다고 느낀다. 한국 사회는 그들 모두가 인간으로서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일단 숫자로 변환된다. 숫자로 순위를 매긴 다음에야 어떤 일의 가치가 인정받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게 마치 위반하면 안 되는 법칙처럼 돼 버렸다. 한데 랭킹은 우리의 일상적 체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만 한다.

숫자가 다스리는 나라인 한국에서 사는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에 그들이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우리의 문화와 조직에 어떻게 공헌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수학적인 방정식을 동원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예컨대 우리는 ‘몇 개의 IT 기기를 팔았는가’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 논문을 몇 편이나 썼는가’ ‘몇 대의 자동차를 점검했는가’와 같은 질문을 한다.

수학은 한국에서 가치를 매기는 최종적 결정권자가 됐다. 그 어떤 공헌도 양적으로 가늠할 수 없으면 인정되지 않는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 내재돼 있는 끔찍한 ‘폭력’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지극히 복합적인 인간의 체험, 식구들이나 공동체 혹은 자연 세계와 ‘나’라는 개인 사이에 벌어지는 본질적으로 미묘하면서도 다차원적인 상호작용이 끊임없이 랭킹으로 단순화돼 표현된다. 랭킹이라는 단일한 숫자는 어떤 개인이나 조직, 심지어 나라 전체의 가치를 표시한다.

이처럼 인위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치를 수리적으로 바꿔놓으려는 욕구의 원천은 무엇일까. 한국인들이 다른 한국인을 판단하도록 내버려두면, 필연적으로 부패가 끼어든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패를 차단하려면 수학적인 평가라는 보다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 체험에 대한 이러한 2차원적인 접근법은 인간 체험을 ‘평준화’시켜 버린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공허함이 남는다.

교수로서 나는 교수진에 대한 평가가 좁은 범위의 학술지에 몇 개의 논문을 냈느냐로 평가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교수들이 쓰는 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전혀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이 멘토•동료•시민•작가 혹은 철학자로서 어떤 일을 하는지는 관심 밖이다. 몇 편의 학술지 논문을 썼는지는 컴퓨터로 쉽게 셀 수 있다. 하지만 글을 포함해 어떤 교수가 하는 일들의 중요성과 의미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일들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는 사람들뿐이다.

우리 학생들이 처한 상황은 훨씬 나쁘다. 그들의 복합적인 개인 체험은 일자리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스펙(specs)’이라는 묶음으로 변환된다. 마늘이 마늘 으깨는 기구에 겪게 될 운명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비극은 단지 학생들에게 돌아갈 일자리 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젊은이들을 저마다의 존재 자체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비극이다. 그들이 척도에서 차지하는 숫자를 묻는 게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당신에게는 어떤 것들이 근본적인 가치입니까’를 물어야 한다.

사람의 가치를 이해하는 복합적이고 뉘앙스가 있는 방식을 찾아내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사람을 화폐 단위로 정의하지 않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모든 사람의 체험과 공헌을 온전히 평가하려면 사람들 사이에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인식론적 질서에서 꼭대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경제다. 경제는 그저 국내총생산(GDP)이나 이자율이나 수출 같은 숫자로 정의될 뿐이다. 그다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기술이다. 하지만 기술의 중요성을 보여줄 때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매출이나 이윤이다. 역시 숫자다. 기술이 사회에 실제로 미치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은 중시되지 않는다.

문화는 ‘질서 더미’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문화는 개인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활동이나 주말에 긴장을 푸는 휴식 정도로 인식된다. 문화는 우리를 궁극적으로 정의한다. 문화는 우리의 가치를 설정하며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가 통계에 집중하면서 미묘하거나 섬세하거나 어떤 때에는 모호하기까지 한 문화의 본질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빨리 갈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진로의 대한 통제력은 상실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왜 거기로 가는지도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Read more of this post

“한국인은 왜 ‘독립적 사고’를 못하나” (다른 백년 2017년 6월 27일)

