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April 2015

贝一明:‘从美国的观点来看的中国社会稳定‘ 于  中国学术研讨会 2:00-2:40 PM

中国学术研讨会

 ‘中国社会的稳定结构: 过去、现在与未来’

中国学术研讨会

地点: 韩国外国语大学 报告厅(강연실, 教授会馆1层)

六月 十二日

下午 演讲 (下午 两点 到 两点四十分

贝一明 (庆熙大学 国际大学 教授; 亚洲研究所 所长)

 

‘从美国的观点来看的中国社会稳定结构’

由于中国社会稳定可以影响全球的新秩序,中国社会稳定已成为最近全世界瞩目的热点话题。因此,韩国外国语大学中国研究所将举办国际学术研讨会,希望诸多学者参加交换意见。我们所真诚邀请您出席研讨会以及发表论文。

4、联系方式

– 联系人:金仁植(韩国外大中国研究所责任研究员,法学博士)

– 联系电话:02-2173-3498,3499 / 010-4918-0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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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원래 마을이었다” 이만열 @ 세바시

2015년 4월 3일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서울은 원래 마을이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 인스티튜트 소장   ‘한국 사람들은 행복합니까?’ 한국에서 살고있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질문입니다. 높은 자살율, 우울증, 고독감..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외국의 사례, 외국의 전문가들을 찾습니다. 하지만 임마누엘 교수는 오히려 한국 사회의 전통 문화 속에 그 해결책이 있다고 말합니다. 서울의 숨은 골목을 천천히 산책하듯이 그가 안내하는 또 다른 서울의 풍경을 만나봅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서울, 그리고 소중한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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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グローバル金融界のために韓国がすべきこと” (中央日報 2015年04月27日)

中央日報

グローバル金融界のために韓国がすべきこと

2015年04月27日

エマニュエル パストリッチ

 

AIIBに対する主な批判は、中国が開発途上国でインフラプロジェクトを進める際に環境に及ぼす影響に対するスタンダードが欠如しているということだ。このような懸念は正当だ。多くの中国人もまた、快く中国のインフラ開発モデルに問題があるということを認める。中国モデルは多くの人が貧困から抜け出し中産層への成長を可能にさせた。中国モデルは開発途上国だけでなく先進国にも輸出できる。だが環境に及ぼす影響に対する標準は低い水準だった。

また、中国は水質汚染、黄砂、粒子状物質などの問題を抱えている。中国だけでなくアジア全体に大きな問題だ。それにもかかわらず中国が環境後進国だと断定することはできない。中国は再生可能エネルギー投資分野で世界を先導している。風力や太陽エネルギー分野で中国ほど多くの投資をする国はない。中国が肯定的な発展モデルを発展させようとするならば、その成功の可否はAIIBとGCFの関係設定にかかっている。2つの機関間の協力が2つの機関の発展過程で優先順位を占めなければならない。AIIBとGCFが共同で開発するグリーン発展モデルの対象はドイツやフィンランドのような富裕国ではない。いままさに経済的な膨張を始めた国々だ。したがって新しいモデルの波及力は潜在的に強大だ。 Read more of this post

“韩国要为全球金融界做的事” (中央日报 2015年 4月 28日)

中央日报

“韩国要为全球金融界做的事”

2015年 4月 28日

贝一明

 

现在韩国人怀疑韩国是否 正沦为夹在世界两大金融势力之间的“三明治”。这是指夹在历经六十余年发展已确定地位的以美国华盛顿为中心的布雷顿森林货币体系和中国主导的亚投行(AIIB)之间。AIIB正逐渐发展成为以美国为中心的潜在竞争者。世界主要国家已决定加入AIIB。

韩国一直从布雷顿森林货币体系支撑的现在全球贸易体制和韩美同盟获得巨大利益。而且世界银行(WB)行长金墉也是韩国裔。但中国已成为亚洲主导经济强国。中国是韩国最重要的贸易伙伴。AIIB对韩国来说是一个很大诱惑。韩国企业可以通过AIIB加入亚洲乃至全世界的基础设施项目。并不存在非要在美中两国两大势力中选择一方的“悲剧”或进退两难境地。但如果韩国不能充分发挥想象力,也有可能会出现这种结果。 Read more of this post

