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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일, 명칭 바로잡기” (중앙일보 2016년 1월 23일)

중앙일보

“한국에서 가장 시급한 일, 명칭 바로잡기”

2016년 1월 23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 경제와 정치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만이 엄청나다. 정부나 기업이 표명하는 우선순위와 서민 생활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괴리 심화의 원흉인 ‘나쁜 사람들’이 누군지 밝혀내겠다는 욕구가 국민 사이에서 점증하고 있다.

권한이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이가 보통 사람들이 처한 곤경에 대해 무관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국가 정책과 서민의 경제적 현실 사이의 단절을 초래한 원인은 아니다. 그보다는 시민과 통치자 사이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계약이 붕괴된 게 진짜 원인이다.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어느 정치인이 최근에 무슨 말을 했는지 곱씹는 게 아니다. 공자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명제인 ‘정명(正名)’을 살펴보는 편이 낫다. 공자는 명칭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정명’이 좁힐 수 있다고 봤다. 즉 제도와 직능을 기술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명칭’, 그리고 제도와 직능이 시간 속에서 진화하고 변화하는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를 축소시킬 수 있는 수단이 ‘정명’이라고 공자는 파악했던 것이다.

우리는 정부•대학•변호사•의사•기업과 같은 제도나 직능의 명칭을 사용할 때 그 명칭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와 직능이 수행하는 기능은 지난 10여 년간, 특히 지난 5년간 급속하게 변화했다. 예를 들면 은행은 기술적으로 진화했고 극적인 방식으로 세계화됨으로써 은행이 사회 속에서 수행하는 기능과 목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슬프게도 모든 매체가 ‘은행’이나 ‘국회’ 같은 제도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지 않는다. 매체들이 명칭을 원래대로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Read more of this post

“정치인들에게 기적을 기대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6년 1월 2일)

중앙일보

 “정치인들에게 기적을 기대할 수 있을까”

2016년 1월 2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일부 친구들은 ‘안철수 신당’이 정체돼 있는 여의도 정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희망을 피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몇 가지 의례적(ritualistic)인 변화가 있고 또 한 번 당명이 바뀌는 것뿐이지 정치가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들은 이렇게 비유한다. 환상적인 모습의 구름이 하늘을 수놓으며 지나간다고 해서 우리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연관성이 없다. 정당과 보통 시민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몸부림이 미국 정치에서도 민주당을 무대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대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가 새로운 정당의 창당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샌더스는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자들로부터 민주당 당내 통제권을 탈취하려고 한다. 재계의 이익과 가까운 현재의 민주당을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다.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데비 와서먼 슐츠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의장을 상대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슐츠 의장은 2008년 힐러리 선거운동본부의 공동 본부장이었다. 그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힐러리 쪽에 유리하도록 편향됐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Read more of thi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