다른 백년

“한국인은 왜 ‘독립적 사고’를 못하나”

2017년 6월 27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에 살면서 의아한 점이 하나 있다. 서울에는 훌륭한 고등교육을 받고 하버드와 예일, 스탠포드 등에서 유학한 사람들과 함께 기계공학부터 공공정책, 외교 등에서 뛰어난 지식과 식견을 갖춘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한국은 국제이슈에 관해 자국만의 비전과 시각을 제시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 한국 인재들은 북한 및 동아시아 이슈에서 훨씬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마이클 그린, 프린스턴 대학의 존 이켄베리 등 미국 전문가가 쓴 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데 온 힘을 쏟는다.

미국 싱크탱크 중 하나인 CSIS에서의 발언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외신’이라는 외피를 쓰고, 국내에 들어와 국내 정치와 외교 정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진은 CSIS에서 열린 북한인권 관련 세미나 장면.

지금 미국 정부가 어떤 정책도 제시할 능력이 못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라도 이 문제는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대통령직을 떼돈 버는 수단으로 인식하는 억만장자 무리와 이들의 충성스런 부하, 국익보다 금융자본을 위해 일하는 전문 공무원과 정치인 사이에서 미국은 정국 마비를 겪고 있다. Read more of this post

“한미정상회담 이후 문재인정부가 할 일” (다른 백년 2017년 7월 4일)

다른 백년

“한미정상회담 이후 문재인정부가 할 일”

2017년 7월 4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마도 일부 한국 외교관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즐거운 회담을 한 것에 대해 자축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확인했고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정상 회담이 심각한 지정학적 갈등으로 이어졌던 트럼프 대통령과 안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 비해 훨씬 더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사실이다.

이번 정상회담의 성적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쪽이다. 그는 지금 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고, 시민사회에서 탄핵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한국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원하는 지도자가 트럼프 대통령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Read more of this post

“The Empire of Mathematics” (JoongAng Daily June 26, 2017)

JoongAng Daily

June 26, 2017

“The Empire of Mathematics”

Emanuel Pastreich

 

I am deeply disturbed when I hear my students speak about their futures and relate worries about what they will do.

It is not simply that they are not certain that they can find good jobs. Rather they feel that there is some hidden force beneath the surface that keeps reaching up to grab their feet. Korean society does not want to recognize that they have an innate value in themselves as humans.

It seems to be an inviolable law that whatever Koreans do must be converted into numbers and then ranked before its significance can be appreciated. Moreover, the ranking must be based on some objective criterion out there that is far from daily experience.

We do not judge people based on how they interact with those around them, or by how they contribute to our culture and to organizations through their daily activities. Rather we use mathematical equations to determine value: number of widgets sold, number of SSCI articles published, number of automobiles serviced.

Mathematics has become the final arbiter of value in Korea and any contributions that cannot be assessed in terms of quantity cannot be appreciated or recognized.

I think my students are confused because there is a terrible violence in Korean society of which they are unaware. The full complexity of human experience, the nuanced and multidimensional nature of one’s interactions with family, community and the natural world is constantly rendered into two-dimensions as a ranking, a single number on a scale that represents the worth of the individual, or of the institution or of the nation.

The original source of this drive for an artificial mathematical rendering of value stems from concerns that if Koreans are left to judge other Koreans, that corruption will inevitably set in and therefore mathematical assessment will be more objective.

This two-dimensional approach to the human experience has flattened it and left us feeling empty. Read more of this post

“Moon’s Checklist” (Korea Times June 28, 2017)

Korea Times

June 28, 2017

“Moon’s Checklist”

Emanuel Pastreich

 

At this point, I fear that such a breakthrough is impossible. The United States military does not take orders from the inexperienced and self-centered Trump, but gives them to him. The military is itself in the midst of enormous internal conflicts concerning what the United States will do in the coming months against Iran and Russia.