“글로벌 금융계를 위해 한국이 할 일” (중앙일보 2015년 04월 25일)

중앙일보

“글로벌 금융계를 위해 한국이 할 일”

2015년 04월 25일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인들은 한국이 세계의 양대 금융 세력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지난 60여 년에 걸친 발전으로 이미 확고히 자리 잡은 미국 워싱턴 중심의 브레튼우즈 금융 체제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사이에서 말이다. AIIB는 미국 중심 금융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이 AIIB에 가담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은 브레튼우즈 체제가 지탱하는 현재의 글로벌 무역 체제와 한·미 동맹 덕분에 큰 이득을 얻어 왔다. 게다가 세계은행(WB)의 김용 총재는 한국계다. 하지만 중국은 아시아의 지배적인 경제 강대국이 됐다. 중국은 한국에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다. AIIB는 한국에 견딜 수 없는 유혹이다. 한국 기업들은 AIIB를 통해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대 세력 중에서 한쪽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비극’이나 딜레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이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런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만 한다면,한국의 미래를 기다리는 것은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국제 금융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국가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난 50여 년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잠재력을 바탕으로 한국은 AIIB의 미래를 규정할 수도 있다. AIIB가 긍정적인 길로 접어들게 해 새로운 글로벌 제도로 발전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한국이다.

한국은 인천에 녹색기후기금(GCF)의 본부를 유치했다. 한국은 그래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GCF라는 새로운 글로벌 금융 기구는 발전의 본질 그 자체를 바꿀 수 있다. 경제 성장의 정의에서 발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GCF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을 보완하는 새로운 금융의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들 국제기구가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변모하도록 자극할 수도 있다. Read more of this post

“내가 경험한 서울: 방문자에서 시민으로” (허핑턴포스트 2015년 4월 24일)

허핑턴포스트

“내가 경험한 서울: 방문자에서 시민으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2015년 4월 24일

 

내가 경험한 서울 | <1> 방문객에서 거주자로

 

내가 서울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91년 2월의 어느 흐린 날 오후였다. 기내 서비스로 제공된 치약처럼 생긴 튜브에 들어 있는 빨간색 매운 소스와 야채가 담긴 한 그릇의 밥이 날 당황스럽게 했다. 한국 사람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넥타이에 넓은 깃의 옷은 1970년대 어디선가 막 튀어 나온 것 같이 기묘했고 한국 여성들의 진한 눈 화장과 밝은 원색의 옷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내려 다 본 서울은 넓은 콘크리트 표면에 빠르게 나타나는 5층짜리 건물들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나는 일본의 거품 경기가 그 정점을 찍고 있던 시기에 도쿄에서 대학원생으로 4년간 생활했다. 당시 난 도쿄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대도시의 생명력을 즐기고 있었다. 아오야모 길에 즐비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세련된 옷차림의 일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들의 새로운 세계적 영향력을 흥분된 목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당시 도쿄는 미국 내 어느 도시들보다 시각적으로 더 대담했고 커피는 더 맛있었으며 대화는 더 활기찼다.

상대적으로 난 서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동안 내가 서울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학생들이 머리에 빨간색 띠를 하고 거리에서 경찰과 싸우고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서로 싸우는 도쿄보다 원시적이며 암울한 도시란 느낌을 받았다.

국가로서의 한국은 현대 국제 정치에서 각주로 가끔 언급되는 것이 다였다. 또한 “동아시아: 그 전통과 변화”라는 이름의 동아시아 연구 교과서(하버드 에드윈 라이셔, 앨버트 그레이그, 그리고 존 페이뱅크가 편집)에서 내가 배운 한국은 중국 문화가 아주 조금 변화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솔직히, 예일 동창생인 우이찬이 자신의 결혼식에 날 초대하지 않았다면 서울을 방문하기 위해 굳이 비행기를 타진 않았을 것이다. 우는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리는 최고의 친화력을 가진 미국 교포로 학부에서 일본어를 같이 공부한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그는 나보다 훨씬 큰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일본에서 일본어를 같이 공부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일본어를 연습하고 자주 같이 술을 마시곤 했다. 우는 연세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서울에 갔고 거기서 사려 깊은 한국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서울에 도착한 나를 환영해준 김포공항은 현대적 감각이 더해진 아시아 기능주의의 전형이었다. 타이페이, 자카르타와 쿠알라룸푸르 등 빠른 속도로 건설되는 아시아의 다른 대도시 내의 시설과 같았다. 급조된 김포 공항 터미널에는 과거의 농경사회를 뒤로하고 고급 잡지에서 보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산업화된 미래를 만들겠다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서울로 가기 위해 탄 셔틀버스는 갈매기 떼로 뒤덮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지나갔다. 물론 내가 본 것과 같은 쓰레기 매립지는 도쿄에도, 그리고 뉴욕에도 존재할 것이다. 나는 고속도로 옆에 위치한 쓰레기 매립지 모습에 당황하면서 한편으론 요란하지도 꾸미지 않은 서울이란 도시에 조금씩 흥미가 느껴졌다.

서울에서 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도심 속에서 짐을 가득 실은 트럭 사이를 겁도 없이 요리조리 피해 운전하는 택시 속에서 난 나도 모르게 택시 앞 좌석 등받이를 두 손으로 꼭 잡고 있었다. 내가 받은 서울의 첫인상은 도쿄보다 조금은 더 거칠고 투박하며 무례한 듯했다. 당시 난 도쿄가 갖고 있는 우화함과 엄격한 품질 기준에 강한 인상을 받았었다. 서울에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품질을 요구하는 도쿄에서는 본 적이 없는 콘크리트를 아무렇게나 부어 거칠게 만들어진 계단들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낸 3일 동안 난 표면 아래 존재하는 서울의 과소평가된 장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결혼식은 시청 근처에 위치한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렸다. 이 현대적인 호텔은 일제 강점기 거리를 향해 서 있던 거대한 로마네스크 빌딩 출입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주의 깊게 꾸며진 내부 장식 덕분에 과거의 유물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추웠지만 다행히, 나는 혼자서 몇 시간 동안 주위를 돌아보고 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다. 거리를 걸으며 서울 시민들이 낮은 철제 의자에 앉아 순대, (작은 조각의 떡이 매운 고추 국물 속에 잠겨있는 )떡볶이, (빵 가운데 검은 설탕이 들어 있는)호떡, (햄과 야채를 밥으로 싸고 그 모양을 유지하기 위해 김으로 싼) 김밥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 포장마차를 여러 개 지나쳤다.

서울의 공기에는 알 수 없는 설렘이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블라우스와 양말을 놓고 입씨름을 하는 재래시장에서 느낀 일종의 자유로운 생명력은 나를 점점 더 매료시켰다. 남북으로 나 있는 세종로의 양 쪽은 서울에서 가장 못생긴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대사관을 비롯하여 큰 콘크리트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서양식 건물 뒤에서 우연히 발견한 골목길에서 오래된 나무로 틀이 짜인 사각형의 흰색 석고 벽을 품은 한국 전통 가옥인 한옥을 만났다. 절제된 우아함과 세련된 비대칭 감각을 갖고 있는 한옥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금이 간 나무 대문 사이로 보이는 정원은 송나라 시대의 최고의 건축물과 같이 인간이 만든 구조와 자연 환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한국 정원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은 세심하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일본의 정원이나 분재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듯 한 외관에도 그 아름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