The recent demands of Saudi Arabia, with encouragement from the United States, that Qatar essentially give up its political and economic independence and end its relations with Turkey and Iran, seems eerily like the demands made by Austria, with encouragement from Germany, that Serbia surrender its independence in 1914. Those events a century ago led to the First World War and we should not underestimate the current risks.President Moon Jae-in has a tremendous task ahead of him as he gears up to meet President Trump at one of the most dangerous moments in recent history. It would be great if the two could have an honest talk about their nations’ interests, find common ground somewhere and move forward in an effort to reduce the tensions in the region.

Koreans are focused on the THAAD issue and how Korea can somehow navigate its way between Chinese and American demands, but perhaps the greater issue will be how Korea can keep from being swept up in the most immediately dangerous conflict in the Middle East and show definitively that it will not support any military action against Iran. I fear this question may not even be on the list of those preparing for the summit.

Above all, Moon must start a broad dialogue with a large swath of Americans about how Korea and the United States can work together in many fields, from education and public policy, to their responses to climate change and the establishment of international norms. This move may seem off topic, but it is much more likely to gain lasting support for Korea in the United States, as opposed to agreements with Trump that can be overturned by a Tweet.

Korea is a nation that has been devoted to multilateralism and to the establishment of global norms since the time of King Gojong and that tradition should be reflected in the actions of President Moon. He should harken back to America’s obligations to international treaties and global norms at every moment, even if such words are irritating to the Trump administration, or even to many mainstream American politicians. Read more of this post

“Post-summit syndrome and road forward” (Korea Times July 4, 2017)

Korea Times

“Post-summit syndrome and road forward”

July 4, 2017

Emanuel Pastreich

 

Some Koreans are congratulating themselves that President Moon Jae-in had such pleasant meetings with President Donald Trump at the White House. Certainly the two leaders affirmed the importance of the Korea-US alliance and they claimed that they are working closely together to respond to the North Korean threat.

But when President Trump spoke of the “exemplary nature of the US-ROK Alliance” it seemed so distant from what he had said previously as to raise serious doubts about whether such pleasantries mean much at all. President Trump’s willingness to let South Korea play a “leading role” in setting the stage for the peaceful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may only last until the next presidential Tweet. Read more of this post

“‘수학’이 다스리는 나라 대한민국” 중앙일보

중앙일보

“‘수학’이 다스리는 나라 대한민국”

2017년 6월 24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나는 우리 학생들이 미래를 걱정하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몹시 가슴 아프다. 나를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단지 그들이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만은 아니다. 학생들은 일상의 표면 아래에 감춰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와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다고 느낀다. 한국 사회는 그들 모두가 인간으로서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일단 숫자로 변환된다. 숫자로 순위를 매긴 다음에야 어떤 일의 가치가 인정받게 된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게 마치 위반하면 안 되는 법칙처럼 돼 버렸다. 한데 랭킹은 우리의 일상적 체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만 한다.

숫자가 다스리는 나라인 한국에서 사는 우리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에 그들이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들이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우리의 문화와 조직에 어떻게 공헌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수학적인 방정식을 동원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 예컨대 우리는 ‘몇 개의 IT 기기를 팔았는가’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 논문을 몇 편이나 썼는가’ ‘몇 대의 자동차를 점검했는가’와 같은 질문을 한다. Read more of this post

Changes so slow they are invisible to us

Sadly, people cannot perceive slow changes in our society. Because they do not study history, or read books for that matter, the “coup in slow motion” is all but invisible for most citizens, and most intellectuals, having been reduced to the sellers of wears, rather than the leaders of a broad social discourse, can do virtually nothing.

1996년 봄 서울에서

그때 1996년 봄였어요. 생각 해보니까 어제 같아요.

1996-chung-byungsol-yoo-hee-seok.jpg

가장 친한 정병설씨 하고 유희석씨 하고 이대앞 카페에서 문학을 논의 하는 순간였어요. 운연히 잘 남겼어요. 유희석씨는 지금 전남대학교 영문과 정병설씨는 서울대 국문과에 계세요. 지난 18년 같이 만날 기회는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