몇 시간 자유롭게 서울을 구경하자 점점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도교의 미츠코시 이세탄 같은 대형 백화점 지하에는 식당가와 식료품 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상사에게 새해 선물용으로 적당한 잘 길러진 멜론을 수백 달러에 판매한다. 난 한국의 롯데백화점 지하에서 일본과 비슷한 스타일의 식당가를 찾았다. 그 중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두와 템프라 스타일의 튀긴 고기와 야채를 주문하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발견했다. 깔끔하게 회색 옷을 입고 머리는 단정하게 쪽을 지고 흰색 모자를 쓴 중년의 여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음식을 제공하는 동안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도쿄에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물론 나는 한국어를 몇 마디밖에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글 설명서를 훑어 보느라 바빴다. 3명의 아줌마들은(중년 여성) 나와 내가 하는 공부에 큰 관심을 보여주었다. 너무나도 정중한 톤으로 말하는 일본 여성들에게 익숙해 있던 내게 한국 아줌마들의 관심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들은 영어, 일본어, 한글을 비롯해 얼굴 표정, 그리고 단어를 썩어가며 내가 한국에 온 이유와 내가 하는 일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였다. 아줌마들은 겉으로 보이는 내가 아닌 나란 인간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서울이란 대도시 속에서 마을이나 작은 공동체에 존재하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다른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발견한 것이다. 롯데호텔의 외관은 도쿄처럼 완벽하게 세련된 것은 아니지만 인내심을 갖고 내게 음식을 설명하는 아줌마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1970 년대 새마을 운동은 한국 전통 마을의 삶 대부분을 없애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마을이란 개념을 제거하기는 어렵다.

서울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정책적 지시에 따라 진정한 “건설 산업 단지”인 거대한 콘크리트 대도시로 변모했다. 서울이 파리나 비엔나와 같은 미적 매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뜰에 놓인 커다란 항아리에 김치를 담그는 여인 또는 단감을 끈에 메달아 처마 끝에 걸면서 자식들의 결혼이나 고등학교 시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서 마을 공동체의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식당 아줌마들의 따뜻한 말에서, 택시 운전사가 보여준 관심에서 그리고 신문 헤드라인과 관련하여 호텔 웨이터가 보여준 동정심에서 서울이란 도시 표면 아래 존재하는 강력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호텔 내 작지만 절제된 품위를 품고 있는 마당에서 발견한 하늘로 젖혀진 3단 처마의 팔각정 원구단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원구단 모습은 중국 제국 후반의 정원 건축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이지만 덜 가식적이고 사색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 제단은 분명히 자금성에 있는 무언가를 단순히 본 따 만들었다기 보다는 서울의 급속한 현대화 속에 묻혀 있는 또 다른 한국 전통에 대한 단서였다.

원구단은 나의 고고학에 대한 흥미를 자극했다. 나는 원구단 옆에 서있는 청동 표지판의 건축물에 대한 간단한 영어 설명에 집중했다. 원구단이 1897년 고종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며 한국의 황제로서 (무자비한 식민지 확장시기에 한국의 문화와 지정학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고종 스스로 지위를 황제로 승격시켰다.) 중국에 조공을 바치지 않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종 황제는 고려 시대 때부터 시행되었던 하늘에 드리는 제사 의식의 재현을 통해 서울의 문화적 자신감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사실 이 의식은 1454년에서 1464년까지 조선 왕조 세조에 의해 짧게 재현된 바 있다. 이후 조선 왕조보다 24년 먼저 실시된 중국 명조의 문화적 권위를 받아들이면서 이후 중국에 조공을 받치게 되었다.

고종 황제는 누구이며 그는 왜 원구단 건설을 통해 왕국을 제국으로 변화시키려고 했을까? 19세기 말 고종의 아버지는 왜 1592년 일본 침략으로 불타 폐허가 된 서울 북쪽의 경복궁을 재건했을까? 나는 서울 속 궁궐들을 방문하면서 서울이 단순히 1970년대와 1980년대 (타이페이 또는 마닐라와 유사한) 급속한 발전의 산물이 아님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서울에는 일본의 에도 시기(현대도쿄)가 시작하기 훨씬 전인 1390년 처음 디자인된 걸작들이 싸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이 갖고 있는 이러한 심층구조는 아직까지도 살아있다.

경복궁 앞 광화문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대로는 14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는데 궁 북쪽에 자리잡은 북악산 (북쪽에 있는 산봉우리)과 그 뒤의 삼각산의 (3개의 뿔이 있는 산) 기가 흐르는 통로 역할을 했다. 원구단을 본 이후 종로를 바라보며 난 서울이란 도시 표면 아래 묻혀있는 역사적 윤곽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이 기의 흐름을 끊고 풍수적 순환을 방해하기 위해 광화문을 부수고 그 자리에 자만심에 가득 찬 조선총독부를 건설하였지만 서울이란 고대 도시가 갖고 있는 얼은 살아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길을 걸으며 아스팔트, 콘크리트, 철골, 그리고 유리에서 고대 수도가 갖고 있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 시민들도 잘 모르는 서울 도로 중에는 10세기에 만들어진 것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을 처음 방문하고 20년이 지나 2011년 난 관광객이 아닌 아이들이 한국 학교에 다니는 아저씨 (중년의 한국 남성)가 되어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아침이면 콩나물 시루 같은 지하철로 출근하는 서울 시민이 되어 있었다. 나는 작은 도시였던 서울이 빠른 속도로 세계 문화, 교육, 금융 그리고 정치의 중심으로 진화하는 것을 목격했다. 서울의 변화는 미국에 있는 동료나 한국인 스스로도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인스턴트 커피에 설탕을 많이 넣은 커피만 팔던 서울의 커피숍 (다방)들은 카페로 변모했고 아시아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커피를 판매하는 곳도 있다. 화랑이 도시 곳곳에 버섯처럼 솟아났다. 종종 화랑이 자리잡은 장소들은 첫 눈에는 별 재미가 없는 지역으로 과연 이런 곳에서 갤러리가 될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탁소와 식료품점 사이에 끼어 미묘하게 아이러니한 작품을 소개하는 화랑을 발견할 때마다 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난 서울 같은 도시를 본 적이 없다. 서울 어디선가는 세계적 수준의 낙서 예술을 만날 수 있고 암호 같은 상형 문자와 이미지가 그려진 작은 크기의 이상한 포스터(2 × 2 cm)가 여기 저기 나타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겉으로는 비슷하게 옷을 입은 직장인들과 20층 아파트에서 실질적으로 아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주부들이 보여주는 매우 획일적인 문화 아래에 활기 넘치는 창조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루한 교육 시스템이 창조한 상상력이 없는 직장인들과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자살 율에도 불구하고 서울 안에는 넘치는 창조력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창조적인 래퍼를 비롯하여 에너지 넘치는 댄서 그리고 혁신적인 클래식 음악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단조로운 벽돌 건물과 한국의 생산품으로 유명한 반도체처럼 디자인된 서울의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어떻게 이처럼 동적인 문화를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다. 서울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서울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외국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도 서울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활력이 넘치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서울의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만약 내가 10년 전 서울이 세계의 문화 중심지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었을 것이다.

물론 서울이 세계 문화의 중심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직은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서울은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년 전 한국에 일본 만화가 넘쳐날 때 정부는 일본 만화 수입을 제한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서울은 급격히 늘어나는 웹툰 산업(인터넷 만화)의 메카로 떠오르면서 아시아에서 만화의 흐름을 바꾸고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다. 웹툰의 발전은 한국에서 만화가 완전히 소외되었다고 여겨졌을 때 시작되었고 5년이란 짧은 시간 안에 한국은 업계의 주요 국가로 떠올랐다. 젊은 바둑(일본에서는 “고”라고 함) 고수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겪는 한국 기업체 내의 일상의 진부함과 기업 문화 속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것 같은 직장인들의 인간관계를 다룬 웹둔 ‘미생’은 큰 인기를 얻었다. 미디어 거인인 다음을 통해 작품을 발표한 미생의 윤태호 작가는 서울에 웹툰 허브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미생을 내 개인 블로그인 “Circles and Squares,”에 소개했을 때도 블로그를 운영한 지난 5년 동안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히트를 받았다.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형태도 크게 변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미군이거나, 선교사 또는 영어 교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미군 기지가 있는 이태원 근처를 주로 방문했다. 그러나 현재 서울에는 도시가 주는 기회를 찾아 세계 각지에서 온 작가, 예술가, 기업가, 그리고 과학자들이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란 도시 표면 아래 존재하는 잠재력과, 서울의 문화적 유연성 그리고 그 생명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주로 미군 기지에서 멀지 않은 해방촌에 살았다. 그러나 군기지 자체가 평택시로 이전할 예정이어서 해방촌 인근에는 새로운 예술 카페와 유기농 채소를 원료로 한 수십 가지 막걸리 샘플을 맛 볼 수 있는 막걸리(한국의 전통 쌀 와인) 바를 포함하여 다양한 상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지역은 1980년대 하이트-애쉬버리와 매우 유사한 외국인 거주지가 되어가고 있다.

외국인 친구들은 서울 시민들의 편협함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들은 한국인들이 상투적으로 묻는 김치를 좋아하냐 또는 언제 본국으로 돌아가느냐와 같은 질문에 불편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편협함에 불평하는 만큼 한국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Read more of this post

“一位非裔韩国人的悲哀” (中央日报 2014年 4月 1日 )

中央日

一位非裔韩国人的悲哀

 

2014  4  1 

贝一明 

 

这是笔者在庆熙大学的同事埃德·里德教授不久前在仁川机场亲眼看到的一幕当时一位黑人在出入境检查口排在了韩国人检查窗口不久后有三名韩国人热情地走向他议他去国人专用窗口排队他看上去非常不却依旧站着没动轮到他接受审查时才知道这位黑人来是拥有韩国国籍的韩国人 

韩国,“多文化普遍被误用来指称来自东南亚或中国女性与韩国男性结婚后组成的家庭当然她们理应被接纳为韩国文化的成员仅将这种家庭称为多文化”,显是存在语病的韩国社会中,“多文化应用来指代吸纳其他文化后形成的包容性文化多文化的基础不只是接纳外国人并使其发生变化而是一种接纳海外同胞领养儿童乃至朝鲜同胞的包容性文明  

若想成功实现国际化就必须用现代人的眼光对流传下来的传统进行重新解读时深深扎根于传统的价值体系学和文学土壤如果韩国文化和新加坡或香港文化没有丝毫区别那人们如何因为韩国这个国家感到骄傲又如何去喜爱它呢  

多文化的韩国社会必须能够接纳所有愿意将这里当作祖国的入籍外国人而且将他们融合为社会共同体成员的基础只能是韩国的固有文化也就是比起在韩国社会普及外来的发达国家文化进韩国土生土长的固有文化普及开来才是更加有效的方法 

多文化社会像是一曲交响乐在融合多种文化传统创作成一部乐曲的过程中应将每支交响曲的独特和音都完美地表现出来只有这样才能形成伟大的传统创造出能够接纳各种人群的世界文化  

值得庆幸的是韩国人延续了强调普遍性甚于个人经验特殊性的朱子学传统文化视为多数人谋利益的弘益人思想也可以成为韩国吸纳各色人种文化和传统创造全新文明的基础  

下面让我们看看美国的传统文化国秋收感恩节的传统来自于清教徒革命时期从英国跨洋而来的最初白人移民庆祝第一次收获而举行的活动但在今天秋收感恩节已经成为黑人国人等各种民族和外国人共同参与的一种文化马斯·杰弗逊虽然是拥有200多名奴隶的白人农场主他却主所有人在神面前一律平等”,为美国宪法打下了基础当时杰弗逊所考虑的虽然只有白人男性的权力今天他的启蒙哲学却成为了出身于不同民族和背景的所有美国人所遵循的基础哲学价值 

来会出现很多非裔韩国人越南裔韩国人等各种韩国人大家是否想们会一方面珍视着自己的固有文化一方面会对韩国的文化传统产生深深的归属感现在很多韩国人应该还对这种想法非常生疏但世宗大王或元晓大师等伟人完全可以成为所有就读在韩国小学的各民族学生所尊敬的英雄  

若想成为多文化社会首先要先和朝鲜同胞一起营造一场韩半岛文化的艺复兴”。鲜和韩国的国民使用着同一种语言共享着同样的历史统一过程中的最大问题也不是军事或经济难题而是是否扩张韩国文化使所有国民都认为成为它的一部分这不是说韩国要吸收朝鲜的文化而是说韩国必须创造出足以感动世界的全新文化才能实现这一梦想韩国必须推动韩国文化扩散使韩国文化足以为朝鲜人国出身的韩国人乃至所有渴望自由和文明的地球人带去灵感和希望 Read more of this post

书评《跨海求真》 中央日报 金光林

中央日报

 

书评《跨海求真》

金光林

日本新泻产业大学教授

2015年 4月 22日  

 

他,早年毕业于耶鲁大学并成为哈佛大学的博士,随后他又旅学于韩日等亚洲国家及地区,精通汉语、日语及韩语,立足于美国人的观点对东亚进行了不失偏颇的分析与批评,就是这样一个拒绝平凡的美国人,写就了一本不平凡的书,那就是《跨海求真》。著者贝一明先生以其质朴而真诚的文字,讲述了他从跨入学习中文的门槛,到深入中国文化乃至今后中国在世界范围内应扮演的角色等。该书涉及的范围广阔,内容却不失详实,字里行间中,可以窥见贝一明先生在多年学习中文沉淀下来的深厚底蕴,着实令笔者在内的众多中国人汗颜。

先生在开篇即一蹴而就,叙述了他是如何接触到中文以及排除万难学习中文的经历,要知道在美国,学习中文并非易事,而先生成功了。他提到,外界环境中没有任何驱动力来驱使他学习,所以给自己制定标准,不依赖任何外界压力是学习的关键。这种,“走自己的路,让别人说去吧”的精神,正是当今的许多中国人应该借鉴学习的。先生告诫自己的儿子道:如果有人从一种观点来看,那你就得从一个不同的角度去看。他深知,如果不能洞察事情的多重趋势,就只能看到其中的一个方面,不过是管中窥豹罢了,而这样难免会全盘接受可能会是完全错误的信息。看,先生说得是多么一针见血!

“中国梦”是什么?对于这个比较新的概念,先生提出了一下富有建设性的建议。他畅言道,中国梦必须是一个可以鼓舞亚非拉人民的愿景,它还应当展现中国的许多优秀传统,譬如重视知识分子,充满关爱他人的心以让它更具有人文关怀的性格。除此之外,对于全球环境的重视会让这个梦想进一步成长为“世界梦”,它会带领亿万世界人民。先生还补充道,低消费应该是中国梦的核心之一。提倡精神生活的充实,而并非鼓吹富贵奢华,这也能让更多人安下浮躁的心,为自己寻找一片安静的港湾。 Read more of this post

“韩国要大力宣传汉江奇迹背后的历史” 中央日报 2014年 7月 12日

中央日报

“韩国要大力宣传汉江奇迹背后的历史”

2014年 7月 12日

贝一明

 

德国汽车电视广告的模式比较类似,一辆矫捷的汽车瞬间横穿茂密的林间路,轻轻停在古风的宅院前。就在这时,会出现对德国汽车拥有的在其他熟悉的汽车品牌中看不到的特别精巧的独立工程技术进行说明。

因为大家都知道德国拥有追溯到古登堡世界首次大量印刷《圣经》的科学和工程的惊人传统,所以这种广告行得通。不仅如此,德国是拥有像马克斯·普朗克、阿尔伯特·爱因斯坦和发明首台编程电脑的康拉德·楚泽等杰出科学家的国家。德国的工程技术水平对于看这种广告的人来说非常熟悉,不用说明也能了解。简单来说,德国工程令人信任,即使不用另外注释也可以。 Read more of this post

딸 레이첼 의 채소 이야기 만화

우리딸은 매우 재미 있는 만화를 작성 했어요. 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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